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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개혁실천팀의 해체 1주년을 기념하며)


1999.7.6.화요일

딴지 방송전문기자 임종태



세월만큼 무상한 것도 없다고 하던가...

6.25이후 최대 국난이라는 IMF 체제에서 이루어진 50년만의 정권 교체 속에서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1998년 4월 1일 공식 출범해 국민들로 하여금 개혁에 대한 일말의 희망에 부풀게 했던 KBS 개혁실천팀이 해체된지 어느덧 1년이 지났다.

1 년전 98.6.16. 개혁실천팀은 개혁실천 특별제작팀의 해체를 요구하며라는 성명서를 통해 다음과 같이 팀 해체를 공식 선언했다.







지난 4월 1일 개혁실천 특별제작팀이 공식 출범하고 프로그램 제작에 들어갔을 때, 우리는 꿈을 꾸었다. 방송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지만, 이 사회에 난마처럼 뒤얽힌 모순을 적시하고 개혁의 정신에 걸맞는 사회적 담론을 제기할 수 있으리라는 꿈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 꿈은 처참하게 찢기고 말았다. 노사합의에 입각한 팀의 구성과 프로그램의 자율성은 지난한 싸움의 과정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한낱 휴지 조각에 불과한 결말에 도달했다.


사측과 노측은 합의의 주체로서 그 합의 정신을 발전시키기는 커녕 눈 앞의 뜨거운 사안을 떠넘기기에만 급급하다가 마침내 어제 공방위 석상에서 첫 합의 사항인 자율성을 철저히 훼손시킨 가운데 노측 안과 사측 안이 병기된 이상한 합의를 도출했다.


공방위에서는 팀과 사측이 이견이 있을 때 법률적 검토만을 하기로 애초에 합의되어 있었다. 우리는 이 팀 구성에 관한 노사 합의의 기본 정신인 자율성이 손톱만큼도 보장되지 않는 현 상황에서 더 이상 방송을 제작할 수 없다고 판단한다.


따라서 이 팀의 존재 이유도 더 이상 없다고 판단하면서 개혁실천 특별제작팀의 해체를 요구하는 바이다.


당시 이 성명서가 발표되고 개혁실천팀이 해체되자, 한동안 우리 사회 여기저기에서 한탄의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팀이 해체된지 만 1년이 지난 지금 <이제는 말한다>를 말하는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다.


도대체 개혁실천팀은 어떤 과정을 밟아, 왜 탄생했고, 무슨 작업을 추진했으며, 불방으로 인해 해체되기까지 어떤 과정을 겪었던 것일까.


이제부터 그 이야기를 여기 <기록>으로 남기려 한다.





 개혁실천팀의 탄생과 <이제는 말한다> 편성 과정


지난 97년 대선 과정에서 나타난 우리 언론의 태도는, 특정 팀의 뒷 돈을 먹고서 그 팀의 파울은 눈감아주고 상대 팀에 대해서는 파울도 아닌 것을 파울이라고 말도 안되는 억지를 부리며 패널티를 주는 저질 심판을 보는 듯했다.


특히나 대선주자 TV 토론회에서 혹시나 정권이 뒤바뀌게 되면 목이 잘리지 않을까 걱정하며 목숨을 걸고 특정 후보를 지지하며 다른 후보를 비방하던 몇 몇 언론인의 모습은 한편의 코미디 그 자체였다.

(대선 당시 한국논단 주최로 열린 사상검증 토론회는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하물며 DJ가 대통령으로 확정되던 97년 12월 19일 새벽, 이회창 대통령 만들기에 나섰던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및 몇몇 방송 관계자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딴지일보 버전으로 하자면 이런 거 아니였을까? "시바... 조땠다 !" 특히나 DJ가 대통령으로 확정되던 새벽 1-2시 사이, KBS의 선거 방송 진행을 맡고 있던 김준석 앵커(현<뉴스라인>진행자)의 순간적으로 어쩔 줄 몰라 당혹해하던 표정은 지난 정권에 종사하던 언론인들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드러내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97년 대선은 92년 대선과 몇 가지 점에서 중요한 차이를 보였다. 그것은 92년 대선이 TV 토론이 없이 치러진 광장선거가 된 까닭에 후보 당락 결정에 있어서 여전히 신문의 영향력이 방송을 앞선데 반해, 97년 대선에서는 유권자들이 비교적 가까이에서 후보자와 후보자의 일상사를 접할 수 있는 토크쇼와 TV 토론이 실시됨으로써 방송이 신문의 영향력을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아직도 방송은 우리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상에 걸맞는 책임 있는 행동을 취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는 방송사에 남아 있는, 아니 오히려 방송사를 장악하고 있는 수구기득권 세력의 인적 청산이 아직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러한 상황에서, 그것도 MBC도 아닌 KBS에서 <이제는 말한다>를 제작한 개혁실천팀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일까? (여기서 굳이 지난 정권에서 KBS와 MBC를 정권의 1중대와 2중대로 불렀다는 사실을 언급한다면 사족이 될 것이다.)

IMF 체제에서 KBS 편성의 변화

인간 사회에는 언제 어느 곳을 막론하고 자신들의 내재된 폭력성을 적절히 배설시킬 수 있는 메커니즘이 갖춰져 있기 마련이다. 역사적으로 인류는 문화의 배설주기인 칼렌다에 따라 규칙적으로 실시되는 카니발을 통해 자신과 사회에 내재된 폭력성을 적절히 배설함으로써 새로운 출발을 기약하는 계기로 삼아왔다.. 과거 우리 선조들의 생활 리듬이 24절기에 따라 조율된 것이나, 서구인들이 카톨릭 절기에 따라 자신들의 생활 리듬을 조율해온 것, 그리고 오늘날 전세계인을 열광시키는 월드컵이나 올림픽으로 대표되는 각종 스포츠는 그 좋은 예이다.

그런데 이러한 칼렌다의 배설주기에 따른 카니발은 오늘날 방송의 편성 시간표에 따른 프로그램으로 대치되고 있다. 그런 까닭에 우리 사회의 변화를 가장 빨리 감지하고, 그 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바로 방송의 프로그램 편성이다. 편성은 이처럼 우리 사회를 비춰주는 거울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이 거울은 라캉이 말하는 것처럼 굽어져 있다. 다만 라캉이 말하는, 아기를 비춰주는 거울로서의 엄마가 결여된 욕망에 의해 굴절되어 있다면, 우리 사회를 비춰주는 이 거울(방송의 편성)은 권력과 자본에 의해 굴절되어 있다.

우리가 느닺없이 IMF라는 날벼락을 맞은 것도 따지고 보면, 우리 사회를 바로 비춰줘야 할 방송이 이처럼 철저히 권력과 자본에 의해 굴절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OECD에 가입한 선진국으로, `주막집 강아지가 `세계화를 외치는 선각자로 비춰지며, 우리가 그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나르시스처럼 빠져 있을 때, 거울의 반대편에 있던 IMF라는 무시무시한 괴물은 우리를 비춰주던 거울을 산산조각내며 순식간에 수백만의 사람들을 길거리로 내몰았던 것이다. 그 추운 계절에. 이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발가락을 잘랐으며, 손가락을 상납하고, 개인 혹은 일가족이 약으로, 또는 자동차에 몸을 던져 죽어갔던가! 과거 운동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우리 주위에서 벌어진 일이다. (지난 5월 <칸영화제>에서 단편 경쟁 부분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송일곤 감독의 <소풍>이 바로 IMF 시기 우리나라 중산층 가정의 일가족 자살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바로 이같은 분위기 속에서 서서히 IMF 체제로의 이행에 대한 책임론, 다시 말해 김영삼 정권의 위기 관리 시스템 부재와 언론의 사전 위기 경고 시스템 부재에 대한 책임론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타깃은 비단 정치권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를 바로 비춰줘야 할 언론, 특히나 방송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런 까닭에 평상시 공영 방송임을 강조하던 KBS 홍두표 사장의 위기 의식은 이만저만한 게 아니었다.


98년 1월 5일과 23일에 대대적으로 대부분의 쇼 오락 프로그램과 드라마, 시트콤 등을 폐지하고 경제 관련 프로그램을 신설하는 등, 전격적으로 단행된 KBS의 IMF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긴급 프로그램 편성은 바로 이런 분위기, 다시 말해 12월 대선을 앞두고 터진 IMF 사태를 맞아 공영방송으로서 당면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국민에게 뭔가 대안을 제시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을 수 없었던 당시의 분위기에 밀려 실시된 것이었다.


하지만 IMF를 계기로 자칫 폭발할 것 같았던 국민의 분노를 그 정도로 가라앉힐 수는 없었다. 바로 이런 때 KBS에서는 노조 집행위원회가 열리고 있었다.


 예기치 않은 제안으로 인한 예기치 않은 모임


김영삼 정권이 물러나고 아직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기 직전, 권력의 레임덕 현상이 심화되며 그 틈을 비집고 그동안 우리 사회에 잠재해 있던 온갖 사회적 불만과 개혁에 대한 욕구의 꿈틀거림이 최고조에 달하던 98년 1월 초,  KBS 노조에서는 시도지부장과 본사 중앙위원, 그리고 노조 전임자가 모인 노조 집행위원회를 개최했다.


IMF를 맞아 노조집행부가 사전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사측과 사원의 복리집행비 감축을 합의하고서 사후 추인을 받기 위한 모임이었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당시 TV 1국 중앙위원이던 김영환 PD는 50년만의 수평적 정권교체라는 새로운 정치상황에 부합하는 공영방송 구축과 IMF라는 초유의 위기극복을 위한 노조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 구성을 제안한다.


그러자 노조 집행부가 이를 받아들여 KBS 노조 비대위는 1월 중순부터 비대위내 4개 분과로 나뉜 소위원회를 구성하여 협의에 들어가, 여기서 논의된 KBS 개혁 방안 16개항을 사측에 요구한다. 그리고 마침내 2월 11일, 노사합동 비대위 2차 본회의에서 사측은 노조가 요구한 16개항에 합의한다.


그런데 합의된 16개항 가운데 "공영성 강화를 위한 프로그램 개발을 위해 제작, 편성 합동 태스크 포스팀을 운영"하기로 한 조항에 대해 김영환 PD가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그가 애초 건의한 것은 과거 KBS의 민주화열기를 타고 방영되었던 <광주는 말한다>나 5공 문제를 다룬 프로그램처럼 개혁 프로그램 제작편성을 위한 <프로그램 개혁 특별위원회>를 제안한 것이었지 단순히 제작, 편성 합동 태스크포스를 제안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노사간의 난항이 시작된다.


논의의 촛점은 개혁실천팀의 위상 문제였다.


노조 측에서 기존에 관행화되어 있던 본부장-국장-CP(Chief Producer)-팀장(차장)으로 이어지는 시스템을 대신해, 국장과 CP를 거치지 않고 곧장 본부장-팀장으로 이어지는, 당시의 제작 관행에 비춰볼 때 파격적인 요구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는 기존 시스템에서 빈번하게 발생했던 상부의 간섭을 최소화하고, 제작의 독립성을 확보하려는 방안이었다. 하지만 이 제안으로 노사합동 비대위 실무소위원회는 7차(24일)에 이르기까지 아무런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결렬되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상황이 이쯤되자 노조 측에서도 그것 하나 때문에 다른 15개항이 묶여 있어서야 되겠느냐는 불만이 서서히 표출되기 시작했다. 게다가 당시 노조를 끌어 안을 필요가 있던 사측도 노조와의 관계가 더 이상 파국으로 치닫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결국 이같은 입장으로 노사 양측은 서로 조금씩 양보해 2월 27일, 마침내 개혁실천팀의 조직을 본부장-국장-팀장으로 합의하는 선에서 타협점을 마련한다.


그렇다면 개혁과는 거리가 먼, 아니 노골적으로 지난 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자임하던 홍두표 사장은 어떤 이유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하고 선뜻 개혁실천팀의 구성에 동의할 수 있었던 것일까?


바로 여기에 KBS 홍두표 사장의 딜레마가 있었다. 당시 홍두표 사장의 임기는 1년여 남아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법적으로 임기를 보장받았다고는 하지만, IMF 체제로의 이행에 대한 책임론과 더불어 50년만에 이룩된 수평적 정권교체로 운신의 폭이 극도로 좁아진 홍두표 사장으로서는 모든 것이 불투명한 정권 교체기의 어수선한 상황에서 노조의 도움 없이는 결코 자신의 자리가 온전할 수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런 까닭에 그는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노조의 16개항, 그 가운데서도 핵심 요구 사항인 개혁 프로그램 제작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바로 이것이 <이제는 말한다>가 MBC가 아닌 KBS에 편성될 수 있었던 까닭이다.


 개혁실천팀의 선출 방식 및 권한


98년 2월 27일, 개혁실천팀 구성에 합의한 노사합동 비대위는 정권 교체기를 맞아 사회 전반에 개혁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모든 분야를 심층 고발하는 시사보도 프로그램을 제작할 것임을 밝혔다.


특히 KBS는 이 프로그램의 제작에 있어 그동안 방송이 취재할 수 없었던 이른바 성역을 없애고, 외압이 있더라도 절대 제작방향을 잃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다.


그래서 구시대 모순과 잔재를 청산하고 정권에 대한 비판 견제의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TV 1국 직속으로 개혁실천팀을 구성하며, 이 팀을 연말까지 한시적으로 운영하기로 합의했다. 또한 팀장은 개혁 성향이 강한 차장으로서, TV1, 2국 PD 총회에서 투표를 통해 선출하고, 방송 제작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선출된 팀장에게 인사권까지 주는 방송사상 유례가 없는 파격적인 권한을 부여하기로 했다.


그리고 마침내 3월 7일, 약 100여 명이 모인 KBS TV 1,2국 PD 총회에서는 90년 4월 KBS 방송민주화 사태의 핵심 인물로 지목되어 영등포 구치소에 10개월간 수감되었다가 3년만에 복직해 당시 <일요스페셜>의 차장으로 있던 김철수 PD가 개혁실천팀의 팀장으로 선출되었다.


개혁실천팀의 팀장으로 선출된 김철수 PD는 <일요스페셜>에서 함께 일하던 구수환 PD와 TV1국의 중앙위원으로서 개혁실천팀의 구성을 제안한 김영환 PD, 그리고 김영환 PD와 동기로서 2TV에서 <TV는 사랑을 싣고>를 담당하던 이상운 PD를 선발했다.


그리고 그외로 16기인 심상구 PD(환경스페셜)와 18기인 한창록 PD(추적60분), 그리고 20기인 유지열 PD(긴급구조 119)와 김동렬 PD(6시 내고향), 그리고 21기인 정성빈 PD(추적60분)와 김정중 PD(편성실 파견)를 선발했다. 그리고 이들 외에 이자성 카메라맨이 포함되어 있었다.


 개혁실천팀의 출범과 <이제는 말한다>의 아이템


98년 1월 중순부터 수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마침내 4월 1일, 출범한 개혁실천팀은, 편성권과 제작자율권을 동시에 부여받은 방송사상 최초의 제작팀이었다.


그런 까닭에 개혁실천팀은 사측으로부터 이전에 그 어떤 PD들도 누릴 수 없었던 제작 과정에서의 독립적 권한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같은 여건은 김철수 PD를 팀장으로 하는 개혁실천팀을 고무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당시 이들이 품었던 개혁에 대한 의지와 개혁실천팀의 출범에 대한 감회는 <개혁실천 특별제작팀 출범에 부쳐>라는 성명서(98.4.1)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노사합의에 의해 구성된 개혁실천 특별제작팀이 오늘 공식적인 출범을 하게 됩니다.... 시대는 지금 개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 요구에 부응하지 못할 때 KBS는 국민의 믿음을 다시 한번 저버리게 될 것이고, 그 개혁의 현안을 프로그램으로 생산하지 못할 때 KBS는 외면과 지탄을 받게 될 것입니다.

만시지탄은 있지만 우리 KBS가 진정한 국민의 방송으로 거듭날 기회인 이 때, 특별팀이 그 발걸음의 시작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우리는 멀고도 험한 길을 가려고 합니다. 우리가 가게 될 길이 잘 포장된 길이 아니라는 점은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동안 방송에서 다루지 못했던 금단의 영역에 대한 도전, 이에 따라올 수많은 청탁과 외압 등이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 팀은 팀에 속한 구성원만의 것이 아닙니다. 개혁을 열망하고 개혁에 대한 철학과 건설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모든 선후배 동료들과 공유하는 장입니다. 특별제작팀의 팀원만 개혁적이고 팀원이 아닌 사람은 비개혁적이라는 이분법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공동체의 일원이며 개혁이라는 화두를 다루는 프로그램의 제작자일 뿐, 우리 스스로가 특별한 사람들이라고는 착각하지 않습니다....


결코 스스로를 가두지 않겠습니다. 척결의 대상에 대해서는 그 높음을 따지지 않고, 동료들에게 대해서는 낮게 엎드리겠습니다. 잘 지켜봐 주시고 사랑해 주십시오. KBS에 첫발을 들여놓았을 때 가슴 속에 품었던 그 초발심으로 일하겠습니다. 열심히 뛰고 한번 더 고민하겠습니다.


이처럼 개혁실천팀의 개혁에 대한 의지가 남다른 만큼 <이제는 말한다>에서 그들이 기획했던 아이템과 내용들은 과거 방송에서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혁명적인 내용들을 담고 있었다.


먼저 우리 사회에서 가장 금기시 되어온 언론, 그것도 우리 나라 방송과 신문을 대표하는 KBS와 조선일보의 권력과의 유착 관계를 다룬 <KBS, 그 굴종과 오욕의 역사>와 <조선일보를 해부한다>가 각각 1편과 2편으로 준비되었다.


이어서 3편은 80년 5월 광주대학살의 책임자 규명과 미국의 개입 문제를 다룬 <광주대학살>. 4편은 요즘 고급옷 로비 의혹 사건으로 도마 위에 오른 우리 사회의 특권층 문제를 다룬 <5%(특권층)의 공화국>(이하 가제). 5편은 우리 사회의 대표적 재벌 기업인 삼성의 자동차 문제를 다룬 <삼성의 잘못된 선택, 삼성자동차>. 6편은 국가 안보를 빌미로 지난 역대 정권의 친위대 역할을 해왔던 <안기부>.


7편은 우리나라 검찰을 권력의 시녀로 전락시킨 대표적 인물들을 다룬 <공안검사>. 그리고 8편은 우리 서민들을 등쳐먹는 의료계의 비리를 고발하고 새로운 대안을 모색한 <의료개혁>. 9편은 그동안 가장 추잡하면서도 성역으로 여겨져온 <사학비리>,... 등, 우리 사회의 개혁이 필요한 근 60여개의 아이템이 기획되었다.


그렇다면 이처럼 어려운 과정을 통해서 탄생된 개혁실천팀의 <이제는 말한다>는 왜 좌초되고 만 것일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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