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1.18.월
씨바.. 왜 맨날 마징가 Z냐..우리의 태권 V도 알려다오... 조뚜 일리 있는 지적이었다. <영화 속의 비과학적인 구라>만 디비다보니 우리의 태권 V를 잠시 잊고 있다 일본특파원 맨뒤님의 <일본 애니메이션을 까발려주마> 기사가 나간 후 더 이상 미뤘다간 명랑과학입국에 본기자 오히려 걸림돌된다는 졸라 다급한 맘이 들었다. 그런데 본기자 태권 V를 심층분석을 하던 중 태권 V만으로는 똥 누다 중간에 짜른 기분이 될 것 같아 아예 한국 애니메이션을 까발려보려 한다. 본기사에서는 울나라 애니메이션의 현재 보여지고 있는 문제점을 70, 80년대의 과거와 90년대의 현재의 상황으로 나누어 고찰해 보겠다. 그래서 우리에게 무엇이 부족한 지 정확히 알리고자 이 글을 쓰게되었다는 점을 미리 말씀드린다. ( 딴지 12호에서 태권 V자료를 갖고 계신 분은 보내주시라 했었다. 그러나 딱 한 분 grenadin@mail.alpha.co.kr님만이 보내주셨다. 이 분 덕분에 21세기 명랑과학입국에 한걸음 더 다가갔다. 꾸벅)
한국 애니메이션의 역사적 시작은 1956년 HLKZ-TV에서 방영된 <럭키 치 남아있는 본격적인 애니메이션 CF의 원조는 국내 애니메이션의 개척자 신동헌의 <진로소주>광고였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1967년 1월 21일 우리나라 최초의 장편 컬러 애니메이션인 <홍길동>은 얼마전 타계한 국내 만화계의 원로인 고 신동우 화백의 <풍운아 홍길동>을 원작으로 삼아, 신동우의 형 신동헌이 감독을 맡고 신동우가 구성을 맡았다. 이 신동헌 감독의 <홍길동 67>이 흥행에 성공을 하자, 애니메이션이란 만들기만 하면 최소한 제작비는 건지고 잘 만하면 돈방석 위에 앉는다는 야릇한 유행이 생겨 났다. 이러한 현상은 곧이어 국산 애니메이션 제작 붐으로 이어졌고, 한때는 제작사들 간의 과열 경쟁으로 관객을 위한 특별 선물이 필수화 되기에 이르렀다.
또한 외화 수입 업자들까지도 이에 편승하여 애니메이션 수입에 대한 비중을 두기 시작했고, 실제적으로 월트 디즈니의 <피터팬>과 <신데렐라> 같은 작품들이 이 때 국내 극장에서 개봉 되었다. 하지만 이렇듯 시장이 커져가던 극장판 애니메이션들은 TV 라는 새로운 문명의 이기에 밀려 큰 타격을 입게 된다. 즉, 돈을 주고 표를 사서 극장에 가지 않더라도 편안히 집에서 화면을 즐길 수 있는 TV 방송 시대가 국내에서도 본격화 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러자 상대적으로 위축이 되버린 극장판 애니메이션 제작은 71년 용유수 감독의 <호동 왕자와 낙랑 공주>이후로 거의 중단 되었고 이 같은 현상은 75년도 까지 이어진다. 그러나 이 때 당시 우리의 극장용 애니메이션은 시작 단계에서는 일본에게 뒤치지 않을 정도의 질과 내용을 지니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홍길동>은 열악한 환경에서 제작되었지만 그런 환경에서 볼 수 없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수준작이었다. 당시 일본 역대 최고 제작비가 투여된 <아키라>에 사용된 동화 매수가 135,000장인 것을 감안해 보았을 때 <홍길동>에 사용된 동화의 수가 125,300장이라는 것은 작품의 완성도를 입증한다. 또한 돈이 많이 들고 제작 과정이 난해하여 디즈니 등의 미국 매이저급 만화영화사들만이 사용하는 프레스코(선녹음/후작화) 방식의 풀 애니메이션(Full Animation)으로 제작되었다. <홍길동>의 예로 보건데 당시로서는 일본에 비해서 결코 수준이 떨어지는 경우는 아니었다. 다시 말해 시작 초기의 극장용 에니메이션에 한해서는 일본과 우리나라의 차이는 크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1975년 국산 영화 <영자의 전성 시대>가 관객 35만명을 동원하는 한편, 외국 영화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엑소시스트>등의 작품들이 개봉되어 잇달아 흥행에 성공을 거두자 TV에 기세가 꺽여 있었던 극장가가 서서히 회복될 기미를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상업성에 치우친 국내 방송사들은 창작 애니메이션 제작을 지원하기보다는 값싸고 경쟁력 있는 일본 애니메이션을 수입하는데 앞장섰고 국내 창작 애니메이션의 기반을 무너뜨리는데 혁혁한 공헌을 했다. 안타깝게도 국내 방송사에서는 국내 창작 애니메이션의 활로를 막기만 한 것이 아니라 종속된 하청의 길을 제시했다.1968년 TBC에서는 [영화부]내에 [만화영화부]를 두어 일본의 TV 시리즈물인 <황금박쥐(黃金バット) >, <요괴인간(妖怪人間ベム)>을 하청 제작했다. 70대부터 시작된 하청제작은 80년대 들어 세계 최대의 하청제작국으로 자리잡았다. 제작물량으로는 세계 3위의 애니메이션 제작국이라는 명예를 얻기도 했다. 극장용 애니메이션이 전세계적으로 한계에 부딪힌 상황에서 애니메이션의 유일한 활로는 TV용 애니메이션의 제작이었는데, 우리나라의 방송사들은 독자적인 만화를 창작하는 힘든 길보다 수입이 보장되는 하청 제작의 길을 택했다. 우리 애니메이션이 조때기 시작하는 시점이다. 당시 <마린보이(がんばれ! マリンキッド)>, <타이거마스크(タイガ-マスク)>, <밀림의 왕자 레오>, <사파이어왕자>, <마징가 Z>, <알프스 소녀 하이디> <캔디캔디>, <그레이트 마징가> 등등 수많은 일본의 애니메이션이 어린이들을 TV 앞으로 사로잡았다. 이 중 특히 MBC TV에서 방영 되고 있었던 <마징가 Z(マジンガ-Z) >의 인기는 하늘을 찌르고 있었으며, 그 밖의 작품들 역시 국내 어린이들의 절대적인 지지 속에 초저녁 시간대의 채널을 장악했던 것이다. 그리고 방송사들은 TV에서 방영하는 애니메이션은 절대로 국적 표현이나 제작자 표시를 하지 않았고, 심지어 일본산임을 나타내는 장면은 교묘히 삭제되었다. 그러나 진실을 감추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우연히 TV에서 방영된 만화영화가 우리나라 것이 아니라 일본 것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또한 1주일에 한 번 이상 지속적으로 방영이 되는 TV 애니메이션에 반해, 단 몇 주간의 상영으로 끝나는 극장판 애니메이션의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태권 V>의 이와 같은 분전은 대단히 특기할 만한 사실이라고 볼 수 있으며 아울러 국산 창작 애니메이션의 성공 가능성을 크게 타진해 준 계기가 되었다. <태권 V>가 대중적인 인기를 얻게 되면서 결과적으로 매년 방학마다 2편 이상 씩의 아동용 극장 애니메이션이 연속적으로 제작되는 호황을 누리게 된다. 이 시기의 대표작인 <태권 V>는 이후 7편의 작품이 제작되었다. 이러한 <로보트 태권 V> 시리즈의 김청기 감독은 일약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의 스타로 떠오르게 되고 이 후 수십편의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한국 극장판 애니메이션의 황금기는 실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표절, 모방등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부끄러운 한국 애니메이션의 역사라 하겠다. 이 문제는 뒤에서 다시 언급하기로 한다.
제 5공화국이 들어서면서 점차 울나라 애니메이션은 쇄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5공화국의 문화 통제 정책의 하나로 아동용 애니메이션에서 비현실적이고(?) 폭력적인 요소가 들어나는 SF 애니메이션물을 규제하기 시작하였다.
우리의 김청기 감독마저 일본의 <닌자로보트 飛影(비영)>의 메카닉을 디자인 하나 바꾸지 않고 그대로 사용한 실사 애니메이션 합성 영화 <우뢰매>를 제작하기 시작했을 정도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일본과 울나라의 애니메이션은 크지 않은 차이를 가지고 시작했다고 볼 수 있지만 이처럼 5공화국이 들어서면서 울나라 애니메이션의 암흑기를 맞게 되면서 일본과의 격차는 점차 심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중 1988년을 전후로 울나란 사회 전반에 걸쳐 대대적인 변혁의 바람이 몰아치게 된다. 올림픽을 앞두고 국내 문화계는 실제 경기에 참가하는 선수들 이상으로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무엇보다 방송국들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막중했다. 바로 그 올림픽이라는 커다란 명분을 안고 국내 자체 제작 TV 애니메이션 시대가 개막되었다. 국내에서 본격적인 TV판 애니메이션 제작이 시작된 것은 신동헌 감독의 <홍길동67>이 개봉된지 무려 20년 뒤의 일이다. 이렇듯 국내 TV애니메이션 제작이 지연되었던 것은 앞서 말했듯이 방송국들이 해외 만화영화의 수입에만 지나치게 의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림픽을 앞두고 전개된 각계의 문화 개혁 사업의 일환으로 자체 제작 TV애니메이션의 필요성이 크게 재기되었고 마침내 양대 방송사인 KBS와 MBC는 1987년 5월 각각 국내 최초의 자체 제작 TV애니메이션을 선보이게 된다.
이에 자극을 받은 MBC도 곧이어 88년 신정특선으로 이상무의 인기 만화 캐릭터 독고 탁을 주인공으로 한 <독고탁의 비둘기합창>을 80분짜리 장편으로 제작 방영한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러한 선의의 대결 구조는 대단히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보이며 이로 인해 국내 TV애니메이션 시장의 질적, 양적 발전에 커다란 가산점이 되었다.
88년 올림픽을 기점으로 최초의 TV 시리즈가 제작되었고 90년대에 들어서면서 다시금 극장용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지기 시작하였지만 그 결과는 상당히 처참한 결과를 낳았다. 자체 제작 노하우 확보는 안중에도 없었던 국내 제작업계는 이미 90년대에 들어서면서 국산 애니메이션 제작 능력은 전무에 가까웠던 것이다. 어차피 적은 제작비가 투입된 TV 시리즈의 경우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수 십억원이 투자된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연속적인 실패는 울나라 애니메이션의 현실이 얼마나 절망적인가를 보여주는 증거였다. 1993년 여름, 듣도 보도 못한 <수퍼 차일드>가 갑자기 극장에서 개봉을 하였고, 94년에는 말많은 <블루 C8>이 개봉되어 단지 포르노 영화로서의 관심을 의도적으로 유도하여 50만이라는 똥꼬가 뒤집어질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게 된다. 95년에는 무협지판 네버엔딩 스토리 <붉은매>(10만, 지상월, 감독:심상일), <헝그리 베스트 5>(8만명, 이규형, 감독:우이 다카시), <돌아온 영웅 홍길동>(40만명, 윤석화, 감독:야마우치 시게야스) 등이 개봉된다. 그러나 <수퍼 차일드>와 <블루 C8>의 저질 영화에 대한 사회적 비판으로 인해 위 세 작품은 일본의 기술도입을 유도하게 되었는데, <붉은매>의 경우 오랜 세월동안 일본 하청 경험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만들었기 때문에 일본풍으로 만들어질 수 밖에 없었고 <헝그리 베스트 5>는 한술 더떠 전체 제작의 2/3가 일본의 슬램덩크 팀에 의해서 만들어 졌고 시사회마져 일본에서 가질 정도로 철저하게 일본 기술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결국 95년의 국산 극장용 애니메이션은 <못 만든 일본 애니메이션>에 불과했던 것이다. 96년 겨울에 발표된 이현세 원작의 극장용 만화영화 <아마게돈>은 순수 국내자본과 기술로 제작되었음을 강조하면서 흥행에 들어가지만 꽤 볼 만한 그림과 음악에도 불구하고 스토리 각색 실패로(원작 만화 13권이라는 어마어마한 스토리를 90분이라는 짧은 애니에 집어넣는데 한계를 느껴 완성도 낮은 작품이 만들어진 케이스) 산만하고 재미없는 작품이 되어 버렸다. 이처럼 얼어붙어 가던 울나라 애니메이션은 96년 여름에 개봉한 <아기공룡 둘리-얼음별 대모험>의 비교적 성공적인 흥행으로 인해 어느 정도는 회생 가능성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다 97년 여름 3편의 극장용 애니메이션인 <전사 라이안>, <난중일기>, <임꺽정> 이 개봉했다. 더 이상 말은 않겠다... 이러한 극장용 애니메이션에 덧붙여져서 97년 겨울에는 2편의 TV 시리즈가 오랜 제작을 마치고 우리에게 성큼 다가왔다.
두 작품 모두 그림 면에서는 이전보다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스토리 구성이나 연출면에서는 여전히 부족한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밖에 없었다. 98년 봄부터 방영되기 시작한 링크 시스템의 <바이오 캅 윙고>에 이르러서야 겨우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의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생각 할 수 있는 수준에 있기는 하지만 많은 면에서 부족할 따름이다. 본기자 쓰다 보기 길어졌다. 이번 호에는 울나라 애니메이션의 역사만 알려드렸다. 담호에는 위에서 언급한 <70년대 애니메이션 황금기의 비밀>, <한국 애니메이션의 문제> ( 이 부분은 일본 특파원 맨뒤님과 같이 쓰고 있음 ), <태권 V의 역사적 의의와 과학적으로 고찰해 본 재원>에 대해 알려 드리겠다. 졸라 기대 해주시라. 아참, 한국 애니메이션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이여.. 멜 주시라. 꾸벅.
- 딴지 과학부기자 이재진 ( kuradori@hanmail.net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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