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1.4.월
최초의 동네 학습지였던 한성수능이 탄생한 것이 먹고 살기도 만만치 않았던 1883년이고, 오늘날까지도 발간되며 오랫동안 학습지 시장을 양분해 왔던 완전동아와 해법조선이 문제집을 출간하기 시작한 것이 1920년대이고 보면 우리동네가 분명 교육열이 높긴 높은 동네다. 당시 이웃동네 훈장이었던 일본노무스키氏한테 속아 우리동네 서당의 훈장자리까지 내주고 출제경향까지 간섭을 받긴 했지만 말이다. 침탈당했던 교권을 36년만에 되찾고 나서 그럭저럭 제대로 된 문제들을 출제하려던 학습지들이 삐딱선을 타기 시작한 것은 도내 유일의 대학교 청아대에 박정히 학생이 입학을 하면서부터였다. 잘하는 거라곤 일본노무스키氏한테 배운 교련과목 밖에 없었던 동네주먹출신 박정히 학생은, 자신이 학습지 문제 하나도 제대로 못 푸는 수준임에도 한 두 문제도 아니고 516개의 문제나 컨닝해 부정입학했다는 것이 탄로날까봐 어깨들을 동원, 동네학습지들의 출제위원들을 협박하고 구타하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자기도 풀 수 있는 문제만 내라는 것이었다. 이때 수 많은 완전동아와 해법조선의 출제위원들이 일자리를 잃었고, 학습지들은 박정히 학생이 사실은 똘똘한 학생이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박정히가 좋아하는 문제만 출제하기 시작한다. 제대로 된 문제는 아예 출제할 엄두를 못내는 우리동네 학습지 수난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의 뒤를 이어 학도호국단 출신으로 자신 있는 거라곤 총검술과목 밖에 없었지만, 박정히 선배의 컨닝비법을 그대로 보고 배운 주먹후배 존두환 학생은 자신의 똘마니들을 모조리 고사장이었던 체육관에 몰아넣은 후 마음놓고 그들의 문제를 보고 베껴, 무려 1212문제나 컨닝해 청아대에 입학하고 만다. 그리고 이때부터 해법조선은 존두환 학생이 컨닝했다는 사실은 외면한 체, 대학에 들어가려면 해법조선을 보라면서 학습지 시장 점유율 높이기에 전력을 다하기 시작한다. "우리동네가 낳은 위대한 천재학생, 존두환이 공부했던 바로 그 학습지"라는 카피문구를 첫페이지에 박아넣고 학습지 시장 1위를 질주하기 시작한 해법조선에 났던 당시 기출문제를 보면,
이런 문제가 출제되어 4번이 정답으로 처리되고 있었다. 존두환이 자신의 호국단 친구였던 너태우에게까지 컨닝비법을 전수해 청아대에 입학시키려 할 즈음 드디어 일반수험생들이 들고 일어난다. 더 이상 주먹 쎈 놈들이 부정한 방법으로 대학에 들어가는 것을 참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1987년의 6월 자율학습거부항쟁이다. 그동안 학습지의 말도 안되는 문제들에 울분을 토했던 학생들은 이 사건을 계기로, 대학에 입학하려면 우리 학습지로 공부해야한다며 교련문제만 디립다 출제하고, 장사에만 혈안이 되어있는 학습지를 가지고는 더 이상 공부할 수 없다며 각자 주머니돈을 갹출해서라도 진정으로 학생들을 위하는 제대로 된 문제집을 우리 손으로 만들어내겠다고 결의하기에 이른다. 이때, 과거 박정히에 반항하다 완전동아와 해법조선에서 해고된 출제위원들과 지가 아는 문제만 출제하라는 소위 출제지침서에서 벗어나는 문제를 게재해 존두환에게 구타당한 출제위원들이 뭉쳐 가로쓰기와 한글전용을 하며 탄생한 것이 바로 한겨레전과다. 그러나 기존 학습지의 아성은 만만치 않았다. 그동안 박정히, 존두환, 너태우 등이 쭈욱 공부해왔던 학습지임을 표방하며 탄탄한 1위를 달리던 해법조선은 다음해 입시에서 찍기비법을 수록한 <대학진학을 위한 핵심요점정리집>을 부록으로 발간하기에 이른다. 지금 보면 무슨 암호처럼 쉽게 해독이 되지 않은 당시 해법조선의 요점정리집은 아래와 같이 단 세줄로 되어 있다.
초등학교 입학 이후 이룩한 유일한 학문적 성과가 한글을 깨우친 것이었던 기명사미 학생조차 이 찍기비법으로 대학에 진학시키는 기적을 만들어 낸 것도, 박정히 컨닝입학으로 등수에서 밀리고 이번에야 말로 합격하고 말겠다던 재수생 김데중 학생을 결국 삼수생으로 만든 것도 바로 이 해법조선의 요점정리집 한권이었다. 아... 막강 해법조선이여... 그러나 해법조선의 시대도 영원할 수는 없었다. 해법조선이 출제한 문제만 열심히 풀고 적당히 컨닝하면 덜컥 합격이 되버리던 시절이 가버리고 말았다. 금강산을 구비 흐르는 강이 뭐냐는 문제에 소금강이라고 써넣는 실력의 기명사미 학생이 대학진학 후 전과목 D-에 갱제과목에서는 완전 낙제를 받게되자, 결국 역사상 최초의 외국인 교수 암에푸氏가 경제학교수로 부임하게되었고, 강드시 조교가 시험감독을 맡으면서 컨닝 자체가 매우 힘들게 되버린 것이다. 이렇게 컨닝이 힘들어지자, 법대로 진학하려했던 해법조선 장학생 이헤창은 진로를 바꾸어 반공을 주제로 한 영화 한편을 판문점에서 찍어 연기특기생으로 진학하려 했으나 결국 실패하고, 대신 자율학습지 한겨레전과로 만학도의 열정을 불태우며 공부하던 삼수생 김데중 학생이 작년 입시에서 드디어 대학에 합격하게 된다. 김데중 학생이 대학입학에 뜻을 둔지 30년만의 합격이었으며, 한겨레전과로 보자면 탄생한 지 10년만의 합격생 배출이었다. 그러나 드디어 합격생을 배출한 학습서의 반열에 오른 기쁨도 잠시, 그동안 대학에 진학하고자 하는 학생이 컨닝하지 않고 입시를 치룰 수 있도록 문제를 출제하는 데 졸라구 노력을 기울여왔던 한겨레전과는 이제 전혀 새로운 종류의 갈등에 빠지게 된다. 앞으로도 수험생들을 위한 자율학습지를 계속 발간할 것인가, 아니면 이제는 대학에 진학한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대학출판시장에 진출할 것인가를 놓고 사업방향을 못 잡아 우왕좌왕하게 된 것이다. 더구나 합격생을 배출하고나서 문제출제경향이 바뀌었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다보니 오히려 필요도 없는 문제를 내거나, 정말 필요한 문제를 건너 뛰는 폐단까지 나타나게 되었다. 또한 이러한 혼란의 와중에 블랙대한매일박스라는 신종 학습지가 나타나 한겨레전과가 누리던 정통자율학습지의 위치를 위협하기에 이르렀고, 그동안 내용이 빈약하기만 했던 영어참고서 성문엠뷔씨까지 증보판을 내고, 빠른 속도로 입시생들에게 인기를 얻어가고 있으니 한겨레학습지의 갈등은 더욱 커질 수 밖에 없게 된 게다. 아... 합격생만 배출하고 나면 앞 길이 훤해질 줄 알았더니 진짜 시험은 이제부터로구나. 한겨레전과가 갈 길은 과연 어디란 말인가. 동네 사람들아 말 좀 해보시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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