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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5.31.월

딴지역사고증팀 막내 이드니아콘체른



독자 제위께서는 혹 본지 논설우원중 한분인 안동헌씨를 기억 하시는지 몰겠다. 만약 기억 하신다믄 이분이 한댄스 하신다는 사실도 당근 아시리라 믿는다. 글타. 방년 32세의 노계라는 핸디캡과 삐그덕 거리는 부실한 몸을 가지고도, 나이트만 가면 기라성같은 십대들을 밀치고 스테이지 킹카로 군림하시는 자타가 공인하는 댄싱킹 이다.

근데 이분과 술자리를 함께 하다보면 문득 이러한 질문을 받곤 한다.



"무릇 너희가 댄스의 역사를 아느냐..."


감히 일개 소시민으로서 질문의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댄스란 70년대 디스코에 출발된 어쩌구..." 이따구 소리를 지껄였다간 당장 맥주잔으로 조디를 쌔려 맞는다. 글타. 댄스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의 댄스란 단순한 몸놀림이 아니라 끝없는 목마름의 학문이요 자아성찰의 매개물인 것이다.


작금. 전 세계의 가요계를 통틀어 댄스음악의 전성기 라 부르는데 반대할 뇬넘은 별로 없을 것이다. (있나? 있음 말구) 어느 방송의 가요프로를 봐도, 어느 라디오 채널을 틀어놔도 하나같이 댄스음악 일색이다.


하지만 최근들어 일각에서는 울나라 댄스음악의 완성도가 나날히 개판이 되어가고 있다는 주장을 한다. 음악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단순한 씨부리기 (전문용어로 랩), 여기저기서 주섬주섬 긁어모아 대충 샘플링하고 리믹스해서 새앨범 이랍시고 내놓는 표절과 기만행위, 그리고 립싱크.


글타. 이런 눈가림들이 작금의 울나라 가요계를 점점 암흑속으로 몰아넣어 가고 있다는 얘기다.


21세기 명랑사회 추구를 모토로 하는 본지가 이러한 현실을 빤히 보고도 "그게 몬데유?" 라믄서 평상시처럼 똥꼬털이나 다듬으며 명상에 잠겨 있을 수 엄따. 본지가 누군가. 딴지정신 으로 무장된 명랑전사들 아닌가. 아... 말해놓고도 가슴이 벅차서 똥꼬가 막 벌름거릴라고 한다.


해서 울나라 가요계가 자아비판 할 때까지, 질적인 향상을 가져 올때까지 울나라 가요계를 한바탕 씹어주려던 바로 그때. 본지 역사고증팀은 우연히 엄청난 특종 하나를 만나게 되었다.


본사 앞을 지나가던 엿장수 아자씨로부터 댄스음악의 시작이 바로 울나라에서 비롯 되었다는 사실을 기록해 놓은 서적이 경주 어딘가에 있다 라는 엄청난 제보를 접수한 본지 역사고증팀. 다른 사람들 같으면 헛소리로 일축하고 결코 믿지 않았겠지만, 워낙 기묘한 발굴을 수없이 해왔던 베테랑들 답게 바로 추적에 들어간 본지 역사고증팀은 각고의 노력 결과... 마침내 토함산 근처에서 가요고십(歌謠高十) 이라는 고서 한권을 발굴하는 기염을 토해 버렸다. 아.. 가요톱텐은 우리말에서 나온 것이었던 것이다.


조선시대 말 무렵에 집필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책에는 고려말 부터 시작된 울나라 판소리계의 발전사와 댄스의 시조로 보여지는 일명 핍합문화(乏合文化) 를 놀라울 정도로 자세하게 서술해 놓고 있으며 특히 조상들의 눈부신 활자문화를 뒷받침 해주는 중요 자료로서의 컬러화보까정 곁들여져 있어 발굴팀을 경악하게 하였다.


지금까정 발견된 그 어느 고서보다도 체계적이고 발전된 형태였던 것이다. 발견 당시의 벅찬 감격을 본지 역사고증팀 팀장으로부터 직접 들어보자.



"허걱!"


아...이 한마디로 모든 게 증명되었다. 지금부터 신혼 첫날 첨으로 신부 빤쓰 벗겨보는 신랑의 두근거리는 가슴을 품고...가요고십의 내용을 함 디비보도록 한다.





가요고십의 제일 첫 장을 넘기면 다음과 같은 머릿말이 일필휘지로 써갈겨져 있다.







나랏춤이 듕궉에 달아 서로 사맛디 아니할쎄 이런 전차로 어린 양아치들이 추고자 할 배 있어도 마땅히 제 기술을 발휘하지 못하노미 하니라. 내 이를 위하야 어엿삐 녀겨 새로 가요고십을 맹그노니 양아치들마다 수비 니겨 날로 쓰매 제대로 된 춤의 역사를 알리고져 할 따람이니라

머릿말만 읽어봐도 몬가 딱 감이 잡히지 않는가. 글타. 조선 말 나라를 온통 들쑤셔놓던 십대 양아치 도령들 (추잡하고() 차가우며() 배에 기름만 잔뜩 낀() 넘들이라 하여 오랭지족(汚冷脂族) 이라고도 칭하였다) 들의 폭동과 범죄를 미리 예방하기 위하여 나라에서 직접 제대로 된 춤문화를 널리 알리고 장려한 것이다. 과연 울조상들의 선견지명에는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가요고십의 내용은 크게 세단계로 나누어 진다.


龍八巨使傳記 西道令 愛水愛撫史 가 바로 그것이다. 제목만 보고 미리부터 넘 초조해하지 마시라. 어차피 다 갈켜준다.


우선 용팔거사전기라 제목 붙여진 첫번째 장을 스윽 함 읽어보면 고려시대 끝무렵 최고의 판소리꾼으로 알려졌던 조용팔 거사 의 일대기를 다룬 내용임을 쉽게 알수 있다. 내용이 워낙 방대하기땜시 극히 일부만 발췌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 ... 또한 용팔거사 께서 한번 추임새를 넣기 시작하면 뭇 아낙들이 고쟁이를 걷어올리고 목이 터져라 용팔거사님 을 외쳐 대었으며, 특히 거사님의 최고 때림곡 비나이다 의 도입 부분이 시작되면 혀를 깨물거나 거품을 물고 쓰러지며 간질증세를 보이는 아낙들도 속출하였다. 이에 조정에서는 용필거사님의 공연때마다 항시 궁중 어의들을 대기시키는 자애로움을 보이셨다.


용팔거사께서는 일생을 바쳐 돌아오소 송도항에 댕기머리 남산골의 표범 등 주옥같은 판소리 수십 편을 때려 내셨으며 광대 사상 최초로 동남아 순회공연을 돌고 오시는 기염을 토하셨다. 이에 조정에서는 거사님의 판소리를 머리에 대고 나팔을 불어대는듯 하다 하여 발라두(發喇頭) 라 극찬하고 광대출신 임에도 불구, 정2품의 관직을 내리셨다... >


위의 내용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용팔거사는 왕산악, 우륵과 함께 울나라 음악계의 거두 중 한사람이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겠으며 특히 조정의 관직을 받으며 발라두란 칭호를 받는 부분에서, 그가 바로 현재 발라드 음악의 효시였음을 알 수가 있다. 아.. 발라드까정 우리의 것이었다니...


허나, 아직 놀랄 일은 더 남아있다. 계속해서 두번째 단락인 서생원의 난 부분을 살펴보면 본격적인 울나라 음악계의 변화가 나타나게 된다.



< ...허나 판소리의 궁극에 도달하기 위한 자기최면의 수단으로 용팔거사께서 이웃 왜나라에서 건너온 대마초에 중독되어 판소리를 멀리하기 시작하자 판소리를 사랑하는 백성들의 원성이 날로 드높았다. 용팔거사의 발라두를 모방한 여러 소리꾼들이 강호에 출두 하였으나 거사의 맥을 제대로 잇지 못한 이들의 판소리는 귀밝은 백성들에게 인정받지 못하였다..



그러던 중 한양 출신의 현진용 이라는 도령과 그의 두 하인들이 현도령과 개구리들 (現道令 蛙蛙) 이라는 이름의 삼인조 광대패를 만들고 판소리계에 출사표를 던지게 되었다. 현도령과 개구리들은 놀랍게도 판소리 사상 최초의 사분의 일박자라는 빠른 창법을 구사하였으며 게다가 판소리 중간중간에 패기있는 춤사위를 집어넣는 당돌함을 보여 사대부집 아낙들의 가슴을 설레이게 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실험정신에도 불구하고 현도령과 개구리들의 음악은 기존 판소리계를 자지우지하던 노인네들로부터 븅신 취급을 받으며 운명을 달리 하셨다. 잠시나마 용필거사 이후의 혁명을 기대했던 백성들에겐 안타깝지 그지없는 일이었다. >








서생원과 아이들.
가운데 튀는옷 입은 애가 서생원


그리고 얼마후..


조정의 공개적 광대 등용문이었던 조정특급 시험에서 드디어 걸출한 광대패 놈들이 나타나게 되었으니 이들이 바로 서생원과 아이들 이다. "아이들이 원하는것은 뜨뜻한 말 한마디다" 라는 사회비판적 뜻을 담은 판소리 난알아요 (暖謁兒要) 를 들고 나온 이들은 침체 되어있던 고려말 판소리계에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과거 현도령보다 네박자는 더 빠른 추임새에 절도있고 과격한 춤사위들, 휘모리로 몰아가며 절정에 이르르는 막판 때리기. 이들의 출현은 가히 온 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고도 남음이 있었으니 이를 서생원의 난 이라 하였다.


장안의 도령들 사이에서는 서생원의 회오리 춤사위를 배워보려는 양아치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 하였으며 기존 판소리계의 노인네들도 드뎌 서생원과 아이들을 빼어난 꾀꼬리들의 무리 라 하여 대앵수(隊鶯秀) 가수 라는 칭호를 주기에 이르른다...


또한 난알아요 의 도입과 마지막 휘모리의 씨부리기 부분은 바람소리 처럼 빠르다 하여 랍(拉) 이라 불리웠고 이 랍을 잘하는 사람을 일컫어 랍허(拉噓) 라고 칭하게 되었으니...눈치 깠다시피 이것이 바로 현재 랩의 시초가 되는 부분이다.








두수의 마지막 공연모습.
공연후 왼쪽의 김송재 도령이 요절 하였다.


...이후 서생원과 아이들이 두번째 판소리 한마당을 준비하며 잠시동안 장판에서 모습을 감춘 사이 신인 판소리패 하나가 또다시 장안을 들끓게 하였다. 이들이 바로 두수(豆水) 다.


집안이 찢어지게 가난한 관계로 매일 콩물만 마시고 살았다 하여 두수라 이름 붙였다는 이 이인조 판소리패는 배가 고파 휘청거리며 다리를 꼬는 모습을 춤사위로 승화시킨 핍합(乏合) 춤을 주무기로 판소리계를 장악하여 갔다.


그리고 이 두수를 시작으로 나라의 광대문화는 완전히 대앵수와 랍, 핍합의 전성기에 접어들게 된다.


수많은 신인 판소리꾼들이 너도나도 대앵수와 핖합을 들고 강호에 출두 하였으며 기존의 나이 지긋한 발라두 계열 판소리꾼들 (신숭훈 옹, 김검모 옹 등) 까정 랍음악을 들고 깔짝대기 시작하였다. 바야흐르 새로운 판소리의 역사가 열린 것이다...


요기까지가 서생원의 난 부분의 대략적 줄거리되겠다. 본지 역사고증팀은 이 부분을 읽으며 치밀어 오르는 감격에 그만 으허엉 으허엉 울어버리고 말았다. 과연 우리네 조상들의 한계는 어디까지란 말인가. 화투와 똥침에 이어 댄스까정 울나라의 것이었다니...


허나, 벅찬 감동을 억누른 체 마지막 장인 애수애무사 부분을 해석해가던 고증팀은 순간 숨이 멎는 듯한 충격을 받아 버렸다. 왜일까. 궁금하지? 알려주마..








리수만 대감


...서생원과 아이들의 세번째 판소리 마당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광대문화도 따라 주춤하는듯 하였다.


바로 이때. 광대문화의 상업적 가치를 눈여겨보고 있던 조정의 리수만 대감은 조야에서 은거중이던 당대 최고의 베끼기 천재 유용진을 찾아가 합심하여 본격적인 연예사업을 벌이게 되었다.


리대감과 유용진은 애수애무 (愛水愛撫 - 사랑스럽게 어루만지니 사랑의 물이 흐르네) 라는 얄딱꾸리한 서당 하나를 지어놓은 뒤, 얼굴 반반하고 춤 잘추는 장안의 양아치들을 모아 본격적인 십대 판소리꾼들을 키우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그 첫작품으로 애초투이 (愛初透二) 라는 도령 오인조 소리꾼 패거리를 강호에 출두 시킨다.








애초투이의 공연장면


서생원 이후 이렇다 할 유희거리가 없어 고쟁이나 긁고있던 아낙들에게 꽃미남 패거리 애초투이는 당근 엄청난 인기를 누릴 수 밖에 없었다.


애초투이는 장군의 후예 뱀사탕 등의 판소리를 연달아 때려내며 침체된 판소리계에 다시금 활력을 불어 넣었고 마침내 과거 용팔거사 이후 최초로 조정으로부터 십대가수 라는 관직까정 받아내 버리는 쾌거를 이루었다.


하지만 리수만과 유용진이 간과한 사실 하나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서생원을 흠모했던 수많은 양아치 도령들 이었다.


도령들이 애초투이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한 애수애무 서당은 망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해서 어케하면 도령들까정 애수애무의 노예로 만들까 졸라 고심하던 유용진은 우연히 지나가던 빨래터에서 아름다운 3명의 아낙들을 발견, 즉시 그들을 훈련시켜 또다시 강호에 출두시키게 되니 이들이 바로 애세수(愛洗水) 이다.


애초투이와 애세수. 이 두 패거리는 나라의 판소리계를 완전히 들쑤셔 놓았다. 도령들은 애세수, 아낙들은 애초투이. 이제 이들에게 대적할 소리꾼은 존재 할 수조차 없게 되었으며 애수애무 서당은 명실공히 나라 최고의 양아치 양성학원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러나. 이때부터 사건은 시작 되었다. 이들에 대한 소문이 점차 널리 퍼지면서 이웃나라 왜에까지 흘러 들어가게 되자 왜의 사신들은 언제나처럼 베껴가려는 흑심을 품고 나라를 방문 하였다. 그러나 사신들은 이들의 판소리를 듣는 순간 갑자기 잔치상을 뒤집어 엎으며 행패를 부린다.


이유인즉슨 애초투이와 애세수의 판소리가 자신들의 나라, 즉 왜에서 베껴간 표절이라는 것이었다. 허나 유대감과 리수만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채 조까 한마디로 일축 하였고 이에 분기탱천한 왜의 사신들이 왜국에 전언하여 대대적인 문화 찬탈전을 벌이게 되니 이것이 바로 비극의 임진왜란 이다.


허나 불운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임진왜란이 종결된 후, 약해진 국력을 회복하기 위해 서구의 원조를 받기로 결심한 조정은 급히 프랑스의 사신들을 나라로 초대하였고 이들을 환영하기 위한 잔치상에서 애초투이와 애세수를 자랑스럽게 소개한다.


그러나 눈치빠른 프랑스 사신 하나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 저거 입만 벙긋거리고 있다! " 라고 외치자 일시에 잔치상은 아비규환이 되었고 그들이 판소리하던 무대를 뒤집어보니 놀랍게도 목소리 비슷한 하인들이 대신 판소리를 해주고 있었다는 사실이 발각 되었다.


허나 우리의 리수만.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기었다.



"저것은 신의 경지에 든 (入神) 목소리() 라 하여 립신구(入神口)라 불리우는 조선의 고유한 전통 중 하나다. 립신구도 판소리의 한 쟝르다"


이에 분노가 골수에 사무친 프랑스의 사신들이 즉각 본국에 조선이 우리를 갖고 놀았다 라고 보고하고 열받은 프랑스 본국이 나라에 대규모 군사침략을 벌이게 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병인양요 이다.


임진왜란과 병인양요. 이 두번의 커다란 전쟁을 치른뒤 국력은 날로 쇠퇴하여 갔다. 국력은 둘째치고 무엇보다 이웃나라에 쪽팔려서 얼굴을 들 수 없게 된 임금께서는 즉시 립신구나 표절과 같은 부끄러운 모습들을 절대 외부로 알려선 안된다 하여 쇄국정책을 펴시게 되었으니, 오호 통재라.. 나라가 개방을 물결을 타야할 시점에 쇄국을 하고 만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해서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나라의 대앵수, 랍, 핍합 문화는 백여년간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가요고십의 고증을 마치며 본지 역사고증팀은 한편으로는 자랑찬 우리의 문화의 폭넓음과 그 끝간 데를 알 수 없는 깊이에 가슴벅차면서도, 립신구와 표절로 우리의 문화전통이 소멸되어버린 과거를 오늘날의 교훈으로 삼지 못하고 여전히 립신구와 표절을 일삼는 우리 판소리계가 너무도 안타까워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백성들은 우리 전통의 맥을 올곧게 계승하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또 다시 립신구와 표절로 범벅된 판소리를 들어야만 하는가.


아... 씨바로소이다...



 


- 딴지역사고증팀 막내 이드니아콘체른
( edenia@netsgo.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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