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근호 교수님께
카메라 출동을 고발하신 교수님의 의견에 대한 해명입니다. 한려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계시면서도 설립자의 비리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계시는 것 같아서 글을 띄웁니다.
이 글을 읽어보신 뒤에도 정말 저희가 보도한 내용 가운데 잘못된 부분이나 사실을 왜곡, 편파 보도한 점이 있다면 지적해 주십시오. 바른 언론을 위한 따끔한 지적이라면 언제든 받아 들이겠습니다.
먼저, 카메라 출동이 지난 6월 20일, 27일, 그리고 7월 2일에 보도한 내용은 한려대 설립자인 이홍하씨의 비리를 고발하는 것이었습니다. 학교를 짓는다는 것은 기업을 세우는 것과는 엄연히 다릅니다. 기업은 돈 벌기 위한 수단일 수 있지만 학교는 다릅니다. 학교 설립이란 평생 힘들여 번 돈을 후손들을 위해 쓰는 숭고한 행위입니다.
그러나 이홍하씨가 그렇습니까?
저희 카메라 출동팀이 확인한 바로는, 이홍하씨는 가난한 농군의 아들이었습니다. 물려 받은 것은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측근들은 이홍하씨가 자수성가한 사람이하고 하더군요. 이홍하씨는 학교를 세우기 전에는 교사였습니다. 부부 교사였고 교사 시절에는 돈을 벌기 위해 부업으로 목욕탕을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돈을 벌어서 81년 광주 변두리에 옥천여상을 세웠습니다. 가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 학교는 산비탈에 건물 한 동 덜렁 있는 학교입니다. 부부교사로 목욕탕을 해가면서 돈을 번 돈으로 학교를 지었습니다.
이홍하씨가 취재팀을 피하기만 하니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부부교사로 목욕탕을 해가며 아무리 돈을 많이 벌었다 하더라고 옥천여상을 세우는데 모두 썼을 겁니다. 물려 받는 것 없는 맨손으로 자수성가한 사람이니까요.
그런데 이홍하씨는 불과 4년 뒤인 85년 광남고를 세웁니다. 그리고 또 1년 뒤인 86년에는 대광여고를 설립했습니다. 다시 5년 뒤 이번에는 대학으로 진출합니다. 91년 서남대, 94년 광양대, 95년 한려대, 97년 광주 예술대...
91년에서 97년 사이에 이홍하씨는 대학을 무려 4개나 세웠습니다. 그 돈이 다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지금 그 학교들은 어떻습니까? 후손들이 마음 놓고 미래를 준비할 수 있도록 교육 여건이 왜 있습니까? 한려대에 재직중인 교수이시니까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대학 설립 당시부터 근무해 온 교수님들( 비재단파 교수님들이라고 하겠습니다.)의 증언을 들어 보면 교수로 임용됐다는 설레임을 안고 학교에 와보니 학교에 건물이라고는 건물 하나뿐이더라고 하더군요. 등록금 받으면 차츰 나아지겠거니 했는데 달라지는 것은 없더라는 거죠.
학교 서무과에 근무했던 직원의 증언을 들어보니 등록금을 받으면 박스에 넣어 바로 설립자가 가져 간 적도 있다고 하더군요. 설립된 지 4년이 지난 한려대는 지금도 공사 중이죠? 건물 7동 가운데 5동은 아직도 공사중이고 그나마도 공사는 하는 둥 마는 둥 아닙니까?
공사를 맡는 건설회사는 어떤 회사인 줄 아시는지요? 설립자 이홍하씨 여동생의 남편이 대표이사더군요. 그런데 법인 등기부를 떼 보고 그 등기부상의 주소에 찾아 갔더니 불행하게도 시골 마을 한 가운데 있는 공터였습니다. 잡초만 무성하더군요. 유령회사였습니다.
한려대 뿐 만이 아닙니다. 서남대도 그렇고 광양대도 그렇고 우리 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폐쇄조치된 광주 예술대에서는 교수들에게 운동장 풀뽑기를 시키고 비만 오면 물이 새고 실습실에 의자가 없어서 학생들이 못 쓰게 돼 버린 의자들을 가져다 놓기도 했더군요. 한려대 옆에 있는 광양대는 부실공사로 지난 번 비가 왔을 때 축대가 무너졌지요? 그 아래 쪽에 학생 기숙사가 있다던데 걱정입니다.
다른 학교도 사정은 비슷하더군요. 지난 번에 서남대에 갔더니 설립된 지 벌써 8년이 지났는데 거기도 공사중이더군요. 학생들이 왜 우리 학교에는 도서관이 없냐고 항의를 하니까 옥천여상 체육교사 출신이라는 부총장이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 지금 짓고 있잖아, 임마. 도서관 없다고 공부 못 해? "
서남대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서남대 학생들과 인터뷰를 하려고 했더니 총학생회까지 쫓아와 못하게 방해를 하더군요. 이유를 물으니까 학생처의 승인이 없기 때문이라나요?
학생회는 학생처의 지휘, 감독을 받는다는 희한한 말도 했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이 학교에서 배워야 할 것은 교과서에 있는 지식도 있고 교수님의 강의도 있지만 자치활동을 통해서 세상을 배우기도 한다, 학생회 활동은 자치 활동이고 자치활동이란 누구의 간섭 없이 스스로, 자율적으로 하는 것을 뜻한다라고 가르쳐 주고 왔습니다.
죄송합니다만 초등학교 학생도 알 만한 것을 저는 그 대학의 부총장에게 가르쳐 주어야 했습니다. 비아냥대는 게 아닙니다. 그래야만 하는 현실이 너무도 슬퍼서 하는 말입니다.
교사 출신인 이홍하씨가 한 일이 무엇이 있습니까? 기껏 목욕탕해서 번 돈으로 옥천여상을 세우고는 학생들의 등록금을 모아서 광남고 짓고, 옥천여상과 광남고에서 등록금 빼다가대광여고 짓고... 그렇게 세 개의 고등학교에서 나온 등록금 가져다가 서남대 짓고 이번에는 서남대 등록금까지 합쳐서 광양대 짓고... 학생들의 등록금을 가져다가 그저 학교 불리기에만 전념했지요.
등록금을 횡령당한 학교는 어떠했겠습니까? 돈이 다른 데로 빠져 나가니 학교는 부실할 수 밖에 없죠. 앞에서 말씀 드렸듯이 비오면 물 새고 실습 기자재는 부실하고... 학교 회계장부를보니까 3만원 주고 사 온 3개짜리 영어 회화 테이프가 무려 116만원으로 기록돼 있더군요. 짐작하셨겠지만 그건 빙산의 일각이죠. 한려대 공사를 맡은 건설회사는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지급하는 공사비를 빼먹기 위한 유령회사 아닙니까?
학교 운영은 또 어떠했습니까? 이홍하씨 본인과 부인, 친동생, 조카, 옥천여상 때부터 따라 다닌 심복이라 해야 어울릴 측근들... 그런 사람들이 재단 이사장, 총장, 학생처장, 교무처장, 특히 돈을 만지는 서무과장은 아무나 시키지 않았지요. 학생들이 낸 등록금은 학생들의 돈이 아니라 이홍하씨의 개인 돈이나 마찬가지였고 이씨는 그 돈으로 자신의 왕국을 건설했지요.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합니다.97년에 학생들이 들고 일어났죠. 당연한 귀결이었습니다.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등록금 냈지 설립자가 학교 불리는데 쓰라고 등록금 낸 것은 아니잖아요?
어느 학생은 그러더군요. 우리 부모님이 농사짓고 깻잎 팔아 등록금을 냈는데, 그게 어떤 돈이라고... 학내 분규가 일어나고 문제가 커지면서 이홍하씨는 결국 검찰에 구속됐습니다. 검찰 수사 결과 이홍하씨는 학생들의 등록금을 무려 426억원이나 횡령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학생들의 등록금을 가져다가 서울에서 대학에 다니는 아들, 딸의 대학 등록금과 전세금을 냈고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의 공과금까지도 등록금으로 해결했더군요. 재판을 받던 이홍하씨는 판사에게 과거를 반성하며 학교 일에서 손을 떼겠다며 선처를 호소했습니다. 그러면서 뒤에서는 무슨 일을 했는 지 아십니까?
학내 분규가 터지기 전에 학생들의 등록금을 가져다가 부동산 실명제를 위반해 가며 남의 이름으로 사 두었던 땅을 자신과 아들 명의로 바꿨습니다. 작년 6월의 일입니다. 당시 28살이던 이홍하씨의 아들은 졸지에 10억원이 넘는 땅 주인이 됐지요. 아버지가 아들에게 재산을 물려주면 증여세를 냅니다. 그런데 이홍하씨는 아들이 직접 산 것처럼 매매로 위장해 증여세를 포탈했습니다.
그런 이홍하씨는, 426억원이라는 어마어마한 학생들의 등록금을 횡령한 이씨는 겨우 1억원이라는 보석금을 내고 풀려났습니다. 작년 말에 있었던 2심 선고 공판에서는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습니다. 그리고 겨우 한 달이 조금 지난 올해 2월 양심수들과 함께, 배가 고파 자그마한 죄를 저지르고 감옥살이를 하던 이른바 IMF형 생활범들과 함께 특별 사면을 받았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교수님들은 과연 이 땅에도 정의가 있는 지, 너무도 한탄스러워 차라리 이민을 가고 싶더라고 토로하더군요. 그런데 그런 교수님들을 향해 말썽 일으키지 말고 이민 가라고 비아냥대는 교수님도 계시더군요. 그 교수님한테서 학생들은 무엇을 배울 수 있을 지 또한 걱정입니다.
학생들의 등록금을 빼돌려 공무원을 매수하고 서류를 조작해 가면 이홍하씨는 학교를 세웠습니다. 그 피해는 결국 누구에게로 돌아갑니까? 광주 예술대는 결국 폐쇄됐습니다. 학생들은 학교를 잃었고 교수님들은 직장을 잃었습니다.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만들어진 학교 재산은 남았습니다. 그 재산이 어디로 갔습니까? 결국 이홍하씨의 손으로 들어가지 않았습니까?
폐쇄 계고를 받은 한려대도 마찬가지입니다. 학교가 폐쇄되면 피해자는 학생과 교수들입니다. 이홍하씨요? 학교 재산이 고스람히 자기 수중으로 들어 오니 남는 장사를 했죠. 그걸 보고 가만히 있어야 하겠습니까? 세상에 그런 부조리가 어디 있습니까? 이런 사실을 알고 어떻습니까? 피가 끓지 않으십니까? 그렇지 않다면 조국의 미래를 위해 교단에서 내려 오시는 용기를 가지시기바랍니다.
제가 술 마시고 취재를 했다고요? 제가 무엇이 두려워 술 김에 취재를 해야 합니까? 현장에서 보셨습니까 ?
진실을 왜곡하지 말고 공정한 보도를 하라구요? 제가 말씀 드린 내용은 이 나라 최고의 수사기관인 검찰의 수사에서 확인된 내용입니다. 그런데도 특별 사면까지 받은 게 오히려 이상하죠.
세 차례나 자신을 고발하는 보도가 나갔는데도 이홍하씨는 가만히 있는데 왜 교수님이 나서시는지요. 취재를 하면서 이홍하씨를 만나려고 무진 애를 썼습니다. 반론권을 줘야 하니까요. 그러나 허사였습니다. 이홍하씨가 취재팀을 피했으니까요.
취재 중에 있었던 뒷얘기를 좀 할까요? 하도 만나 주지를 않아서 한 번은 이홍하씨 집으로 찾아 갔습니다. 아침 7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습니다. 집 앞에 다이너스티 승용차가 서 있었습니다. 이홍하씨의 자가용이죠. 그런데 운전 기사가 취재팀을 보더니 그대로 달아나더군요. 전화를 했는데 처음에는 받아요. 그래서 왜 찾아 왔는 지를 전달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런 대꾸가 없었습니다.
일단 전화를 끊고 다시 전화를 했는데 받지를 않더군요. 몇 시간을 그렇게 하다가 전화국에 확인했더니 전화 코드를 빼 놓았다고 합니다. 집 앞에서 8 시간을 기다리다 다른 사람들이 눈치를 못 채게 카메라를 인근 빌딩 옥상에 설치해 놓고 집 앞에서는 철수를 했습니다.
그런데 조금 있으니까 이른바 측근 인물들이 한 사람씩 나타나 이 골목 저 골목을 확인하더니 집 앞에 소나타 승용차가 서고 곧이어 이홍하씨가 집에서 나와 주위를 두리번대며 차에 오르더군요. 잘못한 게 없다면 왜 당당하게 취재팀 앞에 나서지 못할까요.
이홍하씨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다른 사람들을 시켜서 보도를 말아 달라는 압력을 넣으려 했죠. 그러나 그런 외압에 쓰러질 카메라 출동이 아닙니다. MBC 뉴스는 그렇게 가볍지만은 않습니다.
제 글이 길었습니다. 그러나 뉴스에서 다 못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오히려 고맙게 생각합니다. 이 글을 통해 저희가 취재를 시작한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또 무엇을 전달하려 했는 지 이해해 주시고 오해를 거두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또 이 글을 통해 문제의 본질은 무엇이고 이홍하씨는 어떤 사람이었으며 왜 그리도 많은 부실 학교를 세웠는 지 이해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는 데 저희들의 작음 바램입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거듭 감사드립니다. 적어도 학교에서만은 부정과 비리를 몰아내고 올바를 교육을 통해 나라의 미래를 바로 세우려 하는 대열에 함께 서 주시기를 간곡히 바라며 이만 줄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 99.7.6. MBC 보도국 카메라 출동팀 기자 송요훈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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