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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러브레터>, 무지무지 슬프다면서?

1999.11.14.일요일
이곳저곳 종횡무진 열혈기자 마타하리


 

<러부레타> 시사회날, 시사회장은 그야말로 만원사례, 미어터짐이었다.

 

덕분에 본 기자, 치질의 위험을 무릅쓰고 차가운 돌계단에 궁디를 안착시켜야만 했다. 웅, 이 정도 쯤은 감수해 줘야쥐..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대학 영화 동아리의 단골 이벤트로 상영되었던 문제의 감동 러브 스토리가 아니던가. 나름대로 영화라면 볼만한 건 다봤다 자부하는 뇬, 넘들이 "어흐흑, 명작이닷!" 하면서 부르르 떨었다던 그 영화다. 하이얀 손수건 한장을 고이 접어 들고 겸허한 마음으로 눈물을 맞이할 만반의 태세를 갖추었다.

 

자, 어서 날 가슴 아프게 해조!

 

영화가 시작되었다.

 

눈덮힌 언덕에 쌔끈한 일본뇬덜의 메인 컨셉인 하얗고 작은 얼굴, 커다랗고 한떨기 꽃사슴같이 순진해 보이는 눈, 무슨 이유에선지 일본 넘들이 환장해 자빠라지는 숏커트의 여자 주인공이 등장한다.

 

 

 

 

아직 첫눈을 보지 못한 이들에게 눈으로 뒤덮힌 익스트림 롱 샷(절라 멀리에서 찍기) 인트로 씬은 똥꼬 아리아리한 설레임과 기대를 잔뜩 안겨다 주었다. 벌써부터 옆에 끼고 앉은 애인의 어깨를 꼬옥 감싸안는 귀여분 커풀들도 눈에 띠었다.

 

그러나!

 

씨바, 이 영화 끝까지 눈 밖에 볼것이 없었다.

 
 

일본은 눈이 참 많이 오는구나...

 

영화를 보고 이런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나?

 

 

 

 아, 머리아파. 아, 헷갈려.

 

자, 영화를 볼때 졸라 머리 굴려가며

 
 

음, 저 남자가 옆가르마타고 깻잎머리 하는건 앞가르마들의 억압에 대항한 무정부주의자의 자유를 상징하는 것이겠지?

헉, 저 꽃무늬 부라자는 아무래도 원예업자들의 속옷시장 장악음모를 암시하는거 같어..

 

이런 식의 졸라 혼자서 박터지는 감상법을 추구하시는 분이라면 이 영화, 적극 추천이다. 또한 일본어에 능통하여 일본 뇬넘덜의 이름을 쉽게 구별할수 있는 분도 별 무리없이 감상하실수 있으리라.

 

그러나 본 기자가 굽어 살피고자 하는 거슨 이러한 혼자서도 잘하는 뇬넘들이 아니지 않은가. 때때로 사람들이 한참 웃고나서 잠잠해진 다음에서야 비로소 옆 사람의 옷소매를 살며시 끌어 댕기며 "왜 웃어요?" 하는 넘들, 한참 재밌게 보고 나서 같이 본 친구랑 얘기해보면 하품하고 다리 긁는 새에 놓친 듯한 얘기가 무지허니 많은 듯한 뇬들, 이런 뇬, 넘들을 긍휼히 여김이 딴지 영화 리뷰만의 임무가 아니던가!

 

썰이 좀 길었냐?
긴데는 다 이유가 있다.

 

솔직히 본 기자, 영화를 보면서 졸라 헷갈렸으며 이는 본인만의 쪽팔린 비밀이 아니었던 것이다. 함께 영화를 딴지 영화부 부장대우, 한동원 양은 아예 모든 스토리를 재구성, 재해석하는 놀라운 영화 감상을 마친 상태였음이 확인되었다.

 

아래에 한동원 양의 그 놀라운 질문들을 들어보라.

 


 그 순진무구한 질문 첫번째 : " 야, 근데 제목이 왜 <러부레타>냐 ? "

 

그렇다. <러부레타>에서는 여자끼리만 졸라 편지 주고 받는다. 서로를 남자로 착각해서? 아니다. 그럼 동성애 영화냐? 것두 아니다.

 

영화를 이끄는 메인 스토리와는 조금 다른 곳에 진정한 러부레타가 숨어있다. 어디에 숨었냐구? 그거 미리 얘기함 재미없쥐. 이글 읽는 넘뇬덜 중에는 영화 볼 넘뇬덜도 있으니까. 그쥐? 그러니깐 걍 넘어가자.

 

그러나 어쨌든 사람들이 기대하는 애절절절하고 설레이고 짜릿한, 거런 러부레타는 없다. 편지의 기능은 그저 과거 회상을 위한 도구일뿐이다. 편지에 얽힌 짜릿하고 가슴 아려오는 사연을 기대한 대다수의 관객들에게는 쫌 답답한 이야기 전개 방식이다.

 


 그 순진무구한 질문 두번째 : " 대체 누가 누군지 너는 알겠냐 ? "

 

거러타! 이게 결정타다.

 

"나는요 나는요 아무것도 몰라요.. 나는요 이슬만 먹구 살어요.."를 온몸으로 호소하는 주인공 뇬이 1인 2역을 하고 있다. 이거 많이 써먹는 수법이다. 그러나 이렇게 구별하기 힘든 1인 2역은 내 생전 첨이다.

 

관객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없냐? 하다못해 한 뇬은 귀걸이를 하고 있다던가, 염색을 했다던가, 문신을 새겼다던가 뭐 이런 구별을 도와줄 확실한 뭔가가 있어야 하지 않겠냐.  올해 타계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걸작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에서 피터 셀러즈가 보여준 전설적인 1인 3역에서, 어떤 역들이 같은 배우가 연기한 건지 알아내는게 넘넘 어려웠던거 하구는 완전 대조다.

 
 






 
그냥 다른 애라면 다른 앤 줄 알아야지, 관객이 뭔 힘이 있겠는가..
 

물론 전혀 구별할수 없는 것은 아니다. 한 뇬은 영화 내내 감기에 걸려 이불을 질질 끌고 다니면서 기침을 한다. 하지만, 겨울이다. 춥다. 누구나 감기에 걸릴수 있다. 다른 뇬이 감기에 걸릴수도 있는 거 아닌가.

 

한 부장대우에 비해 상대적으로 명민한 본 기자도 뇌를 잔뜩 충혈시켜가며 한 뇬을 두 뇬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느라 무지하게 애썼음을 고백하지 않을수 엄따. 이런 식으로 관객을 긴장시키는 것은 로맨스 영화로서의 기본 임무를 져버린 것임을 주장한다.

 

앤이랑 영화 한편 보면서 몸도 마음도 따뜻해져 돌아오고 싶었는데 불 켜지고 나서 본 뇬의 이마에 과도한 긴장으로 인한 한줄기 핏발이 서있다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가.

 

물론 모든 일에는 개인차가 있다. 별로 안 헷갈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딴지 기자 두명은 졸라 헷갈렸다. 졸라.

 

 이 영화, 재밌냐?

 

 그 순진무구한 질문 마지막 : "재밌냐?"

 

이 질문을 하면서 사람들은 매우 망설이게 되어있다. 남들은 다 재밌다던데 나만 왜 이런걸까 하는 자괴감과 함께 같이 본 사람, 혹은 표를 사준 사람의 눈치를 보게 되어있다.

 

그럴것 없다.
영화란 것이 내가 재미없으면 모두 니미 뽕인 것이 아닌가.

 

이거 저거 다 감수하고라도 재미만 있으면 사실 돈은 안 아깝다. 재미라는 것이 꼭 웃기고 자빠라지는 코미디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액션 영화의 재미는 수 억 깨부시는 통쾌함이고, 에로 영화의 재미는 빠구리의 다양한 아크로바트적 테크닉의 난이도와 예술적 뻥조명으로 판가름난다.

 

그렇다면 로맨스의 재미란 무엇이냐. 잔잔한 감동과 함께 한줄기 흐르는 눈물, 불 켜지고 난뒤 마주친 그(또는 그녀)와 나누는 조용한 미소, 그런 것이아니더냐. 이런 기준으로 볼 때 <러부레타>는 과연 재미있는 로맨스 영화인가.

 

답은 "재미없다!"다.

 

뻔한 내용에 적응하기 힘든 일본 뇬의 표정, 특유의 간드러지는 목소리.. 어윽, 부담스러워 뒈지겠다. 게다가 영화의 핵심인 고교 시절 회상 장면들에서는 교복을 입은 하얀 얼굴의 소녀들이 그 간 수없이 보아온 일본 포르노 사진들과 중첩되어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나만 변태라서 그런걸까? 니덜도 나와 별반 다르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이거 로맨스 맞냐?

 

자고로 로맨스에는 코끝이 찡해오는 감동이 있어야 한다는게 본 기자의 지론이다. 그게 로맨스 영화 본연의 임무이다.

 

게다가 제목 좀 봐라. 딴것두 아니고 러부레타다 러부레타.

 

학창 시절,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쓰고 구기기를 몇번이나 반복하던 연애 편지 한장 써보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있으면 마빡 모니터에 후려치며 반성해라.) 애절함이 극에 달해 온몸을 비비 꼬지 아니할수 없는 야릇한 떨림. 그리고 이어 닥쳐오고야 마는 슬픔, 안타까움.

 

아마 사람들은 그런 느낌을 기대할 것이다.

 

자, 그렇다면 여기서 문제. 이 영화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을수 없는 가슴 애려오는 장면은 과연 어디일까? 씨바, 없다. 절대 없다. 이건 배반이다. 마지막 씬이 그렇게나 절절절 절라 감동스럽다는 소문을 들은바 있었다.

 

그 유명한 대사,

 

"잘 지내나요? 나는 잘 지내요오오~!"

 

이미 죽어버린 애인을 향해 너무도 안타까운 마음으로 소리를 치는 장면이다. 거러나! 언어의 장벽은 험준하기만 하다. 일본어로 들어보자.

 

"오겡끼데스까아아~? 와따시와 겡끼뎃쓰으으~!"

 


몇번이나 반복되는 이 대사를 듣고 있노라면 만감이 교차하지 않을수 없다. 생각은 슬금 슬금 로맨스 영화 특유의 감상 초점에서 한참을 벗어나버린다.

 

아, 일본어는 정말 발음이 재밌단 말이야.
아따, 고뇬 참 깜찍하게도 생겨먹어 부렀네(꿀꺼덕)..
외워뒀다가 한번 써먹어야지.
와, 목캔디 한 두통은 먹었나부다. 고뇬 소리 함 잘 지른다.

 


 훔친 사과가 맛이 있다

 

그럼 이렇게 졸라리 잼때가리 없는 영화에 왜 그렇게 난리 법석이 났었는지 의구심이 일지 않을수 없다. 과연 그 이유가 뭐였을까나?

 

머, 그렇게 당연한 걸 묻구 그러냐. 그 땐 이 영화가 금지 영화였으니깐 그렇지. 숨어서 피는 담배가 맛있고 근무 시간에 몰래 보는 딴지가 더 재밌는거다. 많은 젊은 영화광들이 지루한 한국영화나 어설픈 헐리우드 영화에 대해서는 너 오늘 함 죽어봐라하는 비장한 각오로 뎀비면서 일본의 영화나 에니메이션에 대해서는 별 소리 없는 것이 사실이지 않은가?

 

걔네가 그렇게 대단하냐? 아직 <러부레타>에 대해 재미없었다는 평을 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왜? 이 영화가 그렇게 전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할만한 명작, 대작인가? <러부 레타>가 <편지>보다 우리 정서를 더 잘 파악해버렸단 말인가?

 

씨바, 조까다, 조까.

 

모든 대학 영화동아리가 한번쯤은 안 틀어본 적이 없을 정도의 이 영화에 대한 정도를 넘어서는 환호는, 정상적으로 영화보는 통로가 막힌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확장되고 증폭된 일본영화에 대한 과대평가라고 밖에 달리 생각할 수 없다. 이 영화보다 재밌고 가슴 아릿한 로맨스 영화가 진정 없단 말이냐?

 

좋다는 얘기 듣고 천신만고 끝에 화질도 절라 안 좋은 비됴 테푸 구했다. 이걸 내가 어떻게 구해 본건데, 이걸 씹으리오, 내는 이걸 봤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뿌듯하도다, 이런 거 아니었을까? 근데 이제 일본 영화 2차 개방이 시작되었고, 이 영화는 더 이상 "나 그거 봤는데, 흑흑. 감동의 물결이야. 넌 못봤지?" 이런 자긍심을 안겨줄수도 없게 되었다. 구지?

 

<러부레타>, 이거 재미 절라 없었다. 얘기도 절라 헷갈리면서도 지루하고 전형적인 일본풍의 주인공도 영 소화불량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좋다고 얘기하고 있고 "나 봤는데 정말 좋으니까 너두 꼭 봐" 라고 추천하고 있다. 머, 이건 분명 진심어린 추천의 말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너덜은 부푼 가슴을 안고 매진을 우려해 예매를 서두를 것이다. 그러나. 너덜은 그 영화의 실체에 실망할지도 모른다.

 

그 때, 굴하지 말고 외쳐도 좋다. 어떤 영화든 재미없어 하는 사람은 있기 마련이다. 일본 영화에 대한 환상에 가까운 거품에 주눅들지 마시고, 당당히 외치시라. 주인공 뇬 "와따시와 겡끼뎃쓰으~!" 하듯이 당당하게.

 

"절라 재미없네! 씨바, 돈 아까워!" 

 

 

 

 

- 이곳저곳 종횡무진 열혈기자 마타하리
( justhappy@netsgo.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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