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5.31.월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막강한 힘을 자랑하는 시민단체의 입장은 "약사의 임의조제를 완전히 차단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라는 것이랍니다. 즉, 시민단체에서도 의사에게서 약을 빼앗기만 하면 그만이고 약사에게서 진료행위를 없애야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모양입니다. 오호 통재라! 큰 상관이 없다기보다는 "밥그릇 싸움"이라는 얘기를 들어가며 여기에 매어 달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굳이 의사가 주장하지 않아도 약사들도 알아서 협조가 잘 될 사항이니까요. 그런데 첫째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어디서도 안 보이니, 둘째 문제에 치중을 해야 할 판국이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열이 좀 나니까 아스피린 한 알 사먹어야 하겠다고 하는 정도는 일반 국민들도 판단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피곤하니까 박카스나 드링크 하나 사 먹어야 겠다고 누구든지 판단하고 드링크를 스스로 골라서 사먹습니다. 드링크 하나 먹었다가 치명적인 TEN (독성 표피 괴사증) 이라는 병에 걸려서 사망하는 경우도 목격하게 되는 저희는 드링크를 좋아하지 않습니다만... 그래서 굳이 약국이 아니더라도 수퍼 같은 데서도 살 수가 있지요? 저는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만... 그래서 일반의약품은 우리 나라에서도 수퍼나 구멍가게에서도 팔게 하자고 의협은 주장하고 있습니다만, 강력한 약사회의 로비에 의하여(또, 병의원이 문 닫는 것은 걱정이 안되지만, 약국이 몽땅 문을 닫게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분들이 많아서인지) 무시되고 있습니다. (박카스 등 드링크 류가 우리 나라 제약업계의 매출 선두를 달리고 있지요? 이걸 수퍼에 넘겨주면 약국의 경영에 막대한 영향이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언론에 광고를 허용하느냐 여부를 가리기 위한 것이 주목적이었던 의약품 분류였습니다. 그런 목적의 의약품 분류도 제대로 된 것은 아닙니다. 우리 나라 좋은 나라에서 의약품 광고가 얼마나 많은지는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그게 국민 건강을 얼마나 해치는가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쓰는 사람이 없습니다. 전문지식이 없는 환자들이 "이 약 달라, 저 약 달라"고 하는 것은 국민 건강을 위해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피부과 분야만 하더라도, 언론매체 등에서 의약품 광고를 하도 해대니 환자들이 스스로 선택해서 바르는 약으로 인한 부작용의 경우는 부지기수입니다. 처음에는 광고 허용 여부를 가리는 분류가 어느 때부터인가 전문의약품(의사의 처방이 필요)과 일반의약품(의사 처방 불필요)으로 돌변하게 되었고, 전문의약품을 대상으로 의약분업을 한다는 식으로 점점 구체화되었던 것입니다. (일부 의사들은 의약분업 대상이 전문의약품이니 일반의약품은 그 대상이 아니다. 고로, 의사들도 일반의약품은 약사에게 처방전을 끊어줄 것이 아니라, 병원에서 직접 환자에게 줘도 된다고 해석을 하기도 했었지요. 논리적으로는 맞는 말인데...) 의협 측에서 기를 쓰고 대부분의 항생제와 경구용 스테로이드만은 전문의약품으로 분류하게 되었는데 (이거야 당연히, 두말 할 필요 없이 전문의약품이 되어야 함에도 한참 기를 쓰고 나서야 그리 되었다는 사실!!!), 당연히 되어야 할 일이 몹시 힘들게 이루어지니 다른 약들의 분류 문제는 일일이 신경 쓸 여유가 없어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엉망이었습니다. 그 후에 약사들이 조금씩 선심 쓰듯이 하나 둘씩 양보하는 미덕(?)을 발휘하였으나, 지금의 일반의약품은 그 원래 뜻대로의 일반의약품이 아닌 것이 부지기수입니다. 피부과 분야에서 문제가 되는 외용약(바르는 약)도 부작용의 예가 무수히 많은데도 불구하고, 거의 대부분의 피부외용제도 일반의약품으로 분류가 되었다가, 피부과 개원의 협의회에서 기를 쓰고(!!!) 스테로이드만은 재분류를 하기로 결정이 되었습니다. 재분류가 어떻게 될지는 두고봐야 알겠지만 그거 하나 막느라고 먹는 항히스타민제니 바르는 항생제, 바르는 항진균제 등은 전문의약품으로 막을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스테로이드는 그 강도에 따라서 여러 가지가 있는데, 가장 순한 약 (하이드로코티손 0.1% 정도) 은 일반의약품으로 해도 되겠지만, 그 이상의 강도를 가진 모든 스테로이드는 부작용의 소지가 많으므로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되어야 마땅하다는 것이 피부과 의사들의 생각입니다. 약국에서는 상표 붙은 약만 팔아야 한다는 게 법으로 정해져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약국에서 받아서 발랐다는 약의 이름을 환자나 보호자에게 물어보면 모르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상표가 버젓이 붙어있는 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그냥 피부약이라고 알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아예 약국이름만 써있고 상품명이 표시가 안 되어 있어서 그런 경우도 많습니다(그런 경우 대개의 환자들은 이 약국에서만 나오는 특효약이라고 굳게 믿고 있지요). 그러니 바르는 약을 엉뚱하게 줬다는 심증은 가도 물증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병에 어떤 약을 발라야 하는가 정확하게 판단을 내려야 치료를 할 수 있고, 불필요한 치료를 안 하게 되는데, 많은 피부병 환자들이 병원에서 의사의 진찰을 받기 전에 집에서 약을 바르다가 안되면 그때 옵니다. 스스로의 판단으로 집에 있는 상비약을 일단 발라보다가 오는 경우도 있고, 약국에 가서 약사의 권유로 구입한 약을 발라보다가 오기도 합니다. 무슨 약을 발랐느냐고 물어보면 약 이름을 기억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피부약을 발랐다고 대답을 하지요) 약 이름을 알게 되는 경우의 대다수는 언론매체에서 선전을 많이 하는 약품들이거나 소위 말하는 복합피부질환치료제 (무좀약, 항생제, 스테로이드의 3가지, 간혹은 두 가지가 합쳐진 짬뽕약)입니다. 그게 무엇을 의미할까요? 뭘 모르면서 덤빈다는 얘깁니다. 약국에 가장 많이 팔리는 연고가 무엇인가 확인해보세요. 잘 모르긴 하지만 복합치료제가 상당한 위치를 차지할 것입니다. 복합제제는 대개 중등도 이상의 강한 스테로이드가 함유되어 있어서, 하루 이틀 바르고 만다면 큰 문제가 아니겠지만, 자꾸 재발이 될 때마다 그런 약을 바르다보면 스테로이드의 오남용에 의한 여러 가지 부작용이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참조, 피부과 개원의 협의회, 제가 최근에 만든 홈페이지입니다) 약사의 진료행위가 자기 분수를 알고 건전한 범위 내에서 이루어진다면 기를 쓰고 말릴 이유가 없는데, 제게 오는 환자들을 통해서 알게 되는 약사들의 행태를 가만히 보면 첫째로 용감하다는 것이고 둘째가 무지하다는 것입니다. 무지는 용기와 통하지요? 무좀 말고도 다른 원인 때문에 손톱이 찌그러지는 경우가 많은데... 경구용 무좀약은 과거에 비하여 많이 발전하여 안전성과 효과면에서 많이 개선되었습니다만, 특이체질의 경우 독성 간염이 생기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무지에 의해 불필요한 치료를 함으로써 의료자원의 낭비를 초래(요새는 먹는 무좀약이 꽤 비쌉니다)하게 하는 것이고, 환자는 경제적 추가부담과 함께 적절한 치료를 받을 기회를 늦추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좀이 손발톱을 파고드는 경우, 손발톱 끝에서부터 차근차근 들어가는 게 아니라 옆으로 이미 깊숙이 뿌리까지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아서 바르는 약으로 치료가 되는 경우는 매우 초기의 극소수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무좀만 있다고 생각되면 무조건 주는지 이걸 바르다가 안 되어서 피부과에 오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무좀도 아닌데 이걸 바르라고 주는 경우도 많지요. 피부과 동료들의 얘기로도 그런 경우를 많이 보는 모양입니다. 피부과 개업 의사 중에 이 약을 쓰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이 약은 동물의 흉선(thymus)에서 추출한 성분으로 만든 약으로, 효능/효과의 어디를 보더라도 아토피 피부염에 사용하라고 허가된 제품이 아닙니다(따라서 아토피에 쓰고 의료보험 청구하면 삭감 당하겠지요). 흉선의 기능이 억제된 사람을 위해서 만든 약이고 면역자극, 면역 골수 조절 등의 효과가 있다고 되어있을 뿐... 아토피 피부염도 뭔가 면역계통의 이상에 의하여 생긴다는 이론이 있고, 일부 의학계에서 임상실험 차원의 연구를 시도하기는 하나,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치료방법으로 정착된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것을 환자 보호자에게 "체질개선제"라는 명목으로 팔아먹고 있습니다. 즉, 개업 약사들이 어느 의사들보다 앞서서 임상실험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단편적인 사실로 미루어 보더라도 약사들이 자기 분수를 알고 일을 하고 있다고는 믿기 어려운 것입니다. 제주도에서 송 동 훈 올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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