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2.15.월
이들 두 인터뷰를 통해 본 기자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 김지하는 이제 더 이상 없다. " 인터뷰에 앞서 김지하는 먼저 반성했어야 한다. <세상읽기> 인터뷰의 경우, 그는 자리에 앉기 전 정벙구에게 양해를 구하고 시청자를 향해 참회의 큰절이라도 올렸어야 했다. 그런 다음에야 자연인 김영일이 있을 수 있는 것이며 생명사상도 가능한 거다. 반성과 참회가 없는 김지하를 바라보며 본 기자는 절망과 분노를 참기 어려웠다. 1991년에는 강경대군 치사 사건을 계기로 전국 각지에서 시위가 끊이지 않았다. 그런데 정권에 항의하기 위한 학생들의 시위가 과열양상을 보여 분신 자살사건이 자주 일어났다는 데 문제가 있었다. 수구세력들은 자살 특공대가 있다는 유언비어까지 유포시킴으로써 학생들의 항거를 무력화시키고자 했고 이는 어느 정도 적중, 연이은 분신사건이 오히려 운동권 학생들의 입지를 거꾸로 좁혀가는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좃선일보에 저항 시인 김지하의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찍혀나왔다. 그는 운동권학생들에게 처절한 똥침을 놓는 죽음의 굿판을 그만 두라는 장문의 칼럼을 실었던 거다. 본 기자는 아직도 당시의 그 믿을 수 없는 김지하의 모습에 전율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물론 당시 학생들의 분신행위가 전적으로 옳았다는 게 아니다. 당시 운동권 내부에서조차 극단적인 행위에 대해 비판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비판도 똥오줌가려서 해야 하는 거다. 부마항쟁과 광주항쟁을 초래해 더 큰 죽음의 굿판을 벌인 군부정권에 기생하는 좃선이라는 매체를 통해, 그 부정한 정권에 항거하는 학생들더러 죽음의 굿판을 그만두라고 하다니. 감정과잉과 선동으로 점철된 그의 글을 보고 기뻐 날뛰는 쪽이 진짜 죽음굿판의 선무당들이라는 걸 몰라서 그런 글을 썼단 말인가. 그리고 이제 만 7년이 더 지났다. 7년만에 나타난 지하는 죽음의 굿판을 그만두라는 글 쓴 데 대해 "지금도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진술로 일관하고 있다. 김지하가 문제의 칼럼을 쓰던 때와 엇비슷한 시기(그 바로 전 해)에 최악의 전세값 폭등사태가 있었다. 김지하 식으로 말하자면 이 때 이미 커다란 죽음의 굿판이 벌어졌더랬는데 왜 그런 굿판에는 그가 입을 꼭꼭 다물었는지 지금도 이해하기 어렵다. 물론 지하가 비판한 굿판과 전세금 굿판은 성격이 다르다. 앞의 굿판은 자발적 굿판이고 뒤의 굿판은 수동적 굿판이다. 하지만 둘 다 절망의 끝에서 도저히 빠져 나올 수 없었기에 벌어진 굿판이라는 점에서는 모두 같다. 지하가 그토록 강조하는 생명을 자발적으로 끊는다는 의미에서는 똑같은 거다. 한일합방 후 민영환, 최익현 등 수많은 우국 충정열사들이 자살했다. 김지하의 생명사상에 의하면 이들도 죽음의 굿판을 벌인 셈이 된다. 91년의 자살과 민영환의 자살은 격이 다르다고 그가 대답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김지하가 내세운 생명사상의 핵심이야말로 생명엔 위계가 없다는 거다. 그렇다면 민영환과 최익현에게도 죽음의 굿판을 벌이지 말라고 충고할 일이다. 다 똑같이 나라보다 소중한 하나의 생명이니 이토오 히로부미를 죽인 안중근은 죽음굿판의 박수무당일 것이며 낙화암에서 떨어져 죽은 3천 궁녀들도 모두 죽음의 굿판을 벌인 생명사상의 적들인 거다. 김지하는 모든 생명이 다 같이 존귀하더라고 결코 그 모든 생명을 다같이 존귀하게 여기지 못하도록 만드는 사회와 자연의 시스템이 있다는 상식적인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모든 생명은 위계 없이 다같이 소중하다는 그의 생명사상 자체도 유치한 것일 뿐더러 그러한 사상을 현실에 반영해 나가는 그의 방식도 편파적이기 그지없다. 한편 김지하는 자신의 생명사상의 근거들 가운데 하나로 최제우의 동학사상을 들고 있다. 하지만 도대체 동학혁명이 일으킨 죽음의 굿판은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나? 동학교도들의 폭력적인 투쟁의 근거인 동학사상을 근거로 생명사상을 외치다니, 이건 앞뒤가 안 맞아도 한참 안 맞는 거 아닌가? 낫과 괭이를 들고 관아를 습격하고, 관군에 죽느니 차라리 자결하겠다고 자신의 목에 칼을 드리웠던 그 동학도들의 성난 절규에 대해서도 지하는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우라"는 말을 할 수 있었겠느냐 말이다. 생명사상의 유치함과 죽음의 굿판에 대해 보여주는 모순되고 편파적인 태도 그 자체도 문제지만, 그러한 문제를 거론함에 있어서 내세우는 사상적인 논거들은 어처구니없을만큼 빈약할 뿐만 아니라 사기성이 농후하다. 예를 들어 그는 혜강 최한기를 사상적 논거 가운데 하나로 거론하고 있다. 하지만 최한기는 김지하가 주장하는 바 동학운동의 시효로서 어떠한 연관점을 갖고 있다고 보기 힘들다. 그밖에 김지하의 생명사상과 연관될 것도, 단군사상과 연관될 어떠한 점도 찾아 볼 수 없다. 최한기는 단군과 같은 증명할 수 없는 무형의 것을 철저히 배격하고 서구 과학문명에 경도되어 객관적인 세계질서를 수립하려 노력했던 학자이다. 그런 학자를 자신의 생명사상 형성의 근거로 들고 있는 김지하를 보며 본 기자는 허탈하기만 했다. 어쩌다 이렇게 됐는가? 도대체 왜 저 지경이 되고야 말았는가 말이다. 그는 한기레 인터뷰에서나 정벙구 인터뷰에서나 똑같이 미리 준비한 듯 현정권에 대해 세가지 문제점을 지적했다. 사실 그가 지적한 점은 틀린 이야기가 아니다. 개혁의 주체가 모호하다 점, 지나치게 신자유주의적이라는 점, 그리고 실업 대책이 소홀하다는 이 세가지 지적은 모두 정확한 지적이다. 하지만 말 그 자체가 옳다고해서 항상 그 말을 한 행동까지 옳다고 여겨져야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말을 할 때의 시점과 장소, 그리고 그 의미 맥락, 그 말을 함으로써 벌어질 파장 등을 모두 고려에 넣으면서 말을 해야 정말 옳은 것이 된다. 인터뷰에서 그는 비판만을 준비했다. 정권교체의 역사적 의미가 아무 것도 아니었나. 적어도 정권교체의 긍정적 측면과 개혁의 동반자로서 비판과 동시에 협력을 국민들에게 호소했어야 하는 것 아니었나. 그런데 그는 짐짓 산속에서 세속을 비웃기나 하는 태도로 일관했다. 자기가 도사인가. <세상읽기> 인터뷰에서 김지하는, 비판에 있어서는 그토록 잘라 말하더니, 자신의 단군사상이 결코 쇼비니즘은 아니라고 자기논리 변호에는 여러 번에 걸쳐 아주 열심이었다. 자신의 오해에 대해 반박하는 성의의 10분의 1만이라도 자신이 비판하는 대상에 성의를 보였다면 그 사람 참 째째하다는 느낌까지는 들지 않았을 것이다. 설사 좀 쇼비니스트로 오해 좀 받으면 어떤가? 그리고 도대체 단군사상이 쇼비니즘이 아니라는 건 어떻게 설명을 할 수 있다는 건가. 더구나, 도대체 어떻게 단군사상을 기초로 일본과 손을 잡고 동아시아 문명을 재건하겠다는 건가. 이게 지금 제정신으로 하는 소린가. 단군으로 동아시아 문명을 재건하겠다고? 이게 씨알이 먹힐 소리라고 생각느냐 말이다. 이제 김지하 자신이 원하는 대로 지하라는 이름을 버릴 때가 왔다. 지하라는 이름은 박정희 철권 시대 저항의 정신으로 우리들 마음 속에 깊이 간직할 것이며, 자연인 김영일이라는 인물은 한 사람의 도사 정도로 취급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그의 몰락과 절망이 안타깝기 그지없지만 이제 그에 대한 환상에서 깨어날 때다..
- 딴지 정치부 채공맹 (congmeng@hanimai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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