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파토 추천0 비추천0




[주장] 우유병을 살려내라!

2000.8.8. 화요일

딴지 박물관장 파토








 


요즘은 먹을 것도 마실것도 풍족하다.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각종 식품들도 골라먹기조차 힘들 정도로 많다. 그러다보니 이런 걸 먹고 큰 요즘 애덜은 키도 크고 떡대도 좋다. 한때 여자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180센티는 이젠 우습고, 덩크슛을 어렵잖게 해내는 고딩들도 흔히 볼 수 있지 않은가 말이다. 글타, 세상은 변한 것이다... 


하지만 절라 없던 시절을 살던 우리들에게도 큰 키와 단단한 뼈를 얻을 수 있는 신비의 영약이 있었으니.. 하루 한 잔만 마시면 온갖 영양소가 보충될 뿐 아니라 무병장수한다는 넘. 


바로 우유다.


물론 요즘 애덜도 우유 마신다. 그리고 그 우유의 성분이 지금은 더 좋아졌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때와 지금은 도저히 같을 수 없는 게 하나 있다. 바로 용기다. 그렇다. 그때의 우유는 찬란하게 빛나는 영롱한 유리병 속에 들어있었다. 청명한 병 속에 가득찬 하얀 내용물이 영양입국을 향한 빛나는 미래처럼 찬란히 넘실거렸던 그 넘... 이 묵직하고 믿음직스럽던 우유병은 더 이상 찾을 길이 엄따.


이넘덜은 대체 모다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일단 지금 사용되는 종이팩을 함 살펴보자. 현재 우유 포장의 95% 이상이 종이팩인데, 알고 보면 이거 국가경제의 커다란 손실이다. 일명 카톤팩이라고 불리는 이 물건은 종이를 겹겹히 붙여서 만든 건데, 량 외국에서 수입되는 100% 천연 펄프로 만들어지며, 연간 약 50억 개 이상이 쏟아지고 있다. 이걸 다 수입하는 데 드는 비용이 연간 1,000억 원대다.


게다가 펄프 수입 및 국내 팩 가공을 다국적 기업에서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다. 최근 IMF를 맞아 원유가격 인상, 펄프 수입가격 인상 등으로 인한 우유가격 상승으로 그 부담을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전가되고 있는 작금, 우유병을 썼더라면 하면 아쉬움이 다시 한 번 들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종이팩은 폐지로의 재활용 효율도 우유병에 비해서 절라 낮다. 유리병은 오리고 펴서 말리는 따위의 수고가 없이 물만 부어놨다가 내놓으면 도로 가져간다. 복잡한 공정이 전혀 없이 그냥 우유병으로 다시 쓰이는 거라 재활용률이 100퍼센트에 가깝고 수십 번 반복 사용된다. 







우유팩 재활용을 위한 절라 귀찮은 작업들.

뿐만 아니라 실제 재활용율은 20프로도 안 되는 주제에 이넘의 종이팩은 재활용 할려면 일일히 가위로 잘라 펴서 말려 내놔야 한다. 왜 비싼 돈주고 사먹는 소비자가 이런 허망한 수고를 해야 하는지 억울하지 않은가. 


팩의 장점이라고 주장하는 것 중에 하나가 병에 비해 개봉하기 쉽다는 거지만, 사실 열 개에 한두 개 정도는 절라 안 열려서 입구를 거의 찢다시피 해서 마시는 경우가 다반사다. 게다가 가끔 반대편 입구 - 거의 구별도 되지 않는다 - 를 열게 됐을 때는 그 짜증이란 이루 말할 수 엄꼬, 갈기갈기 찢어져서 입을 대고 마시면 턱밑으로 줄줄 흘러버리게 되는 거다. 







이걸 빼내는 기술의 습득은 
얼라들의 손재주 발달에 기여했다


이에 비해 유리병의 탁월한 우수성을 보라.  
마개 구석탱이를 요령 있게 찝어서 종이가 찢어지지 않게 한번에 들어내는 기술의 습득은 어린이의 손재주를 키워주어 좌측뇌의 발달을 유도했을 뿐 아니라 어떤 경로를 거쳤던 간에 일단 열고나면 마실 때 턱으로 흐를 걱정 따위는 하지 않아도 된다.  


팩이 보관과 휴대에 용이하다고도 하는데 이것도 사실 별 의미가 엄따. 종이팩으로 바꼈다고 우유 유통기간이 일주일로 늘어난 것도 아니고, 어차피 냉장고에 넣어둬야 하는 건 마찬가지다. 깨지지 않기 때문에 들고 다니기 좋은 것 같지만, 그렇기 땜에 오히려 부주의해져서 가방 안에서 짖눌려 새거나 터지는 일이 생기게 된다. 


글고 우유란 건 원래 상하기 쉽기 때문에 콜라 같은 청량음료처럼 아무데나 막 들고 다니면서 마시는 게 아니다. 우유 들고 다니며 길에서 마시는 넘 있나? 콜라캔은 들고 다녀도 말이다. 결국 소비자 입장에서의 보관과 휴대보다는 생산회사나 운송업자들의 편의를 위한 발상이 아니냔 말이다.   


게다가 병을 사용하면 내용물의 신선도 여부를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쵸콜렛 우유의 경우 바닥에 가라앉은 쵸코 성분을 눈으로 확인하고 절라 흔들거나 젖가락을 넣어 휘휘 저어 퍼트려 줌으로서 가장 적합하게 안배된 맛의 제품을 마실 수 있다. 


이는 내부 확인이 불가능한 종이팩에서 간과되기 쉬운 점으로, 쵸코 성분이 잘 안 섞여서 맛없는 쵸코우유를 장기간 마신 구매자들로 하여금 결국에는 우유혐오에까지 이르게 만드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그리고 우유병은 집안에서의 활용도도 절라 높다. 물을 담아서 꽃병으로 사용할 경우 병 표면의 붉은 색 마크가 장미꽃이나 튜울립과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움을 극대화시키지 않던가. 특히나 얼라넘덜의 소변기로 사용될 시에는 그 입구의 너비가 거시기 사이즈에 딱 맞아서 절라 이상적이므로 절찬리에 애용되었던 것이다. 우리 세대 대부분이 공유하고 있는 기억이기도 하다...    





이처럼 병에 든 우유는 팩에 비해 여러 가지 측면에서 눈부신 장점을 지니고 있음에도, 당장의 편의를 위한 안이한 발상에 의해 사장되고 말았다. 







우리가 즐겨 마시던 엄마젖은 일회용이 
아니었다.
저 아름다운 쌍젖을 보라.


사실 두꺼운 유리로 만들어진 튼실하고 믿음직한 병을 두 손으로 들고 들이마시는 행위는 우유의 영양분을 통해 튼튼한 뼈와 큰 키, 건강한 장기를 얻는 의미 뿐 아니라 엄마 젖통과 같은 안정감 속에서 "나는 양육받고 있다" 는 안정된 심리와 자신감을 갖게 하는 요인인 것이다. 


흐물흐물한 일회용 종이팩이 아동들에게 무의식적인 불안감은 물론, 필요 없으면 언제든 버려질 수 있는 인간 존재의 가벼움과 일회성 문화의 경박함을 무의식적으로 주입하고 있다는 걸 생각해 볼 때, 우유병이 사회에 미치는 이로움은 단지 환경적인 부분이나 외화절약만이 아닌 거다.


잘 냉장된 우유병의 두꺼운 유리가 안정감 있게 입술에 닿을 때의 그 느낌... 이는 실로 우유의 가치를 한 차원 높이는 극히 고급스러운 문화적 행위인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환경과 돈, 그리고 우리 얼라들의 건전한 문화와 미래를 생각해서 종이팩을 모다 걷어치워 버리고 우유병으로 대체해야만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우유병에 얽힌 아스라한 어린 시절의 추억들은 도대체 어디가서 다시 찾으란 말이더냐... 씨바, 우유병을 살려내란 말이다 ! 우유병을 !!!



 


PS: 우유병 살리기 운동에 관심 있는 독자들은 요기로 가보시라.
 

딴지 박물관장 파토 (pato@ddanz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