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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탐구] 헌데 엑기스를 쥐어짜다

1999.10.11.월요일
자동차 전문기자 메탈헤드
 

지난 4월 28일, 헌데자동차에서 27개월간 5천 2백억이라는 막대한 돈을 쏟아부어 국내 최초의 V8 엔진, 국내 최대배기량 엔진, 국내 최장, 국내 최고가 승용차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앞에 달고 우리 회사 기술의 정수만을 모았다는 뜻으로 이름지은 "엑기스"를 발표했다. 

 

이번 기사에서는 이 "엑기스"를 도마위에 올려놓아보겠다.

 
 

 "엑기스"의 등장배경과 시장

 

"엑기스"가 등장하기 전, 국내 최고급 승용차의 자리는 97년 등장한 데우(싼용)의 "치어걸"과 귀아의 "엔터프라이드", 96년 등장한 헌데의 "다이너마이트"가 자리다툼을 하고 있었다. 

 

이들 최고급 승용차가 등장한 것은 거품경제가 터지기 직전으로, 92년 3만 5천대 수준에서 93년 4만 3천대, 94년 6만대, 95년 6만 7천대로 시장규모( 2000cc 이상의 프레스티지 세단. 고로 헌데 "소났다"와 "마루치", 데우 "푸린수", 귀아 "그래도써"는 제외)가 커지고 있는 시기였다.

 

이에 발맞추어 고급차 대체수요가 수입차로 이전되는 것을 저지한다는 상징적 의미와 함께 시장분산을 통한 판매효율의 극대화, 그리고 "국내최고"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차지하기 위한 3사의 싸움이 치열했다. 결국 96년, 7만 2천대로 규모가 확대된 고급차 시장에서 첫 등장한 "다이너마이트"는 14.3%의 시장점유율을 거두었다.

 

사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다이너마이트"는 바로 아랫급으로 "다이너마이트" 등장 전까지 헌데의 플래그십이었던 "그랑죠"를 뜯어고친 차였다.

 

 "그랑죠"와 다른 것도 별로 없으면서 "더 비싼 더 고급차"라고 내세운 차가 팔릴 수 있었던 것은 역시 거품경제 덕분이었다. 이 때만 해도 내놓으면 그냥 팔리던게 최고급차였다.

 

이윽고 97년, 개발스케줄에 맞추어 "엔터프라이드"와 "치어걸"이 등장했지만 경기는 겉잡을 수 없는 침체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공삼정부 말기에 경제가 개판이 되어가고 있었던 것은 주지의 사실. 귀아는 부도직전 상태로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싼용 역시 비실거리다 데우로 넘어가는 형편이 되었다. 

 

그런 와중에 최고급차의 시장규모는 5만 3천대(중형차 윗급의 고급 승용차를 기준으로 산정) 규모로 줄어들었다. 이어 터진 IMF 경제위기로 98년 자동차 시장은 최악의 상황을 맞아 2만 4천대 규모로 최고급차 시장은 90년대 초반 수준으로 축소되는 위기를 맞았다. 

 

이어지는 세기말 99년, 생산대수 32% 감소라는 엄청난 타격을 입은 국내 자동차 업계는 업체간 빅딜, 구조조정 등 파란만장한 풍파를 거치며 어려움을 딛고 일어서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헌데자동차에 의하면 "엑기스"는 올 한해동안 7천대 판매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한다. 올해 업계의 시장관측에 따르면 국내 자동차 시장은 97년 수준으로 회복될 전망이라고 하는데, 만약 고급차시장도 마찬가지로 회복된다고 가정했을 경우 "엑기스"는 해당시장에서 약 13%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하게 된다. 

 

경제사정이 좋지 않은 탓에 물가가 많이 올랐다고 하지만, "엑기스" 등장 이전까지 국내 최고가 승용차였던 "치어걸"의 3500만원에서 5300만원에 이르는 가격과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비싼 최저 4190만원에서 최고 7950만원에 이르는 비싼 고급차가 고급차 시장에서 엄청난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이런 수치는 메이커의 "목표"이지 실제로 달성될지 안될지는 연말에 가봐야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치어걸"이 경제한파의 영향을 받기는 했지만 98년 1년 내내 2000대 남짓 팔린 것을 생각해 본다면 경기가 아무리 회복되어봐야 목표량 달성은 어렵지 않을까 하는 것이 본 기자의 생각이다.

 

물론 헌데자동차가 신차를 내놓을 때마다 기자의 예상은 틀린 적이 많았다. 헌데차는 신비한 마력이 있다. 별로 신통치 않은 차가 잘 팔리는 일이 허다했기 때문이다. "무난한 차가 잘 팔린다"는 자동차 업계의 속설이 그대로 들어맞는 케이스가 바로 헌데에 들어맞는 것이다. 이 속설이 "엑기스"에도 들어맞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엑기스"는 어떤 차인가.

 

 미쓰비시와의 공동개발을 통해 만들어진 차

 

일반적으로 최첨단 기술은 최고급차부터 적용된다. 여기에 적용된 최신기술들이 보다 개선되고 단순화되고, 대량생산을 통해 보편화되면서 아랫급 차들로 이어져 내려오게 되는 것이다. 

 

ABS, 에어백, TCS 등 첨단장비들이 개발되어오는 과정을 보면 이런 사실은 뚜렷이 알 수 있다. 그런 면에 있어 최고급차의 개발은 메이커 이미지를 높이는 역할 뿐 아니라 기술습득이라는 측면에서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최근에 와서는 세계의 모든 자동차 업체들이 경영난에 허덕이고 주거니 받거니 빅딜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 개발비 절감을 위해 이 회사가 저 회사와 손을 잡고, 저 회사가 이 회사의 엔진을 사다쓰는 등의 일이 비일비재하다. "엑기스"의 경우도 그와 비슷한 경우라 할 수 있다.

 

미쓰비시는 일본 내에서 고급차에 있어서는 명함도 못내미는 회사였고, 지금도 그렇다. 쟁쟁한 40년 역사를 가진 일본의 대표적 고급차 도요타 크라운, 80년대 말 거품경제를 등에 업고 등장한 닛산 시마, "렉서스 LS400"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시장에서 엄청난 인기를 끈 도요타 셀시오가 고급차 시장을 평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껏 내놓은 "데보네어"는 일본 내에서 미쓰비시가 자기네 회사 중역들 타라고 만든 차라는 소리를 듣는 실정이었고, 판매량도 일본보다 한국이 더 많은 형편이 되었다.

 

한국의 헌데도 내수시장에서는 난다 긴다 하는 대 메이커지만 세계시장에서는 웩센트나 아방떼 정도나 상품가치를 인정받는 메이커였다. 결국 말로는 세계 고급차 시장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차를 만들어보자는 측면에서, 실제로는 국내시장에서의 위신을 지키기 위한 헌데와 라인업 구색을 맞춰야 하는 미쓰비시가 궁합이 맞았고, 그런 각 회사의 요구에 맞게 그랑죠/다이나마이트와 데보네어의 다음 세대 모델로 개발을 한 것이 바로 "엑기스"인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일상적인 "기술제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우리는 여기서 한국 메이커의 명예롭지 못한 과거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지금까지의 국내 메이커들이 거의 그랬지만, 각사의 최고급 모델들은 외국 메이커의 모델을 그대로 들여오거나 공동개발하는 경우가 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고급차일수록 국산화율이 떨어진다는 보도를 우리는 종종 접할 수 있었다.

 

귀아의 첫 최고급차였던 "보뗀샤"는 마쓰다 루체/929 87년형을 들여온 것이고, 지금의 최고급차는 마쓰다와 공동개발하여 일본에서는 센티아로, 우리나라에서는 "엔터프라이드"로 판매되고 있다. 

 

데우는 혼다 "레전드" 93년형 모델을 그대로 들여왔고, 지금은 예전 싼용에서 메르세데스 구형 E 클래스의 엔진과 섀시 등을 들여와 새로이 뜯어고쳐 만든 "치어걸"을 최고급차로 팔고 있다.

 

 

 

 

헌데도 비슷한 과정을 겪기는 마찬가지였다. 헌데의 고급차 개발사를 살펴보면 포드 제휴시절에는 포드의 모델들을 들여왔고(포드 20M, 그라나다), 이후로는 미쓰비시와 제휴를 맺고 미쓰비시의 모델들을 들여오거나(1세대 그랑죠) 공동개발(2세대 그랑죠)을 통해 만들어졌다. 

 

2세대 그랑죠나 다이나마이트의 경우 외관디자인과 부분적인 실내디자인은 헌데에서 맡았고 메카니컬한 부분, 그리고 전반적인 실내디자인은 미쓰비시에서 맡았다. 그러나 실제 그랑죠/다이나마이트의 원형이었던 데보네어의 실내는 데보네어 아랫급의 세단 디아망테(구형)의 것을 기초로 부분적으로 변경한 것이었다. 

 

물론 데보네어는 디아망테를 기초로 만들어진 차다. 다만 "엑기스"의 경우 V8 개솔린 직접분사(GDI)엔진의 개발은 물론이요 전반적인 부분에 있어 헌데와 미쓰비시가 공동개발을 했다는 점에 있어 주목할 만 하다. 이러한 도입과 기술제휴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는 것이 바로 "엑기스"인 것이다.

 

세계자동차업계의 흐름이 업체간 이합집산, 업체간 기술교류의 활성화라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기 때문에 어찌보면 당연하게 생각되는 일이 실상은 한국 메이커의 빛나는 오랜 전통(?)을 이어온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욕할 수만은 없다. 

 

"빠른 시간 내에 외국의 기술과 노하우를 습득하기 위해서"라는 최고경영진들의 변명이 틀린 말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런 방법을 통해 배운 것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엑기스"의 경우 지금까지의 모델도입이나 기술제휴와는 조금 다른 성격을 띠고 있다. 미쓰비시의 경영난으로 인해 개발단계에 있어서 헌데 측의 입김이 강력하게 작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따져보면 어느 정도 이해는 할 수 있지만 왠지 씁쓸한 구석이 있는 것이다. 글로벌 시대에 이윤추구를 위한 짝짜꿍으로 생각할 것인가, 아니면 구태를 지속하고 있는 한국 메이커의 씁쓸한 뒷모습인가. 이에 대한 판단은 세계자동차업계의 재편이 어느 정도 정리된 뒤에나 가능할 것이다.

 

 고급차 다운, 그러나 고급차답지 않은

 

고급차는 부와 명예를 지닌 사람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단순히 크고 비싸고 편안한 것을 뛰어넘는 것이 필요하다. 상징적인 요소들이 고급차에 있어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헌데는 공공연히 "렉서스 LS400(도요타 셀시오)을 벤치마킹했다""한국의 렉서스를 목표로 만들었다"고 말한다. 감각적인 측면에 있어서도 "엑기스"는 렉서스 LS400과 닮아있다. 아쉬운 점은 고급차로서의 중후한 맛은 있지만 지나치게 현실안주형의 디자인이어서 앞으로 몇년간 생산되며 외국의 경쟁차종들과 한판 승부를 벌이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든다.

 

최근 서구는 물론, 일본 메이커들도 복고풍 디자인의 차를 내놓고 있다. 이는 소형차에서부터 대형차에 이르기까지 모든 등급의 차에 적용되고 있다. 특히 메르세데스 벤츠의 신형 최고급차인 S 클래스의 변신은 업계에서는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컨셉트카였던 "이매지네이션 쿠페"와 "마이바흐"의 둥글고 클래식한 라인을 그대로 양산차에 적용시켰기 때문이다. 

 

91년 제네바 오토살롱에서 데뷔한 구형 S 클래스는 지나치게 크고 각진 차체로 유럽에서는 좋은 소리를 듣지 못했던 것도 변신의 한 원인이 되었겠지만 "클래시컬한 라인의 부활"이라는 세계적인 디자인 흐름을 고급차에서 선도해 나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일찌기 93년 대대적인 모델체인지를 거친 재규어도 좋은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80년대 들어 "현대적인 디자인"이랍시고 재규어의 트레이드마크나 다름없던 두 쌍의 원형 헤드램프를 버리고 사각형의 헤드램프를 XJ 시리즈 세단에 도입했던 재규어는 "재규어가 아니다"라는 혹평을 들으며 판매율 감소, 경영난이라는 철퇴를 맞았다. 

 

물론 품질이 형편없었던 것도 판매율 감소와 경영난의 원인이었지만 재규어를 구매할 정도 되는 (단순히 돈의 문제를 떠나서)매니아들에게 있어서 사각형 헤드램프는 재규어로서의 아이덴티티를 저버린 것이라는 생각을 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결국 93년 등장한 새 모델에서는 다시 둥근 헤드램프를 사용하게 되었고, 소비자들과 언론으로부터 좋은 평을 얻으며 높은 판매고를 올리고 있다. 때문에 작년 말 등장한 아랫급 모델 S 타입에서는 완전한 복고풍 분위기의 디자인으로 돌아섰다.

 

엑기스 얘기로 돌아가 보자. 차 문을 열고 실내로 들어가 보면 이런 현실안주의 디자인은 더욱 두드러진다. 최근 국산차의 디자인의 수준이 많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다지 진보적이지 못하다는 데에서 아쉬움이 느껴진다. 실내의 분위기를 만들어내는데 있어 대시보드 디자인이 상당히 큰 요소를 차지하는데, 클래시컬한 분위기를 내기 위해 노력한 흔적은 엿보이지만 다분히 90년대의 분위기에 머물러있는, 즉 클래시컬한 분위기의 재해석이라는 측면에 있어 부족한 점을 느끼게 한다.

 

고급차의 실내는 겉모양보다 더 신경써야 할 부분들이 많다. 어느 차나 마찬가지겠지만 부품의 색감, 질감, 조립상태, 각종 버튼과 스위치의 배치와 조작감, 조명의 밝기, 시트의 안락성, 하다못해 가죽의 바느질 상태에 이르기까지 많은 부분에 공이 들어가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높은 가격이 매겨지는 것이다. 

 

몇몇 부분에 있어서는 세계 유수의 명차와 경쟁할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수준에 이른 것을 인정하지만, 아직도 사소하다면 사소하지만 눈에 보이는 몇몇 부분 - 우드그레인의 재질과 질감, 조립상태, 뒷좌석 시트 조절장치 버튼 배치 등 - 에 있어서 개선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 "엑기스"에 있어 아쉬운 점이다.

 

어디를 보나 "엑기스"는 큰 차로서의 중후함과 위압감을 느낄 수는 있지만 고급차로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인 "우아함"이 결여된 느낌을 준다. 디자인이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은 본 기자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특히 자동차 디자인은 문화적 토양이 빈약한 우리나라같은 실정에서는 뛰어난 것이 나오기는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디자인에 관련된 부분은 기회가 닿는대로 하나의 주제로 다루도록 하겠다.

 

디자인 외에도 고급차의 상징적인 요소중의 하나로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구동방식을 빼놓을 수 없다. 고급차들은 대부분 후륜구동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이는 운동특성을 안정시켜주고 승차감을 높여준다. 그러나 최근에는 기술이 발달하여 전륜구동차량도 각종 전자장비를 통해 후륜구동차량에 버금가는 운동특성과 승차감을 갖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급차에 있어 후륜구동방식이 중요한 요소로 간주되는 이유는 바로 전통때문이다. 고급차의 소비자들, 특히 서구사회의 고급차 소비자들은 이런 상징적인 요소들에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 역사속에 만약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만약 렉서스 LS400/도요타 셀시오가 전륜구동차였다면 지금처럼 신화와 같은 존재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확히 무슨 까닭에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 아마도 전륜구동 차의 장점들만 너무도 크게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아니면 개발의 씨앗이 된 그랑죠/다이나마이트/데보네어가 전륜구동이었기 때문이던지 - "엑기스"는 전륜구동차로 태어났다. 아마도 지금 판매되고 있는 고급차 중에 가장 큰 전륜구동차로 자리매김하게 되지 않을까. 아우디의 최고급 모델인 A8이 전륜구동 베이스이긴 하지만 주력상품은 4륜구동모델인 콰트로이고, 엑기스는 이 아우디 A8보다 덩치가 크니 말이다.

 

지금 현재 세계적으로 판매되고 있는, "엑기스"와 경쟁이 될 만한 고급차들을 살펴보면 (아래 표 참고) 전륜구동 차는 거의 없음을 알 수 있다. 하다못해 내수시장에서도.














































































































 
메이커 차명 배기량(리터) 구동방식 비고
아우디 A8 2.8/3.7/4.2/2.5 디젤 FF/4WD  
롤스로이스 실버 세라프 5.4 FR *
벤틀리 아나즈 4.4 터보 FR *
BMW 7 시리즈 2.8/3.5/4.4/5.4 FR  
데우(싼용) 치어걸 2.3/2.8/3.2 FR  
혼다 레전드 3.5 FF  
헌대 다이나마이트 2.5/3.0/3.5 FF **
재규어 XJ8 3.2/4.0 FR  
귀아 엔터프라이드 2.5/3.0/3.6 FR ***
마쓰다 센티아 3.0 FR ***
메르세데스 S 클래스 3.2/4.3/5.0 FR  
미쓰비시 데보네어 3.0/3.5 FF **
닛산 시마 3.0/4.1 FR  
닛산 프레지던트 4.5 FR  
도요타 크라운 2.5/3.0/4.0 FR  
도요타 센츄리 5.0 FR  
도요타 셀시오 4.0 FR  
 

참고) *, **, *** : 동일한 차가 다른 브랜드로 나오거나 뿌리가 같은 공동개발모델

 

 좋은 차를 만드는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차를 잘 만드는 것이 중요

 

국산차는 이제 여러부분에 있어서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만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이 본 기자를 비롯한 자동차 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은 멀다. 세계시장에서의 경쟁력을 따지기에는 세심한 부분들까지 션경을 써야하는데, 아직 그런 부분에 있어서 국내 메이커들은 부족한 점이 많다.

 

본 기자 얼마 전, 당대 국내최고의 승용차라고 일컬어지던 헌데 그랑죠 3.0을 몰아본 적이 있다. 나온 지 4년이나 지났지만 관리가 비교적 잘 된 편이라 차의 동적인 상태는 좋았고, 사고경력도 없는 깨끗해 보이는 차였다. 그런데 실내에 앉아 이곳저곳을 돌아보니 고급차로서의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는 부분들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실내의 도어 릴리즈 핸들(문 열때 당기는 손잡이)의 크롬도금이 갈라져 벗겨지고 있었고, 뒷좌석의 재떨이 주변 우드그레인은 비틀렸는지 제대로 맞지 않은 상태로 삐걱거렸다. 조수석 에어백이 장착된 부분은 티가 날 정도로 커버 부품이 변형되어 - 이것은 그랑죠, 다이나마이트 어느 차를 보나 마찬가지다 - 보기가 흉하게 되어있었다. 당대 최고의 고급차가 이런 형편이니 다른 차들은 어떠하겠는가.

 

단순히 부품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산차의 가장 큰 문제는 전반적인 제품의 질이 고르지 못하다는데 있다. 100대면 100대의 품질이 고르게 생산되는 것은 어렵더라도, 국산차는 생산단계에서 무슨 문제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누구는 몇년씩 차를 써도 별다른 문제가 없는가 하면, 누구는 새 차를 뽑자마자 문제가 생겨 정비공장을 몇 번씩 드나들고, 심지어는 차를 교환해달라는 시위까지 벌이기도 하는 실정이다. 

 

내수시장에서야 상황이 어떻든 차를 사서 써야하는 것이 소비자니 어쩔 수 없겠지만 수출을 하는 마당에 그런 불균질의 차를 내놓는다면 장사는 다 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헌데가 1986년 "웩셀"로 미국땅에 들어가 최단기간 최다판매 기록을 세우며 신나하다가 지금은 월 1만대 팔면 잘파는 형편으로 몰락하게 된 것은 다름아닌 품질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AS가 원활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폴크스바겐 비틀이 미국에서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좀처럼 고장나지 않는 튼튼한 구조와 저렴한 가격과 수리비용 때문이었다. 혼다가 미국시장에 진출했을 때 다른 경쟁회사들보다 불량률이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미국에서 성공한 회사로 자리잡게 된 것은 확실한 AS 때문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품질 좋고 유지관리 편한 차가 잘 팔리는 것은 여전한 진실이다.

 

마케팅 이론을 굳이 들먹거리지 않더라도, 새로운 고객을 끌어들이는데 드는 비용보다 기존 고객이 자신의 회사 제품을 다시 사도록 하는데 드는 비용이 훨씬 적게 든다는 것은 뻔한 얘기다. 

 

내수시장이라면 선택의 폭이 좁으니 이 차 아니면 저 차를 살 수밖에 없지만 수출시장은 얘기가 다르다. 헌데가 "엑기스"를 세계시장에 내놓더라도 소비자들에게 선택의 여지는 많다. 어떻게 하면 소비자들이 수많은 경쟁차들 중에서 헌데차를 사도록 할 것인가가 직면한 문제이긴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소비자들이 계속 헌데차를 사도록 할 것인가하는 것이다.

 

결론은 품질이다. 새 차가 나왔을 때는 다 그럴싸해 보인다. 차에 대한 평가는 2~3년 지나 차가 어느 정도 닳았을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여러가지 신경 쓴 그럴싸한 차가 나왔지만 갈 길은 험하다. 괜히 거창한 구호만 내세우고 그량죠, 다이나마이트, 데보네어처럼 수출도 못하거나 내수시장에서 죽쑤는 그런 꼴을 "엑기스"는 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수출을 해 봐야 몇 대나 할 지는 모르겠지만.

 

차는 3년 동안 만들어 6년 동안 팔면 되지만 소비자는 최소한 30년간 여섯번 차를 살 기회가 있다. 그런 소비자는 우리나라에 최소 1천만명은 있다. 잠재고객을 생각하면 소비자의 선택기회는 훨씬 더 많아진다. "엑기스"가 지니는 의미만큼 좋은 품질의 차라면 헌데의 미래는 밝다. 

 

아니라면... 

 

그리 오래지 않아 한국에 순 토종 자동차 메이커는 하나도 안남게 될것이다.

 

씨바 되는 거다. 끝.

 

* 의견 보내주신 박상원 딴지 예비특파원과 독자 F1RACING@chollian.net 님께 감사드린다. 꾸벅.  

 

 

 

 

 

 

- 자동차 전문기자 메탈헤드(lightblue@inam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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