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後조선 三國시대

1999-0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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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2.15.월

딴지 정치역사부



1999년.. 우리는 당시를 후조선 삼국시대라 부른다.

1950년 625 大亂 의 발발로 10세기 후삼국 이후 최초로 한반도가 남북으로 갈린 후, 남쪽에서는 戰時 연합군이었던 미군에게, 아직도 되찾지 못하고 있는 수도 한양의 노른자위 땅 용산 일대를 그들의 병기창과 막사로 내주고 그 영향력 하에서 북진정책과 친미정책을 외교의 기본방향으로 하는 이씨 왕조가 탄생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씨 왕조는 왜구에 부역했던 탐관오리와 순사들을 행정공백 등을 우려해 그대로 등용하는 등 새로운 시대를 열어나가고 당시의 정치, 사회적 혼란을 해결해 내기엔 총체적 역량이 부족했다.


후세의 사가들은 이씨 왕조가 개혁허리세력, 즉 가운데에서 받쳐주며 개혁을 밀고나갈 세력을 결집시키지 못하고 결국 실패하게 되는 원인을 다음과 같이 들고 있다.



첫째, 개혁세력을 조직할 발기인이 없었다.
둘째, 조직의 근간을 이루는 정관이 없었다.
셋째, 국가의 난관을 극복할 힘이 없었다.
넷째, 부패한 관리를 사정할 정력이 없었다.


귀두가 주목되는 해석이다.


이러한 혼란을 틈타 변방의 방위 임무를 띠고 38 산성을 지켜야 했던 빡정히 장수가 여의도회군을 하면서 무신의 난을 일으키게 되니, 이것이 바로 우리네 20세기 후반 역사를 그 후 수 십년 간 뒤틀어 놓을 516반정이다.


(1961년 5.16 당일 새벽 516반정 성공방송 - 케이비에수  )







빡종마왕 즉위식


반정초기 정권이양 우짜고 저짜고 씨불였던 그는 속았지 요넘들아 하믄서, 왕에 즉위한 후 자신에게 반기를 드는 학자, 서생과 지방토호들을 탄압, 투옥시키기 시작한다.


또한 호남의 양인출신 토호 김데중이 자신에게 정면으로 도전하자,


호남과 영남 서민들을 서로 이간질하여 대립 반목하게 만들어 정적을 견제하고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고자 東西차별 山城 을 영남과 호남 사이 축성하기에 이르니, 빡종을 태조로 하는 후조선 삼국시대의 서막이 바로 그렇게 열리게 되는 것이다.



" 차령 이남과 공주 금강 이외의 지역은 산형과 지세가 모두 배역하는 형세이며 인심 또한 그러하니 이들을 벼슬자리에 두지 말라"


고 한, 후세 사가들에 의해 위작일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판명되었을 뿐 아니라 그 해석도 극히 왜곡된, 천년 전 고려 왕건의 훈요십조까지 되살려내 전국 서당에서 가르치게 함으로써 백성들에게 동서차별 산성 축성의 정당성을 세뇌시키고, 특정지역 왕따의 심리적 면죄부를 제공하니,


오호 통재라 무려 천년만에... 아무런 전쟁도 없이 그저 개인의 권력욕때문에 나라를 동강내고 백성들의 가슴에 말뚝을 박아 철조망을 치게 만드니 빡종마왕, 그가 <새고을운동>으로 걷어낸 기와장과 씌운 슬레이트 지붕이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반만년 한반도의 역사 앞에서는 대역죄인, 역사전문용어로는 씨박색히라 부르지 않을 수 없음이도다.


그러나, 영원할 것 같던 빡종마왕의 철권통치는 매일밤 기생을 끼고 바구리(婆九理)를 틀며 민족 정자(精子)의 나아갈 바와 유신세습체제를 고민하던 아방궁에서, 자기는 왜 달다리(達多理)만 치게 하냐며 분개하던 그의 오른팔 의금부장에 의해 시해되면서 끝장이 난다.


이제 백성들은 봄이 오나부다 했다...


그러나 총칼을 앞세우고 등장한 대머리 씨바장수, 존두환이 東西차별 산성마루에 올라 호남을 내려다보며 같은 민족에게 518개의 독화살을 퍼부으며 왕위를 찬탈하고 무인정권을 재수립하고, 산성 앞에 군사 철조망까지 쳐버렸으니 아... 東西차별 산성의 벽은 오히려 더욱 높아지고 튼튼해져 가기만 한다.


씨바장수 존이



" 투철한 국가관과 불굴의 의지, 비리를 보고선 잠시도 참지를 못하는 불같은 성품과 책임감, 그러면서도 아랫사람에겐 한없이 자상한 오늘의 지도자적 자질"


을 지니고


"외유내강이랄까 자상하고 섬세하며 줏대가 있으나 인정미가 많아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 주는 분"







1980. 8. 23 좃선순보 -
존두환 똥구녕을 졸라 핥고 있다.


이라고 콧구녕에서 국수 빠지는 소리하는 용비어천가를 조디 째지게 나불거렸던 좃선순보의 탄탄대로 성장일로의 스타트라인도 바로 그 즈음이니, 민족살인자와 서슴없이 결탁한 좃선을 우째 사파언론(邪派言論)라 않을 수 있으리요.


씨바장수 존과 도의결의했던 무인정권의 후계자 너태우 물장수 대에 이르러 무인정권이 마침내 끝이 나고, 백성들이 옹립한 기명사미 문민왕조가 들어서게 되니 삼국 중 남쪽 二國이 통일될 절호의 찬스가 오게 된다.


더구나 후궁들이 기거하던 안가를 철거하는 등 문민왕조의 역사바로눕히기는 꽤 올바른 방향으로 꼴리는 듯했다.


그러나...


무인정권의 막을 내리는 역사적 역할을 담당했던 기명사미의 문민왕조는 지역차별 산성을 단 한조각도 헐어내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간신 김유난이 새로 개발한 "우리가 남이가"표 시멘또를 갈라진 산성 틈틈이에 쳐발라 자연풍화로 그나마 생겨났던 작은 틈샤까지도 막아버렸으며, " 울나라의 빤쭈멘탈은 조또 질김다 "라고 나불거리는 것으로 지 할일 다했다고 생각했던 환관 강갱식에게 나라의 곳간 열쇠를 맡겨 결국 깡다귀장수가 이끄는 암에푸국의 전면공격에 나라의 창고까지 거덜내고 만다.


특히 기명사미왕은 암에푸국 공격을 막아내지 못한 것에 대해선 "내는 몰랐다! 모리는 것도 죄냐 !"라는 졸라 훌륭한 국가경영철학을 내세우니 후세의 사가들은 그를 "사오정파의 거두이자 울나라 반만년 역사상 다시는 나올 수 없는 수준의 초절정 덩신왕"이라는 긴 공식명칭으로 부르게 되고, 결국 뒤를 이어 왕권을 잡은 이가 호남지방의 토호 김데중이었다.


빡종 이래로 무인정권에 의해 끊임없이 핍박받았으며 동과 서를 가르고 있던 東西차별의 높은 산성을 넘지 못하고 중원진출에 번번히 실패했던 그는 거덜난 나라의 창고를 다시 채워달라는 백성들의 염원을 등에 업고 왕권도전 실로 30여년만에 청와궁궐에 입성을 하게된다. 국민왕조의 출발이다.


후조선 삼국시대 최초의 호남출신 왕조인 국민왕조는 그동안 높히 둘러 쳐진 체 나라를 갈라놓았던 東西차별 산성을 헐어내 우리끼리 통일을 이룩해 낼 수 있으리란 기대가 컸다.







명사미는 아직도 지가 왕인줄 안다.


그러나 무려 반세기 동안 우리를 갈라놓았던 산성의 견고함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렇다고 국민왕조가 새로 선포한 포고령으로 산성이 해체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제는 그 벽돌 한장 한장이 사람들 마음 속에까지 쌓여있었기 때문이었다.


국민왕조 제 1의 역사적 사명은 東西차별 산성의 해체에 있으며, 만약 국민왕조가 실패할 경우 그 벽은 이제 앞으로 수백년을 갈 지도 모른다. 국민왕조가 결국 산성해체의 사명을 다하지 못 할 경우 역사는 국민왕조를 졸라 준엄하게 조 까리라.


이런 상황에서 마산과 구미에서 권력투쟁에서 밀려난 지방호족세력들이 암에푸국의 공격에 피폐해진 지역경제를 볼모로 민심을 선동하여 <학익진>을 펼치듯 <지역감정 진>의 파상공세를 펼치게 된다. 통탄할 노릇이었다.


도탄에 빠진 백성들의 민생고 해결에는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고, 암에푸 전란에 대한 지역 백성들의 분노를 교묘히 자신들의 정적을 향해 분출케 하는 사파(邪派) 최악의 비기 <지역감정 진>...


당하게 되면 "저쪽 굴뚝에만 연기가 난다"며 환각증세를 일으키고, "우리만 죽이려한다"며 피해망상에 시달리며, 평생 뽑히지 않는 보이지 않는 작은 칼날들이 가슴에 꽂혀 피를 토할 뿐 아니라, 이성이 마비되어 " 우리 단체로 한쪽 다리 들고 벽에다 오줌을 깔기자! " 하는 수준의 선동에도 앞뒤 안가리고 빤쭈를 까게 되며, 죽마고우마저 출신지역을 따져 적으로 삼게 하는 처절하고 추악한 인간성 파괴의 공격진... 해서 예로부터 戰時에 철전지원수에게도 쉬이 펼치지 못했던 그 극악무도한 의 공격진...


그 악랄하고 파렴치한 <지역감정 진>을, 東西차별의 높다란 벽 바깥쪽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며 벽 안쪽의 백성들이 얼마나 고통받아 왔는지 상관도 않던 작자들이 이제야 겨우 싹 트기 시작하려는 산성해체의 天氣를 외면하고, 백성들 가슴에 못아 박히던 말던 오로지 자신들 권력욕 만을 위해 시전하고 있는 것이다.


" 울나라 갱제가 올해안에 회복되면 내 손에 불을 붙힌다 " 며 똘만이 차력사 이케택까지 동원해서...


삼국통일은 결코 백성들이 막고 있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
二國이라도 통일이라도 되야 이 통일을 하지...


이 씨바쉐이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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