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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망타진 2007] 노회찬을 만나다 

 

2007.5.2.수요일

 

대선후보 일망타진 이너뷰, 그 두 번째. 민주노동당 노회찬. 지난 대선 민주노동당이 배출한 최초의 히트상품. 민주노동당은 어떤 곳인지 몰라도 노회찬은 좋다는 사람 적지 않다. 하여 이번엔 직접 선수로 나섰다.

 

이너뷰는 2007년 4월 20일 금요일 오전 10시 의원회관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되었고 본지에선 총수, 쿠르세, 찍새가 출동했다. 보좌진은 따로 정식으로 배석하진 않았다. (그의 의원실 일부는 보좌진의 책상공간으로 쓰이고 있었다. 의원실을 보좌진에게 내주는 경우는 처음 봤다.)

 

 




 
 

 

 

 

 

 

 

총 : 근데 머리는 언제부터 빠지셨어요?(웃음)
노 : 머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빠졌는데, 머리가 안 빠지면 안되죠. 머리가 빠져야 새로운 머리가 나니까.
총 : 어렸을 때부터 이마가 넓으셨겠네요.(웃음)
노 : 원래 빠지고 새로 나는 데 빠지는 게 더 많아질 때부터 이제 머리 숱이 적어지는 건데.. 뭐 20대에도 남들보다 이마는 넓었어요..

 

 

 

 

 

 

 

 

툭 던진 농담인데 제법 정색으로 받았다. 그렇다고 퉁명스러운 건 아니고. 설마 못 알아듣진 않았을 것이고. 긴장일까 콤플렉스일까 스타일 일까. 두발의 라이프사이클에 대한 생물학적 지식을 전수하고 싶었을까. 다소 의외의 반응...

 

 


총 : 오늘은 두 가지... 혹시 심상정의원 인터뷰한 거 보셨습니까? 못 보셨나요?
노 : 네 보지 못했어요.
총 : 사실은 보셨을 지도 모르죠..
노 : 하하하하 그 라디오에서 하신 거는 봤습니다. 그 SBS에서 하신 거.

 

 

총 : 그런 건 짧으니까... 딴지 인터뷰 따로 두 시간 했습니다. 오늘 노회찬 의원과는 두 가지만 이야기하려구요. 첫 번째. 노회찬 의원 화술에 대해선 다들 알고 있고 인지도도 높은데 사실 개인 노회찬 하면 모르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서 이명박 하면 어린 시절 고생했다더라 그리고 대학 때 무슨 6.3 운동도 좀 했다더라, 샐러리맨 출신으로 CEO했다더라, 그리고 국회의원, 서울시장, 청계천, 대선후보... 이렇게 감정이입을 할 만한 개인 삶의 궤적에 대한 최소한 정보가 있어요. 이명박은 누구다.. 에 대한 자기가 나름대로 그려볼 상이 있는 거죠. 근데 노회찬 하면은, 사실 민주노동당 의원들 대부분이 그렇지만은, 화술, 이마... 뭐 감정 이입할 만 한 게 별로 없어요. 인간 노회찬이 누군지 모른다 이겁니다. 해서 오늘은 인간 노회찬이 누구냐, 우선 이걸 이야기 해야겠다..

 

 

노 : 네. 굉장히 중요한 대목이고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총 : 심상정의원에게도 한 이야긴데 민주노동당은 정책이 중요하다고 말하는데... 정책이 중요하지 않단 게 아니라, 국민들한테 정책만 들이미는 건, 결혼하자고 하면서 나는 신방을 이렇게 설계하겠다, 그런 신방 설계도면 하고 결혼 운영방안 이렇게 문서 들고 와서 상대한테 결혼하자는 거거든요, 아직 연애도 안 해 봤는데, 누군지도 모르겠는데 말이죠. 그 사람이 누군지 알아야 결혼을 하든 말든 하죠. 그런 맥락인데. 왜냐면 민주노동당은 사람이 잘 안 보이니까, 게다가 무서워 해요, 저 사람들이 내 꺼 다 뺐어 갈까 봐.(웃음)
노 : 하하하하

 

 

총 : 허허허, 부자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건 이해가 가는데, 민주노동당이 대변한다고 하는 층, 그 사람들이 자기 집도 없으면서 예를 들어서 1가구 1주택 하면, 아 그럼 내가 집이 생기겠구나 하는 게 아니라, 앞으로 생길지도 모를 내 집을 저 사람들이 뺏어가는 건 아냐? 이렇게 생각하는 공포가 있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 중에서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사람이 안 보여서 그런 거라고 저는 생각하는데요... 해서 시작해보죠. 어릴 때부터. 개구쟁이셨죠?
 
노 : 당연하죠. 너무나 당연하죠. 하하..
총 : 하하, 어디서 태어나셨어요?
노 : 저는 부산 초량, 부산 역이 있는... 역에서 바라보면 맞은 편에 산이 있는데 그 산동네에서 태어났습니다.

 

 

총 : 형편은 어떠셨습니까.
노 : 집은 뭐 중간층이라고 볼 수 있죠. 아주 가난하거나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부자는 물론 아니었구요. 부모님 두 분 다 피난민 출신인데, 피난 와서 여기서 만나서 결혼을 했던... 당연히 그러니까 남의 집 셋방살이에서부터 시작을 했고, 제가 산동네의 단칸방 셋방에서 태어났습니다.

 

 

총 : 형제는?
노 : 형제는 누나가 한 명 있고, 동생이 하나 있고...
총 : 중간에? 삼형제?
노 : 네, 삼형제고, 장남이죠.
총 : 누나는 뭐 하셨어요?

 

 

노 : 누나는 평범하게 대학 졸업하고, 결혼해서 지금 아이들이 또 대학 다니는 평범한 주부에요. 그 전에 학교 선생을 하다가, 교사를 하다가 결혼을 했죠.
총 : 동생분은?

노 : 제 동생은 학생운동 좀 했고, 그 다음에 어디 그 조그마한 출판사에서 노동조합도 만들었는데, 그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회사가 폐업을 해 버렸어요.
총 : 하하하

 

 

노 : 그래서 이제 직장을 잃고 부산일보사에 들어가서 언론사에서 한 십여 년 근무하다가...
총 : 기자 셨네요.

노 : 기자죠, 기잔데 부산일보사에서 한 십 년 근무하다가 지금은 제 삼촌이 하는 어떤 사업을 돕는다고,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총 : 그러니까 지속적으로 운동을 하거나 그런 건 아니셨군요.
노 : 그렇죠. 제 동생이 제가 운동을 하는 동안에 거의 장남 역할을 다 했습니다.
총 : 운동하신 분들은 대게 그렇더라구요. 형제 분들은 하다가도 잘 안 하시더라구요.
노 : 하는 경우들도 있고...

 

 

 

 

 

 

 

총 : 공부는 잘 하셨습니까? 어릴 때?
노 : 공부는 뭐 잘하는 편에는 속했는데, 아주 잘 하지는 못했습니다.

 

 

총 : 어릴 때 콤플렉스는 뭐였습니까?
노 : 어릴 때 콤플렉스는 거의 없었거든요.
총 : 없었어요?

노 : 지금 기억에, 아직까지 커서도 상처로 남아있는 그런 건 없었던 거 같고.
총 : 어릴 때 기준으로는.
 
노 : 어릴 때... 글쎄요 그, 어릴 때 그렇게 특별하게 지금 기억에 남는 컴플렉스는 없구요. 어릴 때 제가 노래를 잘 못 불렀어요. 그래 가지고 전부다 수인데 음악만 우이고... 뭐 그래서 노래를 못 부른 게 그런 게 컴플렉스였고, 그리고 또 그 다음에 운동을 잘 하고 싶었는데, 그래서 운동을 좀 하기도 했는데, 달리기도 잘 하고, 학교 선수까지 했으니까,

 

 

총 : 단거리요?
노 : 네 단거리. 100미터는 고등학교 때까지 육상부를 했으니까
총 : 오, 몇 초 나오셨습니까?
노 : 12초까지
총 : 오우~

 

 

노 : 12초 12초 3 그 정도 까지...
총 : 외모와는 상당히 다른... 하하
노 : 하하.. 예예 그 당시에는 그랬습니다. 근데 그 운동이 그런 기초적인 건 잘 하는데..

 

 

총 : 축구를 잘 한다거나...
노 : 근데 이제 공 쪽은 굉장히.. 큰 공이든, 작은 공이든. 공에 대해서는 굉장히 운동 신경이 덜 발달한 거 같더라구요.

총 : 구기를 잘 못 하셨군요.
노 : 네 구기를 잘 못했어요.

 

 

총 : (녹화 중인 카메라를 가르키며) 이거 신경 쓰지 마세요, 내보내지는 않고 참고만 합니다. 아직 약간 긴장하신 거 같으셔서... 하하하..

 

 

         실제 그랬다.

 

총 : 빨간 책은 언제 처음 보셨습니까?
노 : 사회주의?
총 : 아니요, 야한 거.

 

 

하하하. 어린 시절 빨간 책 묻는 데 사회주의냐고 되묻는 사람은 평생 처음이다. 하하하.

 

 

 

 

 

 

 

 

 

 

노 : 아... 맨 처음 본 거는 중학교 때 본 거 같아요, 근데 자세히는 못 본거 같고.
총 : 만화책도 있었잖아요. 조잡한 만화책도 많았고.

노 : 우리 때는 그게 그렇게 많지는 않았어요. 그 이후와 비교해 보면은 너무 아주 조잡한 사진 책 같은 거를, 그런 걸 굉장히 조숙한 친구들이 있어 가지고
총 : 항상 있죠 반에.

 

 

노 : 네 반에 있어가지고 이제... 내가 그런 데 조숙하지 못해 가지고 그 당시에는 그런 데 눈독 들이고 볼 그런 건 아니었어요.
총 : 그래요?

 

 

노 : 좀 그랬죠. 당연히 좀 그랬죠. 그 당시에만 해도 굉장히 좀 쑥쓰러워 했고, 그 당시 중학교, 지금 아이들로 치자면 아마 초등학교 전반부 수준이 아니었나 싶어요.
총 : 하하하. 그럼 보통 그 나이 때 처음으로 자위를 하지 않습니까? 하하하. 기억이 나세요, 그 때의 충격적인 기억이?
노 : 글쎄, 아마.
총 : 저는 중 1 때였습니다. 하하..

 

 

노 : 우리는 아마 중학교 때, 사람마다 편차는 있겠죠. 요즘은 초등학교까지 내려간 모양인데, 사춘기 때 2차 성징이 나타나고 뭐 그런 거는.
총 : 2차 성징. 하하하. 그냥 딸딸이라고 하죠. 그 때는. 2차 성징 말고 딸딸이. 하하하.. 처음에 그걸 언제 하셨어요?

노 : 기억이 안 나요.
총 : 아니, 그거는 다들 기억하거든요, 사람들이.
노 : 그거는 진짜 기억이 안나요.
총 : 몽정부터 하셨나.

 

 

노 : 아니 그것도 거의 안 한 거 같아요. 하하하..
총 : 하하하 아니 첫 그건 기억이 나잖습니까...
노 : 아니... 실제로 우리 때는 입시 이런 데 굉장히 시달렸던 세대기도 하고 저는 관심을 그 때부터 이제 예술이나 문학 이런 데...(폭소)

 

 

총 : 으하하하하 여하간 있긴 있었는데 그 첫 기억이 잘 안 난다.
노 : 잘 안 나죠. 실제로 그렇습니다.
총 : 전 너무 생생하게 기억나는데.

 

 

노 : 사전에 그런 지식이나 그런 게 있어서 사춘기 2차 성징이 나타나는 거에 대해서 그렇게 충격적으로 받아들이진 않았어요. 그래서 또 그 이후에도 누구나 처음이란 게 있는 거 아닙니까. 그런 게 없을 수가 없는 거죠. 그러나 그게 또 이후에도 계속 이렇게 다시 되새겨지는 그런 기억으로 강하게 남아있지는 않은 거 같아요.

 

 

총 : 글쎄요.. 하하하
노 : 그건 아마 나를 고문해도 안 나올 거 같아요. (웃음)
총 : 그러면 첫 연애는 언제?

 

 

노 : 첫 연애는, 연애라고 얘기할 수 있는 건 대학 들어가서였겠죠. 저희는 고등학교 때 사귀고 그런 시절이 아니었으니까. 제가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던 초등학교 동창이 있는데,
총 : 첫사랑?

노 : 그런 거죠. 그 친구를 좋아해가지고 대학교 다닐 때 쫓아다닌 적이 있어요.
총 : 상대방도 같이?
노 : 하하하, 아뇨.

 

 

총 : 성공하셨어요? 연애?
노 : 실패했죠.
총 : 하하하 왜 실패하셨습니까?

 

 

노 : 제가 좀 뭐랄까 비전이나 이런 걸 못 줬던 거 같고, 제가 연애의 기술이 좀 부족했던 거 같고요,
총 : 어떻게 접근하셨어요 처음에? 무조건 만나자고 하셨어요?
노 : 그렇죠, 우린 아는 사이니까.
총 : 어렸을 때부터 알긴 아니까...

 

 

노 : 전 그걸 좀 더 찐한 관계로 발전시키고 싶었고, 근데 상대는 옛날 이상으로 발전시키길 상당히 꺼려했던 거 같고, 그래서 상당히 큰 아쉬움으로 남아 있죠. 그리고 제가 그런 관계에 몰두할 수 있는 그런 조건도 아니었어요. 그게 지금도 후회 되는데, 그땐 그런 생각이 좀 들었었어요. 마음을 얻기 위한 더 많은 시간과 노력과... 길게 보고 갈 수도 있는 건데.. 투자를 계속해야 되는데.. 제가 광주항쟁 이후로 노동운동으로 건너가면서 그 때는 사실은 지방수배... 집안과 연락도 끊고 노동현장에 가야 하고... 이런 과정에서 그런 관계를 발전시킬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그 때는 마치 양자택일처럼 그렇게 생각했어요. 상대방 입장에서는 양자택일도 아니었겠지만 제 입장에서는 양자택일이었는데. 계속 이렇게 하느냐 아니면 운동하느냐, 지금 생각하면 그것이 꼭 양자택일이었느냐, 둘 다 할 수도 있었던 건데. 당시는 경직된 생각이었어요.

 

 

 

 

 

 

 

 
총 : 그럼 언제부터 운동하신 겁니까? 83학번이시죠?

노 : 아니요, 학번은 79학번이죠.
총 : 아참 83학번이 아니라 83년도에 졸업하셨죠.

노 : 네. 83년도에 학교를 졸업했는데 저는 운동은 고등학교 때부터 했어요.
총 : 달리기말구요. (웃음)

 

 

노 : 네, 그러니까 제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유신 선포 1주년이었는데 도저히 유신에 대해서 인정할 수 없었고
총 : 고등학교 1학년이 뭘 안다고 그러셨습니까? (웃음)

 

 

노 : 그 때, 고등학교 때 사실은 운동에 입문했다고 볼 수 있는데 당시에는 지금하고 달랐어요, 그 때 대학생들이 유신 반대 데모하고, 긴급조치 막 나오고 이럴 때, 일부 고등학교, 예를 들면은 제가 다녔던 경기 고등학교나 신일 고등학교, 광주일고 이런 데서는 고등학생의 움직임도 좀 있었어요. 제가 고1때가 바로 유신, 선포한 그 해, 그 직후 해였으니까.

 

 

헌법기능을 정지시키고, 그거는 뭐 폭력이죠, 쿠테타. 국회해산 해버리고. 국회해산이라는 게 우리 중학교 때 시험에 늘 나오는 이야기였거든요. 의원내각제에서는 국회를 해산할 수 있고 대통령중심제에서는 해산할 수 없다, 이런 게 늘 시험문제에 나오던 거였는데 대통령중심제에서 국회해산을 하는 그런 사태는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진리, 진실하고 전혀 반대되는 상황인데, 또 세상은 별 이상 없이 가는 거에요 그냥. 그걸 납득할 수가 없었던 거에요. 제가 제일 좋아하던 책이 사실은 교과서였거든요. 나는 교과서라는 걸, 옛날에는 책도 많지 않아 가지고 방학 끝나고 신학기 교과서 받으면은 다 읽었어요 그 날. 읽고 또 읽고 굉장히 귀하게...

 

 

총 : 상대 여자 분이 안 사귄 게 당연하네요.(폭소)
노 : 으하하하. 그 때부터 교과서를 불신하게 된 거에요. 어른들이 이야길 해도 안 믿기 시작하고.

 

 

총 : 저도 그런 기억이 있습니다. 저는 대망의 80년대라는 교과서에 항상 등장하는 문구가 있었는데, 저도 국가권력으로부터 첫 배신감을 느낀 게 그 교과서로부터였는데, 교과서에 곧 대망의 80년대라는 겁니다, 국민학교 때. 근데 국민학교 4학년인가 5학년 땐가 80년대가 됐어요, 근데 어느 날 주변을 보니까 하나도 변한 게 없어요. 그 순간 난생 처음 나보다 훨씬 큰 어떤 힘이 나를 기만하고 휘두르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었거든요.

 

 

노 : 그래서 그 당시에 저는 씨알의 소리, 함석헌 선생이 필진을 하신 씨알의 소리도 보고 그 다음에 다리라는 잡지가 있었어요.
총 : 정치적으로 너무 조숙하셨다...
노 : 네, 다리라는 잡지도 보고, 그 다음에 이제 이건 공부를 해야 된다. 그 때 우리는 공부를 하려면 철학부터 해야 된다. 이래가지고 당시에 서양철학사라는..

 

 

총 : 첫 자위는 기억 안 나고 그런 건 다 기억나시나요. (웃음)
노 : 네. 하하.. 그건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그건 스터디 그룹도 만들고 그렇게 해서, 그 해 11월 달에 유신반대 유인물 살포를 함으로써...

 

 

총 : 고삐리가?
노 : 네 고2때죠. 그리고 그 때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에 대한 대안이 없으니까, 알 리가 없는 거죠. 뭐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고. 함석헌 선생 댁에 찾아가고, 또 당시 조선일보 주필이었던 선우휘 편집장이었던, 이 양반이 남북 문제, 통일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이런 게 괜찮아 보이더라구요 그 당시에는.

 

 

총 : 그 양반이 글은 재밌게 썼죠.
노 : 네 그래서 또 그 양반 만나러 조선일보사 가 가지고 그 양반 만나고.
총 : 하하 만나기도 하셨어요?
노 : 네 처음에 쫓겨났는데 그 다음에 다시 가서 만나서 학교에 한번 초청도 했어요. 초청도 해서 강의도 한 번 듣고. 그리고 또 다리지를 만들었던 김상현 전 국회의원도 만나러 갔죠.

 

 

총 : 그때 잘 했으면 조선일보로 들어가는 건데... 하하하
노 : 그 때 조선일보가 지금 같은 극우적인 그런 논조는 아니었어요. 동아일보가 제일 나았고 그 다음에 중앙, 조선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그래서 그 당시에 온통 관심은 어떻게 하면 빨리 대학가서 데모를 할 것인가. 그게 온통 관심사였습니다.

 

 

 

 

 

총 : 자생적인 운동권이셨네..
노 : 그렇죠. 고등학교 때 레닌 이런 책 다 읽었으니까
총 : 그럼 고등학교 때 연애는?
노 : 그 당시 연애는 사실은 나만이 아니고 우리 반에는 고등학교 신분으로 연애하고 그런 친구들이 거의 없었어요.

 

 

총 : 그럼 대학에서도 연애 한 번도 못하셨지 않습니까?
노 : 대학에선 제가 연애했다고 그랬잖아요. 아까.
총 : 실패하셨다면서요?

노 : 실패했죠. 그거 말고는 안 했어요.
총 : 그럼 대학 때 첫경험도 못했습니까?

 

 

노 : 예. 저는 그 방면에 있어 가지고는...
총 : 하하하.... 혹시 결혼하고 처음? 제가 단병호의원 인터뷰하다가 놀란 게 서른 넘어 결혼하셨잖아요, 근데 결혼하고 처음 하셨대요. 제가 하도 캐물으니까 나중에 답해주시던데. 저는 단병호의원이 트럭으로 과일행상 했다고 해서 트럭 뒷좌석에서 좀 하셨겠다 싶었는데. (웃음) 그럼 결혼하고 처음입니까? 아님 결혼하자고 한 다음에 혼빙으로다가..
 

노 : 그건 상대방도 있는 거기 때문에 좀 신비스럽게 남겨두는 게...
총 : 하하하
노 : 그건 발가벗기면 그 다음에 재미가 없어요. 약간은 신비스럽게 남겨둬야 돼요.

 

 

총 : 그럼 이렇게 질문드리죠. 사모님이세요 첫 상대가? (웃음)
노 : 상대방이 있는 일인데...
총 : 하하하 누군지는 말 안 하셔도 되구요, 기다 아니다.
노 : 모든 것을 신비스럽게 만들어가야 돼요. (폭소)

 

 

총 : 그럼 혹시 좋아하는 여자 연예인 있으세요?

 

 

 

계속 한 방향으로 가봤다.

 

 

노 : 여자 연예인? 있어요.
총 : 누구.
노 : 이금희씨. 진짜로.

 

 

총 : 아니 섹시하다고 생각하는 연예인...
노 : 아니 좋아한다는 게 그런 성적인 비쥬얼도 좋아할 수도 있지만.

총 : 질문 정정. 섹시한 연예인은. 야~ 섹시하다 그런 연예인.
노 : 글쎄요 별로 없는 거 같은데.
총 : 정상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건? (웃음)

 

 

노 : 아니 그 섹시하다는 게, 예를 들어 키 큰 사람만 보면 섹시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렇잖아요 특이하게. 저 같은 경우는 좀 종합적으로 보는 편이기 때문에
총 : 그러니까 그 종합적으로 볼 때 가장 섹시한 연예인은 누굽니까?
노 : 별로 없다는 거죠. (웃음)

 

 

 

이게 선천적 성정일까, 이데올로그로 훈련되면서 후천적으로 억압된 걸까. 둘 단가..

 

 

총 : 하하하
노 : 옛날 어릴 때는 있었는데.
총 : 이거 너무 정치적이시다, 지금 발언.(웃음)
노 : 엘리자베스 테일러도 좋아했고, 어릴 때부터.

 

 

총 : 지금 연예인을 한 번 떠올려 보십쇼.
노 : 요즘에 글쎄요. 요즘에 연예인은 잘 모르죠 사실은.
총 : 그럼 비슷한 나이 대의 여자 연예인은?

 

 

노 : 아니 뭐 연기 잘하는 사람들, 그래서 저 사람은 참 괜찮은 배우다 이런 사람들은 있죠.
총 : 너무 정치적이다.. 지금. (웃음)
노 : 아니 그 전에 그런 방면으로 생각을 안 해 봐가지고..

 

 

총 : 저 여자 왠지 모르게 땡기는 데.. 괜찮은 걸.. 꼭 섹시하단 표현은 안 하시더라도 야, 예쁘네? 뭐 이런 생각을 하셨을 거 아닙니까.
노 : 예쁜 사람들이야 많죠.
총 : 그러니까 그 중에 한 명 골라 보십시요.
노 : 그게 딱 안 떠오르는데요.

 

 

총 : 그럼 외국배우 중에... 그건 좀 덜 부담되시니까. 엘리자베스 테일러 말고.
노 : 그건 어릴 때 이야기고. 요즘에는, 내가 요새 사람들은 이름을 잘 기억을 못해요.
총 : 어느 영화에 나온?

노 : 잭 니콜슨하고 같이 나온 이보다도 더 좋을 순 없단가? 거기 나온 여자 있죠.
총 : 저도 이름은 잘 생각이 안 나네요. 하지만 네.

 

 

 

 

 

 

 

 헬렌 헌트(Helen Hunt)

 

 

노 : 그 여자 다른 영화에서도 몇 번 봤어요. 몇 번 봤는데 꽤 연기도 잘 하고 매력적이더라구요.
총 : 지적인 여자를 좋아하시는 군요.

노 : 하하하 글쎄, 그 사람도 나이가 좀 들어서 저처럼 보이는데, 여하튼 근간의 배우들 중에 연기를 참 잘하는 구나..
 
총 : 혹시 미드라는 말 아십니까? 미드?

노 : 모르겠는데요...
총 : 일드, 미드. 미국 드라마를 미드라고 하고.

노 : 아~ 예.
총 : 혹시 다운 받아서 국내 개봉 안 되는 영화나 드라마 보신 적 있으세요.
노 : 그거 케이블에서도 좀 하잖아요.
총 : 하죠. 근데 시차가 좀 있으니까 예를 들어서 씨리즈물이면 미국에서는 10편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5편하고 있으니까.

 

 

노 : 프렌즈 같은 거
총 : 그런 건 끝났으니까. 지금 하고 있는 걸 인터넷에서... 불법이죠. 근데 요즘은 세계적으로 인터넷에서 그런 걸 다운 받아서 본단 말이죠. 그렇게 보신 적 한 번도 없으신가요?

 

 

노 : 난 케이블 티비에서는 봤는데 다운받아서 본 적은 없습니다.
총 : 미국드라마 중에 혹시 재밌다고 보신 거 있으세요? 프리즌브레이크 들어보셨습니까?

노 : 프리즌 브레이크?
총 : 못 들어보셨네.
노 : 네

 

 

총 : CSI는?
노 : CSI는 봤어요.
총 : 좋아하시죠 그런 거.
노 : 아 그건 뭐 상당히 새로운 수사드라마더라구요. 새로운 기법의.

 

 

총 : 로스트, 들어보셨어요?
노 : 로스트, 로스트는 들어봤죠. 들어는 봤고 제가 보지는 못했고. 제가 본 거는 프렌즈, CIS, 섹스앤더시티, 그거 밖에는
총 : 섹스앤더시티는 재밌나요?
노 : 재밌는 데 너무 비슷하더라구, 소재가. 에피소드가 너무 천편일률적이라서 금방 식상하더라고.
 
총 : 그럼 가장 최근에 본 영화는?

노 : 가장 최근에 본 영화는, 극장가서 본 영화는 라디오스타, 박중훈씨랑 좀 친한데, 그 사람이 시사회 오라고 해 가지고,
총 : 개인적 관심에서, 그렇게 오라고 해서 간 거 말고, 개인적으로 보고 싶어서 가서 본 영화 중 마지막으로 본 영화는.

 

 

노 : 마지막으로 본 거 국회의원 되고는 없죠. 영화관에 못 간 거 같은데... 한 번 갔는데, 처하고 같이 갔는데, 제가 영화를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어떤 때는 그 해 개봉된 영화는 다 본 적도 있었어요.
총 : 국회의원 되기 전에는요?

 

 

노 : 그 해 나온 영화를 다 보고 그걸 또 미리 적어 가지고... 그 정도로 영화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이목 이런 거 때문이 아니라 시간 때문에.. 그래서 할 수 없이 시간 날 때 티비에서... 요새는 채널이 많으니까 돌리다 보면 괜찮은 영화 하나씩 건지다 보면은 재밌게 보기도 하고.

 

 

총 : 개인적으로 베스트 영화는. 나름대로 목록이 있을 거 아닙니까?
노 : 그렇죠. 저는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 좋아하는데 역사물 이런 거 특히 좋아했고,
총 : 예를 들면?
노 : 음....

 

 

총 : 벤허?
노 : 그건 옛날의 미국의 일방적인 영화죠. 옛날에는 벤허, 쿼바디스 그런 영화는 다 봤죠. 몇 번씩 보고, 외울 정도로. 근간에 제가 트로이도 봤어요. 근데 좀 그렇더라구요, 감동적이지도 않고. 최근에 스팔타커스 다룬 영화가 뭐죠? 숫자로 되어있는?
총 : 300
노 : 네 삼백, 그걸 보고 싶은데 아직 못 보고 있고.

 

 

총 : 어떤 영화를 좋아하는 지에 따라 그 사람 취향이 상당히 드러나는 데. 매트릭스 보셨어요?
노 : 봤어요.
총 : 매트릭스 1, 2, 3 다?

노 : 다는 못보고 1편 봤어요.
총 : 1편 어떠셨어요?

 

 

노 : 솔직히 이야기하면 제가 썩 이해를 잘 못하겠더라구요. (웃음)
총 : 하하하
노 : 내가 80퍼센트 정도 이해를 했구나. 내가 보통 영화를 보면은 100프로 이해를 못해도 99프로 이해한다고 느끼는 사람인데 그 영화는 잘 그렇게 썩...

 

 

총 : 재미 별로 없으셨습니까? 그래픽 화려하고..
노 : 우리야 뭐 그런 영화보다는... 갑자기 영화 이야기 하니까 머리가 하얗게 됐지? 내가 굉장히 할 얘기도 많고 좋아하는 영화도 많은 사람인데.. 예를 들어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블루, 화이트, 레드, 그런 영화 굉장히 좋아합니다. 굉장히 높이 평가하구요.
총 : 잔잔하고 지적인 영화 좋아하시는군요.

 

 

노 : 그렇죠, 문제의식이 있는 영화를 많이 좋아하죠. 미국식으로 한 번에 몇 백 명씩 죽이는 그런 영화는 별로 안 좋아하죠. 내가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 청주교도소에 있을 때 정치범이 아닌 일반수들은 한 달에 한번씩 영화를 보여줬는데, 다 반공영화 아니면 중국영화. 근데 우린 안 보여줘요. 아예. 그 사람들이랑 섞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래서 규정 찾아내서 보니까 일주일에 한 편 씩 보여주기로 되어있다.. 그래서 싸워 가지고 비디오라도 보여달라. 그래서 비디오로 해 가지고 일주일에 한번 씩 보는데, 무엇을 볼지는 우리가 정하겠다.. 주윤발 같은 거.. 총 많이 쏘고 그런 거 보면은 교정, 교화가 안되지 않느냐...(폭소)

 

 

그래서 교정 교화가 되려면 리스트를 우리가 정하겠다.. 해서 내가 거기서 일년 반 이상을 있었는데, 그 일년 반 동안 매주 영화를 보는데, 그 때 대학 정치범 학생들과 갈등이 생긴 거에요. 그 친구들은 주로 <지존무상>, <영웅본색> 이런 거 보고 싶어하는데, 나는 <전쟁과 평화> 그것도 이제 소련에서 만든 8시간 짜리, 내가 선배니까 주로 내가 결정권을 갖고서 했는데, <전쟁과 평화>를 보니까 애들이 완전히... 그리고 전쟁장면을 보다가 평화장면에서 다 조는 거야 이제...(웃음) 그래서 욕을 많이 들었어요. 그 때 나름대로 가장 감동적인 영화 중 하나가 <빠삐용>. 밖에서도 좋아했는데 그 안에서도 <빠삐용> 영화를 봤고.

 

 

총 : <닥터 지바고> 이런 거 좋아하시겠군요.
노 : 네, 엄청 좋아하죠.
총 :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 이런 거.

 

 

노 : 네네 그렇죠. 그것도 보고 <카사블랑카> 험프리 보가트 이런 사람들도 매력 있잖아요.
총 : 로맨티스트시네요..

 

 

노 : 우리는 그런 거 굉장히 자랑스럽게 생각해요.
총 : 사실 운동하는 사람들 로맨티스트죠, 저는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총 : 그럼 요즘 영화는 어떻습니까. 시끄럽고 번잡하고 총 쏘고 막 죽이고 잔인하고 그런 영화들 중에.  
노 : 요즘 영화도 중국영화나 이란영화...
총 : 취권 이런 건?

노 : 취권? 옛날에 웃으면서 굉장히 재밌게 봤는데 두 번 볼 이유는 없는 영화이고.
총 : 성룡 영화는?
노 : 그것도 중고등학교 때 이소룡, 그 다음에 성룡, 어릴 때는 즐겨 봤죠. 지금은 좀 잔잔한 영화, 감동 있는 영화, 이런 영화들이 끌리더라구요. 김기덕 감독 영화 이런 거 다 봤어요.

 

 

총 : 그 분 영화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노 : 그 분 영화는 저는 굉장히 빼어나다고 생각이 되요. 굉장히 빼어난데, 다루는 주제, 다루는 방식이 굉장히 거칠어가지고.
총 : 불편하죠.

 

 

노 : 네 의도적으로 불편하게 만들고 있는 거 같은 데 그래도 저는 우리가 반찬도 그렇잖아요. 여러 가지를 먹으면서 그 반찬이 맛있는 거지 다른 건 먹지 말고 이것만 먹어라, 그러면 어떤 맛이든지 질리게 되어 있거든요. 그래서 여러 영화들 중에서 김기덕 영화 같은 것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은 우리 영화에서 상당히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까진 취향. 취향은 곧 정체성이다.

 

 

 

 

 

 

 

 

 

 

 

 

 

 

 

 

여기서부턴 생활

 

 

총 : 백기완 선생 선본조직위원장 그리고 노동정책 정보센터, 매일노동뉴스 발행하셨고, 이런 거 하면서 어떻게 먹고 사셨습니까?
노 : 그게 불가사의에요, 미스테린데...
총 : 어쨌든 먹고는 살아야 되는데..
노 : 네.
총 : 자녀는 어떻게 되시죠?

노 : 없어요.
총 : 그래요?
노 : 제 처가 저보다 두 살 위고.
총 : 일부러 안 두신 거에요?

 

 

노 : 그건 아닙니다. 할 여가가 없었습니다, 비용도 많이 들고. 결혼을 늦게 했고, 그 다음에 결혼하자마자 제가 한 8년 갔다고 오고, 둘 다 80년대 초반 되어 가지고 다시 살림 살기 시작해서..

 

 

총 : 어떻게 먹고 사셨습니까? 부인이 일하십니까?
노 : 그냥 잡수입이죠. 원고 강연... 잡수입이 굉장히 적은 액수였는데, 둘이 생활비 굉장히 적게 써요, 실제로. 제가 제일 고마운 게 처와 관련된 건데. 한 때 우리가 2년 정도 책 대여점도 했었어요. 그걸 하면서 일인당 인건비 정도 나오는데... 수입이 굉장히 적은 반면에 지출이 거의 없었다고 할까... 일단은 뭐 주로 아파트에서 버리는 거 있잖아요, 우리 그거 전부 다 갖다가 쓰고. 지금도 TV가 15년 됐는데, 스위치 넣으면 한 5분 있다가 화면이 나와요. 그래서 요즘 이거 바꿀까 말까 한참 고민인데, 그것도 얻은 거에요.
 
총 : 사모님이 일 하셨어요? 그 동안에?
노 : 제 처는 중학교만 졸업하고 계속 노동운동만 한 사람이고, 노동운동 굉장히 오래했죠. 저보다도 일찍 시작해서 오래했고.
총 : 현장에서 만나셨군요.

 

 

노 : 그렇죠. 노동운동 쭉 하다가 90년대 초반까지 노동운동을 했고, 그 다음부터는 좀 더 넓게 여성권익, 여성의 전화, 그걸 지금 계속 하고 있습니다.
총 : 그러니까 사모님도 특별히 돈 되는 일은 안 하셨고.
노 : 저한테 옷 사달라는 이야기 한 번도 한 적이 없습니다. 그게 꼭 좋다는 이야기 하는 건 아닙니다만..

 

 

총 : 옷 사주신 적 한번도 없습니까?
노 : 아뇨 있죠. 어쩌다가 돈이 생겨가지고 사주려고 그래도 싫다고. 그래서 돈으로 주거나 그런 적이 대부분이죠. 옷은 외국 가서도 멋있어 보여서 한 번 사 온 적도 있고 선물은 하는 편인데.
총 : 그건 국회의원 되시고 난 다음이겠죠.

 

 

노 : 아니 그 전에도 한 번 그런 적이 있었어요. 나는 마흔 살 되기 전에는 출국정지상태였기 때문에 만 사십 세에 여권 나와서 처음 외국 나갔는데. 그 전에는 여권을 안 해주더라구요 그 사람들이. 그 때 영국 가 가지고 아주 예쁜 옷이 하나 있어 가지고 근데 이제 여자 옷 싸이즈를 모르니까 비슷한 체격의 사람에게 당신 싸이즈 얼마냐 라고 물으니까, 이 사람 굉장히 놀래서 쳐다보더라구요.(웃음) 아니 처음 보는 사람의 사이즈를 물어보니까, 내가 사정을 영어로 더듬더듬 설명을 해가지고 그 싸이즈로 해 가지고 사왔죠. 사가지고 오니까 약간 작더라구.

 

 

총 : 하하하 결국 못 입으셨군요.
노 : 아니 몇 번 입었는데..
총 : 생활은 아이가 없어서 사실은 덜 힘든 부분도 있었긴 있었겠습니다, 오히려.

 

 

노 : 그렇죠. 아이 키우는 사람들의 시간 비용에 비해서 우리는 없음으로 인해서 뭐랄까 상실감 이런 게 작은 건 아니지만은, 저는 활동으로써 소화해 냄으로써 오히려 보완되는 면이 있다, 제 처도 마찬가지고, 저희는 지금도 활동가 부부처럼 살아요. 그러니까 먼저 집에 들어오는 사람이 설거지 하는 거고, 밤에 먹을 게 부족하면 만들어 놓거나. 제가 요새는 대선 후보라 가지고 좀 장에 못 가지만 국회의원 된 후에도 퇴근해가지고 양복 입은 채로 시장에 가 가지고 장을 많이 봤어요. 시장은 내가 더 많이 가지요. 이제는 얼굴 알려지니까, 불편한 게, 알아봐서 불편하다기 보다는 뭐 샀는가 들여다 보고...(폭소)

 

 

총 : 하하하
노 : 소주 한 병 사고 싶어도, 이건 또 집에서 술이나 먹나 이럴까 봐 잘 못 사고, 그리고 판촉 하는 아줌마들이 사라고 할 때, 예전에는 살 건 사고 안 살 건 안 샀는데, 이제는 정치인이다 보니까 이거 사세요.. 그러면 아니다 싶은데 할 수 없이 사고.(웃음)

 

 

총 : 깍을 수도 없고. 하하하하. 국회의원 되고 사모님 좋아하셨겠습니다.
노 : 별로... 그 사람은 자기는 자기고 나는 나다, 제일 싫어하는 용어가 사모님이고. 그 이야길 하면 정정합니다, 그렇게 부르지 마시고.
총 : 이름으로 불러라. 그럼 부모님이 좋아하셨거나 형제들이 좋아했거나...

 

 

노 : 왜 안 좋아했겠습니까, 근데 이제 제가 국회의원을 인생의 목표로 삼은 것도 아니고.. 물론 기분 좋은 일이죠, 기분 좋은 일이고, 상당히 좋은 일인데, 아 이제 인생의 목표를 달성했다 이런 식의, 뭐 그런 건 아닙니다.
총 : 그래도 마음에 빚진, 그러니까 스스로 부끄럽게 살았다 이래서가 아니라 적어도 가족한테 마음의 빚 같은 거, 부모님한테. 그런 게 있을 거 아닙니까.
노 : 네 
총 : 그걸 좀 갚았다, 이런 생각은 안 하셨어요.

 

 

노 : 저는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제 처도 그렇고 제 어머니도 그렇고 오히려 걱정이 더 커진 거죠. 이제 더 잘해야 되는데, 더 중요한 위치나 역할을 맡았기 때문에, 더 잘해야 되는데, 그렇게 마음이 굉장히 더 부담스러운 거죠. 제 처는 간혹 가다 그래요. 차라리 그냥 평범하게 어디 시골 가서 조용히 살면 좋겠다는 얘기를 자주하는 편이죠. 이번 대선 출마도 마찬가집니다. 대선 출마 한다고 하니까 이건 무슨 영광으로 알기 보다는, 사실 그런 면이 왜 없겠어요, 그러나 굉장히 부담스럽고 그런 거죠. 잘 못하면 어떡할까 걱정도 많고,
 

총 : 그러니까 책임의식이 대단한 분이군요.
노 : 네, 제 어머니도. 저는 사실은 어머니를 많이 고생 시킨 편이기 때문에 국회의원 됐을 때 이제 그동안 고생한 거 좀 갚지 않았습니까, 좀 이렇게 위로가 되지 않았습니까, 사실 그런 생각 실제로 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런데 당선되고 바로 만나지 못하고 일주일 있다가 만났어요 어머니를. 바빠 가지고. 만났는데 어머니가 전혀 웃지도 않고, 오히려 걱정이 크다, 잘 해야 하는데, 그 때 방송 프로 몇 군데에서 어머니 인터뷰를 하는데 그런 식으로 계속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총 : 아버님은 일찍 돌아가셨나요?
노 : 아니 아버님도 계세요.    

총 : 아버님은..
노 : 어차피 어머니가 좀 더.

 

 

총 : 아버님은 뭐라고 하셨나요?
노 : 아버님은 뭐 열심히 잘 해라. 아버님은 전형적인 한국의 아버님 스타일.
총 : 운동할 때는 반대 안 하셨어요?

 

 

노 : 그 대목이 이제 반대했다기보다는... 반대를 처음에는 했죠. 제가 전기용접 다 배우고 공장에 들어가서 다니다가 이게 수배가 되니까 어차피 부모님도 알게 되실 거 같더라구요. 그 전까지는 얘길 안 했는데 부모님한테, 사실은 공장에 다니고 있다라는, 일시적으로 다니는 게 아니라 평생의 일일 것이다, 그리고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이렇게 제가 부산에 내려가서 말씀을 드렸어요. 그 때 뭐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상황이었죠.

 

 

총 : 애가 명문대 갔는데...
노 : 그 때는 왜 그러냐 난리가 났죠. 근데 그 후에 계속해서 지속적으로 반대하고 그래서 가족 내 큰 소용돌이 치고 그렇게 되지는 않았어요. 그러니까 제가 운동하는 것에 대한 걱정, 불안..
총 : 어떻게 될까 봐..

 

 

노 : 그렇죠. 더 좀 편하고 좋은 길이 있는데 왜 저리로 가는 것이냐에 대한 불만, 이런 건 늘 있었지만, 그걸 갖다가 강력하게 뭘... 저렇게 안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면서도, 제가 선택해서 판단해서 가는 길에 대해서 지가 원해서 간다면... 하는 신뢰, 이런 건 있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제가 굉장히 고맙게 생각하고, 그게 큰 힘이 되었어요. 제가 덜 걱정하도록 만들어 주시고, 나중에 제가 굉장히 놀란 게 감옥에 갔다가 나와 가지고, 그러니까 제가 처음에 집에 가서 운동한다고 이야기했던 때로부터 10년 정도 지났을 때, 어머니가 어디서 스크랩북을, 1년에 하나씩 10년동안 만든 스크랩북을 저한테 주시더라구요.

 

 

총 : 그 스크랩북 내용이?
노 : 그 스크랩북이 뭐냐면 제가 그 이야기를 한 직후부터 어머니 심경도 조금씩 적고, 그래서 앞에 왜 하필 이 길을... 이렇게 적혀 있어요. 그리고 제가 노동한다고 하니까 나중에 어머니 말씀은, 도저히 가면 안 될 위험한 길로 가는 거 같은데, 도대체 그 길이 어떤 길인지 어머니도 알아야겠다…

 

 

총 : 의원님이 어머님을 닮으셨군요.
노 : 그게 아니고. 노동과 관련된 주요 기사들 있잖아요, 그걸 갖다가 10년동안 스크랩을 한 거에요. 매년 한 권씩

 

 

총 : 어머님이 이제 노동 전문가시겠네요.
노 : 열렬하게... 어떤 때는 저보다도 더 많이 아시고, 그런 경우도 있었어요. 제가 모르는 소식까지도 챙겨보니까. 근데 이제 다시 10년이 지났거든요. 그게 이제 2004년, 국회 들어온. 저는 그 때 그 걸 보고 상당히 충격을 받았어요. 부담스럽기도 하고, 어머니가 이렇게까지 마음으로 같이 하려고 하셨구나. 그리고 나서 잊었죠. 그런데 국회 딱 들어오고 2004년도에 또 열 권을 보내셨어요.
총 : 으하하하하.. 이...야...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었구나...

 

 

노 : 보내셨는데 보니까, 제가 92년도 감옥에 나와가지고 그 다음부터는 진보정당 운동을...
총 : 어머님이 제일 무서우셨네요. 하하하.

 

 

노 : 진보정당운동을 했잖아요, 근데 이 10년 진보정당 운동에 관련해서 또 스크랩을 한 거에요. 스웨덴의 복지가 어떻고 그런 관련된 기사만 나오면은 다 오려가지고... 10년치... 그 노트북을 지금 제 방에... 

 

 

총 : 함부로 못하시겠습니다. 어머니한테.
노 : 어머니 얘길 많이 한 게 그런 배경입니다.
총 : 어머님도 시대를 다르게 태어나셨으면 운동하셨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노 : 그랬을 수도 있죠. 제가 그러니까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영향, 그런 식의, 컸죠. 어릴 때도 저희가 끼니를 걱정하는 그런 상태는 절대 아니었는데..

 

 

총 : 아버님은 어떤 일을 하셨어요?
노 : 아버님은 회사 다니셨죠. 아버님은 피난 오기 전에 도서관 사서도 하고, 평범한 회사원 이런 식이었는데, 어릴 때 집에 전축이 있었어요. 옛날 판들이 많았는데, 저에게, 제가 알아서 배우겠다고 한 건 아니고, 저에게 첼로를 배워라, 어릴 때, 그래서 첼로를 배웠습니다.
총 : 첼로. 안 어울립니다. (폭소)

 

 

노 : 그래서 중학교 때 제가 부산중학교 다녔으니까, 그 당시 좋은... 악기 배우러 다니는 아이는 전교에서 저 하나였어요, 그렇다고 우리가 전교에서 제일 잘 살았느냐, 전혀 아니었어요. 전혀 그렇지 않은데, 누나는 피아노 배우게 하고 저는 첼로 배우게 하고. 운이 좋아 가지고 그 당시 부산 시향 수석 주자를 하던, 그러니까 전문가들을 키우는 선생님한테 배웠어요. 그 양반이 또 소개를 해줘 가지고 서울 와선 우리나라에선 그 당시 첼로 하면 아주 유명한, 그러니까 첼로로 대학 들어 가려는 그런 사람들만 가르치는, 국립교향악단 첼로 수석 주자였던 분에게서 배웠고...

 

 

 

당시 첼로를 했다면 못 살진 않았다가 아니라 잘 살았다 축에 당연히든다. 노회찬과 첼로라...

 

 

총 : 지금도 첼로 하십니까 그럼?
노 : 지금 뭐 거의 안 하죠. 근데 이게 악기는 운전처럼 몸에 배어있기 때문에... 그래서 제가 자연스럽게 음악을 좋아했다기 보다는... 노래도 못 부르고 그게 콤플렉스였던 사람인데, 악기를 배우게 해 가지고 음악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좀 알게 됐어요. 그래서 고등학교 때 고민을, 대학가서 데모를 할까 아니면 계속 음악으로 갈까 고민도 하고, 작곡도 해 본다고 곡도 하나 만들어보고..

 

 

총 : 계속 안 어울립니다. 하하하... 혹시 그 때 만드신 곡 있으세요?
노 : 있죠. 그거는 제가 키보드 있으면 칠 수 있어요.
총 : 그거 연주해서 녹음해 놓은 거는 없으세요? 저 하나만 주십시요. (웃음)

 

 

노 : 성남사라고 서정주 시인이 쓴 수필에 나오는 어떤 가사인데 가사가 하도 좋아가지고. 옛날 우리나라 삼국유사 같은 설화 가지고 만든 거에요, 근데 고등학교 때는 노래도 한 번 만들어보자 그래가지고 가곡 작품인데 한 번 만든 적도 있죠. 어릴 때는 그런 배려 속에서 좋은 학교 다니면서 별로 부족한 거 없이 사실은, 아주 부잣집 애는 아니었지만, 부족한 거 없이 살다가 격동기 한국 사회의 어린 소년이, 열여덟 먹은 소년이 유신이라는 엄청난 사태를 맞이하면서, 그런 말이 있어요, 제가 잘 쓰는 말 중에 하나가 전쟁을 겪은 소년은 이미 소년이 아니다.. 그 때 그 사태를 맞이해서.. 그게 저한테 준 충격과 인생관 세계관의 변화는 그건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그 다음부터 저는 제2의 인생을 살았다고 볼 수 있죠. 그리고 그것이 한 번 더 바뀌는데, 그게 뭔가 하면, 제가 용접을 하기 위해서 노동 현장에 들어오면서 또 한 번 크게 변했는데, 사실 제가 고등학교 때도 삐라 뿌리고, 유인물 제작해서 뿌리고, 대학교 다닐 때도 굉장히 적극적으로 이게 내 직업이다.. 이러면서 학생 운동했는데... 나중에 노동운동가 할 때 되돌아 보니까 그때는 엘리트 의식 같은 게 있었어요, 너희들은 모르지 나는 알아, 이건 문제가 많은 거야.. 그러면서 내가 선두에 서서 이런 걸 이야기 한다 하는.. 그런 엘리트 의식이 있었어요, 그런 생각 가지고 학생 운동도 하고 사실은. 근데 실제로 노동 현장에 가서 굉장히 충격을 받아서 바뀌었죠. 거기서 고생하는 사람들, 그리고 내가 그 나이까지 살아오면서 못 만났던 사람을 만났거든요, 내가 그런 노동자들을 속에서 큰 게 아니었기 때문에.

 

 

총 : 머리로만 하다가.
노 : 네 머리로만 한 거죠. 전 사실 중학교도 제일 좋은 중학교, 고등학교도 우리 나라에서 제일 좋다는 고등학교, 첼로도 하고, 고등학교 때 오페라도 보러 다니고.
총 : 잘 먹고 잘 살다가..

 

 

노 : 네네, 그러다가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은 있다고는 하나, 그렇게 엘리트 의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나하곤 전혀 다른 세계에 놓여지고 그 속에서 살아 가면서.. 제가 노동 운동할 때 사람들이 저보고, 너무 고생스럽지 않느냐 물었을 때, 전 오히려 난 구원 받았다. 여기 오지 않았으면, 이 일을 하지 않았으면, 깨닫지 못했을 그런 것들을 여기 와서 깨달았다. 그래서 난 정말 고마웠다. 예를 들면 내가 대학 나왔는데, 좋은 기회가 있었는데, 그걸 포기하고 여기 들어간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운이 좋아 가지고 노동현장에 온 것이고 결과적으로 크게 구원 받은 것이다. 그런 생각을 새롭게 하게 되었어요. 지금은 그 연장선에 놓여 있는 거죠.
총 : 종교적 각성과 비슷하군요.

 

 

 

운동은 그에게 그렇게 출가요 구원이다. 가슴 한 켠엔 계급적으로 각성한 브루조아의 죄의식을 안고 활동으로 고해성사하는 운동 성직자

 

 

총 : 혹시 썬글라스 있으세요?
노 : 네 있습니다.

 

 

 

 

 

 

총 : 썬글라스 몇 개나 있으세요?
노 : 하나 있습니다.

 

 

총 : 언제 사셨어요?
노 : 오 년은 더 됐겠네요, 육년, 칠년?
총 : 무슨 용도로?

 

 

노 : 낚시. 그래서 렌즈를 낚시할 때 쓰는 편광 렌즈라고 있어요. 막 빛 반사되는 거...
총 : 낚시할 때 외에는 안 쓰세요?
노 : 낚시할 때 외에도 많이 씁니다.

 

 

총 : 언제 쓰십니까?
노 : 어... 혼자 등산 갈 때, 내가 국회 들어온 뒤에도 평일 날 북한산에 등산을 갔는데, 모자 푹 눌러쓰고, 썬글라스 끼고
총 : 사람들이 잘 못 알아보게 하기 위해선가요?

 

 

노 : 네 못 알아보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했는데, 그래도 알아보는 사람이 있더라구요, 그래서 내가 놀래버렸는데, 그리고 시장 갈 때, 시장 갈 때 내가 양복 입고도 가지만은, 집에서 나갈 때는, 머리도 좀 덜 감았고, 안 감았고 이런 상황에서는 모자 쓰고 썬글라스 끼고 가는데, 그래도 여기저기서 쳐다보는데...

 

 

총 : 용도가 다 은폐용입니까? 멋으로 쓰신 적으로 없으세요?
노 : 아니 그런 적은 없습니다. 멋으로 쓴 적은 없고... 글쎄요, 제가 얼굴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총 : 으하하하하하하. 지금까지 멋 있으려고 뭐 해 본 거 없으세요?
노 : 어릴 때야 뭐 나팔바지도 입고
총 : 나팔바지. 으하하하하하

 

 

노 : 11인치짜리까지 입어봤으니까 내가. 보통 9인치 입는데.
총 : 몇 살 때 나팔바지를?
노 : 나팔바지를 입은 지가 내가 고등학교 때.
총 : 11인치. 유신에 분노하면서 나팔바지를 입었군요. (폭소)

 

 

 

 

 

노 : 그 때는 그게 워낙 유행이었어요. 유행이었는데 좀 배포 큰 친구들은 13인치도 입고... 우리는 그렇게는 안하고 11인치 정도, 나중에 시간 지나고 그 바지를 보니까 얼마나 촌스럽게 보이던지.(웃음)

 

 

 

 

총 : 나팔바지 말고 멋 있으려고 해 보신 건 없다. 혹시 룸싸롱 가보셨습니까?
노 : 가 봤죠.
총 : 다른 사람이 가자고 해서 간 게 아니고 제 말은 의원님이 주도해서.

 

 

노 : 없죠. 우리가 어떻게 비용을... 비용도 그렇고, 문화가... 예를 들어 강남에는 일년에 한 두 번 가는데, 옛날 친구들 만나러 가는 그런 것들이지, 우리는 주로 인사동, 시청 뒤에 북창동, 아니지~ 그 있잖아요 옛날 집 있는데, 골목 안에... 그런... 문화가 좀 다르기 때문에
총 : 스키 타보셨습니까?
노 : 아니요 전.

 

 

총 : 스키장은 가보셨어요?
노 : 스키장은 갔죠. 우리가 진보정치연합 할 때에도 수련회 같은 걸 갖다가 여름에 스키장에 가면은 싸거든, 그래가지고. (웃음)

총 : 눈 있을 때 스키장에 가셔야죠... 하하하
노 : 못 가죠... 우리 젊었을 때는 그게 고급스포츠였죠. 요즘에야 일반적으로 많이 가는데.

총 : 골프?
노 : 골프장은 갔었죠. 굉장히 유명한 골프장도 갔는데 미국에 국회의원들이랑 같이 가가지고
총 : 치셨나요?

 

 

노 : 아니요, 그 사람들이 유명한 데니까 사진 한 번 찍어야 된다고(폭소) 거기 골프장 모자도 하나 사 가지고... 골프 치라는 유혹을 많이 받았어요. 제가 작년에 한 가지만 말씀 드리면은 제가 법사위에서 유럽 출장을 갔는데, 마침 마지막 전날인가 시간이 비어 가지고 다들 골프 치러 가더라구. 저를 혼자 놔두고 가기가 그렇잖아요. 골프장 가자고 그러길래, 안 치는 사람 억지로 치게 하지 마시고, 뭐 내가 문제제기 안할테니까 저 없이 치시라고 해 놓고 저는 대사관 직원을 하나 붙여주길래 맑스의 묘지에 가자.. 해서 맑스 묘지에 갔었습니다.

 

 

총 : 어릴 때부터 문화적이고 지적인 분위기에서 자라셨군요.
노 : 좀 그런 편이죠.
총 : 그리고 그런 걸 성격상 좋아하시고.

 

 

노 : 문화란 좋은 것이죠. 저는 진보 이러면은 무섭고 딱딱하고 소리지르기만 하고.. 이제까지 우리가 그렇게 보였던 책임도 있어요. 진보 스스로가 특히 문화에 강해야 된다, 문화가 삶의 질의 가장 완성적인 부분 아니겠어요. 우리 사회가 빈부격차 사회양극화 문제도 있지만 동시에 문화적으로 접근을 해야 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행복지수라고 전 생각해요. GDP나 GNP지수가 아니라. 근데 우리가 지금 GDP가 열 두 번 째라 그러는데, 경제대국이다.. 근데 행복지수가 102등이다, 그게 좋은 사회가 아니거든요. 이번에 미국에서 벌어진 사건도 저는 심각하게 봐야 한다고 봐요. 그건 우발적인 사건이긴 하나 그냥 우발적인, 개인의 비정상적 심리상태, 이렇게만 치부할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총 : 보통은 저희가 두 세시간 인터뷰하는데 오늘은 한 시간 반밖에 시간이 안 된다고..
노 : 시간 더 있어요.

총 : 아 그래요.
노 : 식사하고 가시죠? 냉면 어떠세요.

 

 

 

벌써 한 시간이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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