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9.4.12.월
딴지 과학부 자문위원 이상원
우선, <제5원소>의 장면을 보면 우주선이 추락하여 몽땅 타버리고 팔목만 남습니다. 그러면, 이 팔목을 어떤 통에 넣고, 한 쪽에서 수프 같은 물질을 대량 공급합니다. 그리고 컴퓨터가 이 팔목에 있는 체세포의 유전자를 분석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따라 팔목의 잘린 부분부터 뼈대를 형성하고, 조직을 생성합니다. 몇 분 만에 사람이 만들어지고, 그녀는 혼란스러워하며 뭔가 말을 외칩니다. (울고 웃는 감정표현이나 고함이 아니라, 발성기관을 사용하는 언어입니다.)
사실, 이 장면은 정말 아름다운 장면입니다. 모든 과학은 그 시대의 한계가 있습니다.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야 말로 과학을 과학답게 하는 것입니다. 현대의 과학기술에 비추어 미래문명을 시비거는 게 무리라고들 합니다만, 이 경우에서는 사실은 뤽베송이 만들어낸 창조적 이미지를 기술과학의 담론으로 시비거는 짓으로 봐야 하겠죠. 다 재미있자고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보자면... 이 경우의 복제는 개체복제입니다. 성숙한 개체의 체세포를 이용해 성숙한 동일인을 재생하는 것입니다. 이 부분이 명확히 되어야 하는데, 돌리라든가 뭐 그런 체세포복제 동물의 예와 이 영화의 예는 전혀 다른 과정입니다.
체세포 복제가 불가능하다는 기사 때문에, 체세포 복제가 된다, 그 예가 돌리(Dolly)다,,, 뭐 이런 항의가 많았습니다. 돌리는 체세포 복제로 만든 것입니다. 하지만 영화 속의 과정과는 전혀 다른 경우입니다.
초기 체세포 복제 시도는 수정 9일째의 배아세포를 이용해 이루어졌습니다. 이 시기의 배아세포는 기능 분화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어느 조직 으로든 분화할 수 있습니다. 런던의 연구팀은 이 배아를 어미 양의 자궁에서 떼어 내 배양접시에 배양하여 그 세포를 수천 개로 증식시켰습니다. 동시에 다른 한 마리의 암컷 양에 호르몬 주사를 놓아 난소를 과활성화시켜 수많은 난자를 만들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 난자에서 핵을 제거했습니다. 즉, 개체발생에 필요한 세포내 장비들을 그대로 남겨둔 채 유전 정보만을 제거한 것입니다. 여기에 앞서 배양한 배아세포의 핵을 난자에 집어넣고 (핵치환) 전류 펄스로 세포를 융합시켰습니다. 그리고 이 융합세포를 암컷 양의 자궁에 착상시켰습니다. 배아는 자궁 내에서 발생을 계속해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총 250개의 융합세포 중 5마리의 새끼양이 출생시까지 생존할 수 있었고 3마리는 생후 10일 이내 사망했습니다. (97년 5월)
이 복제는 기능분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배아세포를 사용했기에 가능했습니다. 이미 신경, 골격, 근육 등으로 조직분화가 이루어진 체세포는 증식시켜 보았자 거대한 신경다발이나 냉장고만한 근육뭉치가 될 뿐입니다. 이 핵을 난자에 이식시켜도 이로부터 개체발생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로슬린 연구소는 체세포의 분화가 DNA 사슬의 메틸화 양식에 기인한다는 점에 착안했습니다. 그래서 성숙한 양의 유선 체세포의 메틸화를 제거했습니다. 그러면 그동안 이루어진 성장과 분화의 결과물이 모두 제거된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이 백치 체세포는 배아세포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백치 체세포를 가지고 위의 핵치환, 세포 융합, 자궁내 이식 및 발육을 시도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양이 돌리였습니다.
정리하자면, 현재의 체세포 복제란 것은, 체세포를 꺼내, 분화과정에서 이루어진 기억들을 모두 제거하여 백치세포를 만들고, 어느 다른 난자에 집어넣어 인공 수정란을 만들고, 이걸 자궁 속에서 발육시켜 출생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태어나는 아기는 체세포를 제공한 공여자와는 독립된 개체입니다. 아기는 보통 아기와 마찬가지로 발육하고 교육받고 성장해야 합니다. 즉, 생식세포가 아니라 체세포를 이용했을 뿐 2세를 낳아 기르는 것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영화의 내용은 이게 아니었지요. 죽은 개체의 체세포를 가지고 동일한 개체를 되살려 내는 것이었지요. 과거의 기억과 성장정보를 그대로 유지하는... 이거는 체세포가 아니라 생식세포를 사용하다고 해도 (현재의 과학기술의 관점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미래에는 가능하지 않겠느냐? 이렇게 묻기 이전에 영화인의 창조적 상상력의 산물을 현재의 과학적 담론으로 시비거는 게 맞느냐 라고 물어야 하겠죠. 근데 그걸 해보자는 게 딴지가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개중에는 체세포 복제를 이루어 냈다는 것은 현대 생명과학의 훌륭한 업적이다, 이걸로 생식의 개념도 달라질 수 있다 뭐 이런 의미를 강조하시는 분도 계셨습니다. 동의합니다. 동시에 엽기적입니다. 영화보다도 현실이 더욱 엽기적입니다. 태아를 끄집어내 세포를 증식시켜, 난자를 대량생산해 핵을 파괴하고 전류로 융합을 시켜 다시 자궁 내에 넣어 발육시킨다.
분명한 것은, 현대 기술사회의 화두는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낸 것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 딴지 과학부 자문위원 이상원(abendrot@med2.kyungp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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