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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난 정말 유행이라 말하고 싶다

 

1999.10.13.수요일
딴지 자동차 전문기자 메탈헤드

 

본 기자는 대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만화가 아님 자동차 디자이너를 하겠다던 사람이었다. 실제로 대학교 들어가면서 쓴 원서에도 그렇게 써서 면접볼 때 교수가 파안대소했던 기억이 난다. 허긴 전산학과 지망한 놈이 만화가 아님 자동차 디자이너를 하겠다니 웃을 만도 했겠지.

 

물론 지금도 컴 갖고 그림질 하고 있는 실정이지만 솔직히 미술적 감각이나 표현력이 떨어 지는 것은 인정한다. 해서 난 디자인이니 미술이니 하는 쪽에서는 프로페셔널이 될 수 없다 는 것도 안다. 하지만 습성이라고 할까. 자동차가 새로 나오면 성능, 편의사양 등 여러가지 를 기준으로 평가를 해 보지만 차를 평가하는데 있어 디자인도 제법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번 기사에서는 길게 얘기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디자인에 있어 본 기자가 전문가가 아니 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스스로 잘 알기 때문에. 그러나 이 내용은 많은 독자분들도 공감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바로 자동차 디자인의 베끼기와 유행 따르기에 대한 것이다. 본 기자 가 하고 싶은 얘기는 많은 사람들이 "OO차는 외국의 XX차 디자인을 그대로 베꼈다"고 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수준의 자동차 업체로 성장했다고 자부하며 외국의 유명 디자이너를 우습게 보는 대한민국 자동차 메이커에서 이런 얘기를 하기 민망할 정도로 디자인된 차들이 나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베끼기나 유행 따르기의 문제를 떠나서도 깝깝한 디자인의 차들이 참 많이도 나온다. "해체"를 핵심단어로 삼는 포스트 모던시대에 엉성한 듯 하고 어딘가 어색해 보이는 디자인 의 차들이 등장하는 것은 세계적인 조류라 할 수 있으니 뭐라고 말은 못하겠다. 그러나 대 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균형과 조화를 깨뜨리는 디자인의 차들이 나오는 것에 대해서는 이해하기 힘들다. 이번 기사에서는 본 기자가 부끄럽게 생각하는 디 자인의 차들에 대해서 사진 위주로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1. 기아 카렌스 vs. 도요타 입섬(피크닉)

 

 

이 차에 대해서는 정말 할 말이 없다. 이 차 수출도 하나? 나 같으면 창피해서 서 못할 것 같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오리지널 디자인을 잘도 다듬어 조금은 나아보인다는 점. 자동차 잡지마다 실린 개발자와의 대담에서 "도요타 입섬을 벤치마킹했다"고 얘기할 때 기자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2. 기아 슈마 vs. 도요타 셀리카 vs. 현대 티뷰론 터뷸런스

 

 

기아 슈마는 처음 나왔을 때부터 말이 많았던 차였다. 앞뒤가 밸런스가 맞지 않는 것은 둘째 치고, 앞부분이 도요타 셀리카와 너무 흡사했기 때문이었다. 세계 랠리 챔피언십에서 쌓은 셀리카의 스포티한 이미지를 따옴으로써 이미지 메이킹에는 성공했으니 기아로서는 만족했을 것이다. 그러나 기아를 합병한 현대가 티뷰론 터뷸런스를 내놓으면서 코미디같은 일이 벌어졌다. 터뷸런스도 셀리카의 디자인 요소들을 차용한 것이다. 4등식 헤드램프만 쓰면 다 셀리카를 모방한거냐라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그러나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과연 4등식 헤드램프만이 셀리카로부터 차용한 것인지를.

 

3. 기아 카니발 vs. 포드 윈드스타

 

 

사람들이 한국에서도 승용차를 베이스로 한 정통 미니밴이 나왔다고 했을 때 미국식 정통 미니밴의 대명사인 크라이슬러/닷지 캐러밴을 떠올렸다. 기아에서도 캐러밴을 벤치마킹했다고 대대적으로 선전을 했으니. 꼼꼼히 살펴보지 않으면 캐러밴과 카니발은 스타일상으로는 크게 비슷하지 않으니 나름대로 독자적인 디자인이라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근데 미니밴이 캐러밴 하나밖에 없나? 사이드 라인 처리 및 볼륨처리에 있어서 카니발은 포드 윈드스타와 흡사한 점이 많다. 곱게 넘어가자면 곱게 넘어가겠지만 램프류와 도어 손잡이, 라디에이터 그릴만 가리고 비교해 보라. 누가 두 차를 다른 차라고 하겠는가.

 

4. 현대 그랜저 XG vs. 도요타 윈덤(렉서스 ES 300)

 

 

이쯤 되면 벤치마킹이 디자인 요소 차용하기와 무엇이 다른지 분간하기가 힘들어진다. 한국적 취향에 맞게 우드그레인이 도배된 것을 제외한다면 힐끗 둘러보아도 장래의 경쟁차종이자 그랜저 XG의 주 벤치마킹 대상인 도요타 윈덤과 대시보드 디자인이 거의 유사한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공조장치와 내비게이션 시스템이 자리잡고 있는 센터페이셔 부분을 주목해 보시기 바란다. 현대 차에서 그 잘나가는 렉서스의 그 무언가를 느끼게 해 주고 싶었던 걸까.

 

5. 현대 갤로퍼 이노베이션 vs. 미쓰비시 파제로 에볼루션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얘기지만 현대의 갤로퍼는 미쓰비시의 파제로(몬테로)를 도입하여 일부 부품을 바꾸어 생산한 모델이다. 슬슬 독자모델을 만들 시기가 되다보니 일부 금형을 바꾸어 스타일을 다듬은 갤로퍼 II를 만들어 좀 차별화가 되나보다 싶더니만 치사하게도 미쓰비시에서 내놓은 파제로의 고성능 모델인 파제로 에볼루션의 스타일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갤로퍼 이노베이션을 내놓았다. 

 

정말 치사한 것은 성능은 일반 갤로퍼 그대로인데 스타일만 스포티한 무늬만 에볼루션 모델이라는 점이다. 이 차는 승용모델보다 짐차 모델이 더 많이 팔린다는 사실을 알면 미쓰비시나 외국의 파제로 팬들은 모다 뒤집어질께다. 그나마 수출전략차종이라는데 밴 모델을 수출하지 않는게 다행이다.

 

꼽다보니 어쩌다 기아차와 현대차만 꼽혀 "대우에게 돈 먹었나!"는 소릴 들을지도 모르겠다. 허나 지금의 대우차는 그런 얘기 할 만한 차가 없다. 다듬기야 했지만 기본 디자인을 돈 주고 사온거니까. 이태리의 저명한 자동차 디자이너인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이끄는 이탈 디자인과 신흥 카로체리아인 IDEA의 디자인이니 나름대로 독창성은 인정해 줄 만하다. 국산 디자인이 아닌게 흠이라면 흠일까.

 

물론 독창적이고 한국적인 디자인을 위해 불철주야 애쓰는 한국의 디자이너들의 의욕에 찬물을 끼얹으려는 것은 아니다. 경영진이나 마케팅 부서의 입김도 있을 것이고, 한 달에도 몇 종류씩 전세계에서 새 차가 나오는 판국에 아주 독특하고 참신한 디자인을 내놓기란 쉬운 일도 아닐 것이다. 그리고, 기자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베끼기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세상의 수많은 디자이너들이 모두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방법으로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동시대를 사는, 동시화의 시대를 사는 사람들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는가. 어쩌다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방법으로 표현하는 경우도 충분히 생길 수 있는 것이다. 본 기자는 그렇게 생각해 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그러니 한국의 자동차 디자이너 여러분, 그리고 자동차업계를 진두지휘하시는 여러분. 본 기자 민망하지 않게 해 주셨으면 좋겠다. 본 기자뿐 아니라 온 국민...까지는 필요없더라도 스스로 가슴에 손을 얹고 민망하지 않은 차를 디자인 해 주시기 바란다. 

 

본 기자, 위에 예를 든 차들은 정말 세계적 흐름에 따른, 유행에 따른 디자인의 차들이라고 말하고 싶다. 진짜루.

 

 

 

 

 

- - 딴지 자동차 전문기자 메탈헤드 (lightblue@inam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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