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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8.31.월

딴지 전천후 기자 윤석배



사회는 냉혹하다.

준비되지 않은 자는 가혹한 대가를 치뤄야 한다. 우리 모두 아래 글을 읽고 유비무환, 임전무퇴의 정신으로 이 어려운 암에푸를 이겨나가자..






어느날, 내가 동아리 방에서 다 낡아빠진 기타의 목을 조르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후배 한놈이 헐레벌떡 동아리방에 들어오더니 갑자기 가방을 팽개치고는 다시 밖으로 뛰쳐 나갔다. 그러고는 30분이 지나도 오지 않는 것이었다. 한 40분 지나서 놈이 땀을 뻘뻘 흘리며 울면서 들어왔다. 우리는 동그랗게 모여앉아 그놈이 울면서 토해내는 비극을 들었다...


그놈이 아까 그렇게 급히 뛰어 들어온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는 것이다. ddong이 마려서 그랬다는 것이다.

그 놈은 땅깡아지 배때기에 물결 무늬 생기도록 뛰어서 학교 화장실로 직행했다. 우리 학교 화장실로 말하자면 서서싸 장소가 1군데 앉아싸 장소가 3군데가 있었는데 대부분 물내리는것이 고장이어서 황금색부터 검은색 푸른색의 아주 탐스러운 뭉텡이들이 입추의 여지없이 성황을 이루고 있었다.

어쨋거나 가운데 칸을 거침없이 밀고 들어가서 널려있는 지뢰를 피해서 배변을 하였겠다. 그런데 보통 학교 화장실은 쪼그려서 투하하게 되어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이 놈도 예외는 아니었다.

단지 변기 사이드에 양발을 놓아야 정상인데 양발을 놓아야 할 자리가 확보되지 않아서 (발 놓아야할 자리에 탐스러운 다보탑이 보무도 당당하게 분위기도 뜨뜻하게 놓여 있다.) 한쪽발은 정상적으로 디디고 다른쪽 발은 발 끝으로만 디디게 되었다. ( 그러니 조준이 빗나가서 변기 턱에 싸이고 다음 들어올 놈은 또다시 발놓을 자리가 없는 악순환이 계속되더라..)

하여간 어렵사리 싸긴 다 쌌다.

뒤칸과 앞칸에서 흘러나오는 헐크호간 백드롭할때 내는 신음소리와 아놀드 역기 올릴때 내는 기합소리를 백 뮤직으로 삼아서...

놈이 아랫배에 공복감을 느끼면서 안도감과 느긋함을 느낄 즈음 심각한 문제에 봉착했다는 것을 알고 놈은 비명을 질렀다.

"아아악!"

휴지가 없던 것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럴때 화장실 변기를 뒤져서 재활용할수 있는 화장지를 찾게 마련이다.


그러나...

화는 겹친다고 했던가? 아무리 찾아봐도 휴지 버리는 통이 보이지 않는것이 아닌가? 그때 뒤칸에서 들려온 목소리를 그 놈은 4년이 지난 지금도 잊지 못한다고 한다.

"어.. 시원하다. 휴지통 안 훔쳐 왔으면 닦지도 못하고 나올뻔 했네"

놈은 여기서 무전유죄 유전무죄 또는 빈익빈 부익부의 산경험을 했노라고 훗날 고백했다. 한 칸에 하나씩 있는 휴지통을 어떤 놈은 두개씩 가지고 있어서 게중 비교적 깨끗한 휴지를 확보할수 있고 또 어떤 놈은 망연자실 머리털을 쥐어 뜯어야 하다니...

결국 후배는 옷에 있는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때 마침 학생 수첩이라던가 기타등등 ( 집 문서, 성적표.. 닦을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지 )을 찾아 보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다고 손으로 닦고 나가기는 너무나 문화적 정신적 충격이 컸다.

그때 놈의 눈에 잡힌것은 두 다리 사이에 걸쳐저 있는 (원래 흰색) 반 검은색 의 빤스 였다.

번쩍 놈의 머리속에서 전광석화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 빤스를 벗어서 닦자! 그리고나서 다시 빤스를 사서 입자!

세월이 지난후 그 후배는 맥주를 10,000cc나 마시고 난후 룸까페의 미스 양을 붙들고 이런 고백을 했다.

그때 빤스 바로 밑에 보이는 양말에 대한 유혹을 떨치기 위해 많은 자제를 했다고... 그 양말은 여자친구가 사준 것이기 때문에 도저히 사용할수 없었다고...

그 말을 듣던 미스 양이 이런 이야기를 해 주었다. "일단 양말을 벗어서 뒤집고 뒤집은 면으로 닦은 다음에 다시 뒤집어서 신고 신발을 신고 집에까지 오면 되잖아요?" 그 이후로 우리는 미스양의 양말을 유심히 살피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서 놈은 빤스를 벗기로 했다.

아! 그러나 상황은 언제나 선량한 사람의 적이라 했던가. 빤스를 벗으려면 바지를 벗어야하고 바지를 벗기에는 장소가 너무 협소해서 만약 억지로 바지를 벗으려 하다가는 빤스를 무릅에 걸친채 바지를 발목에 걸친채 화장실 바닥에 슬라이딩을 하게될 위험이 있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것이 바로! 바로! 빤스를 찢는 방법이었다.

사실상 빤스를 찢기는 쉬웠다. 가장 연약한 옷이 바로 속옷이니까. 하지만 빤스를 좌우로 누빈 바로 그 가장자리 부분의 바느질은 너무도 튼튼했고 또한 고무줄이 들어간 부분은 손으로 찢기엔 너무도 끈질겼다. 하지만 놈은 상황에 굴복하기 보다는 상황을 극복하는 스타일 이었다.

손대신 이빨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놈은 다시 빤스를 위로 올리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고개를 무한정 굽혔을때 빤스가 얼굴쪽으로 가장 가까이 오는 입실론 반경까지 접근시키고 이를 악물었다.

찌찌직

빤스가 찢겨 나가는 소리에 쾌감을 느끼며 고무줄을 질겅거리기 시작했다. (놈의 빤스는 원래 고무줄이 끊어져서 - 오래된 관계로 고무줄이 삭았다- 어머님께서 긴긴 동짓밤 까만 고무줄로 성능개선 보수공사를 마쳐 놓으신 사랑이란 이름의 빤스다.)

그때 놈은 처음으로 검정고무줄의 맛이 꽤나 쓰다는것을 느꼈다. 그리고는 이것이 바로 인생의 맛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한다. 드디어 고무줄을 끊고 빤스의 바느질 부분을 침을 질질 흘리며 이빨로 끊어냈다.

훗날 놈의 뒤칸 화장실에 앉아있던 김 모군(19.직업:학교옆 중국집 홍콩반점배달원)은 이런 소리를 들었다고 증언했다.

"오! 신이시여 정말 이 고무줄을 제가 끊었단 말입니까?"

하여튼 놈은 냄새를 단전호흡으로 극복해내며 빤스를 찢어 내었다. 그리고는 보무도 당당하게 세상에서 가장 비싼 화장지로 뒤처리를 하고는 바지를 입고 쑤셔대는 허리를 꼴꼴이 폈다.

아! 그러나 이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그는 그 날이후 유사시를 대비
딴지빤스연구팀에서 특수제작한
이런 빤스만 입는다. 착탈식이다...


화장실 벽에는 머리 뒤쪽으로 작은 선반이 있었는데 그 선반 위에 얄팍한 휴대용 티슈 몰라리자 가 놓여 있는것이 아닌가.

놈은 괴성을 지르고 그 휴지를 갈기갈기 찢고는 벽에 기대어 서럽게, 아주 서럽게 울었다. 그때 앞 칸에서 조용하고도 슬픈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씨도 시계를 빠트리셨군요. 그 심정 동감합니다. 흑흑.."

놈은 울면서 화장실을 나오다가 지뢰를 3개나 밟고 말았다고 한다. (우리에게 지뢰를 밟은 흔적을 보여 주었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난다.


놈의 이야기를 다 듣고난 우리들은 아직도 울고 있는 놈의 등을 아무 말없이 토닥여 주었다. 아무도 이야기 하지 않았지만 서로의 눈에 맺힌 이슬이 놈의 아픈 상처를 공감하고 있다고 대변해 주었다. 그리고는 소주를 10병이나 까고 우리의 젊음과 그 젊음의 덧없음, 또는 아픈 사랑에 대한 개 같음을 이야기하고 투사의 노래를 부르며 깊은 밤을 보냈다... 





- 딴지 전천후 기자 윤석배 ( blue99@netsgo.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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