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5.31.월
그러던 중 유종근지사의 가족 중 한 사람이 유종근사건과 관련하여 통신공간에 글을 썼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에 본지는 그의 글을 싣기로 했다. 그 내용을 검토한 결과 주장의 근거가 나름대로 있고, 다 같이 읽어볼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 가지 분명하고자 하는 것은 이 글은 어디까지나 <주장>이라는 것이다. 가족의 가족에 대한. 최종 판단은 여전히 독자의 몫이다. 그럼 가자. 저는 유종근 지사의 막내 동생인 유종일입니다. 우선 우리 나라 최고의 신문에 글을 실어 주신 딴지일보에 감사드립니다. 의례적 인사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코소보 사태에 관한 분석은 국내 다른 어떤 언론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명쾌하고도 올바른 내용이었습니다.
지난 5월 6일 저는 대학 선배가 하는 치과에 들렀습니다. 그런데 그 선배가 이빨 치료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하면서 천리안의 토론방을 보여주었습니다. 거기서 도둑사건과 관련하여 유종근에 대한 수 많은 글이 올라와 있는 것을 보았고, 다수의 글들이 오해와 편향된 시각에서 나왔다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선배가 저더러 진실을 알리는 글을 올리라고 권하더군요. 저는 난생 처음하는 일이기도 하고, 또한 제가 글을 쓴다면 제 나름대로 유 지사가 잘못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밝히지 않고서는 진실된 글을 쓸 수 없었기에 망설여졌습니다만 결국 썼습니다. 물론 유 지사 혹은 그의 비서진과 아무런 상의도 없었고, 제 글 때문에 유 지사에게 꾸중들을 각오도 했습니다. 언론의 몰매를 맞고 네티즌들에게서까지 부당한 비난을 받는 형이 안스러웠기도 하거니와, 이 사건이 지니는 정치적 함의도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5월 6일 밤에 "유종근 지사의 친동생입니다"라는 제목으로 천리안 토론방에 글을 올렸고, 이 글은 약 천 건의 조회건수를 기록하는 관심을 끌었습니다. 격려의 편지, 충고의 편지도 답지했고, 인간에 대한 회의를 새삼 자아내게 하는 황당하고 저열한 비난도 많이 있었습니다. 기분 좋은 경험은 결코 아니었으나, 이를 통해 좀더 겸허하게 여론을 성찰할 필요가 있다는 교훈을 얻은 것도 사실입니다. 며칠 후 딴지일보 발행인께 연락이 왔습니다. 딴지일보에 글을 실어보지 않겠냐고. 저의 실명을 밝히자니 천리안에서럼 저까지 도마 위에 오르는 것이 싫고 필명으로 하자니 동생이 옆에서 본 진실이라는 글의 기본 성격을 살릴 수 없고 해서 고민했지만, 까짓 거 욕 많이 먹으면 오래 산다는 말 한 번 믿어보기로 했습니다...
천리안의 경험에서 독자들에게 정확한 제 입장과 위치를 알리는 것이 오해를 불식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판단하게 되어 간단히 설명드리겠습니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제가 저의 형에 대해 완벽하게 객관적이기는 어렵다는 점 인정하고 들어가겠습니다. 그러나 이와 관련하여 두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경제정책과 관련한 토론 등 (저도 경제학자입니다), 특별한 일이 있지 않는 한 제사 때나 만날 정도입니다. 저는 도둑사건 이후 유 지사에 대해 제기된 의혹들을 충분히 해명할 수 있는 정보를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그러나 저는 제가 아는 유종근의 인격에 대한 판단과 객관적으로 드러난 사실, 그리고 동생으로서 알게된 약간의 내부 정보를 토대로 사건의 총체적 진실에 관한 나름대로의 판단을 할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객관적으로 명백하게 밝혀진 사실만 보겠습니다.
위의 사실들을 놓고 볼 때, 이 사건이 갖는 정치적 파장과 의미가 없었던들 이는 한낱 기이한 해프닝으로 치부될 성질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유 지사의 정치적 위치도 있고, 이를 정치공세의 호재로 삼은 한나라당의 정략도 있었기에 이 사건은 많은 국민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검찰수사 종결 이후에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 무성하고, 유 지사가 실세이기 때문에 검찰이 그의 구린 부분을 덮어주었다는 의혹마저 있습니다. 저도 검찰 수사결과에 커다란 실망을 하고 있습니다. 몇 가지 의문점들을 짚어보겠습니다. 우선, 과연 미화 12만불은 있었는가?
4월 19일 검찰에 자진출두한 유 지사가 정식으로 이를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만약 미화도난이 사실로 드러나면 즉각 모든 공직에서 사퇴하겠다고 천명했습니다. 저는 그 당당한 태도에서 유 지사가 사택에 미화를 두고 있지 않았다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유 지사는 현장검증을 거부하고 야반도주를 했습니까? 이에 관해서는 아래에 제 나름의 설명이 나옵니다. 하지만 우선 생각해 보십시오. 현장검증이 어떻게 외화 도난사실 여부를 입증합니까? 만약 누군가가 당신의 집에서 미화를 훔쳤다고 주장하여 당신이 외화은닉범으로 몰린다면 당신은 무슨 방법으로 결백을 입증하겠습니까? 현장검증을 하여 만약 김성훈 장관의 경우처럼 엉뚱한 곳에라도 간다면 다행이겠으나, 도둑이 실제로 당신 집에서 무언가 훔쳐갔다고 칩시다. "이 방의 이 책상위에 놓여있던 가방 속에서 미화를 훔쳤다"고 와서 주장하면 도대체 무슨 방법으로 이를 반박합니까? 남을 외화 은닉범으로 몰려면, 자신이 훔친 외화의 보관 혹은 처분에 관하여 입증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 외화가 누구 집에서 나온 것인지 입증하는 것이 그 다음 순서일테고요.) 그러나 김강룡은 이 부분에 관하여 횡설수설과 묵비권 행사를 오갔으며, 우리의 위대한 민주 검찰은 그에게 우롱당하면서도 잘도 참았습니다. 오히려 이미 현장확인 및 현장검사(사진촬영 포함)를 세 차례나 했음에도 불구하고 철수한 사택에 대한 현장검증을 요구하여 피해자인 유 지사를 당혹하게 만들었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검찰도 처음에는 현장검증이 필요없다고 했다가, 국회에서 박상천 법무장관이 수사에 관여해서는 안되는 자신의 신분을 망각하고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현장검증을 약속한 이후 태도를 바꾼 것입니다.
물론 이를 두고 검찰이 협박하여 진술을 번복시켰다고 생각하는 분도 계시겠지요. 그렇다면, 사건 초기 김강룡이 호텔에서 미화를 사용했었다는 얘기만으로 무슨 결정적 증거라도 되는 듯이 보도되었었는데, 미화 사용 시점이 영 아니올시다였음이 드러났으면 왜 이러한 정보가 일시적이나마 도둑에게 유리하게 사용되었는지 밝혀야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정말 하고 싶은 얘기는 검찰이 수사과정에서 민이엄마, 금괴 등 도둑의 주장을 좇아다니기만 했지 도둑의 괴이한 주장 배후에 있는 여러 가지 의문에 관해서는 아무런 수사를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3,500만원 도난사건은 도둑의 괴이한 주장으로 말미암아 도둑사건으로 변하였습니다. 검찰은 도난사건의 해명도 미흡했지만 그나마 의문을 풀 단서를 제공해 줄 수 있는 도둑사건에 관해서는 아예 수사를 포기하다시피 하였습니다. 그가 마약중독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 외에는 도둑사건의 여러 가지 의문들
에 아무런 접근을 하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김강룡이 입을 다물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에게 정보를 제공해주고 그림도 받았다는 공무원이 실존하는지에 관해 전혀 수사를 안한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 사건의 배후에 모종의 음모가 존재했을 가능성이 다분히 있고, 만약 그렇다면 이 공무원이 음모의 중요한 고리였다고 생각됩니다만. 혹시 대법관 출신의 야당 총재와 그의 법조계 인맥을 의식한 것인가요? 저로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입니다.
막연한, 그러나 어쩌면 가장 본질적인 정황증거는 이것입니다. 우리 나라에 힘 센 사람들 중에 유종근이 고꾸라지면 신날 사람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여야를 막론한 정치권에도 많이 있고, 재벌들은 특히 미워할 테고, 검찰은... 글쎄 올시다.. 음모의 존재여부를 떠나서 DJ정권에서 소위 개혁인사라는 사람들이 최근 하나 둘 낙마하는 것 보셨지요? 김태동, 최장집, 장영식 등이 차례로 물러나고... 그러더니 도둑사건으로 유종근, 김성훈을 흔들어대고... 이해찬 퇴진운동까지... 제가 뭐 이들의 업무수행이나 정책을 좋게만 평가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쩐지 걱정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제 도둑사건을 기화로 유 지사의 도덕성에 대해 제기된 문제들에 관해 제 나름대로 해명하고자 합니다.
유종근이 골프 치는 거 봤습니까? 룸싸롱 가는 거 봤습니까? 죽어라 뛰었어요. 매일 잠이 부족해서 피곤에 지치고 종기가 난 얼굴, 치과에서 이빨 치료하는 와중에 졸 정도의 과로, TV출연 나가면서 면도도 못하고 나갔던 일정... 적어도 98년 한 해에 유 지사는 한마디로 살인적인 과로를 했습니다. 만약 특별한 사유가 없이 소방헬기를 일본출장 시에 사용했다거나 TV에 나가는 시간 맞추기 위해 소방헬기 탔다면 이는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겠지요. 제가 형에게 물어봤습니다. 혹시라도 불요불급한데 탄 적 있냐고. "그럴 리가 있냐?"라는 대답에 왜 자세한 해명을 하지 않느냐 물으니까, "누가 그 소리 들어준대?"하고 되묻더라구요. 저는 더 이상은 모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젊은 여비서와 사실상의 이중결혼 운운하는 얘기입니다. 모처럼 흥미진진한 얘기 나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소리 천리안에서 처음 들었고, 한 마디로 황당무계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아는 유종근,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저는요, 처음엔 미국에 있는 전 부인을 놔두고 지금의 젊은 부인과 사는 것을 두고 한 얘기인 줄 알고 (바보!) 이렇게 썼었답니다.
라고요. 더 이상 할 말은 없답니다. 유 지사가 개인의 호화생활을 위해 공금으로 사저를 구입하고 도민의 안전을 담보로 소방헬기를 타고 젊은 여비서와 놀아난다? 황당무계요 어불성설입니다. 공명심도 있었겠고, DJ에 대한 충성심도 있었겠고, 본능적인 성취욕구나 정치적 야심도 있었겠지만, 어떤 동기에서이든 대통령경제고문으로서 경제회복을 위해, 도지사로서 도정발전을 위해 죽어라고 뛰어다녔다는 것만큼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환란 탈출과 경제회복에 적지 않은 공을 세웠다고 보는데... 이제 조금 나아지는 것 같으니까 네깐 놈 필요없다는 건가요? 저는 유 지사가 인간적으로 불쌍하게 느껴져서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가 느낄 참담함과 배신감을 생각하면서요. 그러나 유종근은 공인으로써 개인적 동정심만을 바랄 수는 없는 입장에 있습니다. 개혁을 하겠다면 더더욱이 자기관리도 철저히 하고, 자신의 문제점은 악착같이 개선해 나가야겠지요. 제 생각에 유 지사의 가장 큰 잘못이 무엇이냐 하면요(작은 실수나 잘못들은 차치하고), 무엇보다도 자만심이라고 봅니다. 자기의 정당성만 생각하고 남들의 시각은 폄하하는 태도와 자신의 능력에 대한 과신에서 나온 것이지요. "똥 묻은 개가 재 묻은 개 나무란다"고 저는 남 비판할 때 찔립니다. 하지만 내 형이니까 자아비판하는 심정으로 합니다. 하옇든 자만심때문에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모든 관련 사실을 (조금 당당하지 못한 것이 있다해도) 솔직하게 밝히고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 방향으로 가지 못한 것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와주려는 사람보다는 질시하고 깎아내리려는 사람이 더욱 많은 형국이 되어버렸지요. 언론계에 계신 분들이 특히 그랬던 것 같습니다. 제가 천리안에 처음 올린 글 이렇게 끝맺었답니다.
- 유종일 올림 ( kdiyji@chollian.net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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