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최가박당 추천0 비추천0






1999.3.29.월

딴지 전천후 기자 최가박당



지난 1997년 예술종합학교 미술원이 첫 신입생을 뽑는 실기시험 현장에서 일어난 일이다. 한 예술한다는 어린 미술학도들이 미술연필 들고나와 수년간 갈고 닦은 뎃생 실력을 펼쳐보이고자 준비하고 있었다. 아그립빠든 쥴리앙이든 어느 넘이 나와도 좋다. 학원에서 집에서 신물이 나게 그려댄 석고상들, 어느 각도에서 그리라고 해도 척척 그려낼 자신이 있는 거다.

아~~ 근데 이게 웬 날벼락이란 말인가. 시험감독은 이 불쌍한 것들을 야외로 데리고 나가더니 살아서 펄쩍펄쩍 뛰어 다니는 염소를 스케치하라는 거였다. 침침한 미술실에서 기름냄새 뒤집어써가며, 싸늘하게 박제된 로마귀신들만 그려온 주먹구구 어린 미술학도들에게 이 시험은 그야말로 가혹한 장난이었다. 씨바, 움직이는 동물을 그려본 적이 있어야지.

자연의 아름다움을 사심없이 스케치북에 옮겨왔던 순수한 예술적 정열의 소유자나, 그 어떤 테스트에도 자신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는 천재가 아니면 통과할 수 없었던, 실로 통쾌한 시험이었다고 말하지 아니 할 수 없으리라.

이 땅의 진정한 예술사(예술종합학교에서 수여하는 학사학위명칭)를 키워내고자 출범한 한국예술종합학교(종합예술학교가 아니다. 그렇게 되면 바그너학교가 된다. 이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조차 헷갈리고 있는데, 느그들 반성해야 한다. 그딴 식으로 무식하게 구니까 궁민의 정부에서 우습게 보는 거다)는 우끼고 앉아있는 한국예술계의 똥꼬에 대고 강력한 똥침을 날려보려했던 딴지철학의 선구자였다.

하지만, 최근 궁민의 정부가 내놓은 정부기관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이 학교는 개교한 지 10년도 안 되어 정리해고될 판이다. 씨바 느그가 한 게 모냐? 아이엠에프 시대에 배고파죽겠는데 예술은 무슨 얼어죽을 예술이냐는 거다.

궁민의 정부 김데중 선상님은 그 날카로운 정치적 식견에도 불구하고 <쥐라기 공원> 한 편의 흥행수익이 자동차 100만대 수출하는 효과와 맞먹는다는 대사를 밥먹듯이 외쳐대며 자신의 단세포적인 예술적 식견을 만천하에 선전하고 다닌 바 있다. 그는 취임사에서도 이 해묵은 대사를 문화관련 표어로 제창하는 똥고집을 보였는데, 문화예술을 장사밑천으로나 보는 궁민의 정부의 만행은 이 때부터 예고되었던 거다. 무식은 유죄다. 김데중의 말초적인 예술적 식견은 유죄다. 그런데 그 유죄의 십자가를 엉뚱하게도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짊어지게 된 거다.

근대적인 의미의 서구 예술의 역사는 길게 잡아 250년이다. 그러나 그들은 250년의 길지 않은 역사를 통해 인간의 창조성과 상상력에 대한 고도의 실험을 해냈다. 이렇게 축적된 창조성과 상상력이 자본주의와 손잡은 결과가 문화산업이다. 문화산업이라는 용어가 애초에 경멸조로 만들어진 용어라는 건 차치하고라도 서구 문화산업의 배후에는 250년간의 예술적 실험이 있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의 입장에서 서구 문화산업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음의 두 가지 가운데 하나여야 한다.

첫째, 서구는 예술적 전통이 허술했기 때문에 문화산업이라는 야만적인 메카니즘에 점령당하고 말았다. 그러니 우리는 서구식 모델을 싹 무시하고 우리 식의 예술적 전통을 계승하고 새롭게 재해석해야 한다고 화끈하게 주체적으로 바라보든가,

둘째, 그래도 문화산업은 돈 벌어줘서 좋은 거니까, 서구에서 250년 걸린 거 가급적이면 빠른 시간에 따라잡을 수 있도록 최대한의 투자를 하자고 하든가 말이다. 여기서 투자라 함은 서구예술 250년사를 추월할 수 있는 예술적 인재에 대한 투자일 것임은 당근이다.

근데 지금 궁민의 정부는 서구 문화산업을 어느 식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그들은 택도없는 제3의 길을 택한다. 예술과 문화에 관한 한 아메바 단세포 분자들인 이들의 눈에 문화산업은 조폐공사나 다름없다. 기냥 돈찍어내는 기계인 거다. 예술이고 나발이고 투자고 뭐고 관심없고 그저 돈이나 뱉어내라는 도둑놈 심보인 거다.

고3, 아니 고2 때부터 수능대비랍시고 미술, 음악 수업을 교실에서 추방시키는 플라톤 공화국 대한민국에서 도대체 어떻게 예술적 상상력이 피어날 거라고 기대하는가. 예술종합학교는 서구 선진국의 음악학교 시스템을 모델로 어린 예술인재들을 조기에 입학시켜 예술적 상상력을 개발시키고 있다. 그들에게 투자되는 돈이 그렇게 아까운가. 씨앗뿌리는 데 드는 돈이 그리 아깝거든 열매를 거두려 하질 말아야지.

우리 나라가 죽었다 깨나도 <쥐라기 공원>을 만들 수 없는 것은 자본이라고 하는 하드웨어적 요소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러한 거대한 프로젝트를 상상해내고 창조해내는 소프트웨어 생산 시스템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소프트웨어 생산 시스템이 다름 아닌 문화적 인프라이다.

예술종합학교는 인문학적인 비전을 가지고 순수예술과 실용예술 사이, 서구예술과 전통예술 사이의 벽을 허무는 작업을 통해 총체적인 예술의 미래, 보다 구체적으로는 대한민국의 문화적인 인프라의 구축을 위해 선구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예술종합학교의 운영이 방만했다면 감사를 통해 지적하고 감시할 일이지, 문화적 인프라 구축을 위한 이들의 노력에 대한 투자를 포기하는 극단적인 처방을 내릴 일은 아니었다. 21세기는 문화의 시대라는 따위의 구호를 떠들어대지 말든지...

문화적 인프라가 구축되기 위해서는 순수예술분야가 튼튼하게 뒷받침되어야 한다. 서구 문화산업의 배후에 고도의 순수예술 실험들이 있었다는 걸 무시해선 안 된다. 순수예술의 발전없이 응용예술의 발전이 있을 수 없다. 기초수학과 물리학의 성과가 없이 응용과학의 발전이 있을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순수예술 분야는 한마디로 조가튼 분야라고 보면 된다. 이 색휘들은 순전히 지네끼리 돈놓고 돈먹기 하는 배부른 집단들이다. 딴지 독자들 가운데, 몇 다리 건너서 아는 사람이 무대에 서는 통에 초대권 얻어 모처럼 양복 빼입고 가 우아한 객석에서 한숨 꺾고 오는 거 빼고 국내 연주인의 콘서트에 돈주고 입장해본 적 있는 넘 있으면 나와보라.

거 이상하지 않는가? 맨날 초대권만 뿌려대는 대한민국의 음악가들은 도대체 뭘 먹고 사는지 말이다. 유료관객이라곤 손가락으로 셀 정도인 연주회를, 제 돈으로 대관료 내고 팜플렛 찍고 하면서 어떻게 수시로 열어대느냐 말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든든한 후원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후원자들이란 다름아닌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지네 제자들, 더 정확히는 그들의 잘난 부모님들이다. 이들의 주수입원은 어린 제자들의 개인레슨에 있기 때문이다. 독주회 따위는 자기 몸값, 즉 레슨 수가를 올리기 위한 방편일 뿐이다. 순수음악의 경우, 돈은 음악한다고 젠 체하는 넘뇬들의 훼밀리 속에서 아주 순수하게 리사이클되는 거다. 자본주의 경제학의 기본 원리를 알고싶은 사람들은 이들을 모델로 삼아도 좋을 게다. 지내들끼리 주고받고 해도 수요 공급의 곡선이 기맥히게 맞아돌아간다. 완전히 돌아버린다.

순수미술의 경우도 다를 게 없다. 국전 심사위원을 흥대에서 장악하면 그 해는 홍대가 싹쓸이, 설대에서 장악하면 그 해는 설대가 싹쓸이, 이건 야쿠자 마피아가 따로 없다. 국전 입상하면 먹고사는 거 보장된다. 개인전 열고 비평가 한 넘 잡아서 각종 미사여구(이 쪽 세계에서는 이를 주례사라고 한다)로 도배한 팜플렛 폼나게 찍어내면 장사 끝이다.

예술종합학교의 민영화는 곧바로 이 학교의 위상약화로 이어져 무엇보다도 일부 명문대의 주먹구구식 예술교육시스템을 승인해주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 뻔하다. 예술종합학교는 결국 예술종합학원으로 전락할 거고 설대, 흥대는 승승장구 자신의 훼밀리를 탄탄하게 구축하여 지네끼리 돌고도는 돈으로 잘먹고 잘살 거다. 한국의 순수예술계가 지네끼리의 자본순환시스템을 구축해놓은 채로 지네들만의 성안에서 유유자적할 수 있도록 방치되는 한 문화 인프라는 영원히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보면 틀림없다.

굳이 국립학교를 손봐야 겠다면 그 구조조정에 있어서 최1순위가 설대임은 삼척동자도 안다. 설대는 한국의 교육을 황폐화시킨 주범인 데다가 한국 최고의 수재들을 수만 명씩 독점으로 데려가고도 세계 100위권 안에도 못 드는 대한민국 콤플렉스 제조기이기 때문이다. 국가경쟁력에 하등의 도움이 안 되는 이 임포텐스 무기력증 학교에 대한 개혁논의는 슬그머니 집어넣고는, 학생과 제자들의 창조적 열기가 그 결실을 눈앞에 두고 있는 예술종합학교에 칼을 대는 저의가 뭔가.

배고픈 아이엠에프 시대, 자존심 잃은 대한궁민의 정부. 어디 갈 때까지 가보자. 예술이고 문화고 돈 안 되는 정신적 가치가 있거든 모조리 정리해고하라 !
 






- 딴지 전천후 기자 최가박당(hoggenug@netsgo.com)

Profile
딴지일보 공식 계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