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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7.6.화요일

딴지 엽기다큐 전문기자 이상엽



에로 비디오 촬영 현장. 후끈한 열기가 느껴진다. 그냥 기분이 그런 것이 아니라 정말 땀이 흐른다. 외부에서 빛이 새어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 창마다 검은 천으로 막아버리고, 에어컨은 잡소리가 함께 녹음된다고 꺼버린 지 오래다. 강남에 자리한 C 프로덕션의 사무실. 10평 정도의 사무실 공간의 집기를 치우고 촬영 셋트를 설치한 간이 스튜디오에서는 한창 촬영이 진행 중이다.

 


 

곳곳에 철조망과 쇠사슬, 채찍 등이 살벌하다. "요즘은 SM이 인기거든요." 일본 포르노 사이트에서 많이 본 풍경이다. 정말 간단한 소품, 조명 장비를 제외하고는 여기가 정말 영화 촬영하는 장소 맞아 할 정도다. 그만큼 한국의 에로 비디오 영화들은 소품들이다.


총 제작비는 2천만원에서 3천만원 사이. 영화 한 편에 20억, 30억 하는 판에 이것도 돈인가 하는 생각이 들 지경이다. 제작비 절감을 위한 노력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촬영기사와 감독이 들고 있는 카메라는 모두 소니 6mm 디지털이다. 극장을 거치지 않고 바로 비디오로 출시되는 까닭에 가격은 싸면서 화질도 뛰어난 홈비디오가 고가의 장비를 대체하고 있는 듯 했다.


 


 

테이블 위에서는 두 배우의 정사 신이 한창이다. 여배우만 7명이 나온다는 이번 영화의 간판인 이소희의 연기가 취재 중인 기자를 흥분 시켰다. 난생 처음 이런 촬영 현장을 목격한 터라 침이 말라왔다. 비단 기자만 목이 마른 것은 아닌 듯 했다. 배우들도 연신 찬물을 들이켰다.


작은 공간을 메아리 치는 신음 소리. 물론 녹음을 위해 과장되게 지르는 소리였지만 본기자는 정신이 아찔했다. 설마 팬티까지 벗겠느냐 했지만 여지없이 남자배우에 의해 찢겨 날아가는 팬티.. 여배우의 음부가 훤히 드러난다. 설마하던 기자의 허를 여지없이 찔러 버린다. 그렇지만 누구도 동요하는 사람은 없다. 그저 다들 자기 할 일에 바쁘다.



" 이거 절대로 나오면 안됩니다. 심의에서 짤리는 건 물론이고 통과 안되면 망하는 겁니다. 이걸 피해 가는 것도 능력입니다. "


감독의 이야기다.


 


 

이소희는 이제 갓 20살이다. 그녀가 이쪽의 전문 여배우로 나선 것은 2달 전. 하지만 벌써 7편의 영화를 찍었다. 이 동네에서 그야말로 잘 나가는 배우다. 감독들의 말을 빌리면 " 우선 나이가 어리고, 외모는 더 어리게 보이고, 몸매가 되고, 또 열정도 있다"고 한다.


사실 한 달에 20편 씩 쏟아지는 비디오를 보면서 한국에는 웬 에로 여배우가 이렇게 많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겹치기 출연으로 그렇게 보일 뿐이다.



" 한 20명 정도 된데요. 단역들은 잘 모르겠고. 한 편 찍고 마는 배우들도 많고요. 하지만 난 여기서 성공할 거구요 "


이소희의 이야기다.


이런 비디오 영화들이 한 달에 출시되는 양은 20여 편 정도. 그래도 꽤 많은 편이다. 한 달에 1편씩은 고정적으로 내는 곳이 한 10곳. 부정기적인 곳이 20곳 정도다. 한편 출시하면 2천5백 카피에서 3천 카피는 팔아야 똥돈이 된다고 한다. 예전에는 1만 카피, 2만 카피하는 대박들이 터지곤 했지만 IMF 이후에는 전설이 돼버렸다. 그런데 이소희의 전작 <자유학원3>는 1만 카피를 육박하고 있다고 한다. 회사 입장에서는 이소희는 투자의 대상이다.


촬영은 새벽 1시가 되어야 끝났다. 강행군이다. 에로 비디오 보는 사람들은 야 이렇게 엉터리로 만들면 나도 하겠다 하지만 실제 현장을 본 기자는 야! 이거 장난이 아닌데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규모만 작을 뿐이지 편집을 위해 다양한 앵글을 잡는 것하며, 필름을 쓰는 것도 아니면서 리허설도 한다.


이 때문에 촬영과정에서 콘티에 있는대로 촬영을 진행하다보면 있던 컵이 사라지고 없던 꽃병이 등장하기도 한다. 전에 찍었던 장면을 재현해서 다른 앵글로 잡다보니 생기는 실수들이다. 하지만 이 정도는 약과다. 정사신을 찍는 중에 팬티색깔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 사실 그런 것까지 잡아내야 엉성한 영화라는 소리 듣지 않는데, 편집하다 발견하면 결국 그냥 넘어가고 말죠. "


기획담당의 이야기다. 어질러졌던 소품들을 정리하고 조명을 접으면 거의 사람들은 탈진 상태다. 배우도 스텝들도 단 일주일 안에 끝내야하는 촬영기간때문에 집에 들어가지 못하기 일쑤다.


이소희는 아무데서나 잘 벗고 잘 입는다. 눈치보는 법 없고 대범하다. 프로다.



" 내가 베드신은 강하거든요."


실전에 강하다는 뜻인가 ?하고 일부러 짓궂게 물어봤다.



" 그건 말 못 하겠고, 비디오 보면서 연구 많이 했어요. 원래 실전하고 연기하고는 전혀 다르다고들 해요. 영화가 실전 같으면 누가 흥분하겠어요. "


맞는 말이다.


 


 

영화가 SM이라 온몸에 피칠을 했던 것을 코디가 열심히 닦아준다. 이소희는 "대구가 고향인데 지금은 서울에서 방을 얻어 자취를 하고 있다"고 한다. 에로 영화를 찍고 있는 것을 부모님이 아는지 모르는지는 이제 그녀에게 별로 중요한 것 같지는 않다.



" 일단 시작한 일이잖아요. 그럼 성공 해야죠. 돈도 벌어야 하구요."


솔직하다.


이씨가 한편에 출연해 버는 돈은 정확하지 않다. 요즘은 한편 당 갤런티를 지불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하루 일당으로 친다. 잘 주는 곳은 30만원. 아닌 곳은 20만원.



" 많이 버는 것 같죠. 하지만 쓸 때도 많아요. "


그냥 거리에서 보면 예쁘장한 버릇없는 젊은이로 보이겠지만 의외로 수입의 절반을 가족 생활비로 보탠다. 꽤 효녀 소리 듣는단다.



" 비디오 배우요. 아무래도 편견이 심하잖아요. 하지만, 한 씬에서 대충 4~5개의 앵글을 잡아요. 한 일 또 하고 또 하고... 이거 연기거든요. "


나름대로 자부심도 있다.


사실 에로 비디오 보는 사람들은 이들을 배우로 보기보다는 어디어디서 그냥 캐스팅 한 노는 뇬 정도로들 본다. 스탭진들에 대한 시각도 마찬가지다.



" 이 판은 한국영화 최후의 보룹니다. 일 안될 때는 이 곳에서 한 편 찍고 돈이 모이면 또 충무로 나가서 영화찍구... 그런데 이쪽의 그런 역할을 전혀 인정 안해요. "


에로 비됴판이 돈없는 영화쟁이들 총알보급소 역활을 하며, 그런 역할을 인정해 줘야 한다는 주장은 그 역할의 옳고 그름을 떠나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다. 자기 영화 만들고 싶지만 돈이 없어 이 작업을 한다는 이 영화쟁이들에게 누가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아니 이들이 과연 돌을 맞아야 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게 맞기는 한가. 


얼마 전 문화광광부장관이 등급위원회를 들렀을 때 수 십개의 모니터에서 에로비디오가 나오고 있었다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늘 등급판정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에로영화다. 폭력에는 관대하고 섹스에는 거부감을 느끼는 우리의 정서를 반영하고 있다.



" 이 등급판정이 비디오 종사자들을 죽이고 있습니다. 만일 보류판정을 받는다면 비디오 출시도 죽거든요. 등급외 상영관이요? 그걸 포르노 상영관쯤으로 생각하나 본데 전혀 그렇지 않아요. 우리 정서에서 포르노가 가능합니까? 등급외 상영관도 없고 비디오에 대한 정책도 없어요. "


그렇구나. 비디오에 대한 정책도 필요하구나. 그런데 우리는 에로 비디오에 대해 언제나 이중적인 태도를 보여 왔다. 수많은 사람들이 즐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그 비디오를 제대로 대접하는 사람이 없다. 그걸 보고 즐기는 사람들의 숫자가 결코 만만치 않음에도. 여기에 대해 어떤 논평을 한다거나 거론하는 것 자체를 창피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주요 일간지나 스포츠 신문들이 에로 여배우의 야릇한 포즈를 끼워넣어 신문을 열심히 팔고 있으면서 말이다. 그런 용도로는 열심히 이용하면서 말이다.



" 나도 영화배우라고 생각해요. 조금 더 잘해서 큰 영화에 나오면 되죠. 그런데 사실 우리는 존재 자체를 인정받지 못해요. "


 


 

새벽 1시, 이소희는 일을 마치고 자취방으로 돌아가는 차안에서



" 사람들이 비디오 영화를 보는 만큼만, 비디오 영화 자체에 관심을 가지면 더 좋은 영화가 나오리라고 생각한다 "


며 담배 한 대를 길게 내뿜는다.


그렇다고 정말 좋은 영화가 금방 나올까는 의문이다만 최근에 본 영화가 생각난다. 전설적인 포르노 배우를 영화화한 <부기 나이트>. 영화는 숭숭장구하던 한 포르노 제작업자의 패밀리를 한참 그리다가 비참한 나락으로 떨어지는 모습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간다.


아.. 결국 포르노를 죄악으로 단죄하는구나 고 생각했다. 그런데 왠걸. 영화는 결국 Dont Worry, be Happy로 끝난다. 할리우드 영화의 문법인가.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영화는 있는 그대로 놔두자는 이야기를 하는 듯 했다. 그 곳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인간이고, 결국 우리 사회의 일부라는 것을 인정하자는 거다.


본기자도 이야기하고 싶다. 국산 에로비디오가 활성화되야 앞으로 들어올 수입 에로비디오들을 막아낼 수 있다는 생소한 종류의 민족주의 주장에도, 성을 상품화한다고 규탄해 마지 않는 페미니스트들도, 한국의 성범죄는 모두 에로비디오가 만든다는 쇼비니즘도 모두 일면 옳고, 일면 그르다.


그런데, 누가 에로비디오에 국가적으로 돈 쏟아붓고 투자하제 ?
그냥 있는 그대로 인정만 해달라는 거지. 있는 걸 없다 하지는 말자는 거지.


있는 데 없는 척 하지 말자. 일단은 그 정도만 되도 족하다.
혹시 이소희가 이소라 되지 말라는 법이 따로 있다면 그것도 없애고...
 






 


- 딴지 엽기다큐 전문기자 이상엽 ( inpho@netsgo.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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