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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5.31.월

딴지일보 부칸문제 전문 엽기기자 광 명 성



1940년 멕시코의 독방에서 스탈린이 보낸 암살자에 의해 손도끼로 처형당하기 직전, 한 시대를 풍미했던 러시아의 혁명가 트로츠키는 암살자를 응시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 그래도 인생은 아름답다 ! "


71회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수상작이자, 외국어영화로서는 아카데미 사상 최초로 남우주연상을 안겨 준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Life is beautiful)의 감독이자, 주연이었던 로베르토 베니니로 하여금 애초에 그 작품을 제작동기가 되었던 것이 위의 한마디 였다고 한다.


극한 상황에서의 인간이 삶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것이다. 유태인 학살이라는 인류사의 비극을 희극화했다고 베니니는 비난도 받았다. 도대체 유태인 학살을 가지고 어떻게 코메디를 할 수 있냐고. 스필버그의 쉰들러리스트와의 비교에 대해 그는 이렇게 답했다. 나는 코메디언이고 나만의 방식이 있다고..


부칸을 알리는 데 배달의 기수 방식이 있는가 하면, 딴지만의 방식도 있다. 앞으로의 부칸관련 기사를 보고 " 남북대치가 장난인 줄 아러.. 너 씨바 콩사탕 아냐.. 앗. 너거뜰 쇼비니스트에다가 변태아냐..  " 라고 항거할 인간들 나올 수 있겠다. 버트 그러나. 본지는 본지 나름의 철학으로, 본지 나름의 방식으로 이 문제에 접근한다. 함부로 오해하지 마시라. 


그 첫 번째로, 김혜영 이너뷰와 함께 사업차 북한을 방문한 경험이 풍부한 부칸문제전문기자의 기행문을 싣는다. 가히 이제껏 우리가 단 한 번도 접해보지 못했던 솔직 담백 진솔 쉑쉬 어두벤쳐 서스펜수 첩보틱 엽기 기행문이면서, 동시에 여행자의 감정변화와 내면세계를 섬세하고 아방가르드하게 그려낸 자기 고백적 에세이문학의 정수를 보여줄 작품이 되겠다.


자 함 보자.





그 어느 언론도 감히 생각을 몬했던 부칸관련 단독 심층 기획 취재기행. 이거 딴지가 해냈다. 그 동안 일부 방송이나 신문 등에서 부칸 아쉐이덜에게 돈 주고 애걸복걸하여 입수한 내용 또는 기껏 평양시내 정도에서 극히 제한된 상황을 취재한 내용이거나 아니면 국내 정보기관이나 서방의 신문에 났던 기사들을 짜집기 해서 보도해 오던 나태하고 안일한 관행을 이제 본지에서 뛰어넘어 진정한 민족 상호 이해의 가능성이 쪼매씩 열려뻔지게 된 것이다.


아... 딴지여 ! 그대 민족정론지여 ! 씨바여... !


본 부칸 관련 기사는 그 동안 제도언론에서 보도해왔던 보나마나 하고 들으나마나 한 내용은 과감히 지양하고 21세기 민족과제인 명랑통일을 위해 우선 전 세계에 분포되어 있는 딴지 독자덜에게 부칸에서 일어나고 있는 동포들의 먹고 싸고 하고.. 자는 등의 문제를 우선적으로 심층보도 할 것이다.


본 기사는 기행문 형식으로 연재 되겠다. 독자제위의 많은 구독바라고, 안해도 씨바 할수 엄으나 니 손해다. 왜? 전세계 어딜 뒤져도 이런 내용은 여기밖에 엄쓸테니까. 그리고 본기자에 대해 넘 자세히 알려고 하지마라. 다친다.


본기자 외국에서 졸라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자랑찬 교포다. 그 정도만 알아둬라. 아참 나 간첩아이다.





 첫번째 스토리 : 1997년 8월 2일 중국 북경공항..


 북경 공항에서


졸라 덥다. 책에서 배운대로 하믄 중국은 매우 추븐 나라라는데 왜 이리 더운거야 씨바. 엘리뇨가 여기도 왔나보다. 마음이 심란하다. 지금부터 나는 VIP 대기실을 찾아야 한다. 왜? 본기자 VIP기 따문이다. 넘 자세히 알려하지 마라. 다친다.


근데 씨바 아무리 찾아바도 북경공항내 에는 "고려항공" VIP 대기실이 엄써따. 이리 저리 공항 출국장소에서 와따가따 하는데 저쪽에 눈에 익은 태극마크, 코리안 에어 대합실이 보인다. 저기가서 물었다.


어?


본기자 눈을 의심했다. 그 곳은 울 나라의 대한항공과 부칸의 고려항공이 함께 사용하는 공동 VIP 대기실이었다. 야아~~ 남북통일이 이곳에서 먼저 돼가는구나... 본기자 생각으로는 이거야 말로 순수 민간차원의 남북통일의 효시가 아니었나 싶다.


바뜨 참 우끼는 것은 그 안에 있는 뇬넘들 모습이 왜 그리도 어색해 보였는지... 한 눈에도 남한출신 기업인으로 보이는 넘들... 통로를 사이에 두고 왼쪽으로 배치된 소파에 앉아 눈을 지그시 감고 있고, 또 왼쪽 옷깃에 김일성 뺏지 달고 있는 뇬넘들은 그 반대편에 앉거나 서서 공짜술이며 음료수며 연신 마셔대고 먹어가며 뭐라 떠들고 있고...


서로 쳐다보고 이야그하면 뭔가 내통하는 걸루 보일까바 서로 관심엄는 척 하는 기, 그리 서글퍼 보일 수가 엄써다. 씨바 50여년전만해도 우린 같은 나라에 살고 있었고, 지금도 말이 졸라 잘 통하는 같은 민족넘들이자나..


근데 뱅기 왜 아직 출발 안 하는거야 씨바...


예정대로 이면 13:00 에 출발 할 고려항공이 아직도 북경에 도착하지 않았댄다. 평양 - 북경간을 운항하는 고려항공의 비행 스케듈은 매주 2 회,



매주 화요일과 토요일
평양 09:00 출발 북경 11:00 도착 두시간 쉬고,
북경 13:00 출발 평양 15:00 도착


지금 시간이 오후 한시인데 아직 뱅기가 도착하지 않았다. 보도에 의하면 평양 순안공항에 안개가 심하여 뱅기가 그곳에서12시가 넘어서 출발 했땐다. 본기자 양주를 맥주잔 하나에 가득 따라 가지고 원샷! 해버려따.


옆에 않아 있던 부칸 아줌마가 눈이 똥그래진다. 씨바 자랑스러웠다. 대한남아의 기개가 이 정도야...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잠을 청했다. 여러가지 생각이 교차 되었다. 이 길을 가야하나... 어떻게 할까? 혹 돌아오지 못하는 뱅기를 타는 건 아닐까 ?


첨 보는 부칸 아쉐이덜은 어떻게 생겼을까 ? <남남북녀>라는 말은 맞는 말일까.. 등등.. 그러나 본기자는 딴지 부칸문제 전문 엽기기자로서의 임무를 다시 한번 되새기며 ( 그때는 딴지가 아직 탄생하지 않았지만 언젠가 탄생할끼란 예감에 의해 미리 임무를 수행하고 이써다. 넘 따지지 마라. ) 가슴을 뒤로 크게 제끼고 심호흡을 해따.


그리고 똥꼬에 힘을 꽈악 주었따. 똥꼬에 힘을 주니 그 힘이 꼬추에까지 전달이 되었다. 한번.. 두번.. 세번.. 그렇게 딱 세 번을 힘을 주었다. 혹시 부칸에 가서 꼬추를 사용할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슴 설레임과 함께... ( 아.. 은근하게 깔아주는 이 기교 넘치는 복선.. )


 뱅기를 타고


드뎌, 17:30분. 탑승안내 방송이 영어로 울려 퍼지고 남북통일되면 겪게 될 언어의 이질성문제를 미리 극복하고자 영어로 방송하는 갑다.. 활주로 저만치 서 있는 고려항공 디씨-10 뱅기의 트랩을 올라갔다. 마음이 자꾸 이상해따.



" 어쏘씹쑈~~ 방갑습네다~~ "


하는 중국 포크송에서 자주 듣던 하이 톤 쏘프라노 코먹은 소리를 하는 안내원뇬이 허리를 굽히면서 인사를 해따. 안내를 받아 자리로 가서 뱅기표 좌석번호를 확인하고 않으려는데...



흐악~~ 세상에 뭐 이렇게 이쁜 뇬이 다 이써 !!!







이 여승무원 동무 아니었다..
버트, 현재 구할 수 있는 사진
이 이거바께 엄따.. 이해해도.
.


증말이다. 딴지독자 뇬분덜 이글 읽고 존심 상할 지 모르겠지만 증말 본기자 그렇게 이쁜뇬 츠음 바따.


본기자를 자리에 안내한 스튜디어스 ? 스튜어디스? 모가 맞는지 모리겠다 씨바. 여하간 그 여승무원의 그리 찐하지 않은 화장이며 웃을 때 보이는 희고 가지런한 치열...


아.. 씨바.. 순국선열들의 말씀이 꼭 맞구나.. 남남북녀라더니..


본기자 특유의 꼬실레이션이 발동했다. 이걸 어떻게 시네루를 줘서 뿅 가게 만들 수 있을까.. 당면 연구과제였다.


바이더웨이, 왜 사회주의 하는 넘들 뱅기에 일등석 있는거야? 사회주의식 평등개념에는 뱅기고 모구 일등석 엄는거시 맞는거 아냐.



 정치이념이나 정치체제 등을 공부한 독자분덜 이 문제 필히 분석해서 본 기자에게 쌔리 주시기 바람다.


뱅기 안에서 흘러나오는 부칸의 노래소리... 내는 무신 소린지 하나도 이해할 수 엄써따. 워낙 수퍼하이 쏘푸라노 라서... 근데 내 뒤에서 어떤 아줌마의 이런 소리가 들려왔다.



" 이야아... 오랜만에 장군님 찬양가를 들으니 살것 같구나야 "



 말나온 김에 북한노래 몇 개 들려주고 싶지만 이거 국보법 위반되겠다. 졸라 안타깝다. 북한에서는 남한 노래가 유행이라는데 우린 왜 북한 노래 몬 듣나. 김일성 우짜고 저짜고 하는 노래를 듣고 우리가 헤까닥해서 북으로 넘어가고 김일성 찬양할까바. 조까라마이신이다. 북한 방송 빨랑 개방하라. 이 정부의 백대 과제중 하나 아닌가. 뭘 그리 질질 끌고 있는 것인가. 그런 건 차라리 개방하는 것이 훨 낫다. 그래야 호기심도 없어지지. 지난번 안중근 같은 북한영화 봐라 시청율이 얼만지. 씨바 다 풀어주면 보래도 안본다. 


뒤를 돌아다 보니 한 떼의 부칸식 개량한복을 입은 아줌마덜이 졸라 떠들며 와글와글 하고 이써따. 분홍색 치마, 노랑색 치마, 빨강색 치마.. 씨바 나는 왜 치마만 보이는 걸까..


그리고 또 희한했던 것은 뱅기 객실통로에 꽉 늘어선 화환들.. 부칸에는 화물도 뱅기 객실에 싣는구나... 그러고 보니, 북경공항 고려항공 카운터에 있던 그 많은 화환덜이 다 평양으로 가는 꽃 들이었구나..


뭐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안 야근데 부칸에서는 누구든지 해외에 다녀오거나 지방출장을 다녀올 때 반드시 부칸내 여기저기 서 있는 김일성 동상에 가서 참배를 해야 한다.


누구던지 마찬가지다. 부칸을 방문하는 외교사절 또한 예외가 엄따. 정주영 할배도 소 타고 부칸 갔을 때 그랬을꺼다.


뱅기타고 순안공항에 도착하여 평양으로 들어가는 사람덜 모두 평양의 입구에 있는 만수대에 가서 헌화하고 묵념해야 한다. 그래서 너도 나도 화환이 필요했던 거다.


김일성의 구리동상 (졸라 크다)은 단동에서 신의주로 들어가는 입구에도 이꼬 순안에서 평양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도 이따. 물론 판문점 넘어 들어가는 입구에도 당근 있따. 근데 졸라 깨는 실화가 있다. 몇 년 전에 신의주에 있는 동상 팔이 짤렸다. 어느 배 고픈 아쉐이덜이 몰래 짤라다가 팔아 먹었다. 김일성하믄 꺼뻑죽는 줄 아는 부칸에서도 씨바 배고프니까 그런 일이 있는기라. 그 후에 다시 용접해서 붙여 놓긴 했다..


뱅기 안에서 주는 기내식을 먹지 몬했다. 먹어 버리믄 다 싸 없앨까바서. 대신 룡성맥주를 한잔 써빙 받아 마셨다. 요즘 울나라에서 유행하는 순한 맥주.. 뭐 그런 맛이었다. 맥주를 마시니 아까 공항에서 스트레트 원샷 한 위스키와 짬뽕이 되어 가슴이 벌렁벌렁했다. 통로를 와따가따 하는 여 승무원의 얼굴을 볼 때마다 씨바.. 야릇한 생각이 들었다. 근대 왜 이뇬덜은 한 여름인데도 속에 어깨 난닝구를 입은거야..


흰색 브라우스 안으로 비치는 브래지어를 좀 봐얄텐데.. 어깨난닝구를 입어서 조또 안 보인다. 와따가따 하는 뇬의 엉덩이에 혹 팬티라인이 들어날까 유심히 바따. 팬티라인 또한 조또 안 보였다. 곤색 치마 아랫부분이 무릎에서 5 Cm 정도까지 내려오게 입었다.


본기자는 최후의 방법을 쓰기로 했다.



" 저... 이것 쫌 올려 주세요.."


내 노트북이 들어있는 가방을 뱅기 콤파트먼트 에 넣으려고 팔을 올린 그 뇬 의 겨드랑이 털을 보는데 성공해따. 아.. 보통사람들이라믄 다시 돌아올 수 있느냐 없느냐 그런 생각을 하게 마련인 이런 긴박한 상황에서도 이 지꺼리를 해내고 있는 본기자 스스로가 넘 자랑스러워따. 가끔은 나 자신이 가증스럽기까지 할 때도 있긴 하지만, 하여튼 우쨌든 감격스러웠다.



 잠깐, 부칸에서 해외로 운항하는 뱅기덜은 모두 당일치기 코스다. 예를 들면 울나라 뱅기가 외국에 도착하믄 일단 지정된 호텔루 가서 여장을 풀고 샤워하고.. 에.. 뭐 하여튼 담날 떠나는 게 보통이다. 근데 부칸은 당일치기. 부칸 뱅기가 당일치기로 운항을 하느건 이유가 다 있따.



부칸에 있는 노픈 쉐이덜... 탈북자 졸라 신경쓴다. 근데 어떻게 외국에서 잠을 재우냐. 그래서 모스크바를 뛰는 뱅기나 마카오를 뛰는 뱅기나 모두 두 시간 후에 돌아간다. 늦어도 간다. 또 아까 말한 부칸 여승무원뇬덜 졸라 이쁜 이유 있다.


갸덜 다 부칸의 노픈 아쉐이덜 자식이다. 공부 졸라 많이 했다. 영어 무쟈게 잘 한다. 부칸 노픈 넘덜... 예쁜 마누라 델구 산다. 그 나물에 그 밥이니 그 자식뇬은 얼마나 예쁘겠나.. 교양도 졸라 있다. 하여튼 킹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오줌이 졸라 마려웠다. 그래도 본기자는 참았다. 지금은 내 꼬추를 꺼낼때가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타이르며...


드뎌.. 기내방송이 나왔따. 잠시 후면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 한댄다. 뱅기가 고도를 나추었다. 랜딩기어를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탑승객 덜이 웅성웅성 한다. 나는 창문의 덮개를 열었다. 처음보는 분단된 조국의 산과 강을 보고자팠다. 근데... 암 것도 안 보인다. 창밖은 시커머타. 불빛도 엄써따.


옛날에 남한도 대구에 있는 동촌 뱅기장에는 뱅기가 이착륙 시에 창문덮개를 모두 닫으라는 지시방송이 했던 적이 있따. 뱅기장은 군사보호 시설이기 땜에 승객덜이 밖을 보믄 안된다는 이유였다. 나는 그때 핵교 댕길때 배운, 거 뭐시냐 부칸은 <전국토의 요새화>를 했기 땜에 하늘에서 못 보게 하는구나.. 그래서 아래가 쌔까맣구나.. 세상에 저렇게 크고 넓은 위장망이 다 있구나.. 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근데 그게 아니었따.


전기가 엄써따. 신문 방송에서 부칸의 전력난이 심각하다더니 사실인갑다. ( 전력난 문제 본 기자 담호에 세세히 까발기련다)


 평양 순안공항....


뱅기가 무사히 활주로에 랜딩하고 계류장으로 다가가 멈췄다. 밖을 내다 보았다. 많은 사람덜이 한복을 입고 마중을 나와 이써따. 손에 손에 꽃다발을 들고... 본기자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음~ 이미 본기자 온다는 소문이 부칸에 쫘악~ 퍼졌나 보군... 갑자기 똥꼬털이 긴장을 하며 일어선다. 나는 똥꼬에 다시 한 번 힘을 주었따. 트랩을 내려서자 평양 중앙방송이라는 스티거를 붙인 비됴카메라며 로동신문 완장을 찬 기자쉐이덜이 와서 우리 일행을 촬영해따.


아.. 씨바... 이거 내 얼굴 부칸 테레비에 나오는거 아냐? 서서히 꼬추가 오그라 들었다. 그날 밤 호텔에 들어가 테레비를 바도 내 얼굴 하나도 안 나왔따. 사실은 아까 말한 뱅기속의 한무리의 한복 입고 있던 뇬덜... 그 뇬덜 북송교포로 부칸에 와따가 멧십년 만에 고향방문하고 다시 부칸으로 돌아온 뇬 덜 이었다.


본기자 안내원의 안내에 따라 평양시내 고려호텔에 투숙을 했따. 고려호텔에 막 들어서려는데 그 안내원 하는말이



" 이 호텔이 림수경 이가 묶었던 호텔 이디요 "


오.. 림수경..


그 용감했던 아해..


림수경이 지금은 모하는지 모리겠따. 내도 조국 떠나온지 졸라 오래됐고.. 림수경이 지금은 모하고 이쓰까.. 갸덜이 표현하기로는 림수경 이가 통일의 꽃이라던데... 그 꽃 도대체 어케 되었는지...


그래서 우리 딴지가 이 이대한 일을 시작하는 거이기도 하다. 아무도 안해서..( 편집자주 : 임수경은 현재 뉴욕 코넬대에서 인권학 공부 중이라고 함. )


본 기자 이번 호 기사 여기서 마무리 할란다. 씨바 뭐 야그가 시잘될라 하다가 관두냐.. 하시는 분들 있으실 줄 안다. 니들이 참아라. 본기자 딴지에서 오래 기자생활 하고 잡다.


담 호에서는 "졸라 우끼는 부칸 가라오께와 마싸지 팔로" 야그가 연재되겠다. 주로 평양시와 대동강.. 을밀대... 그리고 먹고싸는 문제덜을 중심으로 디벼줄 계획이다. 쭈욱 보다보믄 전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엄는 남한 출신 본기자와 부칸 출신 아가씨와의 열애 장면도 나온다.

졸라~


딴지일보 부칸문제 전문 엽기기자
광 명 성 ( quickbrownfox@hanmail.net )





본지가 부칸관련 데이타 수집 중이라는 공지를 내자, 전세계의 동포들이 멜을 쎄려왔다. 그 중에서 가장 먼저 도착한 멜을 공개하믄서 1편을 마칠까 한다.  







97년초에 업무차 중국 연변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어느 날 호텔 관계자의 안내로 우리 일행은 연변에서 잘 나간다는 북한음식점에 갔었지요. 아마 상호가 금강산인가 그랬을 거예요.

우리 일행을 안내해준 그 분의 말에 따르면 그 음식점은 북한당국이 외화벌이수단으로 운영하는 전진기지였습니다. 음식을 만드는 사람에서부터 손님을 접대하는 안내원, 음식점 관리를 책임진 지배인 쯤에 해당하는 사람까지 모두 북한에서 파견된 사람들이라더군요.


음식은 그런대로 맛있는 편이었고 특히 오리지날 북한냉면은 정말 좋았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집을 찾는 주고객이 한국사람들이라는 점입니다. 우리 일행이 갔을 때도 남한사람들이 있는 걸 목격했습니다. 북한당국에서도 남한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테고 몇 가지 위험(음식점 종사자들의 사상적 오염 가능성 등..)을 무릅쓰고 그 곳을 운영해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그 집으로 흘러들어가는 외화때문이었겠지요.


이 집에서 가장 감명받았던 것은 우릴 접대한 소위 접대부 였습니다. 두 명의 젊은 여성 동무(당사자들 스스로 그렇게 부르는게 무난하다고 하더군요)가 서빙을 봤는데 둘 다 외모와 기지가 정말 excellent 했습니다. 솔직히 강남 어디 내놔도 충분한 경쟁력을 확보할 만한 재원이었습니다.


특히 우리의 박금옥 동무.


지금도 그녈 생각하면 가슴이 저려옵니다. 나이는 본인 말로 25~6세, 얼굴은 탤런트 뺨치는 수준에 몸매도 늘씬했습니다. 거기에 상당한 교육에서 우러나온 교양까지 몸에 배, 무슨 얘기든 막히는 법이 없었습니다. 물론 서로의 입장을 고려해 체제나 사상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손님이 거절할 수 없도록 잔을 권할 줄 알았을 뿐더러, 손님이 건네는 술의 양을 자기 맘대로 조절하는(결코 얄밉지 않게) 노하우도 익히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일에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다른 경로를 통해 들은 얘기론 거기서 일하기 위해서 몇 가지 자격을 갖추고 있어야한다고 합니다. 외모와 교양은 기본이고 거기에 더해 투철한 사상성이 입증돼야한다나요. 그 때문인지 몰라도 그녀는 행동 하나하나에 당당함이 담겨 있었습니다. 좌중을 편안히 해주면서도 결코 범접할 수 없도록 하는 기품이 느껴졌습니다.


3시간 남짓의 술자리에서 우리 일행과 그들은 금새 친해졌습니다. 처음 음식점에 들어갈 때만해도 혹시 북에 잡혀가는 거 아니냐는 우려가 마음 한 구석에 있었지만 흉금을 털어놓은 대화속에 마치 한 식구같은 느낌도 들었습니다. 우리 누이같은 사람들이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고생하는구나 하는 진정한 연민의 정이 솟아올랐습니다. 물론 그 돈은 전부 본국에 송금되는 거지요. 개인이 먹는 게 아니고.


술자리를 마감하며 우리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합창했습니다. 다같이 자리에서 일어나 어깨를 걸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힘차게. 가슴속에서 뭔가 뜨거운게 치밀어 오르는 것 같았습니다. 아.. 정말 통일을 해야하는구나. 이념이 어떻니, 체제가 어떻니 하는 것보다 같은 민족이 함께 사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래야 우리의 누이들이 굶주린 동포들을 위해 웃음을 파는 비극도 사라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지요.







왼쪽에서 세번째가 북한아저씨 되겠슴다..


한마디만 더. 89년 소련을 방문했을 때 오작교인가 하는 조선음식점에서 북한 사람들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뭐 하는 사람인지는 몰랐지만 어딘지 모르게 어색함이 느껴졌습니다.


저에 대한 경계심도 느껴졌구요. 물론 저도 그랬습니다. 혹시 잡아가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89년과 97년 사이에는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아직도 남북이 하나가 되기에 많은 장애물이 있지만 적어도 이 기간동안 이뤄진 변화만 보더라도 통일의 길이 멀기만 하지는 않다는 생각입니다..



- 어느 독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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