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2.15.월
" 스페이스가 안나오겠는데요... " 그 말이 홍사장에게는 섭섭하게 들렸던 모양이다. 인천 간석동의 한 3층짜리 건물 지하실에서 미싱 40대 놓고 공장을 하던 홍사장은 간절한 눈빛으로 나와 함께 온 부평역 뒤 정원산업 장사장을 바라볼 뿐이다. 하지만 장사장은 우리 주계약자일 뿐 적당한 공장을 고르는 것은 내 임무다. 우리 씸테이핑 기계 네 대를 들여놓기에 이 지하공장은 아무래도 작아보인다. 당시 한국을 휩쓸고 있던 노동쟁의는 그런 작은 공장들까지도 끊임없이 집어 삼키고 있었다. 어디서나 머리에 띄를 두른 공원들이 구호를 외쳐댔고 봉제공장 사장들은 노동부에 불려 다니기를 밥먹듯 했다. 몇 차례의 쟁의에 시달려 온 홍사장의 공장은 이미 대여섯 명의 공원밖에 남아 있지 않았고 그나마 이제 공장을 헐값에 팔려고 내놓은 것이다. 몇 개의 공장을 돌아본 다음 본사에 돌아온 장사장은 자꾸 간석동 공장으로 하자는 의견이다. 없는 공장 좁게 쓰면 될 거 아니냐는 거다. 기계가 안들어간다니까... 하지만 장사장과 동향인 우리 사업부장은 결국 그 의견에 동의해 버린다. 그래서 홍사장과의 질긴 인연이 시작된다. 어느 날 기계를 넣으려 가보니 공장을 팔겠다던 홍사장이 계속 간석동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사장 밑에 공장장이라는 직함을 단 월급쟁이가 됐다는 거다. 노느니 일하는 게 좋다며 웃는 홍사장의 서글서글한 눈매가 맘에 든다.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였지만 그는 나이가 몇 살이나 아래인 나한테도 항상 싹싹하다. 점점 맘에 든다. 잡다한 공장 일을 깔끔하게 처리하는 그는 일솜씨마저 산뜻하다. 난 주계약자인 정원 장사장하고만 점잖게 비즈니스를 얘기해야 하는 대기업의 엘리트 사원이지만 언제고 홍사장... 아니 지금은 홍이사인가... 하고 술 한잔 같이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계약한지 4개월도 채 되지 않은 어느 날 장사장이 잠적해 버렸다. 간석동 공장 직원들 월급과 가동비조로 매월 3천만원 씩 정원산업에 내려보낸 돈이 정작 간석동 공장을 담당한 홍사장에게는 월 8백만원도 오지 않았다는 얘기에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사업부장은 날 닥달한다. 정신이 혼미하다. 납기를 지켜야 하는데... 채권도 회수해야 되고... 나는 파일박스 속에서 장사장의 부동산담보 채권설정한 것을 꺼내 법제부에 넘겨 버렸다. 그동안 내려보낸 돈이 1억2천. 담보설정된 장사장 집을 경매로 팔아 지워도 6천 이상 손해가 확정적이다. 그렇게 되도록 장사장을 팍팍 밀어준 건 사업부장이었는데... 이제 공장마저 가동을 멈추면 납기는 끝장이고 내 목마저 위태롭다. 홍사장을 구스르는 사업부장의 목소리가 소름이 돋을 정도로 부드럽다. 급조된 오더계획표를 보여주면서 간석동 공장을 우리 주계약자로 해서 계약하자는 상담을 벌이는 중이다. 홍사장이 가끔 천장을 올려보며 입안으로 뭔가 웅얼거리는 품이 사업부장 말대로라면 얼마나 떼돈을 벌 수 있는지 계산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하지만 사업부장이 흔들고 있는 계획표의 오더들은 사실 일본 바이어들로부터 대략적인 연중물량만 받은 상태이고 가격이나 정확한 수량은 아직 결정된 바가 없다. 게다가 바이어들은 엔저가 됐으니 가격을 내리지 않으면 중국으로 옮겨 가겠다며 협박인지 부탁인지 모호한 아우성을 치는 중이다. 더욱 문제가 되는 건 그 동안 장사장이 간석동 공장명의로 외상구입한 수천만원 대의 물건들이다. 어차피 다음 달이면 당장 표면에 떠오를 공장부채지만 사업부장은 교묘히 그 부분을 피해간다. 지금 오더를 무조건 쳐내고 보자...라고 그는 생각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 오더에 목을 매고 구석에 앉아 침묵만 지키고 있는 내 자신의 비겁함에 스스로 구역질이 솟아 오른다. 정원산업 장사장은 끝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소문으로는 데리고 있던 경리여직원에게 빠져 석바위 쪽에 집을 사줬다고도 하고 남도 어딘가로 잠적했다는 소문도 무성하다. 아직 찬바람이 쌩쌩 부는 3월초 난 법원 집달리들과 함께 장사장의 집에 도착했다. 문을 빠꼼이 열고 들이닥친 남정네들을 바라보는 장사장 부인의 겁에 질린 눈빛. 아직 철없는 두 딸들이 떠드는 소리... 금방 후회가 된다. 좀전까지만 해도 차압을 방해하는 놈이라도 있으면 잘 걸렸다 하고 자근자근 밟아놓을 참이었는데... 이제 내가 할 일은 아무 것도 모르는 저 사람들을 추운 거리로 내모는 일뿐이다. 집달리들이 가구들에 차압딱지를 붙이는 동안 마루바닥에 주저앉아 넋을 놓고 있는 장사장 부인과 그제서야 장난을 멈추고 사람들을 흘끔흘끔 쳐다보는 두 딸의 불안한 눈빛을 차마 똑바로 볼 수가 없다. 경리여직원과 도망간 장사장은 앞으로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 건가.... 사업부장은 일본 바이어에게 가격을 20%나 깍아 주는 조건으로 대형 오더를 받는다. 하지만 그건 이미 공장이 수용하기 어려운 원가 미만의 가격이다. 그리고 공장에 가서 홍사장에게 다음에 좋은 오더 주겠다고 뻥치면서 임가공계약서에 무조건 도장을 받아 오는 것은 다시 내 몫이다. 어이없어 할 홍사장의 표정이 인천에 도착하기도 전, 전철 안에 앉은 내 눈앞에 아른거린다. "배형이 까라면 까야지." 그렇게 말하는 홍사장의 말이나 표정에서는 억울함이나 빈정거림은 보이지 않는다. 그는 철저하게 날 믿고 있다. 배운 사람은 뭘 해도 다르다고 그는 늘 나를 높이 평가한다. 지난 몇 달간 같이 밤을 새며 제품검사를 하고 소주잔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진심을 조금이나마 내비쳤기 때문일까. 아니면 원래부터 그는 그렇게 순박한 사람이었기 때문일까. 바보 같을 정도로 사람 좋은 홍사장이 어쩔 수 없이 점점 좋아진다. 그리고 얼마 후 뻔히 닥쳐올 파국의 예감 때문에 그의 사람 좋은 미소가 더욱 마음 아프게 한다. 간석동 공장에 자금이 말리기 사작한 건 이미 오래 전부터다. 경리부에서는 이미 사업부장 서명까지 받은 지출결의서를 넘겨도 돈을 꺼내주지 않는다.
경리부 홍부장이 목에 힘줄을 돋구며 소리치면 거기까지 내려온 법제부 신차장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 친다. 돈이 없어 공장을 팔려 내놓았던 홍사장에게는 당연히 부동산이라곤 없다. 나와 만나기 전 노동쟁의를 겪으면서 집이며 차며 모두 직원들에게 빼앗긴 사람이다. 말만 사장이고 주변머리라곤 털 끝 만큼도 없는 그는 이런 상황이 뻔히 올 줄을 내다보지 못하고 사업부장의 간곡한 부탁에 못 이겨 정원산업 장사장 집을 경매하고도 상계되지 않은 부채까지 떠안고 말았다. 그 덕에 난 경리부 직원들이 쳐다보는 한 가운데에서 매달 이런 월례행사를 겪어야 한다. 홍부장이나 신차장은 매달 그렇듯이 지금도 경리부 문밖에 오늘이 월급날이라 돈 받아 가려고 초조하게 기다리는 홍사장이 있는 걸 잘 알고 있다. 이제 내가 우리 사업부장에게 다시 올라가면 사업부장은 홍부장에게 전화하고 다시 홍부장은 거드름을 피우며 그 빌어먹을 돈을 결재해 주리라는 걸 나도 알고 있다. 이들은 그렇게 날 괴롭히지만 정작 뒤에서 듣고 있는 홍사장의 착한 마음을 갈기갈기 찢는 고문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즐거워도 하는지는 모르겠다. "이거면 배형, 이제 그런 소리 안 들어도 될거요." 얼마 후 자기 이모부 집문서를 내놓으면서 홍사장이 한 말이다. 이런 멍청이같은 인간. 난 어려우면 언제라도 그만두면 되지만 당신은 당신집도 아닌 이모부집까지 날린단 말야. 그는 이모부가 평생을 공무원 생활해서 번 돈으로 산 집 같지도 않은 달동네 작은 집 한 채를 들고 온거다. 어차피 회사에서도 없는 걸로 알고 있던 부동산 안 내놔도 나 하나 욕먹으면 그만일 것을 그는 그렇게 일을 저지르고 만다. 우리 회사가 홍사장에게 최고장을 날리기 시작한 건 그로부터 몇 달 지나지 않아서였다. 공장에서 발생한 작은 작업불량이, 그것도 우리가 공급해준 자재가 불량해서 생긴 것이 90% 틀림없을 문제가 회사에 빌미를 주고 법제부 사람들은 홍사장 이모부댁에 부동산 가치평가를 나갔다.
장사장 집을 처분할 때 느꼈던 것보다 몇 배 더 심할 것 같은 자괴감을 홍사장 담보를 처분하면서 느끼고 싶진 않다. 하지만 나의 자괴감은 홍사장이 느껴야 할 죄책감에 비하면 얼마나 크다고 할 수 있을까. 그의 전전긍긍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분명 더 좋은 방법이 어딘가 있을거다. 하지만 결국 견디지 못할 한계에 이르렀을 때 난 홍사장에게 부탁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공장에서 죽겠다고 천명한다. 어떻게 해서든 채무를 값을 테니 이모부집 경매처분만은 안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더는 끊겨 공장은 이미 가동을 멈췄고 직원들도 뿔뿔이 흩어진 지금 그의 구원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때부터 홍사장의 전화가 사무실에서 야근하는 내게 매일밤 걸려왔다. 그는 대개 취해 있었고 가끔 흥분하기도, 흐느끼기도 했다.
그는 매일밤 자살했다. 술 먹고 죽을 수 있다면 그렇게 됐을 것이다. 엄포일 게 뻔한 그 말에 난 매번 놀라 한밤중에 인천까지 달려갔고 이미 엉망으로 취해 있는 그와 함께 텅 빈 공장바닥에 앉아 밤새 소주를 깠던 일이 셀 수도 없다. 그건 더 이상 채권자와 채무자의 관계가 아니었다. 난 늘 넥타이를 매고 다녔다. 그러나 홍사장은 넥타이를 잘 맬 줄도 모른다. 난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다. 하지만 홍사장은 실밥이나 따고 어쩌면 앞으로도 영원히 미싱질이나 하다가 스러져갈 사람인지도 모른다. 문득 이제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일이 되어 버렸다. 술잔이 오가면서, 망가져 가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나와 나의 회사가 그의 마지막 남은 한 점 희망마저 짓밟는 것을 보면서, 그러고 그렇게 속았으면서도 그가 끝까지 나를 믿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안다. 그리고 어느새 나도 그를 믿고 있다. 몇 번씩이나 가본 달동네의 이모부댁. 경매한다면 법제부 사람들이 들락날락 하자 대갈일성을 지르다 쓰려져 입원하신 이모부. 난 도저히 내 손으로 그 집을 처분할 수 없다. 만약 그의 이모부 집을 경매처분 할 수밖에 없다면 나 역시 더 이상 회사를 다니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홍사장과 나의 그런 미묘한 관계가 몇 개월간 계속되었다. 홍사장의 본가, 처가와 이모부의 사위들이 3천만원을 들고 회사에 찾아온 것은 이듬해 3월의 일이었다. 1억의 채무. 경매처분해야 천만원이나 받을까 말까 한 코딱지만한 집. 그 집에 집착하는 이모부, 그리고 그 때문에 회사에 들려온 3천만원...
법제부 신차장이 특유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안경너머로 눈을 치켜뜨며 그렇게 말하지만 홍사장 일행이 사무실에 들어오기 전 저 멍청한 것들이 한 푼도 못 건질 줄 알았던 돈을 3천만원 씩이나 가져온다고 기뻐하던 모습과 대조되면서 난 마음이 씁쓸해진다. 우리 회사 차장이나 부장 1년 연봉이나 될까 한 저 돈을 만들려고 그 동안 고군분투한 달동네 사람들. 그들 사이에 서있지 못하고 테이블 이편, 소위 채권자들 틈에 앉아있는 내 모습이 초라하고 부끄럽기만 하다. 하지만 집문서를 다시 홍사장 손에 쥐어줄 때, 아주 오랜만인 그의 환한 미소와 눈가를 적시던 기쁜 눈물, 그리고 내 손을 꽉 잡아주는 그의 굵은 손마디가 내 마음에 따뜻하게 다가왔다. 회사를 나서기 전 홍사장은 사업부장과 법제부장 앞에서 향후 2010년까지 채무잔액을 매년 얼마씩 갚겠다는 각서를 썼지만 회사 내부적으로 곧 대손처리할 돈 때문에 그 서류를 다시 들쳐볼 한가한 사람들은 아무도 없다. 다 끝난 것이다. 내리막 길을 걷던 한국의 봉제산업은 결국 대부분의 공장들을 도산 또는 폐업시키고 말았다. 다른 팀원들이 인도네시아 공장을 위한 수주에 전념할 때 내게는 사업개발이라는 과제가 주어졌다. 화학전문인 회사의 의류팀에서 사업개발이란 맨땅에 헤딩하라는 말과 동의어였지만 간석동 공장의 큰 짐에서 풀려난 나는 신바람나게 일할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홍사장과는 연락이 끊어지고 말았지만 중국공장과 국제하청형식의 신규사업(지금은 하나도 신규 아니지만)을 만들어낸 나는 첫해 꽤 괜찮은 실적을 올릴 수 있었다. 한편 회사의 입장에서는 내가 중국공장들과 계약하여 일본 등에서 받는 오더들은 인도네시아 공장에 적합한 아이템들이 아니었지만 수주의 굴곡이 심했던 당시로서는 그나마 인도네시아로 돌리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하게 되었다. 간석동 공장 똘만이라고 불리던 놈이 드디어 대박 터뜨린 것이다. 잘 나가던 중국에서의 작업에 파란이 일어났다. 위해(웨이하이)에 있던 공장에서 원단을 뒤집어서 옷을 만든 것이다. 안팍의 차이가 크게 나는 원단은 아니었기 때문에 다행히 일본 바이어는 인수하기로 하는 대신 가격을 1불 깍아달라고 요청했고 난 이제 잘못을 잘 인정하지 않는 만만찮은 중국사람들을 상대로 1불 깍자는, 전부 60,000장이었으니 실제로는 6만불 깍아달라는 시비를 붙여야 했다. 몇 년만에 홍사장이 내게 전화해 온 것은 바로 그 시점이었다.
위동페리를 타고 인천항을 출발해 다음날 아침 중국 산동성 위해에 도착할 때까지도 난 이런 우연이 있을까 줄곧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왠지 자꾸 잘될 거라는 느낌까지 들었다. 위해항구가 도착 당일 정전이었던 것, 그래서 추운 날씨에 히터를 못 틀게 된 중국식당에서 몸을 녹인다고 중국사람들과 백주로 간빠이를 해대다가 필름이 끊긴 것 등은 잘된 일에 속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날 홍사장이 약속한 대로 조선족 통역원을 데리고 위해항구에서 날 반겨 주었고 내가 도착하기 전날 미리 알아서 내 물건을 1불 20전 깎는 것으로 중국공장과 결정을 봐 두었다는 것은 지나치게 잘 된 일이었다. 그는 내가 위해를 떠나는 날까지 만사 제쳐두고 위해에 남아 내 일을 도와주었고 마지막 날 페리선착장까지 배웅해 주었다. 그 후 중국일은 내가 인도네시아에 발령을 받을 때까지 계속 번창했다. 또 몇 해가 흘러 친구들과 함께 세운 조그마한 새 회사에서 계약한 인도네시아 공장이 생산라인을 개조하는데 홍사장은 다시 한번 하던 일을 제쳐두고 인도네시아까지 날아와 도움을 주었다. 지금은 아예 우리 회사에 들어와 중국공장을 관리해 주고 있다. 그동안 직책과 직함은 바뀌었지만 "홍사장"과 "배형"이라는 호칭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래서 우리 회사 사장이 누군지 모르는 사람들이 주변에 아직 많다. 그리고 지금도 가끔 옛날 일을 서로 이야기하곤 한다.
시간이 흐르니 그때 그렇게 힘겨웠던 시절을 이제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도 있다... - 인도네시아 특파원 Don S. Bay ( donsbay@cbn.net.id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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