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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8.31.월

딴지스포츠 전문기자



아래의 글은 붉은악마 응원단으로 프랑스에 갔었던 이은호(하이텔 : Fortuna)님의 월드컵 응원후기에서 벨기에전 관전부분을 발췌한 것입니다.






드디어 심판의 휘슬과 함께 경기가 시작했다. 시작하자마자 벨기에의 공세. 닐리스의 슈팅에 이은 한차례 김병지의 선방. 얼마후 다시 채 전열이 정비되기도 전에 벨기에의 코너킥.

순간 이는 불안감. 아니나 다를까. 오른쪽에서 올라오는 공이 벨기에 선수의 머리를 맞고 그대로 우리쪽 골대로 빨려온다. 다행히도 그 자리에서 헤딩으로 거둬내는 김도근.

아~ 그러나 동시에 순간 공은 닐리스의 슈팅과 함께 다시 매정하게 우리쪽 네트에 꽂히는 것이었다. 골이었다.

뒤집어지는 벨기에 관중석. 그러나 아직 시간은 많았다. 목청껏 괜.찮.아! 를 외치며 선수들을 격려한다. 5분만에 1:0. 네덜란드전때도 이렇게 빨리 먹지는 않았는데... 앞서는 걱정. 하지만 그라운드의 선수들을 보자 이런 생각은 어느덧 사라졌다.

모두들 너무 열심히 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상헌이 헤딩하려다 얼굴을 체이고 테클하다 다시 쓰러지고.

서정원의 1:1찬스가 볼트레핑 미스로 골키퍼한테 안긴다.

아~ 곳곳에서 아깝게 터져나오는 탄식들... 그래도 분위기가 좋다.

그래! 이 기세로 밀어붙여~!, 힘내~! 사람들은 목청껏 응원을 계속하고 있었다.

전반내내 이어지는 공방전. 그러나 40분이 넘을 무렵 네덜란드가 2:0으로 이기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자 벨기에는 완전히 뒤집어진다. 마치 벌써 16강이 확정된것처럼 난리치는 벨기에 사람들.

동시에 반대편에서 시작된 파도가 우리쪽으로 밀려오고 있었다. 한차례 맞서보지만 전관중의 쏟아지는 야유. 하는 수 없이 약자의 서러움을 느끼며 우리도 파도에 동참하는 수밖에 없었다. 파도까지 돌자 아니나 다를까 완전히 벨기에 판으로 뒤집어지는 운동장. 얼마후 전반전이 끝나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프타임. 비록 1:0 상황이었지만 결코 질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경기 분위기가 좋다. 모든 선수들이 너무나 열심히 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9월 28일 일본전때도 같은 느낌이었다.

 기필코 동점골 그리고 역전골까지 터질것이라는 믿음이 섰다.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에 서둘러 자리로 돌아와 호랑이 통천을 준비했다.

호랑이 통천과 함께 후반전이 시작되고 한국의 선수교체. 고종수와 이임생이 들어왔다. 아 제발 최선을 다해서 뛰어다오. 간절한 생각 뿐이었다.

역시 후반전도 치열한 몸싸움. 30대가 넘는 선수들이 많다곤 했지만 벨기에는 어디까지나 덩치좋은 유럽팀이었다. 떡대같은 벨기에 선수들과 부딪힐때마다 안타깝게 나가떨어지는 우리선수들...

몸싸움에서 밀려 쓰러지면 곧바로 일어나 이를 악물고 뛰고 있었다. 단 1분이라도 벌기 위해 김병지는 아웃되는 공을 달려가 잡고...

얼마후 유상철의 패스를 받은 이민성에게 1:1 찬스가 온다. 순간 숨죽이는 관중석. 그러나 공은 아깝게도 골키퍼 다리를 맞고 나오는 것이었다. 아~ 곳곳에서 나오는 탄식. 그러나 안타까워할 사이도 없이 벨기에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닐리스의 공이 골대를 맞히는 한차례 위기. 안도의 한숨을 쉬기도 전에 이번에는 한국선수가 쓰러진다. 이상헌.

그러나 벨기에는 선수가 쓰러져있어도 아랑곳 않고 계속 인플레이하며 공격을 퍼부었다. 관중들의 쏟아지는 야유.

우리도 휘파람을 부르며 야유했다. 다행히도 김병지의 선방.

그제서야 이상헌이 그라운드 밖으로 실려나갈 수 있었다. 부상이 심각한지 교체되는 이상헌 대신 장형석이 나왔다.

한국의 마지막 교체였다. 더 이상 교체를 할 수 없다. 이제는 부상을 당하면 어쩌나... 들어오는 장형석의 이름을 외치면서도 걱정만이 앞섰다.

후반 25분. 왼편에서 돌파하던 고종수에게 벨기에가 파울을 가한다. 한국의 프리킥. 페널티박스에서 약 2m떨어진 지점이었다. 저 거리라면! 하는 생각에 갑자기 흥분이 되었다. 그 순간 인철님(붉은악마 회장)이 흥분 때문에 그르쳤던 멕시코전을 환기하며 외친다.

"여러분 우리모두 선수들에게 침착하라고 외칩시다!". 그래 여기서 침착해야 한다. 선수들에게 제발 침착하라고 침.착.해! 침.착.해! 를 목청껏 외쳤다.

키커는 하석주. 심판의 휘슬이 울리고 센터링이 감아져 올라왔다. 벨기에 수비수들과 골키퍼를 스쳐 지나는 공. 그 시간이 마치 영원처럼 느껴졌다. 점점 내려오던 공이 땅에 닿는다고 느껴지는 순간! 아. 갑자기 우리 앞의 네트가 출렁이는 것이었다.

 세상에 믿을 수 없었다.

아아아~! 골이었다. 모두들 부둥켜 안고 울었다. 동점골.

그렇게도 그리던 골이 터졌다. 축제 분위기였던 벨기에 관중석은 일순간 초상집. 벨기에 선수들의 얼굴은 잿빛으로 변해 있었다.

대. 한. 민. 국~~~! 경기장에 울려퍼지는 우리의 응원은 거의 울부짖음에 가까웠다.

이제는 1:1 동점. 한골 앞서던 상황에서 안전위주로 나가던 벨기에는 총력전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겨야만 16강에 오르는 상황. 이제 벨기에도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거센 벨기에의 반격속에 점점 거칠어지는 경기. 우리도 물러서지 않고 맞불을 폈다. 몸을 던지는 육탄전 속에 다시 한국선수가 쓰러진다. 이번에는 이임생. 머리에 부상을 입고 피를 흘리며 그라운드 밖으로 실려나왔다.

순간적으로 경기는 11:10 상황. 한명이 많아지자 벨기에는 파상공세를 펼치기 시작했다. 계속되는 위기. 한국이 밀리는 것을 보고 이임생은 머리의 피를 닦는 시늉만 하고 다시 그라운드로 뛰어가려 하지만 선심이 이를 저지한다. 상처는 괜찮으니 빨리 들여보내달라고 울부짖는 이임생.

안타까워하는 그 모습을 보며 어느새 코끝이 찡해지고 있었다.

이 경기에서 이겨야만 16강에 오르는 벨기에... 반면 탈락이 확정되었지만 단 1승이라도 거두기 위해 뛰는 한국... 너무나 다른 상황이었지만 1:1에서 벌이는 경기는 한치의 양보도 없었다. 벨기에의 센터링이 올라오면 몸을 던져 헤딩으로 거둬내는 우리 선수들.

이임생이 헤딩을 할 때마다 붕대를 감은 머리에서는 피보라가 이는 것만 같았다. 부상을 입고서도 악착같이 공중불을 따내려던 김태영은 무릎을 움켜쥐며 쓰러지고... 벨기에가 슛을 하자 유상철은 몸을 내다던지며 막았다.

 


어느덧 나의 눈에는 눈물이 고이고 있었다.

네덜란드전 이후, 한순간이나마 우리 선수들을 욕했던 내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기 때문이었다. 정말 우리 선수들은 너무나도 열심히 뛰고 있었다. 저렇게까지 해야만 하나... 월드컵 1승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이런 생각마저 들고 있었다.

수비수들의 눈물겨운 투혼에 보답이라도 하듯 전방에서는 서정원과 하석주가 줄기차게 뛰어다니며 결정적인 찬스를 만들고 있었다. 센터링에 이은 최용수의 헤딩!

아~ 그러나 안타깝게도 골퍼스트를 넘어가는 공. 조금만, 아니 약간만 더 침착하기만 했어도... 안타까운 장면들이 반복된다. 이 와중에서도 매정하게 흘러가기만 하는 시간... 15분... 10분... 5분... 정말로 이번 월드컵에서도 우리는 이 마지막 벽을 넘지 못하는 것인가... 시간이 갈수록 점점 안타까움만 더해갈 뿐이었다.

드디어 45분을 지난 전광판도 꺼지고... 4분의 루즈타임도 지난다. 벨기에의 마지막 코너킥. 우리 못지 않게 절박한 심정의 벨기에는 골키퍼까지 나와 공격에 가담했다.

올라오는 코너킥. 김병지와 벨기에 골키퍼가 동시에 뜬다. 공을 잡고 땅으로 떨어지는 김병지. 일어나자마자 서정원 쪽으로 공을 내차지만 그 순간 주심의 휘슬이 울린다. 땅에 드러눕는 벨기에 선수들... 우리 선수들도 고개를 떨군다.

경기 종료. 무승부였다.

 아... 이렇게 끝나는 것인가...

마지막 1골이 터지기만을 기다리며 참아왔던 눈물이 일순간 쏟아졌다.

지난 2년동안 여기 프랑스만을 꿈꾸며 준비했었는데 이렇게 끝나는구나...

선수들이 저렇게 피를 흘리고 몸을 던져가며 뛰는데도 마지막 1승을 거두지 못하는 우리 축구의 현실...

그 모든 것에 나도 모르게 계속 눈물이 났다. 선수들이 마지막 인사를 하러 우리쪽으로 온다. 선구자를 부르며 선수들을 맞는 모두의 눈에는 어느덧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최선을 다해 끝까지 싸워준 그들이 너무나 자랑스러울 뿐이었다. 모든 것이 불리하기만 한 이곳에서 굴하지 않고 끝까지 싸워준 우리의 선수들...

곧이어 보도진들이 우리쪽으로 몰려와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맨 앞에 있던 나는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 고개를 돌렸다. 그런 내 옆에서 고개를 숙이고 울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인철님이었다. 가슴이 메여왔다. 정말로 힘든 이 붉은악마 회장직을 맡고서 여기까지 우리를 이끌어온 인철님. 마지막 1승과 함께 이 자리를 마무리짓고 싶다던 인철님의 마지막 소망은 이렇게 아쉬움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런 중에 2층에서 들리는 박수소리... 고개를 들어 올려보니 벨기에 관중들이 우리를 향해 박수를 쳐주고 있었다. 우리도 답례로 목청껏 벨지움! 을 외쳐주었다. 역시 최선을 다한 벨기에 선수들과 관중들에 대한 존경의 표시였다.

비록 승자가 없는 경기였지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모두 최선을 다한 상대에게 박수를 쳐줄 뿐. 이 모습을 보며 우리와 벨기에 모두를 위해 프랑스관중들과 CFO요원들 기립박수를 쳐주었다. 그래 바로 이것이 축구만이 가지는 감동이구나... 다시 한번 코끝이 찡해왔다.

청소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운동장을 나오려는데 벨기에 사람 한명이 내게와서 말을 건다. 한국을 다시보게된 경기였다는 말. 그리고 한편으로는 탈락이 이미 확정된 나라가 어떻게 이렇게 뛸 수 있는지 자신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내가 그냥 말없이 웃자 엄지손가락을 펴보이며 돌아가는 벨기에 사람. 자신들의 16강행을 가로막은 이 한국을 벨기에 사람들은 오랫동안 잊지 못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은 혹시 이길때만 우리편 아닌가요...
이제 차범근이고 나발이고 욕 그만하고,
축구장에 갑시다. 축구장에. 




 


- 딴지스포츠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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