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7.6.화요일
그러던 어느 날, 본 기자의 몇몇 첩보원들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흥분해서 똥고가 벌렁 열린 본 기자, 심층쥐재에 돌입했다. 그 결과 환경 및 동강문제에 대한 본 기자의 이해도가 급격한 업그레이드를 이뤘다. 딴지독자제위께 다 까발려 드린다. 불볕 더위로 후끈거릴 8월, 또다시 댐 건설이냐 자연보전이냐로 활활 타오를 것이 분명하다. 그러기 전에 동강 댐 건설 논쟁을 냉정히 살펴보자. 미국 자연보호 역사상의 한 일화 - 헤츠 헤치 계곡 댐 건설 논쟁 난데없이 미국 자연보호의 역사는 왜 야그하냐고? 울 나라 환경운동의 역사는 1988년의 공추련(공해추방운동연합), 이를 모태로 한 1993년의 환경운동연합 출범 등을 시작으로 본격화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와 달리 미국은 졸라 긴 자연보호운동의 역사를 갖고 있다. 1890년 요세미테 국립공원 설정, 1892년 시에라클럽 조직 등 세계 환경운동의 시발을 알리는 굵직굵직한 일들이 이미 100년도 더 지난 과거에 시작되었다 이거다. 동강 문제로 고민하는 우리가 참고해야 할 교훈거리가 있음은 당근 말먹이다. 20세기 벽두에 캘리포니아 요세미테 국립공원의 헤츠 헤치 계곡에 댐을 세워 저수지를 건설하자는 제안을 둘러싸고 미국 전역을 휩쓴 환경 대논쟁이 있었다. 요세미테는 목재업자들과 광산업자들의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자연파괴로부터 보호하고자 1890년 설정된 미국 최초의 국립공원. 미려한 풍광으로 지금도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꼽히는 곳이다. 그 서북부에 자리한 헤츠 헤치 계곡은 깍아지른 시에라 네바다 산들로 둘러싸인 협곡으로, 투럼 강(Tuolumne River)의 맑고 깨끗한 물이 좁은 수로을 따라 흐르다 떨어지는 아름다운 계곡이었다. 환경운동사에 기록된 대논쟁, 그 내막은 이렇다. 샌프란시스코 시 당국은 부족한 용수문제를 해결하고자 천연의 저수지로서 최적의 입지조건을 갖춘 헤츠 헤치 계곡에 댐을 건설하려는 방안을 제안한다. 이에 맞서 아름다운 요세미테를 보전하려는 일단의 자연보호주의 학자, 저술가, 시민들이 반대주장을 펴고... 이 논쟁의 중심부에는 20세기 초기의 미국에서 가장 저명한 환경론자인 존 뮤어(John Muir ; 1838-1924)와 산림관 기포드 핀쇼(Gifford Pinchot ; 1865-1946)가 서 있었는데, 이들은 환경문제에 대한 두 개의 유력한 견해를 상징하게 된다. 우선 두 인물에 대해 간략히 알아보자.
이쯤에서 성미급한 독자라면 이렇게 물을지도 몰것다.
본 기자, 그런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겠다. 조디 닫고 쪼매만 기둘리. 다시 하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뮤어와 핀쇼는 처음에는 둘다 댐 건설에 공히 반대하였다. 핀쇼 역시 초기에는 헤츠 헤치를 휴양지로서만 이용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1906년에 태도를 바꾸어 댐건설에 찬성하는 편에 섰다. 그렇담, 뮤어는 지조있는 환경보호론자고, 핀쇼는 변절자 악당인가?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 왜냐구? 계속 보시라. 댐 건설 논쟁 과정
위 표에서 보듯 댐 건설안은 전국적 범위로 무려 반세기에 걸쳐 논의되었다. 댐 하나 짓는 데 무려 50년을 논의한 것이다. 5년도 아니고, 50년이다. 울나라에서 동강 가지고 난리치는 걸 보면 이 대목에서 결론이 우쨌든 간에 일단 조짭고 반성하고 싶어진다. 30여 년 연상의 정신적 스승 뮤어를 등지고 핀쇼가 태도를 바꾼 이유는 무엇일까? 자세한 내막은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핀쇼가 댐 건설에 찬성 의사를 나타낸 1906년에는 모종의 사건이 있었다. 샌프란시스코에 대지진이 난 거시어따. 1906년 4월 18일 새벽 5시 12분 샌프란시스코는 강진의 타격을 입었다. 진도 8.2도의 지진과 연이은 화재는 시 대부분을 파괴하였다. 불과 6시간 만에 50년의 성장과 꿈이 황무지로 바뀌는 것을 시민들은 속수무책으로 보고 있어야만 했다. 이때 샌프란시스코 시당국은 헤츠 헤치 계곡으로 흐르는 투럼 강(Tuolumne River)의 용수권을 재신청하였다. 만약 헤츠헤치 물을 사용할 수만 있었다면 화재가 도시를 뒤덮지 않았을 것이라고 그들은 주장했다. 시민들의 집단적인 히스테리에 힘입고자 했던 거다. 당시 신문과 잡지 등의 일반 언론사들도 요세미테를 거의 본 적이 없었으며, 가 본 사람들의 대다수는 부유층이었다. 더구나 헤츠헤치는 그보다 훨씬 더 멀리 떨어지고 도로접근이 불가능한 거친 곳에 있었다.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수의 사람들만이 그곳에 가본 적이 있는 셈이었다. 그러던 차에 지진과 대화재가 발생한 것이다. 격발된 논쟁은 이후에도 7년이나 지속되었고, 결국엔 댐이 건설되었다. 환경이론의 분화 두 사람의 대립은 환경운동이론의 분화를 낳았다. 보호관리주의(Conservation)와 보전주의(Preservation)가 바로 그것이다.
자원 보호관리주의자들도 계곡을 보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는 생각했다. 만일 그 밖의 아무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이란 전제하에서. 하지만 이번 경우 압도적 다수의 시민들이 댐 건설을 요구하고 있었다. 즉, 인간의 요구가 우선이라는 것이다. 가장 많은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방향으로 자연을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달리 보전주의자들은 댐건설의 의미는 자연을 파괴하면서까지 물을 쓰고, 전기를 생산해 인간의 욕구를 채우자는 것이므로 이것은 인간이기주의에 다름아니며 자연의 일부인 인간이 자연을 인간에게만 이롭게 배타적으로 소모하는 것은 부당하는 주장이었다. 그들이 주장하는 공공이익의 의미가 서로 달랐던 것이다. 숲에 대한 그의 사랑에도 불구하고, 핀쇼는 인간을 이롭게 하는 문명화와 산림의 관리가 궁극적인 목적이었고, 뮤어는 자연의 야생성 그 자체가, 그리고 그것의 보전이 목적이었던 것이다. 보전주의자들은 헤츠헤치 계곡은 그대로 남겨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비해, 보호관리주의자들은 만약 댐이 건설되면, 개발되지 않은 습지보다 자연을 그다지 훼손하지 않으면서 인간이 쾌적하고 합리적으로 자연을 즐길 수 있는 유럽스타일의 공원을 만드는 게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 보전주의자들은 " 자연, 이거 절대 절대 건들지 마! " 라고 하는 것이고, 보호관리주의자들은 " 자연, 이거 잘 관리해서 인간에 이롭게 조성하자! "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 양측은 공통점도 있다. 최소한 탐욕적인 기업문화에는 공히 반대편에 선다는 점이다. 핀쇼는 계곡댐 건설에 부분적으로 찬성하였다. 왜냐하면 수력발전이 일어난다면 지방전력회사에 의한 독점을 저지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 당시 시에 물과 전력을 독점공급하던 스프링 밸리 회사는 시당국에 가격인상을 요구하였다. ) 결론 어떠신가? 똑같이 자연을 보호하자는 주장에도 각각의 궁극적인 목적은 다를 수 있고, 마찬가지로 개발하자! 보전하자!며 대립하는 쌍방이 있을 적에 어느 한 쪽을 좋은 넘 다른 쪽을 나쁜 넘으로 단순 구분할 수 없다는 거다. 적어도 그 나름의 철학을 가지고 주장하는 것이라면. 얼핏 보아 자연을 파괴하는 악당쯤으로 여겨질 핀쇼의 생각은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주장한 19세기 벤담(J. Bentham)과 밀(J. S. Mill)의 공리주의 등과 맞닿아 있었다. 그래서 혹자는 그의 주장을 자유방임적이고 독점적이면서 소수의 특권계급에게만 이익이 돌아가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 맞섰던 진보주의 운동으로 평한다. 자 이제, 이런 상식을 갖고 울나라 동강문제를 다시 살펴보기로 하자. 동강 댐 건설 논쟁을 다시 본다 댐 건설의 계기 동강 댐 건설 주장, 이 주장이 나온 근본적인 계기는 무엇인가. 동강댐 건설 주장은 현존하는 다목적 댐을 통한 치수조절능력에 이상이 있다는 판단에서 비롯되었다. 쉽게 말해 여름철에 빈번한 게릴라성 집중호우로 말미암아 홍수대책에 구멍이 뚫렸다는 말이다. 확인해보니 사실이었다. 애초 댐 건설의 계기는 지난 90년 대홍수. 사망 및 실종 163명, 이재민 18만 7천여 명, 5,200여 억원의 재산피해를 낸 바로 그 물난리였기 때문이다. 당시 대통령은 집권기 내내 물태우란 소릴 들었던 너태우. 홍수가 나자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다음과 같은 푸념을 하며 마음을 달래곤 했다.
당시 미아리의 용하다던 역술가들은 대통령의 이름을 풀이하여 일찍부터 홍수를 예측했다는 소리도 있다.
너태우 전통, 물난리가 나자 댐 건설을 지시했다. 이에 건설교통부는 90년 12월부터 92년 7월까지 다목적 댐 타당성 조사를 벌였는데, 홍수조절이 우선이고, 용수확보, 발전시설 설치를 목적에 포함하였다. 96년 2월 건교부가 이 지역에 댐 사업 기본계획을 확정하면서부터 동강 댐 건설 논란이 불거져 나오게 된 것이다. 그간의 과정 생략한다. 다들 잘 알고 계시리라 믿는다. 아님 말고. 동강댐(수자원공사와 건교부가 제시하는 공식명칭은 영월댐) 추진세력과 환경운동연합을 중심으로 한 반대편간의 논쟁은 격렬했다. 대책 생략한다. 본지는 지금 대책을 내놓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니까. 이건 정말 전문가들이 할 일이다. 다만 지금까지 전문가들이 제시한 여러가지 안 중에 본기자가 판단하기엔 가능성이 있어 보이나 왠지 현재 거의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안 하나만 언급하겠다. 바로 충주댐을 높이는 방안인데, 충주댐은 콘크리트 댐으로 댐 높이를 올리는 게 가능하다고 한다. 내린천 댐 시비가 붙자 소양강 댐 높이를 올리는 공사가 한창이듯, 기술적으로는 가능한 일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김승권 고려대 산업공학 교수가 좃선일보에 기고한 <동강댐, 반대만 할 것인가...>란 글에서도 의견을 내놓았던 적이 있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별 반론도 동조도 없고 건교부에서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일각에서는 충주댐의 높이를 올려 저수량을 늘리면 충주호 상류, 단양이 물에 잠긴다며, 고려의 가치를 원천 봉쇄하기도 한다. 하지만 동강 일대의 자연비경을 진정으로 살리려 한다면 어쩌면 조심스럽게 검토해보아야 할 방안일 수도 있다. 진짜 문제 논쟁을 원점으로 돌리는 야그겠지만 (땅떵이가 조오올라 넓은 미국이 댐 하나를 놓고 50년을 논의했다는데 코딱지만한 우리 나라에서 논쟁을 원점으로 돌려야 할 필요가 있다면 100년이 걸리더라도 돌려야 하지 않겠나, 우리에게 주어진 자연은 이 코딱지만큼밖에 없으니 말이다.) 어쩌면 동강댐 논의는 그 출발점부터가 잘못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뭔 소린가 하면, 이 모든 논쟁은 90년 홍수피해를 입고, 그 대책으로 댐 건설이라는 방향이 아무런 논의를 거치지 않고 결정된 것으로부터 야기된 일들이기 때문이다. 지난 90년의 홍수 때를 생각해보라. 한강 인도교 수위가 올라가고, 폭우는 계속해서 쏟아지고, 서울이 잠기느냐 마느냐 긴박감이 흐르던 때, 때아닌 고양시 제방(지금 일산)이 터지면서 삽시간에 인근 논밭이 물에 잠겼다. 그 덕에 한강 수위가 내려가고 서울은 수마의 위협에서 벗어났다. 그때 제방이 터진 것을 두고 서울이 물에 잠길 것을 막고자 정부가 벌인 고육지책의 특수공작이라는, 유비통신이 나돌기도 했다.(실제로 작년 중국 양쯔강 홍수 때, 중국은 제방을 무너뜨려 제내지의 논을 홍수조절지로 활용하는 방법을 썼다.) 9년이나 지난 오늘날, 진상여부는 그리 중요치 않다.(아니라고 주장할 사람도 있겠지만, 걍 무시하고) 그로 인해 홍수대책이 필요했다면, 댐 건설이라는 지시를 하달할 것이 아니라, 댐 건설도 여러 방안 중의 하나로 취급되는 사전 논의 절차가 있었어야 했다.
홍수를 맞은 이유와 대책을 찾다보면 그때까지 사용하던 기상예측법, 댐 운영체계, 관계법률 및 행정체계 등 여러 부문에 걸쳐 논의가 진행될 터이고, 그러면 당연히 이해관계와 방법론의 차이에 따라 논쟁이 분화되면서 큰 가닥을 잡을 수 있지 않겠느냐 말이다. 민주적 토론과 합의 절차, 결정에 대한 승복 등에 익숙치 않은 과거 군바리 정권과, 그 밑에서 국민의 종복이라기보다는 통치권자의 종으로서의 역할이 더 컸던 행정관료, 또 그들의 행정편의주의, 전시행정.. 그들로부터 기획 입안되어 추진된 동강댐 건설 계획.. 현 정부는 이를 고스란히 떠맡아 그대로 추진하다 발목이 잡힌 셈이고... 풀어가야 할 문제가 한두 개가 아님은 초등학생들도 안다. 그런데, 올여름 장마철에 또다시 홍수피해를 입게 된다면 우리네 동강 댐 논의는 과연 어떻게 될까? 우려되는 최악이 시나리오는, 피해지역 주민의 원성과 일반여론을 이용, 8월 환경영향평가보고서고 뭐고 동강댐 건설 반대 견해들이 깡그리 무시되는 경우이다. 헤츠 헤치 계곡 댐 건설 논쟁을 보면, 샌프란시스코 대지진과 화재을 겪으며 논의가 심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대피해를 입은 후에도 그들은 또다시 무려 7년 동안 논의에 논의를 거듭했다. 과연 우리도 그럴 수 있을까... 본지는 동강문제를 해결할 어떤 획기적인 제안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현재로서 중요한 것은 어떤 획기적인 제안이 아니라 과연 동강문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시각부터 정리해 나가는 것이라 본다. 어떻게 치수방재능력을 높이는가 하는 것도 중요한 것이지만, 앞으로도 계속해서 있을 자연과 인간에 부조화에 대한 우리의 태도.. 바로 이 태도에 대한 우리만의 철학과 기준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기준에 의해 국민적 논의를 도출해내는 역량과 방법을 익히는 것.. 그러한 것들이 동강댐 건설 그 자체만큼, 아니 앞으로도 있을 논의에 기준을 마련한다는 의미에서, 더욱 중요한 것 아니냐 이 말이다. 우리도 이제 우리 나름의 환경철학을 가질 때가 됐단 말이다. 50년은 안해도 좋다. 5개월만에 결정하진 말자. 씨바. 피에쑤 : 그래서 도대체 너거뜰은 동강댐 건설에 찬성하는 기야, 아니야? 라고 묻는다면, "내도 반대야" 되겠다. 왜냐, 본기자는 이 문제에 있어서 보호관리주의의 손을 들어주기로 했으니까. 환경보호에도 철학이 있어야 한다. 동강 1차 보고 끝.
- 동강을 다시 보게 된 취재부장 ( djjang@netsgo.com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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