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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후] 한미 FTA? 이 美親 색히들아!


- 신자유주의는 우리의 길이 아니다.


2007.4.11.수요일


* 편집자 주 :


한미 FTA가 타결되었다. 여기저기 난리다. 어쩌면 연말에 있을 대선은 사회경제적 이슈가 핵심쟁점이 되는 한국 헌정사상 최초의 대선이 될지도 모르겠다. 타결에 대한 구체적인 득실을 따지기에 앞서 하나 짚고 넘어가자. 이 문제야말로 세계관과 원론의 확인이 무엇보다 중요한 쟁점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 일반인들은 알아먹기도 힘든 어려운 경제용어와 지루한 숫자놀음으로 점철된 대차대조표 이면에, 우리의 자식들 그리고 그 자식들의 자식들이 살아가야 할 미래의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는 점. 그리고 그것을 우리가 선택해야 한다는 점. 여기에 같기도식 중용의 묘는 끼어들 자리가 없다. 어떤 미래,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이며 그 실현가능성은 얼마나 될 것인가.


아래의 글은 90년내 초중반 개방화, 세계화의 기치 속에 이루어진 신자유주의의 가속화가 한국경제를 파탄시켜간 과정을 역추적하며, 한미 FTA 타결로 대변되는 미국의 길이 결코 우리의 길이 될 수 없음을 주장하는 글이다. 미국의 길이 우리들에게 주어진 유일한 선택지라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혹은 또다른 길이 존재함을 주장할 수도 있다. 어떤 주장이든 본지, 모두 환영한다. 이 문제에 대한 기탄 없는 토론과 제안이 이루어지길 바라며, 이번 한미 FTA 타결에 대한 실내용에 관해서는 반 FTA 진영의 대표적인 논자라 할 수 있는 전 청와대 국민경제 비서관 정태인씨와의 인터뷰가 조만간 업로드될 예정이니, 언제나 그랬듯 쫌만 기둘려 주시라.      


 








지난 달 25일 한미 FTA 반대 집회 단상에 영화 <괴물>의 모형이 설치되었다. 물론 그 ‘괴물’은 한미 FTA를 상징한다. 그 영화의 줄거리를 떠올려 보니, 비유적인 착상이 계속 이어진다. 괴물을 탄생시킨 미군이 흘려보낸 독극물은 무엇일까. 신자유주의?


워싱턴 컨센서스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공산당선언의 유명한 첫 마디를 연상시키는 ‘유령’이 오늘날 우리 사회를 엄습하고 있다. 신자유주의다. 다만 당시 지배층이 공산주의 유령을 몰아내기 위해 신성동맹을 맺었다면, 지금의 지배층은 신자유주의라는 유령을 지켜내는 것이 목적이라는 점이 차이라고 할까.


유령처럼 온 사회를 휘감아가는 신자유주의의 발원지는 주지하다시피 미국이다. 더 심층을 파고들면 90년대 초 부시행정부에서 세계 자본을 떡 주무르듯이 하는 울트라 금융자본 파워-미 재무부, IMF, 세계은행-들이 워싱턴에 모여 신자유주의의 깃발에 대략 다음과 같은 강령을 새겨 넣었던 것이 그 유래라고 하겠다.(워싱턴 컨센서스)


국가기간산업 민영화, 작은 정부, 자본시장 자유화, 관세인하, 노동시장 유연화


이 강령은 이제 개도국을 위한 복음서로 수출된다. 물론 그들의 옛 선조들이 미개국을 개종시키기 위해 선교사를 보낼 때와 마찬가지로 그 복음서의 이면에는 항상 채찍이 동반되어 있다.


개도국이 이들의 권고를 수용하지 않을 때는 정권의 부패를 폭로하여 무력화시킨 다음 다른 정당을 집권시켜 구조조정을 하게 만들거나, 외환위기가 닥치면 일단 망하게 냅둔다. 이들이 준비한 채찍이다.


신자유주의 쓰나미 -외환위기


바둑에서 패하면 복기를 해서 패착을 분석하는 것이 실력향상의 지름길이다. 양극화의 몸살을 앓는 한국 경제의 꼬인 실타래가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 비디오 판독을 할 필요가 있다. 잠시 rewind 버튼을 허용한다면 우리는 김영삼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


그 누구도 못 말리는 학끈한 정치인으로서 김영삼은 3당 합당할 당시 공언한 것처럼 호랑이를 잡으러 실제 호랑이굴로 들어간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불가라는 검찰의 구차한 변명을 단칼에 날려버리고 바로 전두환, 노태우를 구속시켜 버리더니, 쾌도난마로 군의 거대한 파워블록 하나회를 해체시키며 수많은 스타군단들을 별똥별로 나가떨어지게 만드었다. 전격적으로 통과시킨 공직자 재산공개법과 "깜짝 놀랬제?"의 금융실명제. 이후 토사구팽이라는 단말마를 남기고 전사한 박준규를 비롯한 민정계 수뇌부들... . 이른바 김영삼판 역사바로 세우기는 당시 운동권들의 손가락질과 조롱을 여봐란듯이 무색케 하기에 충분했다.


그야말로 질풍노도로 한달음에 내달렸던 거침없이 하이킥 개혁과, 90%에 육박하는 기록적인 지지율. 동물적인 정치 감각의 소유자 김영삼의 정치 개혁은 일반인의 예상을 뛰어 넘었다.


그런데 동물적 감각의 소유자는 머리가 부족하지만 걱정할 것이 없었다. 왜냐하면 머리는 빌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경제에 대해서만큼은 철저하게 차입경영에 의존했는데 그 창구는 모피아였다.


마피아가 나이트클럽과 룸빵을 접수하듯이 재경부출신들이 각종 정부 산하단체들과 금융기관을 장악하여 그들의 별명이 모피아인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마피아의 본국이 이태리듯이, 그들의 정신적 모국은 미국유니버시티이다.


중국인들보다 더 중국에 환장했던 조선시대 유학자들, 기독교 종주국의 사람들이 혀를 내두르는 극성스러운 한국 기독교인... . 이들의 혈통과 계보는, 경제 관료들에게 그대로 이어진다.


이들 관료들은 워싱턴 컨센서스의 교리를 받아들이고 쌍팔년도 식 산업정책을 해체하였다. 세계화시대에 걸맞게 개방할 거 개방하자는 식으로 나온다. 무턱대고 OECD 가입하고, 금융시장 학끈하게 개방한 것부터가 망조의 시작이었다.


자본시장이 개방되고 정부 주도의 산업정책이 약화되니까, 기업이나 종금사나 할 것 없이 외자를 마구잡이로 도입하기 시작한다. 김영삼이 집권하기 시작한 93년도엔 400억 달러였던 부채가 말년엔 1500억 달러에 달했다. 급격한 외자 증가는 필연코 과잉 투자를 낳게 된다. 과자 만드는 회사가 오디오 생산에 손을 대고, 반도체 만들던 삼성이 자동차 만들겠다고 뛰어든다. 당시 경제규모에서 이런 무질서한 과잉투자는 거품을 일으켰고, 꺼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동남아로부터 터져 나온 외환위기의 열풍은 동아시아로 불이 옮겨 붙었다. 단기 차입 위주였던 외자 대출을 외국자본이 급격히 회수하니까, 무너지지 않을 회사가 어디 있겠나. 기업이 무너지니까, 대출을 해준 은행도 직격탄 맞는다. 외환위기 펑!


월급의 일부분으로 착실히 은행에 대출 이자를 내던 김대리가, 느닷없이 대출원금 다음 달 내로 갚으라고 하니, 신용불량자로 몰리지 않을 수 없고, 고리대출금으로 상환하자 이제 고리대금업자는 신체포기각서를 쓰라고 한다. 노숙자 탄생.


노숙자의 길이 한국 경제 눈앞에 펼쳐지는 순간, IMF는 신체포기각서 제출을 요구했다. 워싱턴 컨센서스가 제시한 그 강령 말이다. 그리고 세계경제 부총재를 지낸 스티글리츠가 경악할 정도로 기상천외한 경제처방을 주문한다.


30%가 넘는 살인적인 고금리. 무역관련 보조금 폐지. 외국인 주식소유제한 폐지. 공기업 민영화. 정부규제 축소. 노동시장 유연화.


이 중에 특히 고금리 정책은 앞서 말한 대로 기업들을 도산시켰고, 한국 경제에 결정타를 날리면서 IMF 자살자들을 양산시켰던 정책이다. 세계에서 경제 환경이 가장 좋았다는 미국에서조차 클린턴 행정부의 연방 준비위가 0.25% 금리인상이 경기 회복에 역효과를 미칠까 봐 걱정하는 판국에, 금리를 무려 25% 올린다는 것은 정말 상상초월의 처방이었다.


워싱턴 본부에서 월급 나오는 IMF 관료들은 실업자, 기업도산 같은 국민경제적 상황에 대해서 고려할 이유가 없다. 다만, 자신들이 대변해야 할 국제 금융자본의 이해에 따라, 통화 안정만 되면 그뿐이다.


IMF 관료들의 막가파식 신자유주의 처방


말 나온 김에 신자유주의 전도사, 국제금융자본의 첨병 IMF 관료들이 개도국에 강요했던   처방들을 살펴보면, 보통사람들로서는 졸도할 정도이다. 병에 따라 약을 처방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제공한 만병통치약에 질병을 맞추어야 한다.


한 예로, 이런 것이다.


모로코 정부가 시골 가난한 마을의 자립을 위해 양계 사업을 지원했다. 비정부기구가 고생해가며 현지 주민에게 양계를 가르치고 있었다. 그러나 IMF는 모로코 정부에게 이 병아리 사업에서 손을 떼라고 한다. 민영화 원칙에 반한다는 이유다. 정부가 손을 턴 곳에는 역시나 민간업자가 들어왔다. 그러자 마을 주민들은 이 사업을 더 이상 벌일 수가 없었다. 병아리는 생후 2주 안에 사망하는 비율이 높았는데, 민간업자는 사망보증을 꺼렸기 때문이다. 한꺼번에 죽을 수도 있는 병아리를 가난한 농부들은 살 수가 없었다. 결국 시골의 자활을 위한 이 사업은 막을 내렸다.


인도네시아에선 환율지지와 채권자 구제를 위해 약 230억 달러가 소요되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을 위한 식품 및 연료 보조금 등 서민복지에 쓸 돈은 불과 수백만 달러에도 못 미침에도 무차별적으로 삭감되었고, 그 결과 폭동이 일어났다. 


IMF를 비롯한 시장근본주의자들은 아프리카 극빈국들에게도 학교에 수업료를 매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우간다 대통령은 오히려 반대로 작은 수업료마저 철폐해버렸다. 그러자 취학률이 치솟았다. IMF의 권고를 따랐던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과 비교해보면, 취학률은 비교할 수 없다.


동아시아 외환위기를 초래한 것은 사실 1차적으로 이 시장광신도-금융자본들로부터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IMF는 처음에 단기 자본을 대상으로 시장을 개방하라고 말한다. 한국은 그렇게 했고, 돈이 밀려들어 온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빠져나갔다. 그러자 IMF는 금리를 높인다. 자산가치가 폭락하고 기업이 줄도산한다. IMF는 국가에게 그들의 자산을 헐값에라도 매각하라고 촉구했다. IMF는 한 발 더 나아가 외국인에게 경영을 맡기라고 했고, 아예 기업을 외국인들에게 팔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매각을 처리한 것은 자본을 철수함으로써 위기를 촉발했던 바로, 그 외국금융회사들이었다.


IMF 환란이 지나간 자리


이 신자유주의자들의 첨병 IMF의 처방이 지나간 자리에는 인도네시아, 남미같은 폭동이나, 실업과 잇따른 자살, 노숙자, 가족 해체, 비정규직, 양극화 같은 절망의 몸부림만이 남았다. 그 절망의 심연 저편에는 주체하기 힘들 정도의 부를 거머쥔 승리자의 탐욕스러운 웃음이 도사리고 있다.



[투기자본의 천국 대한민국](이정환)에서 인용한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기사를 보자.


"탄자니아와 골드만삭스의 차이를 아는가? 탄자니아는 1년에 2조2천억을 벌어서 2500만 명이 나눠 갖는데, 미국의 투기은행 골드만삭스는 2조6천억 원을 벌어서 161명이 나눠 갖는다."


2003년 9월 자산규모 62조 외환은행은 단돈 1조원에 투기펀드 회사 론스타에 팔렸다. 10조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된 제일은행은 뉴브리지캐피털이 단돈 5천억 원에 꿀꺽했다. 그들은 다시 1조6천억의 공적자금을 정부로부터 받아내, 손도 안대고 코풀었다. 그 차액만도 1조4천억. 미국 군수자본 칼라일은 한미은행에 4900억 원을 투자해 6200억을 벌었다. 이런 투자펀드들이 극동건설, 만도기계, KT&G, 오리온 전기 등을 착착 주무르며 천문학적인 액수를 집어삼켰다. 심지어 86억짜리 지급 보증된 채권을 단돈 100원에 매각하는 경우까지 생겼다.


98년부터 2006년까지 10년도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이렇게 외국 투기자본에 빨려나간 돈은 무려 150조원이다. 한국 가전사가 일제 코끼리 밥통을 이기고, 이마트가 월마트를 이겼다고 환호한 자들이 감추고 있는 이면이다.


IMF와 투기자본은 국부를 약탈해간 정도에 머무른 것이 아니라, 모피아 관료들과 합작하여 한국 경제를 영미식 시스템-주주자본주의로 완전히 탈바꿈시켜 놓았다.


이들 투기자본이 국내 기업을 인수해서, 제일 먼저 하는 짓거리는 이른바 구조조정이다. 일단 사람부터 정리하기 시작한다. 지표상 경상이익률을 높여야 기업가치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비싸게 팔아먹기 좋은 구조로 조정하는 것이 선진자본의 노하우라면 노하우라고 하겠다.


론스타를 보자. 그들은 외환은행을 접수하자마자 다음날 바로 직원들에게 정리해고 문자메시지를 날리는 첨단의 기법을 한국 사회에 소개해주었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마치 개화기 때 나라 팔리는 식민주의가 연상되는데, 기실 이런 황당한 경제 시스템은 정부 관료들 나름의 애국심에서 비롯된다는 데 그 아이러니가 있다. 물론 그 애국심 이면에는 한 몫 챙기는 이권이 응당 그 대가로서 남아있다.


스티글리츠에 따르면 IMF에서 정기적으로 직원을 선발해가는 미국의 몇몇 대학의 핵심 교과과정에는 실업이란 없다고 주장하는 경제모델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시장만능주의자들이 볼 때는 언제나 수요와 공급이 일치한다. 노동의 수요와 공급이 일치한다면, 비자발적 실업은 존재하지 않는다.


조선 유학자들이 중국에서 주자학과 사대주의를 뼛속깊이 새기고 돌아왔듯, 미국에서 이와 같이 시장근본주의 지식을 습득해온 이들이 관료와 학계의 주류로 자리 잡으면서, 경제 말아먹는 짓거리를 개방이라는 이름으로 둔갑시키며, 미국 투기자본의 첨병노릇을 자처하고  있는 셈이다.


그들은 미국과 같은 글로벌 스탠다드를 미국을 따라 배우자고 떠들어댄다. 그런데 기업경영 불투명하다고 훈계하는 미국의 투기자본은 정작, 그들 펀드의 주인이 누군지조차 말하기를 꺼려할 정도이다.


주주자본주의-재벌의 우신예찬


투기 금융자본과 시장광신 이데올로그들의 시장 예찬에 재벌들은 신이 났다. 노동유연성이라니! 해고의 자유가 주어진다. 개방화라니! 시장이 넓어진다. 자유화라니! 정부의 간섭이 없어진다. 자본의 복음서가 따로 없다.


재벌은 아예 자유기업원을 만들어 그런 이데올로그들의 스폰서로 나섰다. 보수재단의 헤리티지를 본 땄다고 한다. 그 속에서 막가파식 자유방임주의자 공병호는 하이에크의 자유주의 사상에 기대어 자본의 자유를 옛 반공캠페인을 연상시킬 정도로 떠들어댔다.


그런데 그들이 신난다 했던 자유주의 사상은 본인들에게 적용하게 되면 완전 자가당착 논리가 되어버린다. 금융자본은 주식시장에서의 투자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경영의 투명성을 요구한다. 그런데 이건 재벌의 아킬레스건이 아닌가? 사유재산의 원칙(주주권 강화)을 강조할 수록 극히 적은 지분으로 수많은 계열사를 거느리며 소위 황제 경영을 하는 재벌의 행태야 말로, 글로벌 스탠다드에 역행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무엇보다, 정부의 지원과 특혜 속에 성장해온 재벌 자신의 역사 자체가 자유주의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과거 개발시대 그들은 국민의 높은 저축률을 바탕으로 정부(은행)의 산업 정책적 지원과 보증으로 형성되었고, 또 보호무역으로 국내 성장 기반을 다졌으며 이를 바탕으로 대규모 고용창출과 고도성장이라는 선순환 속에 재벌의 급속한 발전이 이루어졌던 것 아닌가.


국민경제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성장한 재벌은 이제 국민경제적 관점에 입각한 규제라는 짐을 홀가분하게 던져버리고 자본의 탐욕적 본성만을 노골화하다가 이런 자가당착에 빠졌다.


과연 외국인 주식지분제한이라는 경계선을 무너뜨린 국제금융자본은 이른바 우량 주식을 마구 사들인다. 삼성전자 53.4%, 포스코 68.4%, 국민은행 84%, 현대차 46% 한국 경제의 견인차라 불리는 우량주들 대부분은 외국인 지분들이 과반에 육박하거나 그 이상을 차지한다. 국내에 들어온 외국자본의 95%가 단기투자이익을 노린 투기성 자본이라는 분석이다. 이들은 단기적 경영성과를 압박하여 주식가치를 올려 그 차익으로 먹고 사는 자들이다. 국민경제를 염두에 둔 산업정책이나. 중, 장기적 경영 전략은 이들의 관심사항이 아니다.


그들의 단기적 이익논리에 경영이 조응하지 않을 경우, 적대적 M&A 등으로 경영권을 위협한다. 이로써, 연구개발에 재투자해야 할 돈은 경영권 방어를 위한 자사주 매입 등으로 주식시장에 다시 빨린다. 경영권 문제 때문에 사실 재벌들도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신자유주의를 예찬하는 재벌은 그것이 한편으로 제 발등을 찍는 도끼라는 걸 잘 모르는 것 같다.


우리는 교과서에서 기업은 금융기관 외에 주식시장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고 그 돈으로 투자하여 산업이 일어난다고 배웠다. 그러나 금융 투기자본이 횡행하는 주식시장은 오히려 기업의 투자자금을 빨아들여 투자여력을 고갈시키는 블랙홀로 변질되었다.


영미식 주주자본주의는 은행의 민영화에 이르러 절정에 달한다. 지금 우리은행을 제외한 나머지 은행은 모두 외국인 소유로 넘어갔다. 은행의 돈은 사람 몸의 혈액과 같다. 산업 전반에 돈을 공급해야 경기가 살아나는 건 기본 상식이다.


그러나 이익 극대화만이 은행의 기업적 목적이 되어버린 지금은, 돈 떼일 위험이 있는 기업에 대한 대출에는 잘 나서지 않는다. 외국인이 대주주라서 국민 경제적 관점으로 규제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오직 수익이 보장되는 대기업이나, 부동산 담보 가계 대출로만 몰린다. 수조원 돈이 그렇게 부동산 쪽 대출로만 몰리니 부동산 버블이 안 일어날 수가 없다. 대기업은 돈이 넘쳐도 공격적 투자는 언감생심이다. 주주눈치도 봐야 되고, 경영권 보호에도 신경 써야 한다.


기술혁신을 주도하는 기업은 따지고 보면 모두 벤처기업이다. 그리고 노동인구의 대부분은 이런 중소기업으로 많이 인입된다. 그러나 자본이 유입되어야 기술혁신이고 뭐고 하는 거지, 예전엔 경제성장 산업정책에 입각해서 정부가 보증서고, 은행이 대출해주고 하는 식으로 지원도 하고, 투자 위험도 분담해가면서 기업이 성장하고 고용도 창출되었다.


그러나 오로지 이윤 극대화만이 최대 목표인, 민영화된 외국인 소유의 은행들에게 이것은 절대 기대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한때 90%까지 되었던 은행의 기업대출이 40%로 곤두박질쳤다.


중국의 제조업은 중국정부의 절대지원 속에서 엄청난 성장을 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은 중국 제조업이 쫓아온다고 위기 운운 하면서도, 한편으론 중소 제조업의 숨통을 조이는 선진적 금융시스템을 만들어놓고, 좀 지나니 이제는 아예 서비스업으로 업종전환하자고 한다. 제조업이 수용해야할 이공 계열의 절망의 심연에는 이런 신자유주의식 처방이 숨어 있는 것이다.


제조업 붕괴와 내수 경제 침체의 주원인이 이런 신자유주의와 영미식 주주자본주의에 기반 한 이른바 경제개혁으로 말미암은 것인데, 신자유주의를 숭배하며 경제 살리기를 외친다? 마약으로 마약을 끊겠다는 셈이다.


광기어린 신자유주의적 담론


이제 우리 사회는 신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가 남긴 광기어린 살풍경과 코미디같은 어법만이 횡행하게 되었다. 


농업이 죽어야만 우리가 산다, 경쟁력 없는 기업이 도태되어야 강한 기업이 산다는 적자생존 담론이 점점 퍼져나가고 있다.


자칭 1등 신문에 실린 국제통상학과 교수라는 사람의 코미디같은 칼럼을 보자. 


"FTA를 해야 한다... 우리 국민의 소원이 소고기를 배불리 먹어보는 것이다."


변호사-회계사도 연봉 2400만 원짜리 공기업 입사시험에 대거 응시하고, 대졸자가 시청 환경미화원 모집에 몰린다는 기사가 넘치는 현실이다. 자녀가 다 클 때까지 짤리지 않을 안정된 직장 하나 찾아 사투를 벌이는 현실에서, 서민들을 쇠고기 못 먹어서 환장한 사람으로 만든다.


이건희는 "천재 1명이 10만명을 먹여 살리는 시대다.라는 말을 남겼다. 도대체 그 어떤 검증도 되지 않을 소리인데, 사람들은 이 말에 놀랍게 순응한다. 혹 빌게이츠를 염두에 두고 있을지 모르겠으나. 빌게이츠는 윈도를 개발해서 부를 거머쥔 것이 아니며, 사실은 독점이 그에게 부를 안겨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용되는 이 황당한 담론은 결국 우리사회에 황우석 사태를 불러오는 밑거름이 되었다.


어떻게 보면 이건희 말이 맞을 수도 있겠다. 그 말을 뒤집어보면 10만 명이 1명을 먹여 살리는 시대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한국의 미래인가?


조선시대 교조적 주자학자들의 맹동적 사대주의의 이상향이 중국이라면, 지금 신자유주의자들에게는 미국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글로벌 스탠다드로 삼고 있는 그 미국이라는 나라는 어떨까?


지금 미국 경제 상황을 보면, 이 나라가 도대체 어떻게 버티고 있는지 신기할 정도다. 다른 나라 같으면 IMF가 터져도 수십 번이  터졌을 것이다.


미국의 무역적자는 이미 연간 7000억 달러가 넘는다. 재정적자도 매년 기록을 갱신하며, GDP의 7%에 육박한다. 누적된 적자가 8천조 원! 그런데 국방예산은 말도 안 되게 천문학적인 숫자다. 전 세계의 국방비를 합친 숫자보다 더 많다. 이라크 전쟁에만 5000억 달러를 쏟아 부었는데, 그 돈들은 중국과 일본에서 빌려온 돈이다. 미국은 그 이자로 하루 2조원을 문다. 사정은 이런데도 미국의 저축률은 마이너스다. 재정적자가 웬만한 선진국 국민총생산액을 웃도는데도 세금은 감면한다.


미국 달러가 세계 기축통화이다 보니, 이런 말도 안 되는 경제상황에도 여유만만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영원히 지속되는 건 불가능하다. 미국에서 달러 만드는 종이가 다 소진될 때까지 걱정 없을 거라는 미친놈의 생각이 아닌 한 말이다.


공산권 붕괴이후 미국은 세계에서 아무 경쟁자 없는 단극체제의 단맛에 푹 빠져 흥청망청했다. 그로부터 2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중국이 급성장하고, 유럽은 통합되었다. 세계 제1의 영토국이자 에너지 자원국, 미국에 군사적으로 유일하게 맞짱뜰 수 있는 러시아도 이제 기지개를 펴고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미국의 앞마당이었던 남미도 독자적인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바야흐로 세계는 다극화체제로 진입 중이다.


세계의 기축통화인 미국 달러는 그 지위가 이제 더 이상 확고하지 못하다. 이란은 석유시장에서 유로를 결제통화로 사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미국 경제에 대한 우려 때문인지 한국은행 총재가 "외환 비중이 달러에 너무 의존해 있는거 아냐?"라는 말에 사람들은 놀래서 달러를 마구 팔기 시작했다. 그러자 부시는 노무현에게 전화를 걸어 "늬덜 지금 뭐하자는 거야!"라고 윽박질러서 겨우 진정시켰다. 이렇듯 세계 최대 군사력을 바탕으로 미국은 거의 어거지로 현 체제를 유지하고 있을 정도다.


미국이라는 제국의 파국을 끊임없이 경고한 찰머스 존스뿐만 아니라, 미래학자로 유명한 앨빈 토플러마저 비관적으로 미국을 전망한다. 


"미국 근로자들은 붕괴된 가정과 학교, 의료제도와 씨름하고, 부도덕한 금융기관에 돈을 빼앗기면서 인생을 보낸다. 또, "대다수 사람들이 전 세계에 미국이 미치는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다고 믿는 바로 지금, 미국의 중추적 제도의 기반에는 체계적인 붕괴가 나타나고 있다."
세계 최대의 시장이라는 말에 현혹되어 묻지마 펀딩하기에는 신자유주의자들의 입버릇 용어처럼 리스크가 너무 큰 거 아닌가?


미국의 거시 경제적 상황은 차치하고서라도, 미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돌아가는 꼴은 어떤가?


한 예로 우석균 교수가 소개한 미국의 의료실태를 들어보자. 


어느 잘 생긴 백인청년이 이를 치료하러 왔단다. 그런데 초기 치수염정도임에도, 이빨을 뽑아달라는 것이다. 신경치료하고 이를 좀 때우면 되는데 왜 발치 하냐고 묻자 2000달러(200만원)이 없어서 안 된다는 것이다. 발치하면 20만원이니까 그냥 이를 뽑아달라는 것이다. 한국 같은 경우라면 발치를 상상할 수 없는 증상이었는데 말이다.


이런 경우도 소개된다. 헬멧을 실내에서 계속 쓰고 있는 청년이 있었다. 그 이유가 머리에 구멍을 내는 수술은 보험이 되었는데 구멍을 때우는 비용은 보험이 안 되어서 그랬다는 이야기, 초등학교 체육시간에 아이들이 다치면 그 치료비 때문에 학교재정이 문제가 될까봐 체육시간에 자습을 시키는 학교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는 등 믿지 못할 이야기들이 바로 미국의 의료현실이다. 어디 아프리카 오지의 의료현실로 착각이 들 정도라는 것이다.


이에 반해, 자일리톨 껌으로 소개된 핀란드라는 사회민주주의 나라를 보자. 이 나라는 성장기 치아는 국가가 책임진다는 게 기본 모토다. 그래서 각 유아 기관부터 고등학교까지 학교 안에는 치과가 별도로 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체계적으로 치아를 관리해준다. 충치조차 생기기가 힘든 시스템이다. 실제로 어떤 도시에는 3년간 충치 치료가 없었다. 어쩌다 충치 환자가 생기면 그 인근지역의 치과대 생까지 다 몰려와서 구경한다. 충치 치료할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천국 미국에서는 4500만 명이 의료보험이 아예 없다. 전체 인구의 절반은 우리나라 건강보험 수준보다 훨씬 못 미치는 구실을 하는 의료보험에 들어있다.(헬멧 쓰는 청년 참고) 그러면서 의료비용은 세계 최고다. GDP의 15%가 의료비로 빨린다. 이는 전 세계 나라가 의료비로 지출한 GDP의 45~50% 수준이다. 사정이 이러니 미국의 의료만족도는 10%에 불과하다.


물론 이건희가 암 치료를 위해 건너갈 정도로 미국은 한편으로 최고의 의료기술을 가진 나라이다. 세계에서 부유한 환자들이 몰려와서 10억 달러를 지출한다. 1주일 입원하면 800만원이 넘는다.(뉴욕기준) 아마 이건희의 진료비는 수억 원대를 호가했을 것이다.


부자는 세계최고 수준의 의료를 만끽하지만 일반 서민에게는 그저 그림의 떡일 뿐이다. 부익부 빈익빈의 극명한 대비, 자본만능주의의 폐해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분야가 바로 이 의료분야다.


심지어는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의원이 공공 건강보험을 도입하려해도 AIG 띠링띠링 같은 민간보험사들의 강력한 로비 때문에 번번이 좌절하고 만다.


그래서 미국의 평균수명은 우리나라보다 낮다. 영아 사망률은 쿠바보다도 높고, 캐나다 하위 20%의 사망률보다도 더 높을 정도다. 건강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해 사망한 사람이 연간 1만 8천명이고, 연간 개인파산자 중 50%인 200만 명은 의료비 때문에 파산을 맞았다.


사정이 이런대도 조선일보 애덜은 의료개방하면, 미국처럼 외국 환자들한테 돈 많이 받고 서비스도 좋아진단다.


한편, OECD 국가 중 빈곤율은 최고 수준이며 소득불평등도 마찬가지다. 노동시장이 유연해서 실업률이 낮다고는 하지만, 감옥에 갇혀있는 인구를 실업에 포함시킨다면 미국의 실업률이 유럽보다 더 높다고 한다. 세계 최고의 범죄율은 말할 것도 없다.


물론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강대국이고, 막강한 자본력에 힘입어 여러 분야에 경쟁력이 월등한 것도 사실이다. 또 달러에 힘입어 구매력이 세계 최고인 것도 맞다. 그리고 엄청난 영토와 풍부한 자원, 2억이 넘는 인구, 세계 최강의 군사력 등을 보면 우리와 비교가 안 되는 강대국인 것만큼은 틀림없다.


그러나 그런 조건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삶의 질이 이렇다면 그 사회의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바늘을 찔러도 빈틈없어 보일정도로 극단적인 효율과 합리성을 추구하며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자본의 논리에 우리의 몸을 맡기면 과연 미국처럼 부강한 나라가 될까?  더구나 여러 천혜의 자연환경과 막강한 군사력이라는 조건도 갖추지 못한 우리가 미국의 길로 들어서면 어떤 결과가 야기될까?


단언컨대, 미국이 전 세계를 상대로 강요하는 신자유주의적 논리와 경제시스템으로 후진국이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선 예는 단 하나도 없다. 반대로 미국의 갖가지 병폐만을 고스란히 옮겨왔을 뿐이다.


우리가 갈 길은 미국이 아니다


90년대 벽두부터 무너진 소비에트 공화국, 중국의 자본주의화, 북한의 기아... . 이런 모습에 공산주의는 죽은 개처럼 취급된 지 오래 되었다. 좋든, 싫든 자본주의는 이기적인 인간본성에 기초한 영원불멸의 체제로서 우리는 숙명적으로 받아들여야 하고 오로지 적응만이 살 길로 비추어졌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물론 몰락한 공산권 국가들은 당연히 무너져야만 했던 체제인 것만은 틀림없다. 하지만, 한 때 그들은 최대의 기술력과 경이적인 생산력 발전을 거쳐 온 나라이기도 했다. 19세기만 해도 유럽의 변방으로서 농노제도에 신음하며, 생산력이 가장 뒤쳐졌던 후진국 러시아가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을 거친 후, 20세기에 와서는 세계 최대 강대국으로 성장했다. 그것도 가장 짧은 시간 안에 눈부신 성장을 했으며, 한때 기술력으로도 미국보다 앞설 정도였다.


장하준 교수가 영국의 한 도서관에서 발견한 코리아의 기적이라는 오래된 책의 주인공은 남한이 아니라 북한이었다. 2층짜리 건물이 단 한 곳도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 전쟁으로 초토화된 북한이 불과 10여년 만에 놀라운 경제성장과 사회 안정을 이룩한 것이 그들로서는 경이롭지 않을 수 없던 것이다. 사실 7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북한은 남한에 비해 더 살기 좋았다.


국가주도와 계획경제 시스템은 그렇게 한 때, 가장 효율적이고 빠른 성장을 가능케 하는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렇게 성공한 이유가 반대로 몰락의 원인이기도 했다. 성공했기 때문에 국유화-계획경제 라는 도그마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으려고 했던 극단적인 이념화. 또 그 시스템이 가져다준 기득권 때문에 융통성을 전혀 발휘하지 않았던 지배세력. 이것이 바로 극단적인 체제를 가능케 했던 것이다.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신자유주의화 이념은 방향이 다른 쪽에서 이와 같은 극단적인 체제를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공공 영역을 완전히 파괴하는 전부문의 민영화, 모든 경제적 규제를 악으로 취급하는 극단적인 자유화, 크리넥스 티슈처럼 쓰다 버리는 극단적인 노동유연성.


이런 극단적인 체제로의 전환이 IMF 이후 전 사회 영역에 걸쳐 광풍처럼 몰아치고 있다. 그리고 주류 보수언론은 그런 이데올로기를 융단 폭격으로 쏟아 붓는다.


놀라운 생산력 발전에 눈이 어두워, 그 체제의 그림자를 도외시했던 소비에트 제국의 몰락의 과정이 이제 그 반대편에 서있는 신자유주의자들에 의해 반복되는 것이다. 


미국과 경제통합을 의미하는 한미 FTA는 바로 이 사회에 전면화 되어가는 신자유주의적 시스템을 그 어떤 진보적 정권이 들어선다 해도, 다시 돌이킬 수 없도록 만드는 자물쇠로 기능할 것이다.


이제 눈을 돌려 유럽을 바라보자. 어쩌면 그 사회는 같기도 사회이다. 사회주의 국가 같기도 하고, 자본주의 국가인 것 같기도 한 그런 같기도 사회가 고르바초프가 인류가 만든 나라 중에 최선의 국가라고 칭찬했던 북유럽 나라이다.


보수양아치 신문은 유럽의 복지병을 조롱하면서 오로지 시장만능을 선동하지만 그처럼 후안무치한 짓이 어디 있단 말인가. 병원비 3천원을 이웃에게 더 이상 빌릴 수 없어 자녀 셋을 아파트에서 떨어뜨리고 같이 자살하는 엄마가 있는 나라. 아이를 맡길 데가 없어 문을 걸어 잠그고 출근해야만 하는 맞벌이 부부가 사는 나라에서 복지병 염려라니. 시장바닥에서 떨어진 음식을 주워 먹고 지내는 북한의 꽃제비 소년이 남한의 청소년 비만을 걱정하는 것만큼이나 어이없는 꼴이다.


물론 유토피아가 아닌 한 북유럽국가들도 문제점이 있다. 그러나 그것을 미국과 같은 정글  자본주의가 가져다준 폐해와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장하준 교수에 따르면 그 사회는 단순히 부자에게 세금 많이 거두어 가난한 자에게 나누는 시스템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물론 이런 소득 재분배적 측면이 강하기는 하지만 그와 더불어 실업자에게 재교육ㆍ취업알선, 심지어 이주보조금까지 제공해 생산 활동 복귀를 돕는다는 데 큰 강점이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영자 시각에서 평가하는 기업환경지수 같은 데서도 스웨덴ㆍ핀란드 등이 세계 1ㆍ2위를 다투는 것이다.


유럽이 노동시장을 사회가 책임지는 시스템이라면. 풍부한 일자리가 바탕이 된 미국은 개인이 책임지는 시스템이다. 그런 반면 한국-일본 같은 동아시아권은 기업이 책임지는 시스템이었던 것이다. 요즘 세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자동차 기업 도요타는 이 종신고용원칙을 아주 완강히 고수한다.


복지시스템이 전혀 갖추어져 있지 못했던 과거에는 기업에서 잉여인력이 발생해도, 사람을 함부로 짜르지 않았다. 갈 곳이 마땅치 않은 40~50먹은 노동자에게 해고는 사형선고와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그것은 기업으로서도 큰 부담이었다. 종신고용제는 이렇게 한국, 일본과 같은 동아시아권 경제의 하나의 특징이었다.


그러나 IMF 이후, 신자유주의적 개혁이 전면화 되면서 우리나라의 노동시장은 미국처럼 바뀌었고, 지금도 그렇게 바뀌어가고 있다. 정리해고, 비정규직, 파견근로제... 이런 것은 이제 일상화되었다. 그러나 미국처럼 양질의 일자리가 풍부한 것도 아니고, 유럽처럼 실제 임금에 가까운 실업급여와 재취업 시스템이 발달한 것도 아니다. 그저 내동댕이쳐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판국에 미국과 경제통합을 더욱 가속화시키는 한미 FTA라니...


87년 대선에서 2위를 한 김영삼의 난민정부, 3위를 한 김대중의 궁민의 정부, 그리고 전두환에게 명패를 집어던진 노무현의 참어정부로서, 이제 87년 체제의 민주화 운동시대는 한 줌 미련도 남기지 않고 털어버릴 수 있게 되었다.


김영삼이 신자유주의를 도입하고, 김대중이 신자유주의를 전면화했다면, 노무현은, 불가역적으로 신자유주의를 고착화시키고 있다. 그러므로 노무현의 대연정은 옳다. 미국식 자본주의를 추종하는 김영삼과 김대중은 합쳐야 하는 것이다.


미국을 경험했던 캐나다의 한 시민은 이렇게 진절머리를 냈다. "그 나라는 사람 살 곳이 못된다." 스웨덴 감옥에 있던 한 미국인은 실제로 이런 말을 남겼다. "이 나라 감옥은 천국이다. 나가고 싶지 않을 정도다."


우리는 미국으로 갈 것인가? 유럽으로 갈 것인가?


딴지 논설우원
직빵맨(freechh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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