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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진욱 추천0 비추천0






1998.8.17.월

딴지일보 논설 고문 석진욱



통신의 플라자란에 들어와 글을 읽다보면 가끔 "아..아직도 이런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요즘도 있나?"하는 글들을 보게 됩니다.

바로 "열심히 자기할일만 하는 사람들..."운운의 글귀죠..나름대로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 시키고 그리고 사람들에게 자신의 글에 대한 설득력을 부여하기 위한 문장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고방식으로는 결코 구미의 선진경제대국들을 이길 수 없습니다.

"열심히 자기할일만 하는 사람들.."의 의미를 다시한번 살펴봅시다. 20세기 후반 그러니까 1960년대부터 1980년대의 산업생산은 이른바 "신 포디즘"이라고 불리는 보다 유연한 대량생산체제였습니다. 그것은 보다 높은 자동화와 설비운용의 효율화를 통해 여러품목들을 대량생산하는 체제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상 1980년대까지의 산업생산방식에 가장 합치할 수 있는 노동자상이기도 했습니다.

신 포디즘 아래에서는 오직 "하나"만을 아는 전문인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체제에 가장 근접한 인간형을 만들어내는 교육체제로는 일본의 교육체제를 들 수 있겠지요..그래서 1980년대 구미는 "일본을 배우라"라는 슬로건 밑에서 일본 혹은 한국의 교육체제를 따라가려는 구미의 움직임 혹은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1990년대가 되었습니다.

최신호 뉴스위크지는 일본의 1990년대를 "잃어버린 10년"이라 표현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내수부진으로 인한 장기복합불황으로 마침내는 일본이 자랑하는 제조업상의 강한 경쟁력마저도 여지없이 공중분해될 위기에 처한 현재를 빗댄 말입니다.

일본은 "열심히 자기일만 하는 " 말 그대로의 "장인"들을 키워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안타깝게도 진정한 의미의 "장인"- Artist라기 보다는 오히려 그것만을 아는 "인조인간"에 훨씬 가까웠을 뿐입니다.

이러한 인조인간은 신경회로망과 퍼지로직을 결합한 "전문가 시스템"으로 만들어 낼수 있습니다. 그것이 1990년대이기도 하지요.

21세기 한국에 "열심히 자기일만 하는 사람들.."은 더 이상 필요없습니다. 그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로봇"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왜?
만일 한국이 산업구조조정에 성공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지식집약형 산업으로 접근하는 산업구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산업에서 진정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깔대기형 지식구조를 가진 사람들 즉, 자신의 전공분야 뿐 아니라 폭 넓게 사람과 사회와 문화를 고찰-관찰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에게서만 21세기 산업에 진정 필요한 자산인 "창조성-아이디어"를 보장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21세기 산업에 필요한 "창조성"이란 가수들이나 연예인들이 말하는 이른바 "센스"같은 것이 아닙니다. 번뜩하고 나타나는 어떤 "영감"과는 관계없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지식집약형 산업에 있어 "창조성"이란 한 개인의 전문분야와 더불어 폭 넓은 문화-사회-인간에 대한 경험과 공부속에 논리적 결합이라는 접착제 아래 중층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말해 21세기 산업에 필요한 "창조성"이란 전문분야로만 만들어진 벽돌뿐 아니라 개인의 문화지식에 의해 구워진 벽돌, 개인의 사회지식에 의해 구워진 벽돌, 개인의 인간지식에 의해 구워진 벽돌들이 조합되어 이제까지 없던 전혀 새로운 구조물을 만드는 것입니다.

요즘 바라보는 20세 초중반의 젊은분들에게는 안타깝게도 이러한 벽돌을 구워낼 능력이 이전의 386세대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느낌입니다. 적어도 21세기 (이제 불과 3년 남았지만..) 한국경제의 미래는 "열심히 자기일만 하는 사람"들에 의해 일본제 기계에서 대량생산품을 생산하는 체제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소량의 물건이지만 수 많은 지구인들의 문화적 사상적 지지를 받는 상품을 생산할 수 있는 경제가 되어야 한국에 미래가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 그런 미래를 기대하기는 좀 어렵겠지요...

1997년 구미 선진제국을 강타한 "체 게바라"를 사용한 상품이 한국에서는 기껏 "체 게바라"평전 혹은 유명한 그의 "게릴라 일기"를 다시 찍어내는 정도에 불과 했으니까요..그런 센스로서, 사고방식으로서, 또 그것만 통할 수 있는 한국의 사회문화적 인프라로서 한국이 세계 경제대전을 잘 헤쳐나갈 수 있을까요?





- 딴지일보 논설 고문 석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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