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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진보는 강하고 멋져야 한다


2009.6.15.월요일


미국 영화를 보다 보면, 꽤 자주 듣는 말이 있다.


Respect.


존중, 존경, 주의, 관계 등으로 번역될 이 단어가 내 호기심의 대상이 된 것은 미국의 교도소를 다룬 어느 다큐멘터리 시청 이후였다. 죄수들 간의 인종 다툼과 폭력을 다룬 그 다큐멘터리에서 인터뷰를 하는 제작자에게 죄수들이 털어 놓는 말 중에는, 저 respect라는 단어가 꽤 많이 섞여 있었다.


그들이 사용하는 respect의 의미는 우리말의 존중쯤 되겠다. 벤치프레스와 덤벨로 자신의 몸을 단련하고, 문신으로 얼룩덜룩 몸을 치장한다. 시비는 절대 피하지 말아야 하고, 자신이 속한 그룹의 결정에는 두말없이 따른다.

이 모든 것이 죄수들 사이에서 respect를 얻기 위함이다. 그것은 그들에게 생존을 위한 필수불가결의 덕목이었던 것이다. 상대의 존중을 획득하지 못하면, 언제든 칼을 맞아 죽거나 세력 간 다툼의 희생양이 되는 것이 그 세계이니.
살아남기 위해서는 세 보여야 할 것.

딱 이 느낌이랄까?



대한민국의 진보정당은 죽산 조봉암(1898 - 1959)의 진보당에서 출발해 4/19 이후 몇몇 혁신 정당이 반짝했다가 맥이 끊겼으나 1987년을 기점으로 다시 쟁점화되었다. 그리하여 1988년에 민중의 당이 창당되었다. 그러나 민중의 당은 원내 진입에 실패했고, 해산 이후 새로운 진보정당 창당을 모색하던 중, 통합파가 분리되어 이탈해 버렸다. 그래도 그들은 좌절하지 않고 1990년 민중당으로 몸을 세웠다.
그 후, 국민승리21을 거쳐 2004년 민주노동당으로 첫 원내 진출을 이루었으나, 2008년에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으로 분리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1987년 이후 새롭게 시작된 대한민국 진보정당 역사의 이면에는 이탈과 재회, 배신과 재결합 등의 화려한 드라마가 숨 쉬고 있다. 이는 진보정당의 시초라 할 수 있는 죽산 조봉암의 좌․우파를 넘나들었던 사상적 궤적을 떠올리게도 하는데, 기득권 세력에 비해 언제나 수적 열세에 처해 있던 이들에게는 숙명처럼 따르는 연대라는 화두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대를 통한 제휴에는 언제나 배신이라는 꼬리표가 뒤따랐으며, 이는 함께 싸웠던 이들에게 허탈감과 불신감을 안겨 주곤 했다. 때로는 맹렬한 적개심까지. 어제의 동지가 그때까지 보수 야당이라 불렀던 이들의 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며 무엇을 느꼈겠는가.


때문에, 한때 어깨를 걸고 함께 행진했던 과거를 공유하면서도 비판적 지지라는 말에는 절레절레 고개를 흔드는 이들이 생겨났다. 게다가 그 비판적 지지자들 중 일부는 보수 야당을 거쳐 반민주 세력의 표상이었던 집권 여당의 후신에까지 진출했고, 자리를 옮기자 옛 둥지였던 보수 야당을 향해 총을 쏘는 추태까지 연출했다.

한때의 동지였던 이들이 저격수가 되어 자신의 심장에 총알을 박았던 것을 잊을 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그들 중 일부가 아직도 저 한나라당에 있음에야.
한나라당에서 열린우리당으로 돌아와 과거를 모두 씻은 자처럼 당당히 고개를 들고 다니는 것을 뻔히 본 데에야.


그래서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들 중 일부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조문에 인색한 것을 나는 이해한다. 그 시절을 겪지 않았더라도 비판적 지지에 뒤이은 배신은 이후에도 똑같이 되풀이되었으니까. 그들은 노무현 정부에게 너무 많은 기대와 그에 못지않은 실망을 경험했다. 더구나 그 시절을 겪었던 이들은 함께 깃발 들었던 동지들이 민주당과 한나라당으로 배를 갈아타는 것을 보며 이 갈고 버텨 온 사람들이다. 그들의 가슴이 메말라 버렸다고 어찌 그들만을 탓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나는 또 기억한다. 비판적 지지론이 위세를 떨치고 이부영의 이탈로 휘청대면서도 민중당 창당을 위해 온몸으로 뛰었던 1990년의 그들을. 그들은 그때 진정 외로웠다. 대국민선전이 목적이 아니라 수권정당이 당의 목표라 했을 때, 혁명의 배신자라 비판하며 광고지마저 돌려주기를 거부했던 학생들을 뒤로 하고 그들은 쓸쓸히 교문을 나서야 했다. 그렇게 세운 민중당이 씨앗이 되어 이제 민노당 5석, 진보신당 1석의 원내 진출을 이룬 것을 생각하면 그들은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다.


나는 그들이 수권정당을 목표로 외로운 싸움을 시작했던 그 시절을 돌이켜보면 좋겠다. 그때의 그들은 되풀이되는 좌절에도 굴하지 않고, 눈을 반짝이며 미래를 설계하고자 했다. 선언적인 비판에 직면하고도 운동권이 아니라 의회에 진출하여 국민의 지지를 획득하는 정당을 만들고자 했다. 수권이란, 선거를 통해 정권을 획득하는 행위 아니던가. 그렇다면 그대들의 눈은 배신자를 향하지 않고, 국민을 향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수권정당을 지향한다면, 비판적 지지를 했던 배신자의 치부를 비판하기에 앞서 국민의 정서와 감정을 읽어 그들을 대변해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니, <노빠>라는 경멸적 어휘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통해하는 대다수 보통 사람의 가슴을 더는 헤집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대들이 비판하는 이들은 <노빠>일 뿐, 노무현의 죽음을 통해 각성된 국민 의식을 모욕함이 아니라고 비판적 미사여구로 치장하지도 말았으면 좋겠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슬퍼하는 이들 중에는 그대들의 이성적 비판을 비판으로 듣지 않을 사람들도 분명히 있다. 그대들의 비판에 귀 기울일 냉철한 이성을 가진 노무현 정권의 비판자들보다는, 망자에 대한 예의를 지키지 않는 이명박 정권과 함께 최소한의 예의도 모르는 자들이라 그대들에게 혀를 찰 이들이 더 많을 수도 있다.


그대들이 지지하는 진보정당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진심으로 애도한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국민의 슬픔에 동참해 함께 슬퍼하고 국민대회에 참가해 그 비통함을 온몸으로 공감하겠다 말하고 있다. 그러나 뒤편에서는 계속, 때 이른 노무현 정권 평가와 함께 때 이른 노무현 전 대통령 비판이 속출하고 있다. 수권정당이 목표라면 그 비판이 대다수 국민의 정서와 함께 가고 있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말아야 옳지 않을까? 냉철한 비판이 애도의 촛불에 재를 뿌리는 행위가 될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혹여 네거티브 전략에 따른 노무현 정권 비판으로 대한민국의 국민을 계도하려 한다면, 그것은 오만이라 불러야 한다. 대한민국의 국민은 지난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 정권의 실정을 뼈아프게 비판한 바 있다. 노무현 정권이 얼마나 잘못했는지 몰라서 슬퍼하는 것이 아니다. 알면서도 슬퍼하는 것이다.


그대들이 수권정당을 목표로 하는 정당의 지지자들이며 당원들이라는 것을 한시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대들이 <노빠>를 비판할 때, <노빠>가 아니면서도 모욕감을 느낄 국민이 더 많을 수도 있음을 떠올렸으면 좋겠다.


respect를 얻기 위해, 단단히 무장하고 억세게 단련하는 자는 사실은 아직 약한 자이다. 생존의 단계를 뛰어넘어 강자를 꿈꾸는 자들은 섣불리 칼을 들이대거나 이를 드러내 위협하지 않는다. 존중을 얻기 위해 존중함이야말로 강자를 꿈꾸는 자가 가져야 할 미덕이 아닐까? 국민에게 강자로 인식되어 진정한 수권정당이 되기 위해서라도 지금은 존중의 미덕을 발휘해 주었으면 한다. 그것이 강자가 갖추어야 할 품격과 멋 아닐까? 비판의 칼이 향할 곳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정이 아니라 현 정권이다.


나는 진정으로, 진보정당이 수권의 강자로 서는 것을 보고 싶다.


신독(kangbika@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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