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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슈팅게임기에 새 생명을..

2000.4.24.월요일
말초 영화부장 한동원

 

<갤러그>로 창건되고, <제비우스>로 공고해지고, <1942>로 확대되고, <트윈 코브라>로 확립된 슈팅게임의 아성에 던져지던 계란은, 기껏해야 <올림픽>같이 절라 땀나게 눌러대기만 하면 되는 노가다 오락 정도가 전부였다.

 

그 당시엔 본 기자에게도, 그 대관령의 함박눈같이 쏟아져내리는 대장의 총알들을 폭탄의 도움없이 유유히 피해가면서 한판 한판을 깨나가고, 마침내는 한 바퀴를 돌고, 급기야는 아저씨의 "200원 주께 그냥 가라"라는 회유와 "너 어느 학교 다니냐?"는 협박을 받던 화려한 시절이 있었다. 

 

한 판에 50원.

 

아, 마냥 평화롭기만 하던 그 아름다운 시절이여..

 

 
























 
<인베이더> (78)
<갤러그> (82) <제비우스> (82) <1942> (84)
<제미니 윙> (87)  <라이덴> (90) <에어로 파이터> (92)
슈팅게임 명예의 전당
 

 

 

그러나 <스트리트 파이터>의 등장은 모든 걸 바꾸어 놓았다.

 

오락기에 버튼이 2개 달려 있는 것을 사람 콧구녕 갯수 2개인거보다도 더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당시, 돼지 젖꼭지 마냥 무려 여섯개의 버튼을 달고 나온 <스트리트 파이터> 기계의 등장은 본 기자를 질풍노도와도 같은 아노미 상태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그 이단에 타협하지 않으며 외로이 총알,폭탄 버튼 두 개만 달린 게임기를 수호하던 본 기자는 <라이덴 2>를 마지막으로 슈팅게임계를 떠날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

 

본 기자의 주변에는 더 이상 본 기자와 2인용 한 판 쌔릴 동료 한 명 남아있질 않았던 것이다.

 

오락계의 주변인으로 구차한 목숨을 부지할 수 밖에 없음을 비로소 깨달은 본 기자, 분루를 삼키며 후일을 기약한지 어언 5년 여..

 

사필귀정이라, 지네 젖꼭지 수 만큼 버튼 수 불리기 경쟁에만 여념이없던 <스트리트 파이터>류의 쌈질 오락은 DDR류의 오락의 일진광풍에 복구불능의 타격을 입었으며, 오락실의 주도권을 완전히 상실하게 됐다. 그것은 참으로 쌤통이었다.

 

드디어 쌈질 오락도 슈팅게임만큼 찬밥인 시대가 도래했음을 깨달은 본 기자, 암울한 절망의 칩거에서 탈출해 다시 오락실로 향할 것을 결심하였다.

 
 

이미 오락실 입구를 완전 점거하고 있는 DDR류의 게임기를 지나 슈팅게임들이 우르르 몰려있는 곳으로 향한 본 기자. 

 

아, 그러나..

 

본 기자의 환호는 너무 때 이른 것이었다.

 

우선 그 세가 쇠하여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쌈질 오락류는 오락실의 2인자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었다. 게다가 슈팅게임들은 여전히 오락실의 변두리에 방치되고 있었다. 슈팅게임들이 몰려 있는 곳은 웬 엄한 빠찡꼬 류의 오락기들이 웅성웅성 몰려있는 오락실 구석탱이 으슥한 변두리였던 것이다. 

 

아.. 슈팅 게임이 음침한 인형뽑기 도박 오락하고 나란한 자리에 짱박혀 있어야 하는 이유를 말할 수 있는자, 과연 그 누구인가.

 

 








 
<사진 1>
입구로부터 가장 먼곳에 
짱박혀있는 슈팅게임 섹션
<사진 2>
1 : 당당한 빠찡고 플레이어
2 : 짱박혀있는 슈팅게임 플레이어
 

 

 

허나, 이것은 본 기자 앞에 펼쳐질 잡스러움의 전주곡에 불과했다. 

 

그 열악한 환경에서도 오랜만에 맞는 슈팅게임과의 상봉의 즐거움에 벌러덩거리는 가슴을 애써 누르던 본 기자를 결정적으로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뜨린 것은 다름 아닌 버튼이었다.

 

한 플레이어당 버튼 7개. 

 

그 추파춥스같은 조이스틱옆에 튀밥알같이 뿌려져 있는 7개의 버튼.. 이제 슈팅게임은 자신만의 몸체를 가지지 못하고 쌈질오락의 기계를 빌어와야하는 처지로까지 전락해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온전한 몸을 얻지 못한 슈팅게임기를 부여잡고 통한의 눈물을 흘리기를 어언 4초.. 간신히 정신을 수습한 본 기자, 무려 400%의 인플레율을 과시하는 한 판에 200원이라는 고액의 게임비를 지불하면서 "P1 START" 버튼을 누르며 간신히 게임기와의 교감을 시작할 수 있었고,

 

여기에서부터 재앙은 시작되었다.

 

장엄한 음악과 함께 게임은 시작되었으나, 도대체 어떤 버튼이 총알이고 어떤 버튼이 폭탄인지 도저히 가늠할 수 없었던 것이다. 또 한번의 질풍노도와 아노미.. 

 

 






 
 

쿠오바디스.. 
무엇을 누르리이까..

 

 

 

순간 버튼 밑에 친절히 "총알", "폭탄"이라고 적힌 라벨을 붙여주던 그 아름다운 과거의 기억들이 주마등같이 스쳐지나갔으나, 출현하는 적기 앞에서 마냥 번민만 거듭할수만은 없음을 깨달은 본 기자, 결단을 내려 가장 총알일 가능성이 농후한 아랫줄 왼쪽에서 첫번째 버튼을 눌렀다.

 

아, 그러나..

 

장렬한 폭파음과 함께 화면 가득 작렬한 것은 다름아닌 피 같은 폭탄이었다.

 

일말의 조뙈따..는 직감과 함께, 이제는 가릴 것 없이 이 버튼 저 버튼 마구 누른 본 기자, 마침내 총알 버튼을 발견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그 총알버튼은 폭탄버튼과 한 버튼을 건너뛴 너무나 난해한 위치에 자리잡고 있었다. 결국 이 거리의 갭을 극복하지 못한 본 기자는, 결정적인 순간에 폭탄을 날린다는 것이 엄한 버튼을 눌러 결국..

 

한 대 죽고 말았다.

 

전의를 상실한 본 기자에게 남아있는 수순은 게임을 포기하고 분노를 삭이며 쓸쓸히 오락실을 등지는 일 뿐이었다.

 
 

이러한 "투 버튼 시스템"의 절멸은 다수의 취향과 의견만이 유일한 의견이 되는 천민 자본주의적 사고방식과 집단적 효율성에 입각하여 다양성을 말살하는 관료주의적 사고방식과 그 궤를 함께한다고 밖에 판단할 수 없다. 

 

하여, 본 기자는 "대한 오락기 제작협회"에 엄중히 경고하는 바이다.

 

지난 십여년간 "총알"과 "폭탄" 오로지 두 개의 무기만을 사용하는 방식을 고수해오면서 그 면면한 생명력을 과시했던 슈팅게임의 실추된 자존심을 회복시키기 위하여, 즉시 단 두개의 버튼만이 달려있는 슈팅게임 전용 오락기계를 보급하라.

 

또한, "대한 오락실 업주 상조회"에 엄중히 경고하는 바이다.

 

지난 십여년간 오락실 업계를 먹여살려왔던 슈팅게임들에 대한 전관예우의 차원에서 오락실 입구 목 좋은 곳에 슈팅게임들을 배치하라. 물론 그 분위기도 우중충한 인형 따먹기 빠찡꼬 기계와의 격리는 필수다.

 

또한 슈팅게이머 인구의 저변확대를 위해,현재 터무니 없이 높은 가격으로 책정되어 있는 슈팅게임의 판 당 가격을 200원에서 100으로 하향 조정할 것을 제안하는 바이다. 최근의 슈팅게임은 단순히 실력만으로 끝장을 보기에는 너무 높은 난이도를 보이고 있는바, 저렴한 가격을 책정하여 돈으로 한 판 한 판을 깨어 나가는 저돌적 게이머층을 양성하는 것이 공생의 길이라 판단된다.

 

게임/오락산업이 문화산업의 총아로 각광받고 있는 지금, 한국 오락실 산업 또한 다종다양한 소수 매니아들의 취향이 존중받는 패러다임을 적극 수용해야하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할 시점이 도래하였다.

 

언제나처럼 업체 제위의 대오각성과 결단을 기대한다. 이상.

 

 

- 딴지 말초 영화부장 한동원
(sixstrings@ddanz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