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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태지야...너 어떻게 할거냐? 

2000. 8. 30
딴따라딴지 전임 비평위원 파토









"이번 경기만 끝나면 미국으로 가겠습니다"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임감독님이 이윽고 입을 열었다. 


"서태지군은 아직 윤대협의 상대가 되지 못하네..."


태지는 아무말도 없었지만 큰 충격을 받은 듯 했다. 그렇다. 농구 천재라고 불릴만큼 뛰어난 그의 플레이에는 능력에 걸맞는 필수 요소 한가지가  빠져 있었다.


일대일의 개인기라면 윤대협 뿐 아니라 그 누구에게도 자신있는 태지였다. 그러나 농구는 혼자서 하는 게임이 아니다. 그것만으로는 팀을 전국대회 우승으로 이끌 수 없다. 


팀이 일류가 될 수 없다는 것은, 결국 그 속의 서태지 역시 우물안 개구리 이상일 수 없다는 뜻인  것이다...


 





우리는 돌아온 태지에게 바라는 상 이 있다. 


그건 적어도 한때의 명성을 못잊고 어떻게든 과거의 인기를 되찾으려고 발버둥치는 퇴물 가수로 전락해 버리거나, 국제적 대형 싱거 패리 킴 같이 돈 떨어질때마다 미국과 한국을 왔다갔다하며 공연 한번씩 해서 먹고 사는 건 아닐거다. 


그럼 도대체 구체적으로 손에 딱 잡히지는 않는 그 상 이란 것의 정체는 머냐. 우린 태지에게서 뭘 바라고 있나?


과거의 영광된 모습을 기억속에 영원히 남아있게 하기 위해 은퇴선언을 고수하고 미국에서 여생을 보내는 것이 우리가 원했던 상일까... 그 약속을 지켜야 했을까? 아님 그 자신의 말대로 자유로운 아티스트로 사는건가. 혹은 태지에게 먼가 다른 할일이 또 있는걸까.


이걸 생각해보기 위해서 울나라 음악계에서 서태지라는 존재의 의미가 무엇인지  한번 총체적으로 정리해 봐야 한다. 그리고 그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우리가 그에게 자연스레 요구하게 되는 것이 먼지 찾아봐야 한다. 거물의 복귀와 그에 따른 아류들의 싹슬이 같은 지엽적이고 감정적인 부분이 아닌, 보다 본질적인 부분에서 말이다.  


답은 있다. 그러나...


 


 범대중적 아티스트 서태지의 성공










 


1992년. 난 알아요 를 필두로 한 서태지와 아이들 의 출현은 울나라 사회에 큰 충격이었다. 


이건 사실 당시 이땅에 있던 사람은 다 느끼고 겪은 것이기 때문에 새삼스럽게 다시 언급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우리가 보다 중요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이부분이다. 도대체 뭐가 그런 충격을 만들어 낸거였나? 


서태지가 그 이전의 가수들, 그리고 이후에 그를 닮아가려고 발버둥치던 후배 댄스 가수들과 다른점은 뭐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사람들의 인식속에서 다른넘들과 질적으로 차별화되는 특별한 자리에 오르게 된 힘은 뭐냐는거다.


이 부분은 절라 중요하니 좀 풀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대중이 원하는 노래를 들려주는 쪽은 대중가수라고 하고, 대중의 요구와 별 상관없이 본인이 원하는 음악을 하는 쪽을 아티스트라고 불러보자. 이런 관점에서 보면 전자로는 나훈아, 정수라, 소방차, 김완선, 에초티 등 대다수의 가수들을 꼽을 수 있고, 후자쪽으로 김민기, 한대수, 시나위 등과 많은 언더/인디 뮤지션들을 꼽을 수 있다. 


이 두 성향은 사실 노래를 들려준다는 측면 외에는 상당히 틀린 바탕과 결을 가지고 있고, 공통분모도 적다. 따라서 두 방면으로 다 성과를 거두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간혹 둘중 하나로 갈라놓기에 애매한 위치의 가수들이 있다. 대중적 인기와 지지를 상당히 확보하면서도 작사작곡의 음악적 능력은 물론, 본인이 가진 색깔을 유지함으로서 음악적인 인정을 받은 경우를 말한다. 








     한창때의 전인권 (들국화)


바로 이 자리에 신중현, 김광석, 들국화, 신해철 같은 음악인이 위치하게 된다. 이들이야말로 대중가수로서의 지명도와 아티스트로서의 명예를 동시에 누리는 독특한 위치에 있었던 셈이다. 


그렇기땜에 이런 가수들은 다른넘들이 갖지 못한 차별화된 힘을 갖게 된다. 이런 사람들을 일컬어 범대중적 아티스트 - 아티스트의 정체성을 잃지 않은 채 대중스타에 도달한 존재 - 라고 부를 수 있다. 


서태지가 도달했던 곳이 바로 이 연장선에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정점이었다. 태지를 흉내낸 여타의 댄스팀들이 도달할 수 없는 한계가 또한 이 부분으로, 그들의 노래가 아무리 멋있고 태지를 능가할 정도로 세련되어 진다고 한들 이들이 뉴키즈 언더 블락 이상일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거다. 


여튼, 서태지 충격의 중심빠워는 아티스트의 입장에서 얻은 대성공이라는 것에서 비롯된다. 태지 음악의 객관적인 질 - 태지 역시 심심찮게 표절등 각종 문제에 휘말리기도 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 의 문제와는 별개로 그가 시종일관 유지해왔던 자세, 그리고 방향성은 바로 이거였다.   


그러나 이런 방향성을 견지한다고 해서 모두 태지와 같은 성공을 거둘 수는 없다.


그럼 대체 어떻게 이런 수준의 성취가 가능했을까?





기존 가요의 형식을 완전히 넘어선 스타일의 곡들, 강한 연주와 비트, 색다른 분위기와 소재의 가사, 그리고 생소한 춤... 태지가 갖고 나온 건 분명 울나라에서 큰 인기를 끌수 있을것 같은 음악은 아니었다. 게다가 이들은 가요계로 보자면 완전한 신인이나 다를게 없었다. (서태지의 시나위 경력은 가요계 경력이라고 말하긴 힘들다) 


그럼에도 태지는 그 어떤 거물급 가수와도 다른 거대한 태풍처럼 울나라 사회를 휩쓸어 버렸다. 그 배경에는 다른 경우들에서는 찾을 수 없었던 어떤 역학관계가 존재했다. 그건 서태지의 음악 자체가 가진 파괴력을 강력히 뒷받침하며 대성공의 밑거름이 되었음에 분명하다. 뭐였을까.


태지가 출현하여 스타덤에 오르는 과정을 보면 아래 세가닥의 힘이 움직였던 것을 포착하게 된다. 


댄스뮤직으로서 그의 음악과 춤, 그리고 패션등등 대중적인 요소들이 강한 신선함과 충격으로 대중의 눈과 귀를 사로잡음


 태지 음악이 가진 강한 록, 헤비메틀적인 요소가 록 매니아들에게 강하게 어필함


 태지의 아티스트성, 즉 작사, 작곡및 연주력과 시나위 출신이라는 배경등이 음악/문화평론가등 이른바 지식인층의 외곽을 때리며 대안문화로서 강력한 지지를 이끌어냄








태지의 성공은 시대적 상황과 뛰어난 전략의 합작품이다  


각계각층에서 이런 지지를 얻어낼 수 있었던 건 태지 자신의 전략과 당시의 시대상이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가요계를 평정할만한 초특급 스타의 부재라는 주류 대중음악계의 상황, 80년대 중반 새로운 변수로 떠올랐던 들국화나 시나위등 거물급 록 밴드의 해산및 약화, 그리고 사회운동권의 퇴조 경향에 따른 젊은 지식인층의 대중문화를 향한 관심사 전환... 


이런 것들이 그 당시 대중음악계를 둘러싼 시대적 배경이었다. 


즉, 서태지의 음악과 활동 방향은 정확히 당시 시대가 요구하는 지점에 있었다는 뜻이다. 이런 전방위에서의 플러스 요인들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계속적인 상승작용을 불러 일으키게 되었고, 점차 주류 사회 전체를 꿰뚫는 거대한 흐름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런 성공은 단지 일개 가수가 아닌 문화적 리더로서 서태지를 지존의 자리에 등극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이 연장선에서 그의 연이은 성공은 한국 대중음악의 질적/양적 도약을 예고하는 청신호로 비쳐졌고, 그때껏 대중의 관심에서 멀찌감치 떨어져있던 록, 메탈, 힙합, 테크노등 각종 쟝르가 화려하게 꽃필 수 있는 기적같은 계기가 될걸로 기대되었다. 


심지어 이런 쟝르들에 전혀 무관심하고 울나라 음악의 질적 발전에 특별한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차도, 우리도 진정 만방에 자랑할 만한 비중있는 음악인을 갖게 되었다는 희망과 기대에 들떴었다. 


그건 지루한 일상을 뒤집어 엎는 뭔가 일대 사건이 이땅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감정적 흥분같은 거였다. 마치 평소엔 마라톤에 아무 관심도 없는 국민들이 올림픽때 뜻밖의 금메달을 따고나면 너나할것 없이 마라톤 입국을 외치는 심리같은 것이기도 했다. 


이 여세를 잘만 타면 정말 가요입국의 새 시대가 시작될 것도 같았다. 


그러나...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다


그의 음악적, 대중적 성공에 뒤이은 상황은 지금의 가요판이 말해주듯 그런 기대하고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아니 사실 정 반대 방향으로 절라 치달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태지의 성공에 힘입어 그 외형만 본딴 아류들이 즉시 양산되기 시작했다. 이넘들은 태지가 보여준 음악적 참신함이나 자체의 문화적 생산력과는 거리가 먼 활동을 통해 태지가 일구어놓은 가요 시장을 잠식해갔다. 


제대로 된 음악들이 각 쟝르에서 꽃피기는 커녕, 록도 메탈도 레이브도 힙합도 테크노도 애시드 재즈도 다 똑같은 댄스가요들에 후까시만 씌워주는 도구가 되 버렸다. 이 과정에서 고집스러운 본격파 음악인들은 음지로 숨어버리거나 전업하거나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외국으로 나가 버리는 등 제대로 된 음악이 나올 뿌리 자체가 뽑히고 말았다.


그러면서 특정 쟝르 일변도와 티비 의존이라는 울나라 대중음악의 폐해는 더 심해져 버렸다.


이렇게 만들어진 흐름이 십년가까이 계속되어, 3~5인 규모의 댄스팀이 가요시장을 완전장악하는 상황은 계속 이어졌다. 그나마 나름대로 작사/작곡 능력을 갖추기도 했던 태지 직후의 아류들에 비해, 최근 등장한 댄스팀들은 그 상업성이 더욱 노골화되고 - SM의 일련의 작업들을 필두로 - 철저히 프로모션에 의해 기획된 아이돌 스타로 창조되면서 그 상업주의는 극치의 천박함을 자랑하게 되버린 사실은 독자 열분들도 아는 그대로다.  








    테크노라구...? 뭐가?


사실 그저 놀자는 이런 가수들도 필요하긴 하다. 음악판은 기본적으로 엔테테인먼트 판일 수 밖에 없고, 놀고 까부는 것도 그 중요한 요인중 하나로서 필수불가결한 거다. 


문제는 지금 가요판에는 이런 것들밖에 없다는 거고, 그 구조가 제대로 된 음악의 출현을 원천봉쇄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사이비들이 돈과 권력은 물론 제대로 된 음악이 차지해야 할 쟝르적 명예마저 빼앗아가고 있다는 거다. 


쉽게 돈버는 방법을 안 제작자들은 공식대로만 하면 무조건 팔린다는 기조하에 돈놓고 돈먹기의 야바위 상업주의로 대중음악계를 지배, 립싱크도 표절도 하나의 쟝르로 인식되는 등 최소한의 윤리마저도 잃어버린 생 양아치판이 되 버린 것이 태지 이후 지금의 가요판이다.


게다가 이제는 이런 현상이 마치 울나라의 상황에 맞는 새로운 대안인양 주장하는 사태에까지 이르고 있다. 그렇게 만들어낸 음악과 가수가 마치 대중음악의 밝은 미래는 물론 세계 시장 정복의 밑거름이라는 거대한 착각의 구렁텅이로 주류 대중음악 생산계 전반을 몰아가고 있는거다. 


그러나 SM 등이 주장하는 한 쟝르에 의한 독점과 경쟁력 강화의 논리는 결국 그 자신의 치부에 대한 합리화와 대중음악에 대한 윤리및 의식 결여, 그리고 거대한 아전인수격 착각이 빚어낸 허상에 불과하다. 이 모든 상황은 대기업만이 살길이라던 재벌들의 주장이나 한국적 민주주의 운운하며 선진국의 예를 들면 사대주의자 라고 내몰던 박통시절을 연상케 하는 모습들이다. 


그런 와중에 야바위 스타 메이킹 시스템은 티비와 제작사간의 강력한 연대하에 점차 조직화되고 지능화되어 이제 그 어느것도 대중음악계의 질적 변화를 끌어낼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 이게 태지 이후 가요계의 현실이다. 


그런데 이게 돌아온 태지하고 뭔 상관이냐구...?


 


 태지의 약속 


당시 태지는 울나라 대중음악의 희망과 가능성의 상징이었다. 


대중들에게는 우리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진정한 거물 뮤지션으로, 음악 매니아들에게는 거의 절망상태에 있던 대중음악의 수준을 끌어올리고 다양한 쟝르를 꽃피워줄 - 록 매니아들이나 연주인들에게 울나라의 상황은 암담한 조국의 현실 받아들여질 정도로 비관적이다 - 힘있는 아티스트로, 문화비평가등 지식인들에게는 사회/문화의 각종 문제들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줄 참신한 계기로서 말이다.


이런 기대에서 강력한 대중적 성원과 음악계및 매니아층의 음악적 인정, 그리고 지식인 사회의 전략적 지지가 비롯될 수 있었던거고, 그로 인해서 태지는 한국대중음악의 새 장을 열 문화영웅된 거다. 다시 말하면 당시 태지의 실제 모습 이상으로, 미래에 그가 열어나갈 여러 가능성들이 우리들로 하여금 그를 환호하게 만든 중요한 요인이었다는 말이다. 








태지의 가장 큰 의미는 미래의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준데 있었다.


결국 단순한 가수가 아닌 문화적 리더로서의 태지의 권위는 우리 자신들 각계각층의 공통된 요구에 의해 주어진 셈이다. 그가 그렇게 부여받은 권위에 대한 충분한 음악적, 문화적 역할을 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태지와 우리의 진짜 약속이었다. 그가 직접 무엇무엇을 추구하겠노라고 입밖으로 내세운 적은 없지만, 영웅으로 승화된 그의 모습이야말로 우리 모두를 들뜨게 만들었던 핵심적인 힘이자 그가 우리에게 제시한 울나라 대중음악계의 밝은 미래의 약속이었던 거다. 아니었냐...?


여튼 이 모든 것은 그의 돌연한 은퇴로 말미암아 완전히 무효화 되었다. 그 자신의 음악생산이 정지한건 물론 그 뒤를 이어 음악계를 풍성하게 만들 수 있는 자원이 확충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은퇴는 결국 자본을 내세운 싸구려 아류들로 하여금 그의 빈 자리를 메워버릴 기회를 제공하게 되었을 뿐이다. 


결국 태지는 우리 사회가 제공한 권위와 위상에 걸맞는 역할을 해내지 못한채 성공한 뮤지션으로서의 개인적 영광만을 갖고 떠나버리고 만거다. 태지가 꽃피우고 우리들이 거름을 준 대중음악의 토양에서 엄한 장사꾼들만 열매를 거둬간 꼴이다. 이제 그넘들이 독점적으로 공급하는 과일만 먹고 사는 우리는 뭐가 정말 맛있는 과일인지 그 맛조차 잊어버리고 있다. 





그럼 영웅의 위치에까지 올랐던 서태지는 왜 그리도 무력하게 떠나버려야 했나.


이유는 여러가지다. 음악적으로 더 뛰어난 작품을 요구하는 매니아층의 요구를 충족시키면서 동시에 지속적인 대중적 지지를 이끌어내야 하는 부담은 만만찮은 일이다. 이건 사실 절라 힘든거라서 왠만큼 잘해봤자 본전이고 좀만 잘못하면 양쪽에서 욕만 드립다 얻어먹는 결과가 된다. 


글고 울나라 쇼비지니스 상황에 대한 환멸도 컸으리라. 합리성과 정직함이 결여된 채 돈만 쫒는 졸부적인 사고방식이 팽배해 있는 울나라 가요계에서 태지가 겪은 어려움이란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다. 점점 어려워지는 음악에 대한 주변의 몰이해와 우려, 압력도 있었을거고 어떻게든 빌붙어서 한몫 잡아보려는 협잡군들이 우굴거렸음은 눈으로 안보고도 짐작할 만 한거다. 


이런 과정속에서 지쳐서 쉬고 싶을 수 있는건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이다. 돈도 충분히 벌었고 명예도 얻을만큼 얻은 담에야 말할 것도 없다. 그것이 은퇴로 이어졌을 거다. 인간적으로는 충분히 납득이 가는 상황이다.


그러나 태지를 그런 시달림끝의 은퇴 상황에까지 내몰아간 근본적인 원인은 다른곳에서 찾아야 한다. 위의 힘든 조건들은 이미 충분히 예견될 수 있었고 따라서 최소화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요는 태지가 자신이 가진 힘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함으로서 그렇게 스스로 지쳐버리지 않을 수도 있는 기회를 놓쳐 버렸다는 점이다. 


이건 간단하게 말해서, 조직적이고 구조적인 활동, 그리고 연대의 부재다.








태지는 개인기에 지나치게 의존한 플레이로 결국 스스로를 지치게 만들었던거다. 


태지가 척박한 우리나라 가요계에서 그런 음악으로 최고 스타이자 문화영웅의 자리에 오른것은 그 자체로도 물론 대단한 일이다. 


그러나 그런 그의 활동이 기본적으로 인기가수 차원을 넘어서지 못함으로서 자신이 일궈낸 성과에 대한 모든 기대와 그에 따른 부담을 혼자서 뒤집어쓰는 결과를 초래한 것은 그의 패착이 아닐 수 없다.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의 개인적인 활동은 결국 천하의 태지라고 해도 넘어서기 힘든 각종 한계에 부딛힐 수 밖에 없었던 거다. 그런 벽을 넘어서 혼자 힘으로 음악판 자체를 바꾸는 건 제 아무리 역량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해도 불가능한 거다. 


태지는 가수 태지 의 개인 차원을 넘어서, 그 자신의 강력한 대중적 지지와 문화적 빠워를 십분 발휘하여 대중음악 개혁과 발전의 구심에 섰어야 했다. 자신만의 음악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할 것이 아니라, 국내의 이름은 없지만 능력있는 뮤지션들이 자신의 우산 아래 모이도록 해야 했다. 그래서 그들의 활동을 지원하고 대중적인 성공을 이끌어냄으로서 이른바 서태지 사단 을 만들었어야 했던 거다. 


또 태지는 우리나라 대중음악계의 발전에 진정한 열정을 갖고 있는 각계 각층의 사람들과 음으로 양으로 연대해야 했다. 그건 태지가 만든 사단이 단지 또 하나의 상업 기획사로 전락하는 걸 막아줄 정신적인 자극이 되고, 뜻을 같이하는 각종 매체에서의 전방위 지원사격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런 준비하에 서태지 사단을 지금 SM 만큼의 힘을 가진, 그러나 성격은 판이하게 다른 음악성 위주의 빠워 집단으로 키워갔다면 어땠을까. 이런 조직을 기반으로 해야만 우리나라 음악계에서 그는 진짜 무거운 발언권을 얻을 수 있고 음악계의 지속적인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 그는 충분히 그것을 시도해 볼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그랬다면 서태지 열풍은 단순한 한때의 바람 이 아닌 도도한 물결로 승화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태지 자신이 현역에서 물러난 담에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사태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며, 적어도 가요계가 지금처럼 만신창이가 되는, 음악인은 없고 싱잉 엔터테이너만 양산되는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때 태지의 존재와 성공이 가져올 수 있었던 우리 대중음악계의 미래는 비약적이고 주체적인 발전 Vs 양산된 아류를 통한 퇴보 의 양 갈림길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의 마지막 선택은 제일 맥없는 은퇴 가 되어 버렸고, 우리나라 가요계에 진정한 변화의 물결을 가져오지 못한 채 피곤한 몸과 마음을 이끌고 머나먼 타국으로 떠나버릴 수 밖에 없었던 거다... 


 


 이제 못다한 약속을 지킬 줄 알았건만...


새로 내놓을 음반의 타이틀곡 울트라맨이야 가 매니아들의 역할에 대한 내용이라는 것, 그리고 그가 괴수대백과사전 이란 일종의 레이블을 만들 것이라는 정보를 접했을때 필자가 혼자 끄적거렸던 글은 이랬다. 


"그 정도의 활동 반경이라면 태지의 앞으로 활동이 적어도 패리 킴 수준은 아닐거라는 건 명백해 진 것 같다. 그리고 더 이상 개인적인 가수 차원으로만 컴백하는 게 아니라는 것도 보여주고 있다. 적어도 어떤 조직적인 움직임의 필요성을, 혹은 그럴 수 있는 마인드와 에너지를 미국에서 체류하는 4년 7개월동안 체득한 것이 아닐까."


그러나 14일 기자회견 자리에서 스스로의 입을 통해 공개된 태지의 이후 활동 방향은 전혀 달랐다. 


공연후 2-3개월 활동하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얘기나, 서태지 사단으로 기대를 모았던 괴수대백과사전 역시 본격적인 음반 제작사가 아니라 단지 자신의 음악을 선보이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는 등 그날 나온 이야기는 위와 같은 기대하고는 사뭇 거리가 먼 것이었다.


마이클 조던이 은퇴를 번복하고 농구계로 돌아올때 그의 약속위반과 말바꾸기, 그리고 그에 따른 윤리의식 및 책임감의 부족을 비난했던 사람은 거의 없다. 비난하기는 커녕 절대다수의 농구팬들은 물론, 경쟁상대라고 할 선수들을 포함한 농구계에서조차 환영 일색이었다. 그건 울나라 농구팬들도 마찬가지였을거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그건 NBA와 그 팬들이 조던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아무도 그의 공백을 메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던도 그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진정 지켜야 할 농구팬과의 약속은 은퇴를 고수하는것만이 아니라는 것도 깨달았던 거다. 


그가 컴백해서 선수로서 풀 리그를 뛰며 보여준 활약은 은퇴 이전보다 결코 못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고, 진정한 의미에서 팬들과의 약속을 지킨거다.








가요계를 저질화하는 우주 괴물들과 맞장뜰 좋은 괴수가 필요한 시점이 아니냔 말이다... 


반면 지금의 서태지는 어떤가? 그가 기자회견에서 표명한 것이 진심이라면 그는 선수로서 필드에 돌아오기를, 리그를 뛰기를 거절한 거다. 대신 태지가 선택한 것은 올스타전에나 한번씩 참가해서 경기를 빛내주는 식의 활동이다.


어쨌든 좋은 음악을 만들고 들려준다는 의미에서 이것도 나쁜건 아니다. 하지만 그런 활동으로 필드에서 고전하는 선수들의 수백배에 달하는 연봉을 받는다면 이건 뭔가 페어플레이가 아니란 생각이 든다. 


방해받지 않고 편안한 미국에 거주하면서 일년에 한번 올스타전에 참가해 월등한 기량을 보여주고 떼돈을 벌어간다... 이건 우리가 원했던 상, 그에게 요구되는 상하고는 거리가 멀지 않은가.   


그는 이루지 못한 모두의 꿈을 찾아나갈 힘을 갖고 있고 그럴 시점에 있다. 따라서 그가 해야할 일은 스스로 뿌려놓은 씨앗에서 쭉정이가 아닌, 제대로 된 열매가 맺게 하는거다. 그럼으로서 우리가 그의 출현을 통해 걸었던 기대와 희망, 그리고 그것을 위해 우리가 쥐어준 왕홀에 대해 약속을 지켜야 하는거다. 이것만이 은퇴하고 떠나갔던 태지의 복귀에 대한 명분이 될 수 있다.


태지의 컴백은 도저히 대책이 없어보이는 양아치 가요판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킬 현재로서는 유일한, 그리고 절호의 기회다. 이 기회가 흐지부지 되었을때 울나라 가요계의 저질 상업화를 중단시키고 극적 반전을 이룰 다음 기회는 시스템상 향후 십년간은 요원할 상황이니 말이다...


태지야. 너 어떻게 할래?



 









 

딴따라딴지 전임 비평위원 파토 (pato@ddanz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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