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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말한다]를 이제는 말한다(2)

1999.7.26.월요일
딴지 방송전문기자 임종태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한 자가 오히려 그들의 소경 됨을 비난하는 법이다.(J. Milton)


왜 이데아는 그림자를 통해서밖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수 없는 걸까?

이러한 의문은 비단 플라톤뿐만 아니라 자신이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그런 까닭에 그래도 가끔씩은 하늘을 바라보려는 적은 무리의 사람들에게 있어 언제나 부딪히는 질문이 아닐 수 없다. 더군다나 열악한 제작 환경과 불공평한 시장 구조 속에서 인체 감각 기관의 식민지화에 성공한 메이져 영화사의 필름이나 방송의 드라마나 쇼 프로에 중독돼버린 시청자들의 입맛과, 하루 하루 입에 풀칠하는 것이 어느새 삶의 의미가 돼버린 소시민을 상대로 다큐멘터리 정신을 고집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이러한 질문은 어느새 의문의 수준을 넘어 커다란 `벽으로 다가오기까지 한다. 그 결과 이들은 어느새 `박재가 된 새가 되거나, 자본주의 체제의 거대한 공리계 시스템으로 흡수되어 다큐멘터리를 포장한 상업화로 치달아 그 선봉에 서는 것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목도하곤 한다. 그렇다면 과연 이런 사냥꾼의 저격과 자본의 급류로부터 탈주하는 길은 완전히 차단당하고 없는 것일까? 지난 1편에 이어, 지금부터 우리는 지난 50년간 정치와 권력에 이용당하던 방송의 굴레로부터 벗어나 오히려 정치와 권력을 방송에 이용하고자 탈주를 시도했던 개혁실천팀의 <이제는 말한다>가 우리 사회에서 갖는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고, 더불어 우리 나라 방송의 현주소와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얘기해 보고자 한다.


 <이제는 말한다>의 사회학적 의미







주어진 바 그 바탈()대로 살아가는 것이 자연의 길이요,
주어진 바 그 바탈에 따라 살려고 하는 것이 인간의 길이다.
(
誠者 天之道也, 誠之者 人之道也)

中庸에 나오는 얘기다.


아마도 인간 사회와 자연의 차이를 이보다 탁월하게 표현한 글은 없을 것이다. 자연은 주어진 에코시스템의 정교한 정보에 따라 안정된 발걸음으로 정해진 중용의 길을 걷는다. 우리는 이것을 퓌지스(Physis)라 부른다. 하지만 우주 진화의 맨마지막 과정에서 탄생한 인간은 처음부터 자연으로부터 어긋난 존재였다. 인간은 자연처럼 주어진 본능대로 살기보단 과잉된 욕망에 따라 충동적으로 살아가는 호모 데멘스(광기의 인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이처럼 충동적인 존재이면서도, 때론 이러한 충동을 억제하려는 강력한 의지를 발현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래서 퓌지스로부터 이탈해 카오스 상태에 던져진 인간은, 그 바탕 위에 문화의 질서를 세워나가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것을 노모스(Nomos)라 부른다. 자연의 다른 종과는 달리 생물학적 확정성을 지니고 있지 않은 인간은 자신이 처한 터 위에 노모스를 건설함으로써 퓌지스가 각 종에 고유한 환경을 부여함으로써 유지하는 호메오스타시스(homeostasis) 기능을 대체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 결과 인간 사회에는 퓌지스를 대체하는 고유한 환경으로서 다양한 문화의 질서가 생겨나게 되었다.

인간 사회에는 이처럼 언제 어느 곳을 막론하고 자신들의 내재된 폭력성을 적절히 배설시킬 수 있는 사회적 메커니즘이 갖춰져 있기 마련이다. 역사적으로 인류는 문화의 배설 주기인 칼렌다에 따라 규칙적으로 실시되는 카니발을 통해 자신과 사회에 내재된 폭력성을 적절히 배설함으로써 새로운 출발을 기약하는 계기로 삼아왔다. 그런데 카니발에는 문화의 배설 주기에 따라 주기적으로 실시되는 것뿐만 아니라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비주기적으로 발생하는 것도 있다. 역사에서 흔히 혁명이나 쿠데타라 부르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혁명이나 쿠데타는 결국 기존 문화의 배설 주기로는 감당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내재된 폭력성의 표출에 다름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류는 역사를 통해 수많은 정변을 치르며 이러한 사건으로 지불되는 엄청난 인적 물적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새로운 문화적 배설 주기를 고안했다. 다시 말해 개인의 일상 생활의 리듬을 조율하던 기존의 1년 단위의 배설 주기가 아닌, 우리 사회에 내재해 있던 사회적 폭력성을 배설시킬 수 있는, 몇년 단위의 거시적 문화의 배설 주기로서 선거라는 제도를 노모스에 편입시키는데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얼마전 인도네시아 폭동 사태에서 보듯이, 아직도 선거 문화가 제대로 정착되지 못한 나라에서는 정권 교체기에 표출되는 사회적 폭력성을 기존 체제가 감당하지 못하고, 오히려 심각한 사회적 혼란을 야기시키는 경우를 우리는 뉴스를 통해 어렵지 않게 목도하곤 한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은 사실 얼마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에게 그다지 낯설지 않은 모습이었다. 아니 오히려 우리 현대사의 정권 교체기마다 발생한 80년 광주대학살과 87년 6월 항쟁, 그리고 98년 <이제는 말한다>는 앞서 언급한 우리 사회의 폭력성이 선거라는 매크로 문화적 배설 주기 속에서 어떤 단계를 밟아 정착되어 가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모범 사례다. 바로 여기에 개혁실천팀이 제작한 <이제는 말한다>가 우리 현대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드러난다.


 12.12 군사 쿠데타와 80년 5월 광주대학살


먼저 80년 5월 광주대학살. 얼마전 김대중 대통령의 박정희 기념관 건립에 대한 논의로 다시 도마위에 오른 박정희는 19년간의 독재 정권을 마감하고, 결국 지난 79년 10월 26일, 궁정동 안가에서 김재규에 의해 비참한 말로 속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갔다. 하지만 문제는 독재 권력이 민주적 방식인 선거에 의해 교체되지 않고, 이처럼 쿠데타에 의해 일시에 붕괴될 때 발생하는 감당할 수 없는 사회적 혼란이었다. 근 20년간 억눌렸던 사회적 불만이 일시에 표출되면서 결국 이를 기존 체제가 감당하지 못하고, 오히려 의회 민주주의를 유린하는 전두환의 12 12 군사 쿠데타가 발생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당시 신군부의 쿠데타가 발생하자 교수와 대학생을 중심으로 대다수의 국민들은 이에 대해 강력히 저항했다.



그리고 이러한 저항은 80년 5월 `광주 코뮨이라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민중 항쟁을 통해서 나타났다.(지금까지 5 18을 소재로 한 많은 다큐멘터리가 제작됐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온 프로그램들은 다소간의 차이는 있었지만, 아직도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점이란 큰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5 18도 어느덧 20년이 다 되어간다. 이제 이쯤됐으면 광주 항쟁을 역사적으로 세계 다른 여러 나라에서 발생한 민중 운동과 비교하며, 광주 코뮨이 다른 나라의 민중 운동 내지는 혁명 운동과 어떤 차이를 지니는지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질 때도 되지 않았을까? 물론 <이제는 말한다>의 <광주대학살>편에서 다뤄진 것처럼, 미국이 광주 사태에 어떤 식으로 얼마만큼 개입했는가에 대한 정부 차원의 치밀한 조사와, 이에 대한 미국 정부의 공식 사과를 받아내는 것은 이것과 별개의 문제겠지만.) 하지만 전두환과 노태우로 대표되는 이른바 신군부는 오히려 이를 빌미로 국민의 군대를 동원하여 수천의 민간인을 잔혹하게 학살하는 이른바 `광주대학살이라는 끔찍한 만행을 저질렀다. 국민의 안위를 보호해야 할 군대가 국민을 학살하는 이 가공할 줴노사이드.

이처럼 80년 광주대학살은 정권 교체기에 분출되는 사회적 폭력성이 선거를 통해 적절히 배설되지 못할 때, 오히려 그것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커다란 인적 물적 피해를 입힐 수 있는지, 뿐만아니라 그로 인해 국민 모두가 지울 수 없는 상처로 각인된 끔직한 기억 속에서 얼마나 고통스런 세월을 보내야만 하는가에 대해 뼈저리게 각인시켜 주는 계기가 되었다.


 4.13 호헌조치와 87년 6월 항쟁


둘째, 87년 6월 항쟁. 98년 붕괴된 인도네시아 수하르토 정권처럼, 전두환은 노태우에게 안정된 방법으로 정권을 이양하기 위해 4 13호헌 조치를 발표했다. 하지만 이 조치가 발표되자 80년 광주 시민의 피를 기억하는 민중들은 전국에서 들불처럼 거세게 일어났다. 이러한 민주화 열기는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과 이한열 군의 죽음을 계기로 강력한 구심점을 형성하면서 시민들이 나라의 센터인 서울 시내 한복판을 장악하는 6 10 항쟁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6 10 항쟁은 전두환 정권으로 하여금 4 13 호헌조치를 철폐하고, 대통령 직선제를 인정하는 6 29선언을 발표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런데 6 10 항쟁은 5 18과 비교할 때 몇가지 점에서 주목할 만한 차이를 갖는다. 먼저 6 10 항쟁에서는 우리 사회에 내재해 있던 엄청난 사회적 폭력성이 표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80년 광주대학살과 같은 참극은 발생하지 않았다. 둘째. 운동 주체세력의 변화. 5 18의 경우 대학 교수로 대표되는 지식인과 대학생을 주축으로 했던데 반해, 6월 항쟁은 넥타이 부대로 상징되는 시민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셋째. 센터와 페리페리의 차이. 5.18이 변방인 광주에서 일어났던데 반해, 6월 항쟁은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이루어졌다. 물론 가장 중요한 차이는 역시 전자는 실패했지만, 후자는 성공했다는 점일 것이다.

바로 여기에 80년 5월 광주 민주화 운동이 갖는 역사적 가치가 있다. 5 18을 계기로 시민 세력은 더욱 강력히 성장했고, 반면 학살의 주범들은 그 댓가가 얼마나 무섭고 질긴 것인가를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안타까운 점도 없지 않았다. 그 뜨거운 민주화 열기로 모처럼 맞이한 정권 교체의 기회를 민주 정권으로 꽃피우지 못하고, 결국 양김의 분열로 정권을 고스란히 다시 군사 정권에게 내줘야 하는 아픔을 겪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6월 항쟁은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는 몇가지 중요한 계기를 마련했다. 다시 말해 각종 시민 단체의 출범과, 기존에 정치와 권력에 이용당하던 신문과 방송의 위상 변화와 그에 따른 새로운 정체성을 확립시키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그 결과 정권의 나팔수를 자임하던 기존의 신문사와는 전혀 다른, 5공의 언론사 통폐합 과정에서 해직된 기자들을 중심으로 88년 한겨레신문이 창간되고, 더불어 정치와 권력의 도구에 지나지 않았던 방송이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며 87년 12월에 MBC가, 이듬해 5월에는 KBS가 각각 방송 노조를 탄생시켰다.

그리고 이렇게 탄생한 방송 노조는 결국 IMF 체제 속에서 맞이한 50년만의 수평적 정권 교체기에 <이제는 말한다>를 제작한 개혁실천팀을 탄생시키는 동인으로 작용했다. 그런 의미에서 노태우 정권에 의해, 90년 4월 방송민주화 사태의 핵심 인물로 지목되어 10개월간 영등포 구치소에 수감되었다가 3년만에 다시 KBS에 복직된 김철수 PD가 동료 PD들에 의해 개혁실천팀의 팀장으로 선발된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50년만의 수평적 정권 교체와 98년 <이제는 말한다>


셋째, 98년 <이제는 말한다>. KBS 개혁실천팀의 <이제는 말한다>는 IMF 체제로의 이행에 대한 책임론이 대두되는 상황에서 이루어진 50년만의 수평적 정권 교체기에 발생한 어느 누구도 예상치 못한 돌발 사건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말한다>는 앞으로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새로운 개혁의 방향성을 제시한 사건이자, 더불어 이제 우리 사회도 바야흐로 미디어 정치 시대로 진입했음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물론 97년 대선 과정에서 실시된 TV 토론을 계기로 이미 방송은 우리 사회에서 신문보다 월등한 영향력을 갖고 있음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하지만 아직도 방송은 자신의 위상에 걸맞는 책임 있는 행동을 취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아직도 방송사에 남아 있는, 아니 오히려 방송사를 장악하고 있는 수구 기득권 세력의 인적 청산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지난 50년간 정치 권력의 도구로 이용되어 온 방송의 굴종과 요욕으로 점절된 역사와 단절하고, 오히려 그동안 성역으로 여겨져온 언론과 권력을 방송의 프로그램에 담아내려는 현업 방송 제작자들이 나타났다. 98년 2월 27일, KBS 노사합의에 의해 탄생해 4월 1일 공식 출범한 개혁실천팀이 바로 그들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1편에서 살폈듯이, IMF 이행에 대한 책임론이 대두되는 상황에서 우리 사회의 거센 개혁의 바람을 타고 항해하던 개혁실천팀 <이제는 말한다>는 다름아닌 지난 정권과 결탁했던 방송사 경영진들이 장악한 편성이라는 암초에 걸려 좌초되고 말았다. 이러한 개혁실천팀의 좌초는 이제 우리의 전투의 장이, 과거 화염병을 들고 뛰어다니던 거리의 광장이 아닌 담론의 공간으로, 우리의 날카로운 비판의 시선이 우리 사회의 비리가 아니라, 오히려 이러한 비리를 보도하는 신문의 편집 행태와 방송의 편성 과정에 맞춰져야 함을 웅변적으로 말해주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는 말한다>를 좌초시킨 방송의 편성이란 대체 어떤 것일까?


 TV 브라운관 뒤의 치열한 사투, 방송의 편성


독자들 가운데 혹시 매년 봄이나 가을만 되면, 드라마나 뉴스가 끝나고 광고 CF가 나와야 할 TV에서 오히려 대대적으로 자사 방송 프로그램을 선전하는 다음과 같은 멘트를 기억하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 싱그러운 내음과 햇살이 가득한 봄 날" 혹은, "오곡이 풍성한 가을을 맞아, 저희 ㅇㅇㅇ는 다음과 같이 대대적으로 프로그램 개편을 단행합니다... "


우리 나라 방송사의 대표적인 프로그램 개편 주기인 춘하계 편성과 추동계 프로그램 편성시, 그 내용을 시청자들에게 알리기 위해 각 방송사가 광고할 때면 의례 등장하는 멘트다. 이처럼 우리 나라에서는 1년을 둘로 나누어, 4월초부터 9월말까지를 춘하계 편성이라 하고, 10월초부터 이듬해 3월말까지를 추동계 편성이라 부른다. 그리고 각 시즌별 원칙적인 프로그램 순서 기록표를 기본 편성표라 하고, 각 주 단위의 프로그램 기본 순서표를 주간 편성표라 하며, 우리가 매일 접하는 신문의 방송 시간표처럼, 하루치 분량만이 기록되는 것을 1일 편성표라고 한다. 특히 그날의 프로그램 순서와 광고물 내역이 기록된 편성표를 방송운영표라고 하는데, 이 표를 보면 편성이 단절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연속적인 어떤 흐름을 갖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앞뒤 프로그램이 서로 연결되어 상호작용을 하며, 또한 요일별로 파급 효과를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단 말이다.  (이해가 안가시는 분들은 MBC의 8시 드라마 <보고 또 보고>가 상종가를 칠 때, 덩달아 KBS 9시 뉴스를 제치고 시청률 상한가를 기록하던 MBC <뉴스데스크>가 <보고 또 보고>의 종영과 더불어 시청률이 곤두박칠치면서 KBS 9시 뉴스에 밀리고 있는 현실을 생각해보라.)

방송사는 이같은 편성 전략을 바탕으로 동일한 시간에 동일한 시장을 놓고 타 방송사와 치열한 시청률 경쟁을 벌인다. 예컨대 MBC가 그처럼 욕먹으면서까지 <보고 또 보고>의 방영 기간을 연장한 것이나, <뉴스데스크>가 끝나고 방영하던 <스포츠뉴스>를 <뉴스데스크> 안에 집어넣은 것, 그리고 얼마전 종영된 MBC 월 화드라마 <왕초>가 SBS <은실이>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면서 <왕초>를 예정보다 늘려 방영한 것 모두 이같은 편성 전략에서 비롯된 것이다.


 방송의 편성에 영향을 미치는 4대 요소


편성은 이처럼 단순히 프로그램의 스케쥴만 의미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프로그램 스케쥴은 편성의 결과물에 지나지 않을 뿐, 진정한 의미에서 방송의 편성은 TV의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프로그램을 운용할 계획과 정책을 말한다. 편성은 흔히 신문에서의 편집과 비교되는데, 넓은 의미에서 신문의 편집이 취재를 포함하듯, 방송의 편성은 제작을 포함한다. 그런 까닭에 편성에서는 가맹사와의 관계, 스폰서와의 관계, 시청자와의 관계, 방송 규제 기관과의 관계 등 수없이 많은 안팎의 요인을 감안해 언제, 무슨 프로그램을 얼마를 들여 제작하고, 어떻게 방송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 중심 과제가 된다.

그런데 이런 방송 프로그램의 편성을 결정하는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크게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방송사의 조직 내적 통제로 나뉜다. 먼저 정치적 통제는 우리가 지난 정권 시절 지겹게 경험한 `땡전 뉴스나 `땡김 뉴스로 상징되는, 정치적 목적에 따라 행사되는 정부 차원의 통제를 말한다.

둘째, 경제적 통제는 방송에서 이루어지는 자본의 통제를 말하는 것으로, 거의 전적으로 광고비를 통해 운영되는 방송의 특성상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을 차지한다. 예컨대 MBC나 SBS는 말할 것도 없고, 한겨레신문(98.4.27)에 따르면 시청료를 받는 KBS조차 총 매출액 1조원 중 광고 판매 수입이 6천억원으로 전체의 61%를 차지고 있는 실정이다.

셋째, 사회적 통제는 우리 사회의 여러 단체나 개개인이 사회적 압력이나 모니터를 통해 방송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를 말한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개혁실천팀이 제작한 <조선일보를 해부한다>는 강력한 언론 재벌인 조선일보의 압력에 밀려 편성에서 제외되었다. 그런데 반해 <광주대학살>은 거꾸로 시민 단체의 강력한 압력에 밀려 편성된, 우리 나라 방송에서 보기 드문 경우였다. <광주대학살>의 방영은 앞으로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방송 제작자와 시민 단체의 연대 가능성에 대한 단초를 제공해줬다는 점에서 매우 상징적인 사건이 될 것이다.

넷째, 조직 내적 통제는 과거 정치적 통제에 길들여진 방송사 간부들의 자체 통제나 그에 저항하는 노조의 영향 등을 의미한다. 과거 독재 정권하에서 행해지던 정치적 통제가 현격히 줄어든 오늘날, 오히려 과거 정권의 통제에 길들여진(내재화된) 방송사 간부진들의 조직 내적 통제는 프로그램 편성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방송의 인적 청산 문제가 제기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말한다>의 불방 과정에서 드러났듯이, 사측의 편성권을 이용한 조직 내적 통제에 저항해야 할 방송 노조는 아직도 자신의 정체성을 제대로 회복하고 있질 못하다. 방송사의 인적 청산 문제를 제기한 개혁실천팀의 가 불방된 것도 따지고 보면, KBS 간부들의 조직 내적 통제에 저항하고 개혁실천팀의 버팀목이 되어주어야 할 노조가 이 프로그램에서 비판의 대상이 된 기자들의 반발로 노 노갈등을 일으키며 개혁실천팀으로부터 등을 돌려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의 불방 과정에서 노조는 그 한계, 다시 말해 노조내 기자들의 자기 부정의 한계를 드러내고 말았다.(그런 면에서 이번 방송 파업 과정에서 보여준 KBS 젊은 기자들의 적극적인 파업 참여는 KBS 노조의 새로운 변화의 징후로 보여 반갑기 그지 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측의 편성권 횡포를 차단하고 새로운 탈주를 모색할 방법은 완전히 차단당하고 없는 것일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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