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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와 각국 정부들이 다가올 몇 주 동안 결정한 것들은 아마도 다가올 수년간의 세계를 바꾸어놓을 것이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가 지난 3월 20일 파이낸셜 타임스에 기고한 문장이다. 그의 말처럼, 코로나19의 여파는 우리의 남은 삶 전체를 도포할지도 모른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뒤엎어진 보건, 의료 시스템은 시작일 뿐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영역에서 거대한 변화의 파도가 밀려올 것이다. 

 

우리가 첫 번째로 직면할 변화는 단연 교육문제다. 전통적 교육의 방식에 필수적인 ‘교실’이라는 공간을 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백년대계'라는 당연한 말은 차치하고서라도,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부모들의 사정이 이미 한계치를 넘어서고 있는 지금, ‘방역’ 다음으로 ‘교육’의 총력전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인미답의 길: 온라인 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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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기간에도 천막학교를 운영했던 대한민국 교육 역사 70년을 되돌아본다면 학교가 문을 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은 사상 초유의 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비장하게 운을 띄웠다. 지난 3월 31일, 유치원 제외 전국 초·중·고 및 특수학교, 각종 학교의 온라인 개학 실시를 발표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을 일이 현실이 되었다. 

 

오는 4월 9일부터 중·고등 3학년부터 순차적으로 온라인 개학을 실시한다. 향후 지역과 학교 상황에 따라 온라인 수업과 출석 수업을 탄력적으로 병행하는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다. 

 

늦어진 개학은 학생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돌봄에 지쳐가는 학부모들과 550만 명(교육통계연보, 2019)에 가까운 초·중·고 학생과 관련된 산업 종사자 모두를 아우르는 거대한 사회 문제다. 게다가 수능 등 국가고시들도 모두 연기되는 상황에서 혼란은 갈수록 증폭될 것이다. 이때 우리가 차분히 살펴보아야 할 지점은 바로 ‘원격 교육 추진’이다.

 

“전 세계가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온라인 학습에 주목하고 있습니다…코로나19로 학교에서 공부하는 방식까지 바뀌어야 하고 감염병의 장기화에 대비하여 미래교육을 준비해야 하는 지금, 저는 교육부 장관으로서 원격 교육을 과감하게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브리핑(2019.3.31)   

 

브리핑 이후, 온라인 개학과 원격 교육에 대한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사상 초유의 교육 공백을 메우기 위한 특단의 조치였지만, 학교와 학생에게는 준비할 기간이 부족한, 갑작스러운 변화였다. 교육당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처 예상하지 못한 사각지대는 계속 발견될 것이다. 

 

혼란을 최소화하고 새로운 총력전을 펼치기 전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좋은 사례가 있다. 한 달 앞서 시작된 대학의 ‘온라인 개강’이다.

 

BJ가 된 교수,별풍 쏘는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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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부산일보>

 

부산대 물리학과 김복기 교수는 국내 인터넷 방송 플랫폼 ‘아프리카 TV’로 강의를 진행해 주목 받았다. 학생들에게 가장 친숙한 플랫폼을 통해 원격 수업을 진행한 긍정적인 사례였다. 그러나 일부 학생들이 수업 도중 장난으로 사이버머니인 ‘별풍선’을 쏘는 등 진지하지 못한 행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학습 전문 플랫폼이 아닌 환경에서 궁여지책으로 시작된 만큼 그 한계가 분명했다.

 

코로나19 사태가 빚어낸 촌극으로 웃어넘길 수도 있겠지만, 전국 4년제 대학의 연평균 등록금이 약 644만 원(교육부, 2019)인 것을 감안하면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문제다. 온라인 강의로 대체하기 어려운 실습수업이 필요한 공학 및 예체능 계열 학생들은 더욱 답이 없다. 이에 지난 4월 1일에는 전국 50여 개 사립대 학생 550명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학습권 침해를 이유로 대학에 입학금 및 등록금 환불해줄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대학이 위기에 탄력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이유는 디지털 시대로의 전환에 발맞추고 있지 않던 한국 대학의 타성이다. 일차적인 원인은 코로나19 사태였지만, 그로 인해 수면 아래 잠겨있던 문제가 떠오른 것이다. 언제 터져도 터질 문제였다. 

 

갑작스러운 온라인 개강에 기존 서버는 전 학생의 데이터를 수용할 능력 조차 부족했다. 온라인 강의 제작에 서툰 교수·강사들을 위한 교육 및 가이드라인이 제대로 제시되어 있지 않았다.

 

학교는 왜 멈추었나

 

영국에서 교육과 사회기술적 변화(Sociotechnical Changes)를 연구하고 있는 나는 수업 중 한국 사례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 IT 강국이자 공교육이 잘 보급된 대한민국은 뭔가 새롭고 대단한 것을 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찬 질문들이 대부분이다. 사실 딱히 언급할만한 사례가 떠오르지 않을 때가 많다. 

 

놀랍게도, 지난 10년간 교육정보화 수준에서 대한민국은 OECD 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교육부가 온라인 개학으로 팔을 걷어붙인 것은, 불완전함을 감수하더라도 지금이 ‘온라인 교육 개혁’을 착수할 적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세계 최초로 5G가 터지는 IT강국에서 인터넷 없어 공부 못하는 애가 어디 있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현실은 우리의 상식과 많이 다르다. 교육학술정보원(KERIS)이 올해 발행한 <OECD PISA 2018을 통해 본 한국의 교육정보화 수준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가정에서의 디지털기기 접근성은 OECD 31개국 중 28위, 학생 수 대비 PC 비율은 37개국 중 32위에 머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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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교육학술정보원 KERIS>

 

그렇다면 ‘요새 애들 맨날 스마트폰, PC를 붙들고 살던데, 당연히 기기에 능숙하겠지!’라는 기대는 어떨까. 한국 학생의 학습과 관련된 학교에서의 디지털기기 활용 빈도는 30개국 중 29위, 디지털기기 활용 역량에 대한 인식 역시 32개국 중 31위로 최하위 수준이다. 디지털 기기에 대한 태도와 인식 부분에서 모두 최하위권의 성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한국 학생들의 디지털 기기 사용 경험이 학습 및 생산적 활동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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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교육학술정보원 KERIS>

 

한국의 교육정보화 수준이 일반 상식과 괴리가 생겨난 이유는 학교 정보화 예산 부족에 있다. 1990년대 말 인터넷 시대의 개막과 함께, 김대중 정부는 당시 1조 4천억 원 예산을 대규모 교육정보화 촉진 사업에 투자했다. 지금의 IT강국의 기반을 만든 것이다. 이어 노무현 정부는 3년 동안 이어진 반대 세력과의 끈질긴 협상 끝에, 인터넷 기반의 교육행정정보시스템, ‘NEIS’를 개통했다.

 

그러나 컴퓨터 보급률 등 기초적인 교육 정보화 국제 지표들을 빠르게 충족한 것에서 자만했던 것인지, 이후 정권에서는 교육 정보화 사업에 큰 투자를 하지 않았다. 교원 연수나 노후 기기 교체 등 소극적인 투자만 이어질 뿐이었다. 스마트폰 보편화 이후 급속도로 발전하는 디지털 환경에 걸맞는 인프라가 학교에 구축되지 않았던 것이다.

 

파괴적 혁신이 필요한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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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BETT Show 2020>

 

콘텐츠 소비 기준을 새로 쓴 ‘넷플릭스’와 유통업계의 블랙홀로 성장한 ‘아마존’은 파괴적 혁신 (Disruptive Innovation)의 대표적인 예다. 파괴적 혁신은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의 이론으로, 단순하고 저렴한 서비스로 시장을 공략해 기존 시장을 파괴하고 장악한다는 개념이다.

 

온라인 개학을 맞이할 우리가 혁신적으로 파괴해야 할 대상은 교육에 대한 편견과 규제들이다. IT 인프라 부족 같은 단순한 문제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학교교육의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에 큰 장벽이 있다. 안전성과 공정성 측면에서 항상 염려의 목소리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껏 보수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예를 들어, 앞서 언급한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에 대해 아무 학교 선생님이나 한 번 잡고 물어보시라. 과연 얼마나 많은 선생님들이 현재 시스템에 만족하고 있는지. 디지털 환경은 급속도로 발전했지만, 아직 학교에서는 2011년 개발된 3세대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다. 늦은 속도, 구식 윈도우 OS, 번거로운 공인 인증 등 듣기만 해도 속 터지는 문제점들이 쌓여온 것이다. 

 

이처럼 학교교육 시스템의 고질적인 문제는 폐쇄성에서 비롯된다. 최근 정부에서 에듀테크 산업 부흥을 구호로 외치고 있지만, 경쟁국가에 비해 반쪽짜리 시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에듀테크 기업들이 공교육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교육행정정보시스템 구축 혹은 공공기관 소프트웨어 공급 등 대규모 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대기업 외에는 나설 자리가 없는 실정이다.

 

반면, 에듀테크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영국과 미국은 개별 학교가 자율적으로 학습 관리 프로그램(LMS)이나 첨단 교보재, 교육 소프트웨어를 직접 구매할 수 있다. 지난 1월 참석했던 2020 런던 교육기술 박람회(BETT Show 2020)에서, 각 에듀테크 기업들이 교사들에게 상품을 열심히 홍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교사 개개인은 매해 같은 과정을 겪으면서 자연스럽게 에듀테크 전문가로 성장할 것이고, 변화된 교실과 향상된 수업의 질은 장기적으로 학생들이 누리게 된다.

 

우리는 할 수 있다, 이미 해왔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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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Unsplash>

 

이번 온라인 개학이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급작스럽게 등장한 것으로 생각될 수 있지만, 사실 교육부에서는 지난 1월 2020년도 국가정보화 시행계획을 이미 수립한 바 있다. '사람 중심의 미래 지능형 교육환경 구현'을 비전으로 미래형 스마트 교육 환경 조성이 준비되고 있었다. 그리고 지난 1월에는 클라우드, 인공지능, 블록체인 등 혁신 기술을 대거 채택한 4세대 교육행정정보시스템 구축 계획을 확정했다. 민간에게도 필요 데이터를 개방해 각종 교육 서비스와 연계할 수 있게 할 예정이다.

 

이번 온라인 개학은 임시방편이 아닌, 미래 교육을 위한 총체적인 디지털 전환 전략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이번 위기를 통해 수면 위로 떠오른 교육정보화 문제점을 직시하고, 국민적 위기 대응의 일환으로 범정부 차원에서 예산 확대, 규제 완화, 부처 간 협조 등을 강력하게 추진해야 한다.

 

편견과 규제에서 벗어나 시야를 넓혀 바라보면, 학생들이 수업에 몰입 할 수 있게 잘 설계된 혼합형 학습(Blended Learning), 블록체인을 통한 정보보안 강화, 교사가 손쉽게 온라인 코스를 직접 디자인할 수 있는 LMS 플랫폼 등 이미 상용화되어 있는 에듀테크의 적절한 도입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도 우리에게는 이런 복잡한 상황을 현명하게 헤쳐나간 소중한 경험이 있다. BBC 인터뷰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코로나19 대응 기본 원칙으로 '개방성과 투명성, 그리고 국민들에게 충분한 정보 제공'을 꼽지 않았는가. 세 원칙을 잘 지켜나간다면 다가올 온라인 개학의 일시적인 위기 또한 잘 극복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 시대, 또 하나의 기준점: 대한민국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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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발전 신화의 원동력'이자 '평등한 계층이동 사다리'라는 막중한 서사를 부여받은 우리의 학교교육은 그 누구도 앞장서서 변화를 주도하기 어려운 존재였다. 코로나19가 학교를 뒤엎지 않았다면 모두가 고개만 내저었을, 묵혀둔 과제다. 바로 지금이 과감하고 파괴적인 상상력을 발휘할 적기이다. 인류가 질병과 싸우면서 그 너머 새로운 세상을 그릴 때, 역사의 변곡점을 만들 수 있었다.

 

미국, 영국, 중국, 이탈리아, 스페인 등 모든 국가들이 모두 팬데믹 상황에서 어떻게 학교를 운영할 것인지 새로운 대안을 적극적으로 고민하는 과정에 있다. 발 빠른 방역 시스템 구축으로 세계의 찬사를 받았던 우리에게는, 앞장서 온라인 학교교육 모델을 고민할 자격과 사명이 있다. 

 

한국산 코로나19 신속 진단키트나 드라이브 스루 검진소, 정부 제공 어플 같은 혁신적인 모델이 우리 학교교육 분야에서도 충분히 나올 수 있다. 포스트 코로나19 시대의 새로운 기준, 뉴 노멀(New Normal)을 향한 대한민국의 행보는 이미 많은 이들에게 주목받고 있다. 

 

선진화된 IT 인프라, 보편화된 공교육 제도, 높은 시민의식 등 디지털 전환에 최적화된 조건을 갖춘 대한민국이다. 지금 우리가 온라인 개학을 할 수 없다면, 이 시점에서 그 어떤 나라도 학교교육의 디지털 전환에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갑자기 다가온 온라인 개학은, 다소 불안한 모습으로 출발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교육의 총력전’에 시민들의 관심과 지지가 필요한 이유다. 교육현장에서 분투하고 계실 일선의 교사들에게 믿음을,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침착하게 학업을 이어가는 학생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그렇게 코로나19 의 폭풍우가 지나가면, 우리는 이전과 달라진 세상에 살게 될 것이다. 절대 바뀌지 않을 것만 같아 보였던 대한민국 학교마저도.

 

Profile
퇴사 후 떠난 영국에서 공부하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