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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8.31.월

딴지레저부 기자



다들 기억하시겠지만, 암에푸 직후 TV 틀기가 무서웠다. 도대체 TV를 틀었다 하면, 국민들이 나라 망쳤다고 얼마나 뭐라고 하는지 죄책감 들어 볼 수가 있었야지. 수천만원짜리 이태리 가구를 보여주면서 이런거 때문에 그랬다...

또 다른 수천만원짜리 모피 코트 보여주면서 이런 거 사서 그랬다... 단체로 쇼핑 관광에 열 올리는 사람들 보여주면서 이래서 그랬다... 서민들하고는 하나도 상관없는 것들이더만, 좀 살만해진다 싶으니까 외제선호, 과소비, 해외여행 이런 거 마구 해서 나라가 이 지경이 되었다고 국민들이 각성하라면서 난리가 났었다. 우라질 넘들.

지들 잘못이 들통날까봐 언론 동원해 국민들 윽박지르는데 환장할 뻔했다. 결국 다 들통나고 있지만 말이다. 여하간 오늘은, 몇달전만 해도 언론에서 열나게 해서는 안된다고 떠들던 해외여행... 여기에 대해 한번 야그해 봐야겠다.





우선, 해외여행 붐이 왜 일었는지부터 되짚어보자.

 기억하시는 분은 다들 기억하시겠지만 80년대까지만 해도, 해외 여행 조건이 까다롭고 무슨 서류는 그렇게나 많은지 기본적으로 여권 만들기조차 쉽지 않았다. 여권 만들어 해외 여행하는 것이 흔하지 않던 시대라 해외 한 번 갔다오면 대단한 동네 자랑거리였다. 그러던 중, 89년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로 일반인의 해외여행 물꼬가 터지고, 김영삼 정부 출범이후 한해 수십억달러 이상의 외화를 소진하며 해외여행은 가파른 상승 곡선을 탔다.

▷ 김영삼 정부 이후 해외여행이 급증한 이유는 이렇다.

김영삼 정부 출범이후 경상수지 적자 폭이 계속 커졌는데, 이 적자 폭을 넘는 차입금을 들여와서 자본수지는 계속 흑자를 기록해 외환보유고는 오히려 올라가고 있었다. 단순화해서 말하면, 수출보다 수입이 많아서 적자였는데, 그 적자폭보다 더 많은 돈을 외국에서 빌려와서 국내에 달러가 오히려 더 많아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 남는 달러를 보유하고 있자면 원화를 풀어줘야 하므로 거시적으로 볼 때 통화량 증가로 물가상승 요인이 된단다. 물가가 오르면 안되쟎아... 그래서 이 남는 달러를 해외여행의 권장으로 소비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장사해서 번 달러가 늘어간게 아니고 빌려와 가지고 있던 달러가 늘어가고 있었는데, 이걸 국민들보고 여행가서 써버리라고 한 것이다. 무쟈게 훌륭한 정책이다. 조또.

그래서 이런 정책하에 나온 일련의 조치들이 바로 기업 대규모 해외 연수권장, 세계화 구호와 몇몇 조치들... 이다.

 문체부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여행수지 부분은 지난 95년 말, 350만달러의 흑자를 기록한 이후 적자행진을 계속해 오다가, 지난해 11월 IMF 이후에야 여행수지가 1억 5천만달러의 흑자로 다시 돌아섰다. IMF 먹기 직전까지 김영삼 출범이후 여행수지 부분은 악화일로만 열나게 달려왔던 것이다.

배신감 들지 않을 수 없다. 해외여행을 권장한 것은 바로 정부다. OECD가입과 세계화를 외치며. 그것도 남는 달러를 처리하려고. 근데 알고보니 그 남는 달러가 우리가 벌어들인게 아니라 종금사, 은행들이 재벌에 대출하려고 외국에서 왔던 돈이었던 것이다.

그래 놓고, 언제는 해외여행 많이 가라고 하더니, 이제는 국민들이 해외 여행가서 이 나라가 이렇게 되었다고 윽박질렀던 그 똥배짱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조또가 아닐 수 없다. 여하간 <해외여행 가면 매국노> 분위기 형성되자, 단번에 해외 여행객 송출 1,2위를 다투던 온누리, 씨에 프랑스, 삼홍이 모조리 부도났다. 그외 수도항공, 푸른세계, 범한, 계명 등  중간 규모에 난다긴다 하던 곳들도 자빠지기 시작했고, 삼성 주거래 여행사였던 세중까지도 오늘 내일 하고 있다. 한마디로 여행업계가 쑥밭이 되었던 거다.

물론, 여행업계의 잘못도 많다.

거품 요소를 스스로 창출해낸 면도 참으로 많다. 알라스카 낚시여행을 위한 차터 임대 패키지, 동남아 싹슬이 보신광관 등 저질 패키지 양산... 예를 들자면 무수히 많다. 수요, 공급이 맞아떨어져야 한다고 여기에 기꺼이 기천만원 써가며 화답한 일부 졸부들도 졸라 욕먹어 싸다.

여행업계 역시 양질의 상품을 개발해 경쟁력을 배양하고, 전문적 경영 마인드와 합리적 대금지불 관행, 세련된 랜드 관리체계를 갖추지 못하고 주먹구구식으로 일관했던 점 통감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까 거품이 빠지자마자 탄력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그대로 도산하지.

▶ 그런데...
오늘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그것이 아니다. 불필요한 해외여행, 물론 자제해야 한다. 싹슬이 쇼핑, 보신, 과소비 관광 물론 근절되야 한다. 그러나, 빈대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고, 도대체 <건전한> 그리고 <필요한> 여행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까지 여행가면 무조건 <매국노> 만들어 버리면 어쩌자는 건가. 무조건 소비를 줄이라고 하니까, 내수 시장이 죽어서 오히려 경기 회복이 더디고 있다. 합리적인 소비를 해서, 기업도 살고 소비자도 살아야지, <무조건 돈쓰면 안됨> 분위기만 만들고 협박하니까 내수시장이 죽는거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건전한>, <필요한> 여행은 반드시 멈추지 말아야 한다. 회사 출장같은 거야 알아서들 하겠지만, 오늘 말하고 싶은 것은 젊은이들의 배낭여행, 혹은 스스로 벌면서 여행이다.

작년 한해 관광청 통계를 보면,

  전세계는 범위가 너무 크므로, 유럽으로 축소시켜 보자.
  유럽 지역으로의 20대 여행자 중 이런 형태의 여행자
  비율이 80% 이상이므로 표본으로 충분하리라.

 유럽지역으로의 20대 여행자 수는 88,796 명이다. 4,053,766 명의 전체 여행자 중 2%로에 불과하다. 80%면 7만명 정도이다. 이 7만명은 여행수지 적자의 주범에서 빠져야한다. <무죄>다.

여행경비 비중이 어떠니 하는 통계치를 계속 들이대는 짓은 그만하자. 이들이 <무죄>임을 입증할 자료는 무쟈게 많지만, 숫자 많이 나오면 골치 아프니까.

적어도 이들 젊은이들은, 스스로 벌어가며, 짠돌이 행세하면서 노숙도 하고 고생 여행하는 이들은, <무죄>여야하고 <무죄>임을 알려줘야 하고, 지속적으로 그런 여행을 떠나라 권장해야 한다.

 유럽에서 소위 배낭여행이란 걸 하다보면 전세계에서 몰려드는 젊은이들을 만날 수 있는데, 가장 놀라운 것은 그들의 연령대가 너무도 낮다는 것이다.

20대 중반이 압도적인 우리나라 여행자에 비해 그들은 10대 후반이 가장 많다.

10대에 이미 산더미만한 배낭을 짊어지고, 밥 굶어가며, 처마 밑에서 이슬 피해가며, 세계를 누비고 있는 것이다. 언어 장벽을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아이들이 모두 영어권 국가에서 온 아이들은 아님은 물론, 유럽이란 곳이 영어가 잘 통하는 곳이냐 하면 전혀 그렇지가 않다.

프랑스 예를 들지 않더라도, 북구의 스칸디나비아 반도 쪽을 제외하고 영어로 지껄여 통하기는 우리나라 보다 어려우면 어려웠지 결코 쉽지 않다. 언어가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이 아이들이 지 몸보다 큰 배낭을 짊어지고 노르웨이의 나르빅에서 그리스의 데살로니카까지 누비고 다니는 걸 보면, 불안하기 그지없다. 저 쉐이들이 커서 우리 젊은이들이랑 맞상대를 한다고 생각하면 걱정이 무쟈게 된다는 말이다.

그 쉐이들이 그렇게 견문을 넓히고, 돌아가 훗날 국제 비즈니스를 하던, 그냥 작은 보따리 장사를 하던, 그 이해의 폭과 사고의 폭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과 비해 넓어질 것은 자명한 것이다.

무한 경쟁 시대에 이 쉐이들과 맞붙어야 할 우리의 젊은이들이 깨갱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물론 그런 여행한다고 갑자기 세계를 보는 눈이 떠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유럽에서 파업이 있다면 그들은 어떻게 대처하는지, 네오 나찌즘이 독일에서 준동한다는데 그게 어떤건지, 그 쪽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고, 어떻게 삶을 향휴하며 사는지, 그들 문화가 조금은 보이고 그들 생활이 조금은 이해가 가게 된다.

이게 시작이다. 이렇게 그 배경이라도 조금은 이해를 해야 뭘 해먹던 상대가 된다. 상대가 되어야 붙어서 이기던 말던 해 볼 여지가 있다. 이들이 외국으로 배낭메고 떠나는 걸 막지마라. 이들을 죄인으로 만들지 마라.

젊은이들이 배낭 메고 떠나는 건 <무죄>다, <무죄>. 




 


- 딴지레저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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