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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개혁실천팀의 해체 1주년을 기념하며)


1999.7.6.화요일

딴지 방송전문기자 임종태




 <이제는 말한다>의 불방에서 나타난 편성의 문제점


50년만의 수평적 정권 교체와 IMF 체제 속에서 98년 2월 27일, KBS 노사 합의에 의해 구성된 개혁실천팀의 <이제는 말한다>의 편성 여부를 놓고 KBS 노.사와 노.노간에 복잡다단하게 전개된 갈등 양상은 우리 나라 방송의 현주소와 앞으로 지향해야 할 방송 개혁의 방향이 무엇인지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였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이제는 말한다>는 제작과정에서 무산된 경우가 아니고 적어도 3편까지의 제작이 완료된 상태에서 편성되지 못해 불방된 케이스다.

<이제는 말한다>의 불방에서 보듯이, 일단 편성에서 제외된 프로그램들은 그것이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정열을 기울인 것이건 상관 없이 무조건 사장되고 만다.


이처럼 자신의 양심에 반하지 않고, 자유로운 아이템을 선정해서 제작할 수 있는 방송 제작의 자율권을 침해당한 사례는 비단 <이제는 말한다>뿐만 아니다. <이제는 말한다>는 그나마 제작진들의 강력한 저항으로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으며 외부에 알려진 경우일 뿐, 그동안 얼마나 많은 프로그램들이 언론의 조명도 받지 못한 채 조용히 사라져갔던가?


그런데 <이제는 말한다>의 불방 과정에서 우리가 주목할 사실은, 시청자들의 시청료로 운영된다는 공영 방송에서 시청자들과 시민단체의 폭발적인 지지를 받는 프로그램의 불방을 위해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했다는 사실이다.


시청자들의 시청료로 운영되는 공영 방송이 시청자들이 보길 원하는 프로그램을 불방시키는 이 놀라운 모순.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지금까지 관행화된 방송사 경영진의 편성권 독점에 대한 문제점은 극명하게 드러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사측의 편성권 횡포를 차단하고, 방송 제작의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한 방안으로 그동안 방송 현업 제작자들이 주장해온 것이 바로 `노사동수 편성위원회의 설치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얼마전 `방송의 독립성 확보를 위해 활동했다던 방송개혁위원회에서 `노사동수 편성위원회 건은 거부되고 말았다. 프로듀서연합회보(166호)에 따르면, 이러한 결정의 이면에는 그동안 편성권을 독점해왔던 방송사 경영진들이 편성위원회 설치에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한편으론 편성위원회가 `편성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말도 안되는 의견서를 제출하고, 다른 한편으론 치열한 로비를 한 것이 주효하게 작용했다고 한다.)


당시 <이제는 말한다>가 편성되지 못한 표면적인 이유에 대해 KBS TV본부장은 <이제는 말한다>의 <조선일보를 해부한다>편에 대한 조선일보의 강력한 저항이 예상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구차한 변명에 지나지 않을 뿐, 사실은 조선일보의 반발을 핑계삼아 어떻게든 자신들의 치부를 정면으로 건드린 1편 <KBS, 그 굴종과 오욕의 역사>를 불방시키려 했던 KBS 간부들의 목숨을 건(?) 조직적인 저항 때문이었다.


이는 편성이 확정된 <이제는 말한다> 3부작 가운데 유독 KBS 간부진과 이해 관계가 무관한 3편 <광주대학살>만이 별도의 계기 특집으로 편성돼 <5.18 광주민중항쟁>이란 제목으로 방영된 것에서도 여실히 증명된다.


그렇다면 <이제는 말한다>가 편성에서 제외된 실질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조직 내적 통제에 의해 불방된 <KBS, 그 굴종과 오욕의 역사>


개혁실천팀은 우리 사회의 개혁이 필요한 제문제를 다루기에 앞서, 먼저 우리 사회를 바로 비춰줘야 할 거울로서의 기능을 다하지 못한 언론의 직무 유기를 다루어야만 했다.


그리고 이러럼 직무를 유기한 언론사들을 다룸에 있어, 먼저 스스로 자기 성찰을 한다는 의미에서 지난 50년간 정권의 주구로서 활동해온 KBS의 굴종과 오욕으로 얼룩진 역사에 대한 철저한 자기 반성을 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 토대 위에서 신문의 대표격인 조선일보와 광주대학살, 이어서 앞서 제기되었던 우리 사회의 제문제들을 다루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 까닭에 방송의 인적 청산문제를 제기한 <KBS, 그 굴종과 오욕의 역사>는 단순한 1편이란 의미를 넘어서 <이제는 말한다>의 초석을 다지는 작업이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이제는 말한다> 아이템 가운데 KBS내 이해관계가 엇갈린 사람들 사이에 엄청난 갈등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가장 큰 작품이기도 했다.


예컨대 조선일보의 일선 기자들이 과연 조갑제나 류근일, 김대중 같은 선배 논객들을 상대로 그들의 과거 경력과 행적을 까발리며 조선일보 그 굴종과 오욕의 역사라는 기획기사를 조선일보에 게재할 수 있을까?


일반 시민들에게 논객들의 이름과 얼굴이 잘 알려지지 않은 신문이 그러할진대, 하물며 생생한 자료 화면이 펼쳐지는 방송에서,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 행적이 리플레이되듯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상황에서 가만히 앉은 채로 생매장당할 간부가 어디 있을까?


더군다나 부당한 국가 권력에 맞서 저항했던 이들은 이미 떠나버리고, 남아 있는 간부들이라곤 정도의 차는 있겠지만 모두가 공범자들뿐인 상황이라면 말이다.

(예컨대 김영삼 정권 시절 청와대를 출입하며 아부의 극치를 달리다 하루 아침에 아무 소리도 없이 꼬리를 내린 조정민이나 KBS 9시 뉴스에서 정권의 입장을 충실히 대변하던 류근찬이 각각 MBC의 보도제작부장과 KBS 보도국장(7월부로 런던 특파원으로 발령)을 맡고 있는 것이 작금 우리 방송계의 현실이다.)


그런 까닭에 이 프로그램은 개혁실천팀에서조차 누구 하나 선뜻 먼저 나서서 맡으려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모두 꺼려했다. 일단 제작한 사람은 아무리 좋은 의도로 만들었다 해도, 내부 고발자로 지목되어 프로그램 방영후 KBS 조직에서 자리를 보존하기 어려울 뿐더러, 설사 자리를 보존한다 해도 평생 자신의 출세를 위해 동료들을 팔아먹은 사람이란 딱지를 붙이고 다녀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뜨거운 감자인 <KBS, 그 굴종과 오욕의 역사>를 떠맡은 사람은 이상운 PD였다. 그는 TV 1국 소속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큐멘터리 PD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개혁실천팀에 합류하기 전까지만 해도 당시 2 TV에서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던 <TV는 사랑을 싣고>의 담당자로서 방송가에서 흔히 하는 말로 잘 나가는 교양 PD였다. 하지만 그는 개혁실천팀의 김철수 PD의 부탁을 받고서, 그 좋은 프로를 깨끗히 포기하고 팀에 합류할 정도로 과단성 있고 개혁적인 성향의 인물이기도 했다.


이상운 PD는 필자에게 <KBS, 그 굴종과 오욕의 역사>를 제작할 때 "독배를 마시는 심정으로 작업에 임했다"고 담담하게 웃으면서 얘기했다. 남들은 민주화를 위해 감방까지 가는데, 방송의 민주화를 위해서 직장을 내놓는 게 뭐 대수냐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여유 있는 웃음과는 달리, 이상운 PD는 실제로 이 프로그램 하나에 PD로서의 자신의 인생 전부를 걸었다. 그런 까닭에 그는 이 프로그램에서 과거 KBS의 편파보도 사례와 거기에 관련된 인물들의 행적을 직위고하를 막론하고 철저하게 파헤쳤다.


하지만 그런 까닭에 이 프로그램에서 도마 위에 오른 당사자들의 반발 또한 목숨을 건 것이었다. (생각해 보라. 과거 5공 시절 편파 왜곡 보도를 일삼던 간부들 입장에서 자신들의 지난 과오가 화면에 흐르면서, 그 때 왜 그랬냐? 짠밥먹고 잠시 헤까닥해서 그랬냐는 뉴앙스의 인터뷰를 받는 상황에서, 가만히 앉아 있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KBS, 그 굴종과 오욕의 역사>의 사내시사회를 마치자, 프로그램에서 비판의 대상이 된 KBS의 고위 간부들과 보도국 기자들은 개혁실천팀을 비난하며 거세게 항의했다.


당시 이들의 불만은 이런 거였다.

"과거 KBS보도 행태와 관련해 왜 PD들은 문제삼지 않고, 우리 뉴스와 관련된 기자들만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거야!

그리고 아무리 비판을 해도 그렇지, 어떻게 대부분 기자출신인 전.현직 KBS 고위 간부들을 그처럼 생생한 자료화면과 함께 실랄하게 비판할 수 있어!

그런게 PD와 기자라는 직종간에 굴절된 평가를 낳을 수 있고, 개인에 대한 명예훼손이란 걸 몰라?"


하지만 그것은 억지에 불과했다. 과거 군사 정권과 관련된 정치적 문제들은 당연히 뉴스와 관련된 것이 많을 수밖에 없고, 그런 까닭에 결국 뉴스 보도와 밀접한 보도국이 비판의 핵심 대상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이다.게다가 개혁실천팀은 형평성을 고려해, 이 프로그램에서 기자들의 잘못뿐만 아니라 5공 시절 상부의 지시를 따라 프로그램을 제작했던 PD들의 행태에 대해서도 비판하고 있었다.


 조선일보의 압력에 의해 불방된 <조선일보를 해부한다>


<KBS, 그 굴종과 오욕의 역사>가 KBS 조직 내부의 갈등으로 편성되지 못한 대표적인 경우라면, 구수환 PD가 제작한 <조선일보를 해부한다>는 외부 압력에 의해 편성되지 못한 대표적인 사례였다.


"개혁실천 프로그램이 KBS 개혁의 시금석이라면, <조선일보>편 방송여부는 개혁실천 프로그램의 향후 진로에 대한 시금석"이란 개혁실천팀의 성명서(98.5.4.)가 입증하듯, <조선일보를 해부한다>는 사실상 <이제는 말한다>의 대표성을 띤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에서 다루는 대상이 우리 사회의 최후의 성역으로 남아 있는, 정진홍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신문 이상의 그 무엇"이자, "대한민국의 향방을 좌우하는 아젠다 세터이고, 이미 그 자체가 가장 강력한 사회의 지배력"이자 "밤의 대통령"인 까닭에 이 프로그램은 조선일보의 강력하고도 지속적인 저항과 반발에 부딪혀야만 했다.


조선일보는 먼저 개혁실천팀 <이제는 말한다>의 <조선일보를 해부한다>편에 대한 물타기 작전을 시도했다. 5월 29일자 {조선노보}에서 그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이제는 말한다>가 KBS-조선일보-광주 항쟁-상류 사회-삼성자동차를 테마로 구성됐다는 것도 석연찮다. 이 테마들을 선정한 것이 현 정권 담당자들의 정서와 너무 많이 닮아 있다는 지적이다.

때문에 최근 KBS의 격한 몸짓에 권언유착의 냄새가 배어 있다는 소문에 우리는 주목한다. 권언유착을 파헤치겠다고 만든 프로그램이 권언유착의 한 고리를 담당하는 기막힌 역설이 또 다시 탄생해서는 안된다.


이처럼 조선일보는 <조선일보를 해부한다>를 언론개혁세력 vs 수구언론세력의 대결이 아닌 KBS vs 조선일보의 대결, 다시 말해 정권과 결탁한 특정방송사가 특정언론사의 비리를 캐는 데 혈안이 된 듯한 인상을 주는 구도로 몰아가는 물타기 작전을 시도했다.


그리고 이 물타기 작전에서 조선일보가 노린 것은 다름 아닌 <KBS, 그 굴종과 오욕의 역사>로 자신들과 같은 처지에 놓인 KBS 보도국 기자들과 기득권 간부들의 동조 반란이었다.


그들은 KBS 권력 교체기, 다시 말해 홍두표 사장이 퇴임하고 박권상 신임 사장이 임명되는 어수선한 시기를 이용해, 홍두표 사장 체제에서 합의된 사항에 대해 제동을 걸어왔다.

(안타까운 사실은 이처럼 어수선한 시기에 개혁실천팀과 박권상 사장을 연결할 핫라인이 부재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박권상 사장은 취임 초부터 개혁실천팀에 대한 KBS 간부들의 편향된 견해만을 접함으로써 개혁실천팀에 대한 객관적인 시각이 결여될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말한다> 불방 처리 과정


3월 19일 홍두표 사장의 사의 표명 후, 근 한달 동안 공석으로 있던 KBS 사장 자리는 4월 15일 당시 원로 언론인이던 박권상 씨가 임명되면서 새 주인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개혁 성향의 인물로 지목되어 KBS의 신임 사장으로 임명된 박권상 사장 체제의 출범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오히려 개혁실천팀의 <이제는 말한다> 제작에 걸림돌이 되고 만다.


정권 교체로 인해 김대중 정권에 대한 부채 의식이 강했던 홍두표 사장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노조의 입장을 거의 전적으로 수용한 반면, 오히려 개혁적인 성향의 인물로 알려져 노조에 대한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박권상 사장은 부임 초부터 조선일보라는 거대 언론 재벌과의 싸움에 휘말려드는 것을 꺼려했던 것이다. 물론 <KBS, 그 굴종과 오욕의 역사>로 조선일보와 같은 처지에 놓인 KBS 간부들이 이같은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박권상 체제 출범 후 달라진 사측의 입장 변화


개혁실천팀은 3편 <광주대학살>의 방영일(5월 17일-일요일)을 기준으로, 매주 일요일 저녁 9시대에 방영하는 것을 목표로 <이제는 말한다>의 각 편의 방영 날짜를 편성했다.


그래서 5월 17일 <광주대학살>편을 방영하기에 앞서, <이제는 말한다> 프로그램의 주관사로서 이 사건을 왜곡하는데 앞장섰던 KBS의 굴종과 오욕으로 얼룩진 역사를 되돌아보는 1편 <KBS, 그 굴종과 오욕의 역사>를 5월 3일에, 이어서 5공과 결탁해 이 사건을 왜곡시키는데 가장 앞장선 조선일보의 권언유착 관계를 다룬 2편 <조선일보를 해부한다>를 5월 10일에 방영하기로 했다.


하지만 1편 <KBS, 그 굴종과 오욕의 역사>가 방영될 경우 생매장 당할 위기에 처한 KBS 간부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중앙일보(98.4.27.)에 따르면, 사측은 개혁실천팀이 제작중인 <이제는 말한다>에 대해 "담당 간부와 전혀 논의 없이 프로그램을 만들어 방영하려고 하는데,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간부들과 논의한 뒤 방송 여부를 다시 결정하겠다"고 방영에 제동을 걸어왔다.


그간 개혁실천팀은 "간부들과 아이템과 내용에 대해 논의할 경우 프로그램의 개혁성이 크게 손상된다"며 독자제작을 고수해왔다. 개혁실천팀의 한 관계자는 "사측이 몇몇 적절한 아이템만 골라 적당한 시기에 특집으로 내보내자고 해왔다"며 "최근 KBS 인사로 경영진이 바뀐 뒤 개혁을 위한 프로그램 제작이 더 어려워진 것 같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어서 4월 30일, KBS는 노사협의회를 갖고 <이제는 말한다>의 방영일정을 다시 논의키로 했으나, 사측이 박권상 사장의 방송협회 정기총회 참석을 이유로 연기를 요구해 회의가 결렬됨으로써, 5월 3일 방영키로 했던 1편 <KBS, 그 굴종과 오욕의 역사>는 사실상 방영이 무산되고 만다.


한겨레신문(98.5.2.)에 의하면, 박권상 사장은 이 날 오수성 위원장 등 노조 간부들과 약식 간담회를 열어 "개편 프로그램을 5월 17일 광주 관련 프로그램부터 시작하자"고 제안한데 이어 "조선일보만 겨냥해 언론개혁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것은 다소 문제가 있다"고 밝혀 <이제는 말한다> 프로그램의 내용과 방영 일정 변경이 불가피하다는 뜻을 처음으로 내비쳤다.


이에 대해 KBS 노조는 노사협의회 개최를 요구해 5월 9일과 10일 1, 2편을 연속 방영하고, 17일 3편을 내보내는 형태의 수정안을 사측에 제시했다. 노조는 수정안이 거부될 경우, 대규모 집회와 밤샘농성 등의 강경 투쟁에 들어가기로 하고, 구체적인 투쟁방식을 논의할 계획이었다.


오수성 노조위원장은 "노사가 합의한 개혁 프로그램의 방송일정 보장이 중요하다"며 "조선일보 관련 내용은 공동시사회 등을 통해 조율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결국 노조의 수정안은 사측에 의해 일방적으로 묵살되고 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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