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산하 추천0 비추천0

 

 

 

 

[미디어법] 어떤 독립군들의 넋두리

 

2009.7.20.월요일

 

독립군은 이른바 독립 PD들을 일컫는 별칭입니다. 미디어법 얘기를 두고 몇 명과 얘기를 나눠 본 것을  한 사람의 화자로 모아 봤습니다. 미디어법에 대한 찬반은 지겨울만큼 많이 운위되었고, 단호히 반대편에 서 있는 저도 굳이 반대 의사와 이유를 늘어놓을 필요를 느끼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독립군들 몇몇과 대화하다 보니 이런 시각도 있구나, 이런 사람들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정리해 본 것입니다. 미디어법은 막아야 할 법이지만 막아야 할 것이, 지양해야 할 것이, 맞서야 할 것이 미디어법 뿐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서 선배라 불리는 것은 저이고, 얘기하고 있는 것은 불특정소수의 독립군입니다.

 

 


 

 

 

 

 

미디어법 때문에 세상이 시끄럽습니다. 직권상정이니 뭐니 갈데까지 간 언어들이 난무하는 걸로 봐서 조만간 어떻게든 결판이 나겠지요. 선배...... 난 말입니다. 미친 생각 같지만 에라 띠바 차라리 미디어법이 통과되어 버려라 하고 자포자기할 때가 있어요. 허이구 눈꼬리 치켜뜨지 말고 제 말 먼저 들어 봐요. 하여간 성미 급한 건 장비라니까. 정작  장비같이 나서서 장팔사모 휘두르라면 쪼다 유비처럼 실실 빠지는 주제에. 하여간 왜 그러느냐구요?  더럽고 치사해서 그럽니다. 

 

MBC고 KBS고간에 저는 공영방송 노동자들이 미디어법에 반대하는 게 언론의 자유와 대기업과 조중동의 언론 장악을 막기 위해서라는 생각은 그닥 들지 않습니다. 특히 MBC야 더하지. 벌써 한나라당 사람들이 "방송공사법"을 제정한다 어쩐다 하면서 KBS는 따로 대우하겠다고 나서고 있는 거 보면 아시겠지만 타겟은 결국 MBC 아니겠어요. 그러니 발등이 아니라 정수리에 불 떨어진 셈이지. 수십 년 동안 아늑하게 확보되어 왔고, 앞으로도 별탈 없으리라 믿어 의심지 않던 황금 밥그릇에 별안간 누가 양잿물을 뿌리려 든다면 나라도 뻘건 띠 매고 나설 겁니다. 숭고한 싸움이지. 암 그렇고 말고.

 

아아...... 무슨 얘기하려는지 알아요. 밥그릇 지키려는 게 뭐가 나쁘냐고. 그거 노동자의 권리 아니냐고. 허지만 어쩝니까. 방송3사 정규직 노동자께서 내 면전에서 그 권리를 설파하신다면 가카께서 도덕성 얘기할때만큼이나 망연해질 따름인 것을요. 선배도 알다시피 그 밥그릇이 어디 지들만의 노력으로 키워 놓은 밥그릇이오?  외주제작사 피 빨아먹는 빨대 노릇하면서, 작가들 등치는 채찍 노릇하면서, 나같은 독립 PD들 등골 빼는 꼬챙이 노릇하면서, 피도 눈물도 없는 원청 노릇하면서 우리같은 하청 쥐어짜면서 닐니리 맘보 누리고 있는 거 아닙니까. 깨놓고 말해서.  

 

또 한 번 깨놓고 말합시다. 지금 저 사람들이 지키자고 아우성치는 대상의 일순위는 공영방송 자체라기보다는 현재 시스템 속에서 안온하게 유지되는 자기 형편이지요. 연봉 빵빵하게 받고, 구조조정 걱정 없고, 안식년 되면 회사 돈으로 외국도 나가 보고, 정년 퇴직 기본으로 하고 나가서도 외주제작사 하나 차리면 전관예우 받으면서 유유자적하고 싶은 거..... 아니겠나요? 아니라구요? 진짜로? 정말로 선배 가슴에 손 얹고 그렇다고 장담하실 수 있어요?    

 

 

공영방송을 지키고 싶으면 공영방송사 노동자답게들 행동하고 사회적 공공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마셨어야지. 자기들 성과 올리려고 외주 제작비 깎고, 불쌍한 외주제작사들 피터지게 경쟁 시키고, 자기가 부려먹던 비정규직들이 잘려나가도 지켜 주지 못해 미안해나 되뇌는 주제에 대체 무슨 낯짝으로 공영방송을 사수한답시고 저 난리를 친답니까. 성질 같아서는 미디어법 반대한다고 열심히 목청 돋우는 공영방송 정규직 노동자들 앞에서 김두한 흉내라도 내고 싶어요. 그 머리띠들 가운데 제작비 못깎겠으면 프로그램 반납하라고 으르대면서 터키인가 어딘가 휴가 여행 일정 잡던 노동자께서도 끼어 있는 걸 분명히 봤거덩. 자막체가 맘에 안든다고 세상에 종편 작업 다시 하라던 (그러면서 종편 비용 따위는 당연히 알아서 하라던) 면상도 확실히 있었거덩.

 

날도 더운데 괜히 열만 오르네......  그런데 부아 치밀수록 어처구니없는 것이 바로 위와 같은 드러운 꼴들을 막기 위해서라도 미디어법은 통과되어서는 안된다는 슬픈 역설이죠. 가증스러운 정규직 방송 노동자들의 턱을 한 대 갈겨 주고파  불끈 쥔 손으로  미디어법 반대 서명란에 이름 석 자 쓸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간단히 말해서  방금 위에서 내가 툴툴거린 일들이 공영방송이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가 아니라, 공영방송임에도 불구하고 불거지는 문제라는 뜻입니다. 공영방송 귀족분들이 보기 싫다고 미디어법 통과되어 버려라고 가래침 뱉는 건, 쥬라식 파크 언어로 하면 벨로시렙터 무섭다고 티렉스 불러 들이는 격이라는 얘기지요.

 

며칠 전에 전직 여당 대표인가 하시는 분이 미디어법 통과되면 일자리 2만개가 생긴다고 단언하시는 걸 보고 한참 웃었습니다. 6.25 때처럼 뿔피리 불고 몽둥이 들고 돌격하는 중공군도 아니고, 우리같은 사람이 2만명 늘어난다는 말일 텐데, 그리고 그 2만명끼리 지금처럼 경쟁을 하라는 얘기일 텐데,  제작보다는 협찬에 신경 쓰고 또 생겨날 몇 안되는 귀족들한테 아양 떨면서 수지 맞추고, 후배라고 부르는 동업자들 등을 치면서 밥벌이를 해야 할 텐데, 그러느니 그냥 접시물에 코박고 숨을 참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더란 말씀입니다.  

 

 

명색이 공영방송 체제 하에서도 제작진들이 자기 차 몰고 다니며 촬영하고 허리띠 졸라맨답시고 한 시간 다큐를 기백만원 표준제작비에 만들어줘야 되는 판에 대차대조표상의 빨간 글씨를 빨갱이 보듯 보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방송을 접수한다면 그때 우리 꼴은 뭐가 되겠어요. 왕년에 풀빵 팔던 어르신네는 이렇게 이야기하겠지.  "능력 있으면 더 발휘하기 쉽지 않겠니?" 프로그램을 만드는 능력보다는 돈 아끼는 솜씨하고 협찬 따오는 수완을 발휘하기가 더 쉽게 되겠지요. 정당한 권리와 댓가를 생까고 조명료 떼먹고 차량렌트비 후려치는 수단은 더욱 다양하게 개발되겠지요. 또 누구는 이러더군요 "채널이 많아지면 너희들이 빛을 보지 않을까?" 이런 장티푸스 (번역하면 염병이라고 합니다)!  케이블 채널이 많아져서 빛 본 사람들 명함 좀 보고 싶네. 빤한 밥상에 입만 늘면 허리띠 졸라매는 게 누굴까요?   

 

KBS 출신의 한 인사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KBS에서 PD가 돈 천 만원 더 쓰면 경위서 한 장 쓰면 되지만, SBS에 와서는 사장실 지갑에서 돈 천 만원 빼가겠습니다 보고를 해야 하는 거다."라구요. KBS의 방만함을 빗댄 소리일 수도 있지만 나는 사영방송 (민영방송이라는 소리는 민에 대한 모독이라고 보고)의 이윤 추구의 한 단면일 수도 있다고 해석해요. 그들이 지금과 같은 방송 시스템을 수용할 리는 만무하고 보도와 편성만을 쥐고 나머지를 외주와 하청으로 채우기 십상이겠지요. 그런데 이른바 메이저 신문들이 새로운 방송의 밥그릇을 쥐고 보도의 숟가락과 편성의 젓가락을 쥐게 될 때, 또 무슨 곡절들이 피어나게 될지 아무도 몰라요. 

 

명색이 기자라는 사람들로 하여금 죄 짓고 구치소 가는 회장님 사수대로 나서서 회장님 힘내세요를 부르짖게 만드는 신문사, 대놓고 "일류기업에게 돈 받은 것도 아니고 삼류 기업에게 돈 받아먹은 것이 문제"라고 떠드는 논설위원이 간판으로 활약하는 신문사, 자기네 흠이라면 아무리 대한민국을 떠들석하게 할 문제라도 입에 자물쇠 걸어버리는 신문사들이, 구독료 내야 현관 앞에 들이밀어 주는 신문 뿐 아니라 리모콘질 한 번으로 안방의 공기와 시선을 장악하는 방송의 주인이 된다면, 우리같은 독립군들이 어떤 프로그램을 해야 먹고 살 수 있을지 뻔하지 않습니까. 

 

편성을 틀어쥔 신규 귀족들(이미 이 귀족들의 명단은 확보되어 있을 걸로 짐작해요. 정규직 노동자분들 가운데 이쪽에 침흘리는 양반들 빗자루로 쓸 정도로 많은 건 아시죠?)이 회장님 비위에 거스르는 인터뷰 하나라도 들어간 프로그램을 용납할 리가 없지요. 자막체 맘에 안든다고 종편 다시 하라는 정도는 양반이고 빽이 맘에 안든다고 촬영 다시 하라고 할 지 모르지. "인물현대사" 정도를 좌빨 프로그램으로 몰아부치는 건 새발의 피일 뿐이고 "시사투나잇"을 억지로 간판을 내리게 한 건 모기 다리에 쥐 난 정도에 불과하겠지요. PD 저널리즘을 끔찍히 싫어하는 저쪽 주인장들께서 PD들이 건방지게 사회적 발언을 하는 프로그램을 눈에 흙 들어가기 전에 보려 하실리도 없고. 그럼 우린 뭘 만들죠? 닐니리야 굴이나 따고 대하나 잡고 고추 총각 대합 아가씨나 취재다니고 신기한 해외 풍물이나 가끔 보여 주면 땡인가? 만쉐이 만쉐이 만만쉐이.   

 

그래서 나는 오월동주에 탈 수 밖에 없습니다. 방송사 정규직 노동자들의 진절머리나는 귀족 행각에 욕설을 퍼붓고 똥물 바가지를 움켜쥐고 부르르 떨면서도 그 사람들의 밥그릇을 지켜주는 싸움에 동조할 수 밖에 없는 거예요. 완전 듣보잡은 아니고 조금은 듣고 본 적이 있는 어떤 소송 애호가는 이걸 노예근성이라고 표현을 한 적이 있지요. 그 같잖은 표현을 빌린다면 나는 방송의 노예입니다. 방송 정규직이나 방송사의 노예가 아니라 , 내가 사랑해 왔고, 내 청춘과 꿈을 바쳐서 만들고 전파에 싣고 그 반응에 일희일비하며 또 다른 꺼리가 없나 눈 두리번 거렸던 방송 그 자체의 노예입니다. 방송이 하고 싶어서 이렇게 독립군 노릇하고 있고, 나이도 경력도 새카만 정규직 PD들이 "이번 프로그램은 말이야......" 하면서 엄숙한 훈계를 늘어놓는 그 아니꼬움 버티고, 제작사 사장들 모여서 이번에 담당 PD 생일 선물은 뭘로 할까 고민하는 석상에도 앉으면서 이 짓을 하고 있어요. 그래요 나는 방송의 노예입니다. 

 

나는 방송의 노예로서 내 주인이 보다 인자하고 합리적이며 우리를 이해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래서 우리가 일하는 환경이 좋아지고 일할 맛 충만하게 되어서 내 주인인 방송이 살이 포동하게 오르고 그 자산이 창고에 그득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미디어법은 그 꿈을 프레디처럼 갈기갈기 찢어 버리고 제이슨처럼 도끼로 쪼개 버립니다. 그리고 나는 싸울 수도 없는, 싸워 봐야 몸대주기 이상은 안되는 독립군입니다. 그래서 다시 도루묵으로 돌아가면 방송 정규직들이 견딜 수 없게 저주스럽습니다. 저 사람들의 조직 탄생 자체가 87년 6월 항쟁 이후의 불로소득에 가까운 전리품이었음을 되새긴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싸울 수 있는 사람들이 싸워야 하고, 지킬 것 많은 자가 용감해야 하며, 여유 있는 자가 베풀 줄 알아야 싸움의 정당성은 높아가고 승리의 가능성은 커질 겁니다. 그런데 미디어법 투쟁의 중심에 섰다는 방송노조들........  정말 정신차려 주기 바랍니다. 아직은 이성을 잃어버리지 않지만 참말로 벨로시렙터의 밉살스러움이 극에 달한다면 내 몸이 갈갈이 찢길지언정 티렉스가 벨로시렙터를 토막내는 모습에 열광하면서 죽어갈지도 모르니까요.

 

산하(nasanha@dreamwiz.com)

 

 














 
주요 기사  
금주의 필독 기사  

- 그럼 나도 빨갱이냐?
- 네팔의 마오이스트들은 어떻게 좌절했는가?
- [읽은 척 매뉴얼] 걸리버 여행기
- MMORPG의 진화 2부
- 맞서야 할 것은 미디어법만이 아니다
- 가출소녀들과의 동거 제2화
- [파토의 新 기타스토리] 다시, 리듬에 대하여
- 달 착륙 미스터리의 모든 것
- [국제] 우루무치 사태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
- 대한민국 종합격투기에 필요한 건 바로 이것
- 가출소녀 기사에 대한 여성독자의 입장

총수 틈새논평  

-이명박이 당했다
-송지헌의 커밍아웃
-오바마 시국선언 사건
-거짓말은 청와대가 했다
-사과 따위 필요 없다

노무현 추모기사  

-그래, 난 삼년상 치를 거다. 이 씹새끼들아!
-나는 한나라당 부대변인이었다
-[명문감상]천국서 보내는 두 번째 유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