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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나라꼴을 생각하면 어이없고 창피하고 분한 마음뿐이니 연말 결산이랍시고 돌이켜 보기도 지저분하다. 머 그래도 우원은 과학 관련 일을 하는 관계로 과학 이야기로 올해를 정리할 수 있어 다행이다. 세상이 아무리 거꾸로 돌아가도 과학은 뭔가 새로운 걸 시도하고 또 찾아내고 있으니 말이다. 


거두절미하고 그런 의미에서 함 이야기를 풀어보자. 과학계 이슈가 원체 많다 보니 올해에는 장비 관련된 이야기로 끌어가 볼란다.



1. LHC 재 가동


요 LHC 란게 뭐냐면, 영어로는 Large Hadron Collider 라고 하고 한국말로는 강입자 충돌기라고 한다. 예전에는 주로 입자 가속기라고 불렀는데, 크기로 유명한 것들 중에서도 제일 크고 쎈넘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땅 밑에 만들어진 터널의 둘레가 자그마치 27km에 달하니 말 다했다.


그럼 이건 대체 어디에 쓰는 물건이냐? 머, 2012년에 힉스 입자를 발견해서 1964년에 이를 예측한 피터 힉스에게 노벨상을 안겨준 것이 바로 이 넘이다, 라고 하면 아하~ 하실 거다. 충돌기, 혹은 가속기가 크고 쎄다는 말은 입자를 그만큼 빨리 가속시킬 수 있고 강하게 충돌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면 아주 큰 에너지가 나오기 때문에 극초고온이었던 우주 초기의 물질 상태를 재현할 수 있다. 이때 초기라는 건 몇만 년 이런 게 아니라 빅뱅 직후1,000,000,000분의 1초 후 같은 거다. 그러니 이 LHC란 넘은 이를테면 아주 먼 과거를 극도로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거대한 현미경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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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성 아니라 세상을 웃게 만든 진짜 BBC의 오타.

Hadron 을 요렇게 hardon 으로 쓰면 큰일난다

단어의 정확한 뜻은 여기(링크)에서 확인(음란주의)


그런데 이 거대 발기 충돌기가 올해 재가동하면서 작년에 비해 성능을 1.5 배나 높였다. 이 말은 현미경의 렌즈가 그만큼 커졌다, 혹은 타임머신으로 돌아갈 수 있는 시점이 빅뱅에 그만큼 더 가까워졌다는 뜻이다. 이를 통해 우리가 그동안 몰랐던, 혹은 이론적으로만 제기됐던 입자나 현상 등을 찾아내고 재현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러다 정말 우주 속 입자와 힘의 진정한 정체를 찾게 되는 거 아닌가?


박테리아에서 시작한 우리가 이렇게 꽁공 숨은 우주의 비밀을 들여다보고 있다. 아싸.



2. 14광년 너머 쌍둥이 지구 발견


안다 알아. 대체 지구는 몇 쌍둥이길래 툭하면 쌍둥이 지구 발견했다고 난리냐? 우원이 <과학하고 앉아있네> 팟캐스트를 하며 언급한 쌍둥이 지구도 여러 건이고 과학계에서의 발표 혹은 언론에서 다룬 건 더 많다.


일단 쌍둥이 지구라는 개념이 뭔지부터 좀 보자. 쌍둥이라고 하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지구와 똑같은 행성이라는 뜻은 당근 아니다. 만약 그런 이상한 곳을 찾는다면 그야말로 우주론 자체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는 상황이고, 우리가 지금 찾는 곳들은, 달리 말하면 지구와 비슷한 생명체가 생겨나고 살 수 있는 조건을 가진 행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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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이런 넘이 발견된다면, 그거 우리가 사는 우주가 진짜가 아니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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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이 정도면 쌍둥이라고 친다.

물론 저 행성도 실제 저런 모습인지는 모르고

크기와 자기네 태양에서의 거리로 대략 유추한 거다.


그래서 가스가 아닌 암석 행성이어야 하고 물이 액체 상태로 다량 존재할 수 있는 환경이어야 한다. 당근 온도는 첫째 조건인데 -너무 춥거나 더우면 얼거나 증발해 버리니까- 이게 자기네 태양에서의 위치만으로 결정되는 게 아닌 건 금성과 화성의 예를 보면 알 수 있다. 둘 다 소위 골디락스 존이라는 태양에서의 적정 거리 안에 있지만 금성은 대기가 너무 두꺼워 엄청 뜨겁고 화성은 너무 얇아서 추위가 문제다. 하지만 화성 정도 환경이면 우주를 놓고 봤을 때는 쌍둥이 지구 비스무리하게 부를 수도 있다. 최근에는 흐르는 물도 발견됐으니 더 그렇다.


그래서 쌍둥이 지구는 많이 찾으면 찾을수록 생명체를 발견할 곳의 후보들이 늘어난다. 나아가 기계 문명이라도 만들고 있다면 그 흔적을 전파망원경 등으로 확인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이번 14광년 쌍둥이가 중요한 거다.


지금까지 발견한 소위 쌍둥이 지구는 적어도 수백, 수천 광년 정도 떨어져 있었다. 그 말은 지구와 비슷한 기술문명이 존재한다고 해도 너무 멀어서 가보기는커녕 교신조차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안녕~ 인사 한번 하고 답을 듣는데 몇백 년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14광년이라면, 인사말 보내고 단 28년만 기다리면 답을 받을 수도 있다.


이 정도는 우리가 함 해 볼만 하지 않냐.



3. KMTNet 작동 개시와 GMT 착공


바로 우원이 입이 찢어져라 말하고 다닌 우리나라의 두 망원경 이야기다. KMTNet은 칠레 호주 남아공 세 군데에 망원경을 설치해서 시차를 활용해 햇빛의 방해 없이 24시간 내내 밤하늘을 본다는 프로젝트다. 세계적으로도 유래가 없는 독창적인 발상이고 외국인들도 침을 흘리는, 그래서 우리나라 과학계 위상을 확 높일 수 있는 게 바로 이넘인데, 드디어 가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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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생긴 망원경을 남반구 3대륙에 설치해서 한국에서 총괄 콘트롤한다. 참 멋진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럼 이넘으로 뭘 하나?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바로 앞에서 이야기한 쌍둥이 지구 찾는 일. KMTNet의 한국명이 외계행성탐색시스템이라는 사실이 이 점을 잘 말해준다. 상대성이론을 응용한 중력렌즈 현상이라는 걸로 행성을 찾는데, 이 넘 덕에 조만간 우리나라가 이 방면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앞선 나라가 될 가능성이 크다. 두 번째는 지구에 충돌할지도 모르는 소행성 등의 위험 물체를 찾는 일이다. 24시간 내내 하늘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이런 물체들을 추적하고 형태를 확인하는데 열라 유리하다. 이를테면 지구 방위군 임무라고 할 수 있는데, 언젠가는 KMTNet 이 아마겟돈을 막는 인류의 영웅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아 물론 그런 위험스러운 사태가 벌어지지 않는다면야 더 좋겠지만.


다음 GMT는 거대 마젤란 망원경, 이름 그대로 반사경이 25미터가 넘는 세계에서 가장 큰 망원경인데 올해 드디어 공사를 시작했다. 2024년에 본격 가동을 목포로 1조 원이 투입되는 이 프로젝트에 우리나라는 1/10인 천억 원을 투자했다. 그 덕에 1년에 한 달 동안은 우리 과학자들이 배타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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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콘소시엄을 통해 칠레에 만들어지는 GMT.

옆의 컨테이너 트럭과 비교하면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럼 이넘은 또 어디 쓰냐? 묘하게도 앞에 나온 두 개와 관련있다. 일단 크기 때문에 멀리 볼 수 있는데, 망원경이 멀리 본다는 것은 그만큼 오래전의 우주를 본다는 뜻이다. 130억 광년 떨어진 은하를 본다는 건 거기서 130억 년 전에 출발한 빛을 본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LHC가 빅뱅 직후의 작은 세상을 들여다보는 타임머신 현미경이라면 이 넘은 빅뱅 후 몇억 년이 지나 거대해진 우주에서 첫 은하가 탄생하던 시점을 보는 타임머신 망원경인 셈이다.


또 하나는 아까 KMTNet이 찾은 외계행성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일이다. KMTNet 망원경은 구경이 크지 않기 때문에 행성을 찾을 수는 있지만 구체적으로 보기는 어렵다. 이때 거대한 GMT가 등장해서 그쪽을 열심히 바라보면 문제의 행성이 어떤 물질들로 구성됐는지 등등의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해서 쌍둥이 지구에 정말로 생명이나 문명이 있는지 직접 보고 확인하는 거다. 멋지다.



4. 가상현실 D-1 년의 위용


우원, 올해도 국립과천과학관에서 SF전시를 만들었다. 근데 주제가 가상현실이었다. 일단 아래 현장 영상 좀 보시자.



가상현실의 기본 개념이나 현재 기술에서 시작해 바탕의 심오한 철학과 극단적인 미래상까지 다룬 내용과 함께, 막 선보이기 시작하는 가상현실 영화들을 감상하고 나아가 실제 크기의 석굴암 구조물 속에 고글를 끼고 들어가 내부를 한 바퀴 돌고 나오는 국제적으로도 드문 체험 장치까지 설치한 전시였다.


우원이 지난 몇 년간 가상현실에 큰 무게를 실어 온 것은 아는 사람은 알 거다. 우원은 이 기술이 세상을 바꿀 거라 보고, 내년이 바로 그 혁명이 시작되는 원년이라 본다. 이건 괜히 하는 소리가 아니다. 온갖 스타트업이나 이론가들이 벼라별 신기술과 그 장미빛 미래를 이야기하지만, 그 중 실제로 벌어지는 일이 무엇일지는 돈과 실행력을 가진 쪽이 움직이는지 아닌지를 보면 된다.


가상현실이야말로 그 대표적인 분야로, 지난 몇 년 동안 기반 기술 개발과 업체들의 이합집산 속에서 이제 페이스북,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소니 등 IT 계의 거대 기업들이 하나같이 엄청난 투자를 통해 전열을 가다듬고 내년 봄부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쏟아낼 준비를 마쳤다. 그래서 올해가 D-1년이라는 거다.


처음에는 게임이나 간단한 체험들로 시작하겠지만, 서서히 하지만 무시무시한 기세로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은 우리 생활의 많은 영역을 잠식해 들어올 것이다. 비록 지금은 무겁고 불편한 고글을 사용하지만 컴퓨터나 핸드폰이 그랬듯이 그런 문제는 기술의 발전 속에서 시간이 해결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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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타임지 표지의 주인공이 된 가상현실

<가상현실의 놀라운 즐거움, 그리고 왜 이것이 세상을 바꿀 것인가>


지금은 렌즈로 스마트폰 화면만 한 영상을 가까이서 보는 방식이지만, 언제까지나 거기 머물러 있지는 않을 거다. 올해 4월, 미국 국방성 산하의 국방고등기획국, DARPA 는 새로운 연구팀을 발족했다. 이 팀의 목표는 인간(일단은 군인)의 머리에 이식할 수 있는 동전만 한 장치를 개발하는 것인데 이를 통해 뇌의 시각중추에 간단한 문자나 영상을 직접 쏘아보낼 수 있도록 하는 거다. 지금은 물고기 차원에서 실험이 행해지고 있다.


이 기술이야 완성되려면 많은 시간이 걸릴 테고 여러 가지 윤리적 문제도 결부돼 있어서, 이게 판도라의 상자가 될지도 모를 일이지만, 여하튼 이런 방향의 기술이 미국 정부 차원에서 개발되고 있다는 점이 포인트라 하겠다. 이게 가능하다면 '가상 시각'에서 멈출 이유가 없다. 말 그대로 매트릭스의 세상이 열릴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내년부터는 이쪽에 보다 관심을 갖고 세상 돌아가는 걸 지켜보면 무척 흥미로우실 거다.



…뭐 이렇게 몇 가지 장비 위주로 올해 과학기술계를 정리해 봤다. 앞에서 말했지만 이건 내 맘대로 고른 거라 과학계에서 제일 중요한 이슈들이었다는 뜻은 아니다. 명왕성에 탐사선이 도착했고, 화성에서 흐르는 물도 발견했으며, 소행성 세레스에도 도달했고, 혜성에서 유기물도 발견했고 또 기후 협약도 이뤄냈다. 며칠 전에는 나사에서 그간 사기라는 비난을 받던 양자 컴퓨터가 실제로 동작한다는 사실을, 일반 컴퓨터에 비해 1억 배의 연산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구글과 함께 발표하기도 했다.


이런 것들은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는 듯하지만 크게 보면 그렇지도 않다. 우리 인간이 어제 모르던 것을 오늘 알게 되고 어제 없던 것을 오늘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이 바로 그 공통점이다. 우리는 이런 것을 진보라고 부른다. 물론 암초도 함정도 있지만, 우리 자신을 믿고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내년에도 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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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딴지일보 coco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