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09-14 00:00
1998.9.14.월
대학시절 자신만의 비기인 덩크슛을 맘대로 하던 넘이 있었다. 바로 그 녀석이 이렇게 단말마의 비명을 토해내듯 외치며 맥주잔을 들이키던 와중에 나는 쉼없이 꿀떡대며 넘어가는 녀석의 배때기를 아련한 상념에 잠겨 바라보고 있었다. 이 녀석이 어떤 녀석이었던가? 과거 우리 학교 농구코트(동네 코흘리개부터 아저씨들까지 다모이는)를 주름잡던 슬램덩크의 화신이며 한 인물, 한 키하던 자칭 늘씬한 킹카가 아니었던가? 신촌에 위치한 우리학교는 그 유명한 코딱지만한 캠퍼스와 볼것없는 여자애들로 가득찬 학교였었다. 그러나 90년대부터 이학교가 제정신이 돌아오는구나 하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나날이 좋아지는 학교시설과 여인네들 수질에 마냥 헤벌레함을 어찌할 수 없었다. 그 중에서도 우리학교의 농구코트는 가히 압권이었다. 우리학교 농구코트는 삐까번쩍한 우레탄 비스무리한 초록색 아스팔트로 바닥을 도배하고 제법 그럴듯한 라인들을 그려놓자, 동네 하이에나들부터 지역농구 꿈나무들까지 배째고 밤새 농구하는 젊음의 용광로가 돼버리고 만 것이었다.
거기서 키 193의 이 녀석은 가공할 닉네임으로 불리면서 뭇남자들의 가슴에는 비수를 시리즈로 꽂았으며, 반면에 뭇여인네들은 질질 싸고 흠모하게 한 잘나가는 짜샤였다. 온갖 엽기적인 포즈를 다 동원해가며 구사하는 덩크슛은 가히 주화입마, 노화순정의 경지에 다다른 듯 했다. 이 녀석의 닉네임은 동남아피펜. 흡사 전성기때의 시카고불스의 스코티피펜을 빼다박은 원초적인 얼굴윤곽, 거기에 어딘지 모르게 실제 피펜과는 차이가 있는 동남아적 삑사리의 이국적향취마저 풍기는 그녀석에게 딱어울리는 별명이었다. 그와 맞서던 유일한 라이벌은 같은 경영학과 후배이자 친구이기도 했던(이녀석은 삼수를 했다.) "마포구 칼말론"뿐이었다. 마포구에 위치한 우리학교에서는 역시 가장 칼말론-유타재즈의 슈퍼 파워포워드-과 닮은 녀석. 스타일도 게걸음슛, 아저씨 레이업등 비슷했다. (NBA나 농구에 관심없는 독자여러분껜 사과의 마음을 어찌할수가 없다.)
이 두 가증스런 유사품 녀석들의 개인 인기판도는 너무도 쉽게 결판이 났다. 마포구 칼말론은 몸무게에서만 압도적인 우위를 보일뿐, 그밖의 불가항력적인 뱃살의 미미한 진동, 동남아피펜보다 더 시꺼먼 녹슨구리빛의 말초적인 피부등 모든면에서 빠떼루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둘간의, 그야말로 용호쌍박의 대결은 수많은 군중을 운집시키며 ( 그들 대부분은 지역 인근의 5세에서 10세사이의 열혈남아들이었다. 주로 그들은 이 둘의 경기를 관람하며 한손엔 슬램덩크 만화책을, 한손은 콧물을 훔치는 성향이 있었다.. ) 명랑한 지역사회발전에 막대한 공헌을 했다는 점은 간과해선 안될것이다. 이들 둘은 성격에서도 묘한 공통점이 있었으니, 그것은 능글능글한 눈매로 여자들 앞에서 갑자기 돌변하는 가증스런 변태적 만행을 자주 일삼는다는 것이었다. 동남아 피펜은 꼭 근처벤치에 여학생들이 보고 있을때만 덩크슛을 - 그것도 가장 도발적인 폼으로 - 하는 넘이었으며, 마포구 칼말론 역시 여학생들의 등장추이에 따라 온갖 엽기적인 - 다섯발걷기 레이업슛, 쉬운 골넣고 손가락흔들기 등으로 그녀들의 관심을 끌려고 오바를 일삼곤 하였다. 그렇게 한시대를 풍미하던 넘들이.... 아아........ 화무는 십일홍이라던가..... 갑자기 들이닥친 암에푸의 격랑에 휩쓸린 이들은 학점걱정안하고 강의시간에는 농구하고 공강시간에는 잠자는 풍운아적행태에 종지부를 찍고 있었던 것이다. 과거의 아름다운 미소년틱한 얼굴로 농구를 하던 그들의 모습에는 4학년2학기때부터 어느덧 어두운 땅거미가 짙게 깔리기 시작했다. 동남아 피펜은 죽어라고 덩크슛해도 여인네들이 꼬이긴커녕 오히려 동네아줌마들이나 3~5세사이의 지역소녀들로부터만 프로포즈를 받는 해괴한 사태의 연속에 경악, 결국 허무한 웃음을 지으며 그 호방한 기개를 잃어갔다. 지금은 덩크슛은 커녕 링에도 손이 안닿는 초유의 사태까지 발생했다고 전해진다. 마포구 칼말론의 경우는 더욱 심각했다. 뱃살의 미세한 떨림은 좀 진정됐으나, 농구장의 인기는 커녕 "코트의 독재자"라는 달갑지않은 또다른 별명 - 자기는 조또 못하면서 남들 훈계하면서 씨바씨바거리는 - 과 함께 빵꾸난 학점을 멍에처럼 진채, 졸업후 쓸쓸히 백수세계로 사라져갔다고 호사가들은 말하고 있었다. 이 모두가 암에푸의 여파였다고, 역시 암에푸는 두사람의 영웅마저도 굴복시켰다고 역사는 전하고 있다.
각설하고, 오늘은 바로 그 과거의 호걸들이 모이는 날..... 이제는 모두의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듯했던 그들의 대변인이었던 나로서는 삼승에 요행히 취직한 동남아피펜과 오랜만에 퇴근후 한잔술을기울이고 있던 것이다. 이정재같던 그의 배근육은 직장생활1년만에 임신 3개월형태의 엔타시스(이조때 건축양식. 배흘림양식이라고도 한다.)형태로 변모되었으며, 그 무쇠같던 턱근육은 서너개의 미아리고개를 방불케 할정도의 두부살로 바뀌었던 것이다. 아.. 시간의 덧없음이여.. 자기자신의 화려했던 옛영화를 못잊어하던 그는 샐러리맨들이 왜 운동을 해야하는지 이제야 알겠다며 오백한잔을 단숨에 비운뒤 일갈을 토한 것이었다. 왠지 낯설게 하얀색이 된 - 운동할 시간이 없으니까 - 그의 원초적 얼굴을 바라보다가 나는 뭔지모를 설움이 북받쳐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조용히 친구에게 말했다. " 씨바야... 맥주도 칼로리가 장난아니래... " 어느새 저 멀리서 스포츠신문을 들고 40대 대기업부장의 풍모로 호프집문을 들어서는 백수경력 3년의 마포구칼말론의 모습이 눈물로 흐려진 두눈에 희뿌옇게 나타났다.. 아... 샐러리맨들이여..
- 딴지스포츠/연예 수습기자 Beerman( Beerman@shinbiro.com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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