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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픽션] 가출소녀들과의 동거 2화



2009.7.20.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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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독투] 가출소녀 기사에 대한 여성독자의 입장 보러가기



단지 사흘만 있겠다고 했고, 일요일이 되면 그 나흘째가 되니까 하루만 더 참자고 생각은 했다. 하지만 그날 순순히 나갈 것인지는 미심쩍었다.


원조교제 짓은 논외로 쳐두자. 만약 잠시 도움을 바란 거라면, 아이들은 이 집에 있는 동안 새 보금자리와 알바를 구하기 위해 이리저리 연락을 돌렸어야 한다. 이 동네에도 고시원과 패스트푸드점이 있다. 여기는 얼마인지 저기는 얼마 준다든지 돌아다녀도 보고, 하다못해 길거리 벼룩시장 전단지라도 가져와 찾아봐야 했다.


그러나 그런 모습은 전혀 본 적이 없다. 아이들은 그저 싸이와 네이트온을 했다. 그리고 유심히 컴퓨터에 새로 깔린 프로그램을 뒤져보니 버디버디가 있었다. 구직 사이트 따위는 들어가 본 흔적이 없었다. 과연 아는 오빠가 어떤 사람이길래 그런 수고를 해준단 말인가. 설사 그렇다고 해도, 내 눈에 아이들의 무신경함이 기분 좋을 리 없었다.


그렇게 생각이 들었다. 큰 돈을 벌 수 있는 상황이 가능하다면, 지금의 고통은 비현실이 된다. 옛일이 생각났다. 나도 월급 들어오는 날 생각하면서 함부로 돈을 쓰고 카드를 긋지 않았던가. 다음날이면 턱없이 돈을 뿌린 전날밤의 무모함이 후회됐고, 한달 동안 최고급으로 먹어대도 술값에는 비교가 안된다는 계산도 했지만, 곧 입금될 돈을 기다리며 다시 흥청망청 쓸 일에 골몰하지 않았나.


아이들도 다르지 않다. 언제든 원조교제 따위로 몇십만 원을 벌 수 있다면, 시급 몇천 원을 갖고 고민하는 게 웃기는 짓이 된다. 지금의 고통은 언제든지 만회할 수 있다 – 그 생각이 자신을 얼마나 좀먹고 파괴하는지 깨닫는데엔 오랜 시간이 필요할지 모른다. 나처럼.


떠도는 생활로부터 진정 탈출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삶을 어떻게 꾸릴 것이라는 계획과 동기부여가 있어야 한다. 밖에서 아무리 소리를 질러봤자 듣지 못한다. 내가 알기론, 그러기 위해선 두 가지 중 하나는 필요하다.


하나는 지식.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깨달으려면 최소한의 배움이 있어야 한다. 불행히도 아이들은 배우지 못했다.


"나중에 뭘 하고 살 생각이냐? 계속 이렇게 살 순 없잖아?"


아주 꼰대 같은 소리를 나도 아이들에게 했었다. 유미는 그때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요, 검정고시 볼 거구요. 미용기술 배울 거에요. 아는 언니가 가게 넣어준다고 했어요."


또 아는 누군가. 내 경험으론, 아는 누군가가 해준 일은 그만큼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뭐 운이 좋을 수 있다고 치자. 고교 검정고시는 장난인줄 아나. 검정고시가 이렇게 손놓고 있다가 후다닥 치를 수 있는 시험인가. 미용기술은 또 어떤가. 대학 포기한 여자애들 대부분이 장래 희망에 미용사랑 현모양처 써놓는 건 모르겠지. 대학 나온 미용사도 부지기수인데.


"아니에요, 저 손기술 좋대요. 얘들 머리도 제가 잘라줬어요. 이쁘죠? 그쵸?"


유미만 그러는 게 아니다. 은비는 네일아트를 하고 싶다고 했다. 네일아트... 미용실과 네일아트, 레드오션 중의 레드오션들. 강남 가면 물론 좋은 가게도 있고 잘 버는 언니들도 있겠지. 하지만 그거랑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라고 하는 녀석하고 다를 게 뭐냐.


"저는요, 개그맨이 될 거에요. 남들이 그러는데, 저 웃기대요."


이건 나영이의 말이었다. 개그맨 되는 길이 어떤 게 있는지 꼬치꼬치 설명해줬지만, 결론은 같다. 아이들은 내가 왜 그런 말들을 하는지, 그게 정말이어서 좀더 고민을 해야 하는지 아무 생각이 없었다. 본질적으로 난 커서 대통령이 될 거에요란 아이의 마음과 똑같다. 천진난만하고 무식하다.


동기부여를 위한 또 하나의 방법은 고통이다. 막다른 길에 몰리고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죽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할 때가 삶의 시작이다. 거기까지 자신을 몰고 간 원인은 중요치 않다. 돈, 사람, 명예, 도덕 무엇이든 그럴 수 있다.


아이들은 아직 충분한 고통을 겪지 못했다. 그러라고 떼밀 수도 없다. 그런 고통을 견뎌내기 힘드니까 미성년자라고 하는 건데. 하지만 원조교제와 조건만남에 돈을 써주는 사람들이 있는 한, 아이들은 결코 막다른 길에 몰리지 않는다. 아니면 술집 아가씨라도 하면 된다. 유미는 이미 도우미 경험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금방 때려치웠단다.


"술 먹기도 싫구요, 아저씨들이 몸 더듬는 것도 싫어서요."


그 소위 고소득 직종도, 아이들에게는 일종의 고통이었다. 다른 돈벌이가 가능하다면, 술집이든 패스트푸드점이든 그만두긴 어렵지 않다. 이런 상태에서, 아이들이 고통을 겪으며 뭔갈 배워나가기를 기대하긴 힘들다.


길이 없다.
그래도 아이들이 잘되기를 바란다면, 대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아이들은 쫓아내면 된다. 그럼 나는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이 질문의 답은 찾아야만 했다. 오기 같은 것도 있었다. 만약 이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다면, 요 사흘 동안 나는 완전 바보짓을 한 셈이다. 똥을 집안에 들였다면, 답은 치우는 것뿐이겠지. 하지만 나는 아이들을 똥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죄는 미워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더니, 난 그 말을 실제로 체험할 줄 몰랐다.


사실 난 아이들이 저지른 꼬락서니들이 너무 미웠다. 들어온 둘째날, 유미와 나영이는 배가 고프다며 라면을 사러 밖에 나갔다. 난 어설프게 잠이 들어 있다가, 냄비 타는 냄새에 벌떡 일어났다. 두 녀석이 냄비를 가스불에 올려놓고 나갔던 것이다. 물은 부글부글 끓다가 졸기 시작했고 냄비에선 쇠 타는 냄새가 나고 있었다. 황급히 가스불을 끄는데 아이들이 들어왔다. 냅다 소리를 질렀다.



"야, 냄비를 불에 올려놓고 나가면 어떡해? 물 끓는 시간도 못 기다려?"
"아뇨, 저기, 편의점에 갔는데 라면이 없는 거에요... 딴 편의점 찾다가 오래 걸려서 그래요."


유미가 변명했다. 편의점에 라면이 없다고? 네가 찾는 라면이 없었겠지. 하지만 그보다 기막힌 건 이 사고의 원인을 편의점에 돌리는, 어이없는 무책임함이었다. 온갖 변명을 대며 자기는 죄가 없다고 발뺌하고, 단 한마디의 죄송합니다보다는 핑계가 앞서는 무책임함.


다음날에는 스스로 밥을 하겠다고 나섰는데, 내가 밥솥에 새겨진 눈금과 쌀의 양을 가르쳐줄 때엔 자길 바보로 아느냐며 핀잔주고선, 끝내 설은 밥을 짓고 말았다. 그리곤 다시 저녁에 라면을 찾았다. 설은 밥을 먹으면 소화가 안된다고.


야, 그럼 그 밥은 누가 먹는데? 니가 그 쌀 사왔냐?


욕지거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온 걸 참았다. 결국 내가 두 끼에 걸쳐 다 먹었다.


가장 내가 싫어했고 끝까지 고치지 않았던 일은 침뱉기였다. 특히 유미는, 담배를 필 때면 가래를 뱃속 깊은 곳부터 끌어올려 캬아아아~악 퉷 소리를 내야만 직성이 풀리는 아이였다. 도저히 듣기가 싫어서, 화장실에 들어가든지 소리를 안내든지 하라고 언성을 높이고야 말았다. 그래도 유미는 내가 보이지 않을 때면, 사실 바로 옆 방에 있었지만, 여전히 캬아아아~악 퉷 소리를 울려댔다.


피자랑 치킨은 또 어땠나. 돈이 좀 입금되고 나선, 애들은 역시 밥보다도 피자며 치킨 좋아하겠다는 생각에 피자 두 판을 사왔다. 그때도 유미는 피자 끝부분 빵을 안먹는다며 떼어놓았다. 나중에 치킨 사왔을 때 나영이는 후라이드는 먹지 않는다고 했고, 가슴살은 또 퍽퍽해서 안먹는다고 버렸다.


카레를 했을 땐 당근을 남겼다. 바디클렌저 두 통을 1주일만에 비워버렸다. 수건 여덟 장이 방바닥에 흩어져 있다. 귀파고 난 면봉 몇 개도 거기에 있었다. 변기 뚜껑은 나사가 빠졌다. 재떨이에는 침이 흥건하고 주위 바닥엔 담뱃재가 검게 날린다. 아웃사이더 외톨이는 백 번 넘게 들었다.


정말 싫었다. 뭘 발견할 때마다 난 빗자루와 걸레를 들고 치웠다. 평소라면 1주일 동안 가만히 있어도 상관없었을 집이었다.


하지만 내가 정말 뼈저리게 느낀 건 아이들의 철없음보다는, 내가 지독하게 속좁은 인간이란 사실이었다. 어지럽혀진 수건, 방, 화장실... 감정이 너무 급작스럽게 치솟곤 했다. 그럴 때 종종 나는, 가만히 앉아서 30분 동안 마음을 가라앉히곤 했다. 나는 왜 화가 나는가? 이 감정을 없애고 나면 무엇이 남는가?


그 끝에는 늘, 이 조그만 집을 온통 나 자신으로 채우고 있다는 사실이 있었다. 홀로 있은지 10년도 훨씬 넘었다. 남이 내 공간을 어지럽힌 적이 없다. 남이 내 생각과 다른 일을 벌인 적도 없다. 거기에서 온 안락감이 방해받았을 때, 나 또한 그 이유를 밖에서 찾았고 그래서 화가 났던 것이다. 난 피해자고, 아이들은 가해자란 생각.


하지만 이 집에 아이들을 들인 건 나다. 아이들은 이러이러할 거라고 내 관점을 애들에게 덮어 씌웠던 거다. 이렇게 하면 아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 자체가 나의 관점이다. 이렇게 하면 아이들이 좋아할 거라는 생각도 나의 망상이다. 그렇게 이미 선입견이 있는 상태에서, 일이 맘대로 안 되니까 화가 났던 것이다. 아이들이 엉엉 울면서 이제 집으로 돌아갈게요라 말하길 바랬나. 앞으로 성실하게 살겠다고 다짐이라도 하길 바랬나. 그래, 그렇기도 했구나.


아이들은 죄가 없다. 내가 거기에 끼겠다고 한 게 잘못일 뿐. 화가 난 건 전부 내 탓이다.


아이들이 이 집에서 하는 짓은 참아낼 수 있다. 하지만 밖에서 그렇게 돈을 받아온다면, 그건 범죄행위며 무엇보다 나 자신이 용납할 수 없다. 그러면 청소년 센터에라도 연락해서 맡기는 수밖에. 그런데 이게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일까.


일단 더 이상 원조교제를 할만한 환경을 만들어놓을 순 없었다. 나는 방안 컴퓨터 옆에 아예 이부자리를 폈다. 그리고 컴퓨터를 켜지 말라고 했다. 혼숙? 이 상황을 속속들이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내가 거실에서 잔다고 해도 어차피 믿지 않겠지. 새벽에 컴퓨터를 못 쓰게 하면 될뿐이다. 당장엔 이게 최선이다.







토요일 아침, 나는 밥을 먹은 후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너희가 어제 치킨 시켜먹은 돈은 어디서 난 거지?"


조용한 가운데 유미가 말을 꺼냈다.


"친구한테 빌렸어요."
"친구? 무슨 친구가 얼마나 빌려줬길래?"
"여기 근처 친구가 있다고 했잖아요. 걔한테 5만원 빌렸어요."
"... 빌렸다고 치자. 뭐하겠다고 하면서 빌린 거야? 내 생각으론, 그걸로 치킨 사먹는 게 아무래도 이해가 안가. 빌린 돈이라면 그걸 아끼는 게 맞지 않니? 고시원을 잡겠다고 하면, 방값은 어떻게 할 건데."
"우리 친구들끼리는 그래요. 서로 돈 빌려준다고요. 우리도 돈 빌려준 적 있구요. 그냥 주는 거에요. 고시원 쪽도 그 오빠가 알아봐주겠다고 했어요. 진짜 믿을 만한 오빠에요. 진짜루."


그러다 잠시 뜸을 들이더니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요, 그 오빠가 내일까진 좀 어렵다고 하거든요, 한 일주일만 더 있으면 안될까요?"
"뭐?"
"제발 부탁할게요. 저희한테 잘해줘서 너무 고마운데요, 솔직히 저희, 딴데서 이렇게 먹고 잘 수가 없어요. 처음 왔을 때 봤잖아요, 진짜 편하게 잤거든요. 그치 얘들아? (끄덕끄덕) 진짜로, 아무데서도 이렇게 못 자요. 컴퓨터도 안 쓰고 테레비도 끄라면 끄구 청소도 바로바로 할게요. 네? 제발 좀 봐주세요 네?"
"솔직히..."


말이 안 나왔다. 대놓고 할 수가 없었다.


"... 난 너네가 원조교제를 한다고 강하게 의심하고 있어."
"네? 뭐를요?"
"원조교제 말야. 알잖아."
"아..."


유미가 힐끗힐끗 애들 얼굴을 봤다. 은비는 시선을 피하고 있었고, 나영이는 멀뚱멀뚱한 얼굴이었다.


"아네요. 저희 그런 거 안해요. 그치?"
"예 저희 그런 거 안해요."


나영이가 거들었다. 유미가 계속 말을 이어갔다.


"저희 돈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시는 건 알겠는데요, 진짜루, 저희 그런 거 안해요. 정말 친구한테 빌린 거에요."
"예 진짜에요."
"그런데 자꾸 그렇게 말씀하시면, 너희 나가라, 그럴려고 말하시는 거 같아요."
"아니야. 너희 빨리 내쫓고 싶어서 이러는 게 아니야."


사실은 사실이다. 내쫓고 싶어서 일부러 그런 말을 한 건 아니다.


"처음에 너네 만났을 때, 먹지도 못하고 잘데 없다 그래서 그냥 도와줬었어. 그런데 지금까지 보면 알겠지. 자꾸 내가 화를 내게 돼. 너네가 잘못한 거도 있고, 내가 속좁아서 그런 것도 있어. 난 내가 이러는 게 싫어. 그리고 결정적으로 돈이 별로 없어. 밥해 먹이는 것도 장난 아니야. 하지만 내가 돈이 많아서 좋은 거 먹이고 하면 그게 도와주는 걸까? 내가 조금씩 익숙해져서 화가 안나면 되는 걸까? 유미 니가 그랬지, 도와달라고. 한번 말해봐. 내가 어떻게 하는 게 너희를 도와주는 거니? 너희가 정말 바라는 게 뭐니? 어떻게 하면 진짜 도와줄 수 있는 거니?"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답을 조금은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땐 참 막막했다.


"진짜 도와주는 게 뭐냐구요?"
"그래."
"그럼 저희 며칠 더 있게 해주세요. 그게 도와주시는 거에요."


유미가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다른 애들은 웃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그랬다. 만 19세, 최소한 성년이 되면 알바든 뭐든 할 수 있다고. 지금으로선 어떤 일을 하든 고시원 방값도 벌기 힘들고, 그것도 돈을 제대로 받았을 때의 이야기라고. 더군다나 조금만 힘들어도 그냥 뛰쳐나가버리는 아이들의 성격을 감안하면, 솔직히 오래 일할 것 같지도 않다. 아이들 얘기로도 이미 주유소며 식당 서빙 같은 일을 해보았지만, 일주일을 넘기지 못했다고 했다.


"...그럼 그때까지 어디서든 견뎌야 돼. 집에서든, 쉼터 같은 데서든 남은 2년을 버텨야 된다고. 그렇지 않으면 돈도 못 벌고, 니네들이 안했다고 그러는 그 원조교제 하든지, 아니면 술집 들어가는 게 뻔하단 말이야. 너네도 그러기 싫잖아? 정말 필요한 거라면 너네 도와줄 데는 있어. 내가 어른으로서 말하는데, 정말 도움이 필요할 땐 도움 받을 데가 있다고."
"쉼터는 가봤어요."


가만히 있던 은비가 입을 열었다.


"갔었다고?"
"네. 얘들 다 가봤어요."
"그런데 왜 나왔어?"
"물들까봐요."
"물들다니?"
"쉼터에 원래 있는 애들 있어요. 우리보다 더해요. 술집 다니고 조건 하러 다니던 애들이 있거든요. 우리 가면 맨날 꼬셔요. 그게 싫은데요, 있다 보면 자꾸 물이 들어요. 걔네들 돈 막 쓰거든요. 옷도 사고. 그리고 어차피 오래 못 있어요. 한 일주일 있으면 나가야 돼요. 들어올라고 하는 애들 줄서 있거든요. 그래서 인젠 안 가요."



진짜인지 아닌지 모른다. 너무 고민이 돼서 나중에 상담을 받아본 적도 있었는데, 그때도 아이들이 거짓말하는 거일 수 있다고 했다. 쉼터가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개인적으로 난 이번 일을 통해서, 청소년보호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정말 존경스러워졌다.


하지만 난 그때 은비 말을 믿었다. 일단 그럴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좀 잔인하게 얘기하자면, 이런 걸 상상해서 거짓말할 정도로 아이들은 똑똑하지 않다. 그렇지만 내가 그 말을 믿어준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검증할 순 없는 노릇이나, 은비의 말이 진짜 경험에서 나왔다는 느낌 때문이다. 그 상황이 아니라면 결코 알 수 없겠지만, 그 상황에 자리했다면 100% 확신할 수 있는 그런 말.


이때쯤부터 나는 아이들이 아니라, 유미 은비 나영이의 개별적 성향을 파악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유미는 나서서 먼저 말을 하고, 거짓말을 서슴지 않았다. 다른 사람과 통화하는 걸 듣게 되노라면 그 능수능란한 거짓말 솜씨가 감탄스러울 정도였다. 내가 가장 많이 충돌하고 잔소리를 한 아이도 유미였다. 유미의 자의식이 가장 강했기 때문이다. 뒤집어 얘기하면, 유미가 이 셋 중 제일 머리가 빨리 돌아간단 얘기도 된다.


이에 비해 은비는 먼저 말을 잘 하지 않았다. 은비도 거짓말을 했지만, 항상 유미의 거짓말이 나온 후 그걸 거드는 식이었다. 있던 동안 내내 나랑 부딪칠 일을 은비는 거의 만들지 않았고, 그런 일이 있을 때면 먼저 사과를 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들을 제일 많이 들었다. 알아들었는지는 모르겠다.


나영이는 지나칠 만큼 자신의 의견을 유미에게 의존했다. 무얼 물어보아도 가만히 있고, 유미가 나서서 대신 얘기해주는 경우가 많았다. 문자를 보낼 때도, 싸이에 댓글을 달 때도 나영이는 번번이 친구들에게 물어보았다. 나영이는 셋 중에서 가장 말주변이 없었고, 자신도 그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는 은비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고, 어떻게 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아이들에겐 돌아갈 집이 없다.
아이들은 청소년 쉼터로 가려 하지 않는다. 보낸다 해도, 자의든 타의든 결국 나온다.


"교회나 절에도 그런 데가 있어."


결국 생각해낸 게 이꼴이었다.


"그래도 싫은데. 여기가 좋아요."
"절에 가면 머리 깎는 거지?"
"어 정말?"
"아니야. 근데 산은 싫어."


금세 난장판이 되었다. 책을 가까이 하지 않는 아이들의 집중력 부족 현상. 여기선 글로 정리하니까 그렇지, 실제 상황에서는 지금까지 얘기하는 동안 3분도 집중하지 못했다.


"... 알았어. 좋아. 며칠 더 있게 해주지."
"정말요?"
"대신 조건이 있어. 반드시 지켜야 돼."
"뭔데요? 뭐든지 할게요"”
"일단, 난 컴퓨터를 원래 내가 쓰던 상태로 돌려놓을 거야. 네이트온은 지우지 않겠어. 하지만 딴 건 깔아선 안돼. 예를 들면 버디 같은 거."


유미의 얼굴이 좀 굳어졌다.


"수건을 하나씩 나눠줄 테니, 자기 수건을 써. 컴퓨터는 내가 쓰라고 할 때만 써. 내가 안 쓴다고 막 쓰지 마. 밥은 제시간에 먹어. 남들 먹을 때 자다가 나중에 맘대로 요리해먹지 말라고. 저녁거리를 그렇게 먹어버리면 내가 마트를 또 가야 돼. 그리고 면봉 썼으면 제발 쓰레기통에 넣으라고! 누가 맨날 면봉을 방바닥에 버리는 거야?"
"쟤요."


은비가 유미를 가리켰다. 유미가 배시시 웃었다.


"... 난 너네를 믿고 싶어. 나쁜 짓 하기 싫다는 얘기, 믿어줄게. 그러니까 그렇게 해줘. 아는 오빠가 일주일 후면 도와준다고? 그렇지 않을 거라고 난 생각해. 또 그때 가서 며칠만 더 있겠다고 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아니에요! 절대로! 반드시! 진짜 딱 그때까지요!"


유미가 끼어들었다. 나는 말을 계속했다.


"어쨌든 믿어줄게. 그게 내가 어른으로서 해줄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 난 너네가 여기서 편히 쉬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나도 남자니까, 맘속에 나쁜 생각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일 거야. 하지만 난 그렇게 안했어. 너네가 잘 알잖아. 나도 존나 무서워. 주위 사람들이 혹시 뭐라고 할까, 아랫집 사람이 올라오지 않을까. 아무도 내가 나쁜 짓 안했다는 걸 믿어주지 않을 거야. 너희도 안 믿을 걸. 너희 친구들한테 얘기하면 믿겠어?"
"안 믿죠."


은비의 말이었다.


"이 오빠 욕 썼다. 나 첨 봤어."


나영이의 말이었다.


"... 그래도 도와주겠다고 하는 건, 너네한테 이런 일도 있다는 걸 믿게 하고 싶어서야. 세상에 나쁜 사람만 있진 않아. 난 그런 역할을 하고 싶어. 요새 나한테 그런 일들이 생기기도 했고. 이러는 게 너희에겐 도움이 될 거라고 믿어. 너네 미성년자니까, 일단은 어른 말을 들어야 되잖아? 그리고 내가 나쁜 놈이라고 생각하진 않잖아?"


끄덕끄덕.


"난 너네가 잘됐으면 좋겠어.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너무 고민돼. 그러니까, 제발 협조 좀 해줘. 응?"
"고민하지 마세요. 아무리 머리 써봤자 머리만 존나 아파요. 저는 그냥! 하는대로 하는 게 정답."


유미가 덧붙였다.


말하면서 좀 정리가 되었다. 이후에도 숱한 일들이 있었지만, 이때 했던 말들은 나 스스로를 구속하기도 했고, 그래야만 하는 이유도 제공해주었다.


난 아이들이 잘되길 바랬다. 이 마음에 한올의 터럭도 없었다고 맹세한다. 지금 이 아이들에게 필요하고 내가 줄 수 있는 건, 그저 평온함뿐이다. 조미료 없는 가정식과 시끄럽지 않은 잠자리가 내가 줄 수 있는 평온함의 전부며 최선이다.


평온함을 맛본 사람은, 평온하지 않은 상태가 불편하게 된다. 아이들이 이후에라도 이곳을 떠올리게 되는 게 그런 이유였으면 싶었다. 그런 곳을 갖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가, 소위 장기적 계획에 대해 나도 말을 했었지만, 아마도 아이들은 더 고통을 겪으며 배워나갈 거다.


그 고통의 원인에는 물론 사회가 있다. 청소년 쉼터 같은 건 미봉책에 불과하다. 학벌과 증명서를 요구하는 사회에서 가출청소년들은, 가출의 이유에 수긍하든 못하든, 갈 곳이 없긴 마찬가지다. 아이들이 전화하던 남자친구들은 다들 배달, 주유소, 공사판 일을 하고 있었다. 그나마 남자들은 다행이다. 가출소녀들이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한 사회 안전망은 솔직히 없다.


하지만 사회 탓만 하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원조교제에 있어 소녀들이 사회적 피해자라고 말하긴 쉽다. 그 아저씨들을 감방에 넣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그것들이, 내가 직접 맞닥뜨린 이 아이들의 원조교제를 막지는 못한다. 쉼터에 넣든 집으로 돌려보내든, 내가 컴퓨터를 원천봉쇄하든, 아이들이 그러려고만 한다면 얼마든지 수단이 있다. 자신들이 겪는 고통의 원인을 사회에만 돌려버리면, 당연히 그것을 없애는 방법도 사회에만 있을 것이며, 아이들의 입장에서 그 방법은 돈 밖엔 없다. 아이들이 아니더라도 답은 같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큰 돈을 벌 수 있는 원조교제와 룸싸롱 아가씨 신세를 마다하기가 쉬울까.


평온함은 돈으로 살 수 없다, 그게 내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의 도움이었다. 평온함을 얻기 위해선 자신이 달라져야 한다. 원조교제 했지 않냐고 욕하는 대신 아이들에게 기회를 주고 조금 더 머물게 한 이유도 그래서였다. 문제는 오직 나였다. 내가 감히 그런 모범을 보여줄 수 있을까? 별것 아닌 행동에도 자꾸 화가 나는 이 속좁은 내가 그런 평온함을 줄 수 있을까? 다시 돌이켜보자. 선의의 행동이 늘 선의의 보답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잘 알지 않는가?


모른다. 그저 할 수밖에. 무모하다면 무모하고, 도전이라면 도전이고, 자뻑이라면 자뻑이다.


하나는 확실하다. 사람 사이엔 마음이 통한다. 이미 경험한 바다. 내가 아이들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진짜라면, 설사 이 결과가 제대로 매듭지어지지 않더라도, 마음은 전달될 것이다. 그거면 된다. 세상에 인연 하나 없이도 잘되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다는 거, 이제 이 나이 먹어 알게 된 거지만, 아무것도 아닌 동시에 축복이다. 감히 축복해주자.


"말씀 다 끝나신 거죠? 그럼 싸이 할 건데 인제 컴퓨터 해도 돼요?"


나영이가 엉덩이를 들며 말했다. 그래, 써라.


(다음에 계속)







댓글을 보고 약간 덧붙입니다.


딴지 운영진에 제가 이런 내용을 쓰겠다고 말씀을 드렸고, 첫번째 글을 보신 후에 게재를 결정했습니다. 그러니까 딴지 쪽에선 이미 결론을 들었습니다. 다만 글 전체는 보지 못했죠. 저한테 돌 날라오는 건 예상하고 있던 건데, 의도적으로 딴지에서 글 잘라 연재한다는 얘기는 사실무근이니 오해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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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은 척 매뉴얼] 걸리버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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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맞서야 할 것은 미디어법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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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토의 新 기타스토리] 다시, 리듬에 대하여
- 달 착륙 미스터리의 모든 것
- [국제] 우루무치 사태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
- 대한민국 종합격투기에 필요한 건 바로 이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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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수 틈새논평

-이명박이 당했다
-송지헌의 커밍아웃
-오바마 시국선언 사건
-거짓말은 청와대가 했다
-사과 따위 필요 없다

노무현 추모기사

-그래, 난 삼년상 치를 거다. 이 씹새끼들아!
-나는 한나라당 부대변인이었다
-[명문감상]천국서 보내는 두 번째 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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