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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통 보수 아웃사이더들을 위한 변명

1999.12.14.화요일
딴지 교육부 최가박당

 










문제> 이 음악은 어떤 음악일까요 ?
 힌트 1 자기가 졸라 좋아하는 음악이지만 회사동료에게 발설해서는 안 된다. 그 엄청난 비밀을 발설했다간 회사 내에서 왕따당하는게 시간 문제기 때문이다.

 힌트 2 또한 그 음악은 도무지 대한민국의 잘난 공중파 방송에선 듣기가 힘들다 (그나마 서울은 나은 편이고, 지방에서는 애초에 기대를 접는 게 속 편하다). 따라서 그 음악을 제대로 들으려면 산넘어 물건너 (심지언 무작정 상경), 대개 지하철이나 버스로 가기도 힘든 외딴 집회 장소로 낑낑거리며 찾아가서 들어야 한다.


 힌트 3 이 음악에 빠져들면 빠져들수록 현실감각이 없어지며 가뜩이나 지저분한 세상이 점점 더 쓰레기통으로 느껴지면서 사회에 대한 악감정은 날로 커지게 된다. 겉으로 잘 드러나 보이지는 않지만 이들의 내면을 뒤져보면 대부분 대책 없는 사회 부적응자다.


힌트가 세 개나 나갔슴다. 정답을 몰까요?


언더그라운드 뮤직? 하드 롹? 자즈? 


땡! 아쉽군요. 다 틀렸슴다. 


정답은...


클래식 !


 


씨바 지금 장난하자는 거냐 하고 짜증을 낼 분덜에게 묻는다. 


당신은 이 땅의 클래식 음악 매니아 가운데 상당히 많은 수가 딴지의 매니아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딴지가 세상에 대해 가하는 인정사정 볼 것 없는 똥꼬 찌르기를 보며 그들이 짜릿한 카타르시스와 넘치는 오르가즘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이 땅의 진짜배기 클래식 음악 매니아들은 대부분 아웃사이더들이다. 이들은 이 사회의 대다수가 원하는 음악과 가장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음악을 탐닉하는 대책 없는 소수들이며, 주류문화에서 벗어나 문화의 변방에 서성대는 낙오자 신세다. 


같은 낙오자라도 얼터너티브 락 음악 매니아들은 그나마 자유주의 진보의 소수 매니아군단으로 대접받기나 하지. 이 불쌍한 클래식 음악 매니아들은 아예 파격과 변화를 거부하고 낡아빠진 골동 음악에나 심취해 있는 꼴통 보수 취급을 받는다. 


그대는 아는가? 아웃사이더, 낙오자인 걸로도 부족해 꼴통 보수의 멍에를 짊어지고 사는 이들의 서글픔을. 




얼터너티브 락이 되었건, 재즈가 되었건, 정통 힙합이 되었건, 사실상 우리 나라에서 순수한 마음으로 한 장르의 음악세계를 엽기적으로 파고드는 넘들의 마인드는 장르를 불문하고 대체로 동일하다.


순도 높은, 제대로 된 음악이 만들어지고 들려지는 과정은 실상 우리 사회와 같은 졸라 순도 낮은 사회에서는 험난하기 이를 데 없는 역경을 거쳐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장르와 상관없이 말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유독 클래식 음악 장르만큼은 다른 음악들과 명백히 구별되는 특별 대접을 받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왜일까? 


클래식 음악은 그야말로 세월의 시련을 이겨낸 그윽한 멋이 담긴 고전음악이기 때문에? 지성이 가미된 퍽이나 정신적인 음악이기 때문에? 음악감독의 카리스마와 관현악단이라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기 때문에? 오랜 세월을 거쳐야만 겨우 그 열매를 거둘 수 있는 졸라게 힘든 테크닉 연마 과정이 전제되기 때문에? 


미안하지만, 이 가운데 어느 것도 우리 사회에서 클래식 음악이 받는 특별 대접을 속시원히 설명해주지 않는다.


졸라 황당한 일이지만, 우리 사회에서 클래식 음악이 특별 대접을 받는 근본적인 원인은 갑오경장 이전의 전()근대적 신분질서와 연관이 있다. 


그게 몬 소리냐고 ?


우리 사회에서 클래식 음악을 좋아한다는 말은 단순히 개인의 음악적 취향을 함축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클래식 음악 애호가라는 선언은 기만적인 근대화를 체험한 한국 대중의 사회 심리 한 언저리에 여전히 그림자처럼 남아 있는 고급 신분에 대한 암시를 담고 있다. 


쉽게 말해, 울 나라에서 클래식 음악을 좋아한다 라고 하는 선언은 대중들에게 암묵적으로 나는 양반이다 라고 하는 시대착오적 선언과 흡사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근대화되었다고 구라치는 사회에 있어서 전근대적 계급 이데올로기는 문화 영역 속에 굳건히 살아남아 있다. 이 몹쓸 넘의 계급 이데올로기는 순수라는 간판을 달고 있는 문화 예술의 안전한 지붕 밑으로 숨어 들어가 여전히 숨을 쉬고 있는 거다. 


그런데 함 생각해 보자.


예컨대 중고등학교에만 올라가도 눈길 한 번 주지 않게 될 피아노를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부터, 혹은 유치원 다닐 무렵부터 너도나도 노랑색 학원 가방 둘러메고 가서 졸라 손등 맞으며 배우고 있는 우리네 아이들. 


음악에는 손톱만큼의 관심도 없으면서 열성적으로 자신들을 피아노 학원으로 몰아넣는 부모의 모습을 통해, 그리고 그들 부모가 다음 차례로 그들에게 주입시킬 지상과제 - "졸라게 공부해서 설대 가라 아그들아!" - 를 통해 그들은 일찌감치 클래식 음악이란, 좋은 대학이 상징하는 바와 마찬가지로 계급과 신분 상징의 수단이라는 사실을 체득하게 된다. 


우리네 아이들은 순수 음악이 사실상 하나도 안 순수하다라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자라난다는 거다. 그리고 대중은 그 나는 클래식 음악을 좋아한다 라는 선언에 대해 표면적으론 거부반응을 보이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무의식적으로 계급과 신분을 상징하는 그 취향을 동경하고 있다는 것이고.  


이런 계급 상징으로서의 클래식 음악과 신분 상징으로서의 대학의 만남... 


이 졸라 기만적인 순수의 만남에 담긴 전근대적 이데올로기의 폭발적 함의를 생각한다면, 반복되어 터지는 음대 입시 부정사건은 조금도 놀라울 것 없는 지극히 일상적인 사실이 되고 만다. 


수십만원에서 기백만원에 불과한 깽깽이를 억대 깽깽이로 둔갑시켜 팔아먹는 사기꾼 악기상들의 든든한 사기 파트너가 대학 교수들이라는 것도, 


이들 사기꾼 교수 년놈들이, 틈만 나면 어린 제자들에게 "소질은 졸라게 좋은데 악기가 5000만원짜리밖에 안 돼서 쪼까 힘들겄다." 라며 바람잡이 구라를 치고 있다는 것도,


자기 대학 집어 넣어주겠다고 수천만원씩 꿀떡 꿀떡 받아 처먹는, 돈에 환장한 년놈들이 예술대학 교수 나부랭이라고 모가지에 힘주고 있는 것도, 


이 년놈들이 입시 실기시험장에서 음악은 안 듣고 손짓, 발짓, 눈짓, 신호 보내느라 심사위원석을 발레 무대로 만들고 있다는 것도.... 알만한 사람들 사이에선 혀 한번 끌끌 차주고 하품이나 하게되는, 졸라 일상적인 그리고 상식적인 사건이 되고 마는 거다. 


천박한 계급이데올로기에 의해 양반의 호패마냥 또 다른 신분의 상징인 대학을 통해 판매되고 유통되고 있는 기구한 이 땅의 클랙식 운명이여. 아... 씨바 !


그저 불쌍하고 가련하기만 한 것은 이 땅의 가난한 클래식 음악 매니아들이다. 만져본 적도 없는 억대의 악기들 때문에, 그리고 연주회가 끝나면 멀찍이서 구경하며 지나쳐갈 뿐인 삼층짜리 케잌과 얼음 조각상 속 칵테일 잔치 때문에, 그리고 자신들과 하등의 관계가 없는 20-30만원 짜리 로얄석 때문에, 그리고 그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엽기적으로 탐닉하는 죄 하나 때문에...


그들은 끊임없이 이 사회 문화의 변방으로 내몰려지고 있다. 


그들은 그렇게 꼴통 보수 아웃사이더가 되고 있는 게다. 진짜 순수한 게 누군데 말이다...



 


- 엽기예술부 최가박당 ( hoggenug@netsgo.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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