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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영 추천1 비추천0






1999.5.10.월
딴지 흘러간 세월 되살리기 운동본부 수습기자 박 준 영



철없던 시절이 있었다.

먹던 밥을 남기거나, 새옷 안 사준다고 투정 부리거나, 변신로봇 사달라고 떼쓸때...그럴때면 울 어머님 아버님들이 늘 하시는 말씀이 있었다.


"엄마 아빠 어렸을때는 말이지..."


요기까지만 들어도 뭔 얘기가 나올지 얼른 감잡고 알아서 기던 그때의 흑백사진들은 어느새 기억의 한구석에서 아스라히 떠오를락 말락한 추억거리가 되어 버렸다.

이기적이고 삭막한 세상풍파에 시달리고 지쳐 쓰러지고 싶을때면, 문득 그때를 떠올리며 혼자서 히죽히죽 웃곤 한다.


"훗. 맞아...그때는 이랬지..."


그 첫번째 이야기. 옛날 극장.





요즘은 대부분 개봉관에서 영화를 본다. 고속버스 터미널 앞이나 시골 읍내가 아니면 2편 동시상영관 (영진협 공식명칭 : 3류극장) 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그나마 있던 극장들도 모두 비됴영화 상영관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지금처럼 극장이 많지 않던 그 시절, 당시의 개봉관이 지금의 재개봉관 보다 수준이 떨어졌던 그때. 한 삼류극장을 우리집처럼 드나들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그 극장 문닫고 없으므로 (정확히 이야기하면 건물은 있는데 용도가 바뀌었다) 그냥 이름을 말해 버릴란다. 부산 서면에 위치한 <현대극장> 이다.








뽕 개봉당일 극장에 몰린 인파들


당시로서는 이보다 더 좋을순 엄따 였다. 전신인 <노동극장> (이름부터 벌써 극장 분위기가 물씬 풍겨온다) 을 전면 개보수한뒤 이름을 <현대극장>으로 개명하여, 혹시 개봉관으로 전환한건 아닌가 하고 본인의 똥꼬를 벌름거리게 만들었던 그 극장.

그러나 삼류 아니면 내 무덤에 가래침을 뱉아도 좋다 는 극장주의 자존심 하나로, 시설만은 뜯어고쳤지만 언제나 삼류만 고집하던 곳이 바로 <현대극장> 이었다.

당시 개봉관 요금이 2천원 (혹은 2천5백원) 할 때 언제나 천원 (학생은 7백원) 을 고수하여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았던 백수, 백조, 학생들을 생각해 주던 <현대극장>. (극장주는 지금은 어디서 뭘 하는지 혹시 이 글을 본다면 머리숙여 감사드린다. 졸라!) <현대극장>에 얽힌 사연은 너무나 많으나 기억용량의 한계로 몇 가지만 야그 할란다.

본인 중학교 다니던 당시, 단짝이던 승냥이는 매일 <현대극장> 앞을 지나서 학교로 오는 까닭에 극장프로가 바뀔 때마다 같이 가자며 본인 똥꼬를 살살 간질렀다. <현대극장> 매표구 바깥에는 미성년자 절대 관람 불가 라는 푯말이 걸려 있었는데 특히 절대는 시뻘건색으로 박혀 있었다. 버트 그 옆에는 역시 아크릴로 박아넣은 어른 1,000원, 학생 700원이라는 푯말도 함께 걸려 있었다...

"누나 학생 한 장여." 하며 꼬깃꼬깃 접은 1,000원 지폐 한 장을 슬그머니 밀어넣으면 푸르스름한 입장권 한 장과 300원을 거슬러준다. 당근 상영중인 영화는 미성년자 절대 관람 불가 이다. 정말 양심적인 극장주와 직원이 아닐 수 없었다. 성인영화 일지라도 학생에게는 절대 학생요금 이상을 요구하지 않았다. (요즘 이거 지켜지지 않는게 아쉽기만 하다. 관람불가 영화에 학생이 입장할때면 꼭 성인 요금을 받는다. 극장주는 각성하라!)







명랑사회 구현에 선구적 역할을 했다

그렇게 해서 극장안에 들어가면 1층, 2층, 3층 모두 영화를 상영하는데 여기서 극장주의 영화사랑 정신과 경영 마인드를 얘기하지 않을수 엄따.

당시 타 삼류극장은 스크린 하나에 2개의 영화를 번갈아 가며 돌리고 있었지만, <현대극장> 만은 "밴하와 개핵만이 21세기 명랑사회 구현한다" 는 극장이념을 모토로 과감하게 선진기법을 도입하여 각 층을 따로 구분, 독립된 영화를 상영하였다.

훗날 이런 극장들이 하나둘씩 들어서며 멀티플렉스 또는 복합 상영관 이라는 이름을 걸고 졸라 으시댔지만 이미 훨씬 전에 <현대극장>에서 도입했던 시스템인 것이다.

또한 극장주는 영화 편집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당시 1, 2층의 영화는 모두 각각 이었지만 절묘한 예술적 편집으로 두 영화의 상영시간이 일치하도록 하여 1층과 2층의 관객들이 각자 영화를 보고난 후 서로 자리를 맞바꿀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2층이 1층보다 좌석수가 부족하여 학생들보다 동작이 늣은 연로하신 백수님 (정부발표 공식명칭 : 산업예비군) 들은 뒤에 서서, 혹은 옆에 서서 뒤꿈치 들어가며 볼 수밖에 없었다. 이것 때문에 간혹 1층 영화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미리 빠져나가 2층 문앞에서 대기하는 넘들이 생기기도 했는데 이것은 마지막 엔딩 장면의 감동을 희석시키고 관람객들의 심리를 불안하게 만들어 부지불식간에 상호 쌈박질을 낳을 수 있는 악마적인 존재였다.

그래도 자리를 차지못한 넘들은 가지고 들어간 신문지를 깔고 스크린과 맨앞좌석 사이에 있는 공간에 쭈그리고 앉아 보곤 했는데 이 상태로 장시간 영화를 보고나면 고개가 과도하게 뒤로 젖혀저 뇌산소결핍증, 척추만곡증, 치질, 무좀등의 각종 질병등을 야기한다고 의학계에 널리 알려진 바 있다. 명랑사회구현을 몸소 실천하던 <현대극장>은 이 상황을 도저히 그냥 보고 있을 수 없어 또다시 새로운 경영기법을 도입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목욕탕 때밀이 의자 였다. 대중 목욕탕에서 때밀 때 깔고 앉는 의자를 준비해 놓고 늦게 올라와 좌석을 차지하지 못한 넘들이 조금이나마 편안히 볼 수 있도록 하는 극장주의 세심한 배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경영인, 영화인의 자세라 하지 않을수 엄따.

이어서 3층엘 올라가 보자. 이곳은 절반을 뚝 잘라서 반은 영화관이고 반은 휴게실로 되어있다. 이곳에서는 하루종일 비됴 영화만 상영한다. 다양한 관객층에게 좀더 나은 서비스를 목표로 이곳은 주로 무협영화 (그것도 씨리즈물 비됴) 만 상영하는데, 일부 매니아들은 이곳에서 하루종일 집중적인 영화분석을 하게 되며 비슷한 취향을 가진 넘들끼리 만나면 바로 옆의 휴게실에서 방금 보고난 영화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곤 했다. (간혹 열띤 토론으로 인하여 이성을 잃고 자기가 영화의 주인공인 된 듯한 착각에 빠져 방금 보고난 영화의 명장면을 직접 실천하다가 조용히 실려나가는 넘들도 있었다)

이곳에는 탁자와 소파를 비치해 놓고 계속적인 영화 관람으로 인한 안구마비, 두통, 구토, 설사 등에 대비하여 만화책과 썬데이 서울 등을 구비하여 놓고 쉬어가면서 영화를 관람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상 앞에서 야그한 모든 것이 단돈 700원으로 해결 되었으니 (지금의 물가로 생각하더라도 3000원 정도의 값어치다) 요즘의 현실로는 어림도 엄따. 물론 지금도 한 개의 건물 안에 몇 개의 영화를 상영하고, 커피숖 (업주연합 공식명칭 : 다방) 같은 것을 만들어 놓긴 하지만 각각의 과정에 따로 요금을 지불해야 하니 통탄할 일이다. 그 시절 <현대극장>은 진정한 명랑사회 구현이란 어떤것인가를 몸소 보여준 이 시대 산 역사라 할 만하다.

이에 본인은 문화부장관 및 산하기관 각 기관장에게 간곡히 부탁드린다. 스크린 쿼터만 유지한다고 우리영화가 사는 것은 아니다. 이젠 극장도 관객을 위한 진정한 서비스가 무엇인지 깨닫고 준비해야 할 때다. 영화 제작자, 배우, 감독은 물론이고 극장주들도. 관람료 빼돌릴 궁리만 하지말고 마음가짐부터 고쳐 먹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영화 지키기 및 명랑사회 구현은 요원하기만 하다. 졸라!

추신 : 승냥아, 혹시 이글에 나오는 승냥이가 니라고 생각되거든 연락바란다 

- 딴지 흘러간 세월 되살리기 운동본부 수습기자
박 준 영 ( park61@ktg.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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