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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그래도 그만한 사람 없었습니다


2009.6.10.수요일


 




16대 대통령이 그렇게 훌쩍 날아 내린 후, 이명박은 우리 동네에서 실질적 용의자 취급을 받게 됐다.


사람들은 모였다 하면 ‘이명박이 이놈이 해도 해도 너무 한다’며 입을 모았고 분위기는 이내 성토의 장으로 변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참 눈치를 보다 ‘아니 직접 사람을 보내 죽인 것도 아닌데...’라며 운을 뗀 용자가 한명 있었으니 치과 개원의를 바깥양반으로 두신 사모님, 복희아줌마 되시겠다.


지난 대선 때 그이가 이명박을 공공연히 지지한걸 다들 알고 있다. 사유는 단순명쾌하다. 이념적, 지역적, 정치적 인습과 툴을 훌훌 벗어내고 김영삼 때는 세금이 요만하던게 김대중 때 와서 이만큼이 되더니 노무현이 때에 와서는 이따만 해졌다, 내후년에 애들 대학 가고하면 한참 돈 들어갈 구석도 많은데 이명박은 세금을 깎아준다니 좋아서 뽑았다.


무엇보다도 후보자의 정책과 공약을 냉정히 평가해 한 표를 행사한 복희 아줌마의 합리적 선택에 잠시 박수.



그녀의 계급투표와 이명박 지지의 변은 다시 한 번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나야 종부세 때문에 고민할 필요가 없어 몰랐지만, 사모님의 눈에는 그렇게 노무현의 참여정부가 알토란같은 내 돈을 훑어가는 악당들처럼 보였나보다.


그러나 이제 일을 시작해 자리에 자주 끼지 못하는 새댁, 사랑이 엄마였다면 조금 다른 말을 했을 것 같다.


넉넉찮은 신랑의 벌이에 분유 값이라도 보태겠다며 일을 찾던 새댁은 이내 집에서 애를 보는게 차라리 남는 장사라는 사실을 깨닫고 서글퍼 했다. 특별한 기술도 학위도 없는 스물일곱의 새댁이 벌 수 있는 돈의 액수란 뻔했고 그렇게 간신히 쥐는 돈이 한 달에 60만원. 그 돈을 벌기위해 하루 종일 핏덩이를 품에서 떼어놓는 아픔은 감내하더라도 40만원이 넘는 어린이집 종일반 보육비를 제하면 사실상 남는 게 없다는 사실은 감내하기 어렵다.


그러던 사랑이 엄마가 구청에 다녀와서 차상위 계층 보육료 지원 정책의 일환으로 원비에서 한 달에 20만원을 나라가 대준다는 사실을 알고 일을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예정보다 한 학기 먼저 학교로 돌아온 후배도 있었다. 요즘 군복무는 얼마나 되냐고 물었더니 만 2년이 채 안된단다. 입대까지만 해도 24개월을 꽉 채우던 복무기간은 최대 1년6개월까지 복무 기간을 단축시키겠다던 노무현 대통령의 발표가 있고 점차적으로 줄어서 지금은 22개월 정도라 한다. 예정보다 한 달 먼저 전역 하게 그 후배는 말년휴가까지 붙여 써서 아예 한 학기를 먼저 복학했다.


내가 미처 체감하지 못했던 노무현 시대에 있었던 일상속의 변화들이다. 그러나 참여정부 시절의 우리는 변한 게 없다고 분노했다.


KTX 여승무원 사태처럼 공기업부터 비정규직 비율을 늘리는 노동시장의 행태, 공무원 노조는 대통령이 직접 안 된다며 으름장을 놓았고 미군기지 이전을 두고선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위력진압이 펼쳐졌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서 우리는 노동운동을 지원하고 5공의 수뇌에게 돌진하던 인권변호사도 감투를 쓰고 나니 결국 똑같아지더라며 실망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그가 정치적 위기 상황마다 던져온 승부수들은 너무나 능란하여 그는 우리가 믿었던 보통사람들의 대통령이 아니라 그저 노회한 정치꾼이 아닐까 의심도했다. 탄핵정국 돌파와 대연정 떡밥으로 한나라당을 낚던 모습, 이명박이 당선되자 당선자에 대한 특검을 지시한 마지막 포석까지 대통령 노무현의 이미지는 끊임없이 중원에 돌을 놓고 싸움을 거는 승부사였다. 그러나 판이 끝나고 복기가 시작되면 거짓말같이 대국 중엔 보이지 않던 패착은 물론 의중을 알기 어려웠던 상대의 기보까지 눈에 들어오는 법이다.


2009년 5월 23일, 판은 끝났다. 우리의 기대를 감당하기에 5년이라는 시간은 너무 짧았고 그를 엉겁결에 권좌에 오른 무지렁이 취급했던 수구들의 따돌림은 상상이상으로 잔인했다. 우리가 꿈꿨던 이상은 지나치게 높았고 노무현이 싸워야 했던 현실은 치사하리만큼 저열했다. 그래도 노무현 시대의 변화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꾸준히 이루어져왔던 거다. 거대이론과는 별 상관없는 생활인들의 삶속에서 그들이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변화는 존재했다.


독도는 우리 땅이라며 시원하게 대국민 담화를 내던 대통령, 동북아의 균형자론 을 제시하던 사나이의 개갑빠, 그리고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라고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었던 사회적 분위기까지 노무현 시대의 변화 중에는 이런 무형의 자산들 또한 빼놓을 수 없을거다.


노무현은 5년이라는 시간을 정치적 이전투구로 허비한 승부사 기질만 다분한 정치꾼이 아니었다. 고담준론과 담론언설만을 좋아하는 거창한 이론가들에게 노무현은 좌회전 깜빡이를 넣고선 실컷 우회전만 한 거짓말쟁이처럼 보이겠지만 분유값을 걱정하던 새댁과 전역을 손꼽아 기다리던 말년 병장에겐 그래도 밉지 않은 대통령이었다.
 
그립습니다, 당신은 변혁의 대통령이셨고 당신의 정치적 후계자라는 수식어는 둘도 없는 칭찬이자 기대를 담은 헌사인 것입니다.





종부세 때문에 살기 어려워 이명박을 뽑았다던 사모님의 하소연에 일침을 놓은 것은 이불 집 할머니였다. 요즘엔 평균연령이 늘어나 60대도 장년이라며 우겨대지만 안 보이는 자리니 그냥 할머니라 부르자. 처자식에 친구며 부하까지 다 불러다 조져놓고선 괭이가 쥐 잡아 먹기 전에 툭툭 가지고 놀듯이 피를 말리는데 나 같아도 백번 죽었다, 이명박이 그놈이 악랄해 아주! 이렇게 사모님의 입을 콱 봉해버렸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영결식이 열리던 날, 그 양반이 하루 죙일 테레비 앞에서 눈물을 찍었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기분이 묘했다. 김대중이든 노무현이든 다 빨갱이 자식이라며 민자당 시절부터 김영삼-이회창-이회창에 표를 줬다는 사람이. 그러다 작년에 효도관광인지 동네 계모임인지 하여 봉하마을에 다녀온 뒤로 손도 잡아보고 얘기도 했는데 너무 좋다 며 오빠 싸인 받아온 소녀팬처럼 자랑을 했다. 그러다 검찰의 표적수사가 시작되자 에이 결국엔 뒤로는 다 받아 처먹어 놓고선 혼자 깨끗한 척 했다 며 최근까지는 실컷 노무현을 욕했던 이불집 양씨 할머니. 그랬던 그이가  노무현의 영전에는 눈물을, 이명박의 명전엔 독설을 퍼붓고 있다. 논리적 일관성도 유지하지 못하는 그저 뜨겁고 일시적인 감정으로 범벅된 노부의 일갈이 논리적이고 투철한 계급의식(!)으로 무장된 사모님을 몰아세운다.


그게 바로 한국 정치의 오늘이다.


유권자들의 절대 다수는 비논리적이고, 감정적인데다, 전통주의와 온정주의, 지역주의와 전근대성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현대적이면서도 동시에 세계적인 감각들로 뒤범벅된 다층적이고 비일관된 사유 속에 살고 있다. 차갑게 정리되고 질서정연하게 조직된 ‘진보의 세계’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저 보통사람들의 뜨거움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다. 그런 꿈을 꾸는 이들 가운데는 필시 범국민적 추모는 전염성 높은 뜨거운 정념이 일관성 없는 대중들의 감성을 자극해 만든 이상고온 현상이며 노무현에 대해서 아주 차갑게 식혀 평가하자면 좌회전 깜빡이를 넣고 우회전만하다가 일가의 뇌물 수수 혐의로 조사 받던 중 명예 자살을 선택한 정치인이라 말하고 싶은 사람들도 더러 있을 거다. 물론 주변의 눈치를 보느라 에둘러 말하거나 꾹 참고 있는 것이겠지만. 


하지만 그 뜨거움이 오히려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결국 표와 민심이란 이들 절대다수의 비논리적이고 감정적인 보통사람들에게서 나오는 것이고 이들을 뒤흔드는 감성 이라는 놈은 힘이 세다. 그것도 매우 세다. 온 국민이 유럽식 사민주의의 한계를 지적할 수 있고 친일파로부터 시작된 수구 세력에 대한 지각이 가능했다면 애초에 이명박의 당선이나 노무현의 죽음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종부세 내는 사모님의 지지를 받는 가카와 한나라당이 서민경제의 구원투수라는 낚시를 성공시키려면 논리적인 백 마디의 궤변보다 울컥하게 만드는 1분짜리 CF가 더 효과적인 법이다.  



http://www.tagstory.com/video/video_post.aspx?media_id=V000179044
참 설득력 없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더 무서운 것은 그걸 믿는 사람들이 많다는 겁니다.


결국 정치는 고등어 한 마리 같은 것이다. 구구절절 옳은 백 마디의 말에는 콧방귀도 뀌지 않던 이들이 노무현의 비극적인 죽음 앞에선 마음의 벽을 허물고 눈물 흘린다. 노무현의 죽음은 한나라당의 고등어 한 마리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뜨겁게 마음을 데워주는 코드다.


 


 

그래서 나는 이 뜨거운 코드에 차가운 메스를 들이대려는 태도에 반대한다.


그저 옳기 만한 분석과 비평으로는 아무것도 변화시킬 수 없다. 난 이 뜨거운 불씨를 될 수 있으면 오래오래, 앞으로 삼년은 물론이거니와 그보다 더 먼 미래까지 이어갈 생각이다. 잠시 불씨가 사그라들 수 는 있어도 그의 죽음은 재속에 묻어둔 붉은 숯처럼 결정적인 순간이면 언제든지 불씨를 당겨줄 폭발력을 그 안에 갈무리하고 있다.


그는 몇몇 이들이 재단한 것처럼 그렇게 정책적으로 실패한 정치인이 아니었으며 실제로 여러 가지 값진 성과를 이루어냈다. 그러다 고비마다 자본과 수구언론이 몸을 섞은 신성동맹 앞에서 마음껏 달리지 못하고 공회전한 슬픈 사람이었다. 사람들 역시 그것을 느끼고 울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다시 한 번 포스트 노무현에게 투표하는 것은 뻔한 리플레이 아니라 이루지 못한 과거의 소망을 재현시키는 것이다.


그저 구구절절 옳은 소리라는 것 외에는 아무런 힘도 내지 못하는 차가운 분석으로 우리를 식히려 들지 말아 줬으면 한다.


우리는 앞으로 더욱 뜨겁게 그의 죽음을 기억하고 그의 이름 아래 살아남은 이들에게 힘을 몰아줘야한다. 논리적 이성의 지지를 받는 차가운 감성, 때론 감성도 받아들이는 따뜻한 이성. 보통 사람들과의 소통과 공감은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져야한다. 그리고 노무현의 죽음을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가장 드라마틱한 코드다.


우리의 삼년상은 계속되어야한다. 주욱.


충용무쌍(dbscnddy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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