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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네팔의 마오이스트들은 어떻게 좌절했는가?



2009.7.21.화요일


"흔히 기억이 녹음기 같은 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하지만 잘못된 생각입니다. 기억은 살아 있는 구조입니다. 크기가 무한대에 가까운 어마어마한 골조를 갖고 있어요. 우리가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그것을 극복하면서 더 많은 자극을 생성할 수록 골조는 점점 더 커집니다. 골조가 커질 수록 학습속도는 한층 더 빨라지죠." (웅진 지식하우스, [탤런트 코드] 중에서)


서점에 가면, 심지어 온라인 서점의 홈페이지를 열어도 가장 많이 보이는 책들은 하나 같이 이렇게 하면 성공한다는 이야기들이다. 재태크에서 기획에 이르기까지, 수 많은 출판사들이 이걸로만 먹고 살고 있다.


하지만, 사업한다고 까불다가 한 번 제대로 말아먹고 몇 차례의 실패를 경험하면서 내가 배웠던 것은 필승의 법칙이 존재하는지는 잘 몰라도, 필패의 법칙은 있더라는 것이다. 실제로 20세기를 열광하게 만들었던 [초우량 기업의 조건]이라는 책만 하더라도, 지금은 찾을 수 조차 없는 회사들을 초우량 기업이라고 썰 풀었다. 솔직히 책의 영양가를 놓고 보자면 IT와 관련해 좀 친해야 이해가 가능하긴 하지만 망한 회사나 마케팅을 기록한 [초난감 기업의 조건]이 훨씬 더 영양가 있더라.


그런 의미에서 선거를 통한 혁명을 외쳤으나, 지금은 꽤 좌절하고 있는 집단을 두 번에 걸쳐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아마 익숙한 그림들을 꽤 많이 보게 될 것이다.


 인도 대륙에서 마오이즘의 태동



인도인들의 대표적인 여름 휴양지 중에 하나인 Darjeeling. 이 동네에서 네팔로 넘어가는 길에 Nakshalbari라는 마을이 하나 있다. 60년대 말, 이 마을에서 대규모 소작 쟁의가 발생하게 된다. 쟁의의 이유? 소출의 80%를 소작료로 땡겨갔는데... 그 때 가뭄이 좀 쎄게 들었거든.


암튼 택두 없는 지주들의 행패에 농민들은 분노했고, 이 농민들을 지원하러 나갔던 Kolkata대학 학생들은... 말 그대로 학살당하고 말았다.


바로 이 경험으로 인해 이들은 이념을 찾게 된다. 자신들의 처지를 분석하고, 자신들의 처지를 해결할 수 있는 이념을 선택하게 된다. 그렇게 소환된 것이 이 영감님이었다.



Mao Zedong(1893.12.26~1976.9.9)


중국에게 땅을 제대로 뺏겨본 까닭에, 가장 예민하게 중국을 보는 인도의 입장에서 봤을 때, 마오주의자 그룹이 지네들 땅에서 설친다는 거, 쫌 그렇지? 그래서 인도 언론이 이들을 부르는 공식 명칭은 Naxal이다. 피를 본 땅에서 출발한 반군이라는거지.


암튼, 뭐라고 부르든 이 아저씨들이 晝戰夜讀하며 마오주의를 학습하기 시작한 바로 그 즈음에 이들의 총을 쥐었던 West Bengal주에서 공산당이 집권한다.


참고로 인도의 전국정당은 힌두 민족주의 정당인 BJP(Bharatiya Janata Party), 그리고 영국 식민지 시절부터 활동한 Congress(국민회의) 둘 밖엔 없다. 땅덩어리와 인구가 존니 많다보니 주마다 힘을 쓰는 당들이 따로 있고, 이런 정당들은 두 전국정당과의 연정으로 중앙정부를 구성하고 있다. 더불어 상당한 수준의 독자적인 자치권을 확보하고 있다. 우짜겠냐, 남부 Kerala와 북부의 Sikkim사람이 만나면 완전히 다른 나라 말을 쓰는 것과 비슷한걸.


암튼, WB주에서 공산당이 집권하고 나서 바로 해버렸던 것, 바로 토지개혁 되겠다. 토지개혁 했으니 Naxal은 할 일이 없어졌나? 아니, 바로 옆의 Bihar와 Jharkhand, Orisa등으로 흘러들어가게 된다. 거기선 여전히 상황이 똑 같았거든.


 네팔 내전, 그리고 승리의 기록


한국의 일반인들에겐 국기가 사각형이 아닌 유일한 나라, 혹은 히말라야의 8천미터급 고봉으로 올라가는 곳 정도... 혹은 꽤 많이 들어와 일하는 이주 노동자 정도인 이 나라.


1990년까지만 하더라도 절대 왕정에 국교가 힌두교인 나라였다. 남의 나라 종교를 가지고 왠 시비냐고? 힌두교도는 종교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태어난다. 카스트라는 시대착오적인 사회 계급체제와 바로 연결되는게 힌두교라고. 거기에 절대왕정이었으니... 얼마나 황당한 사회였겠어?


90년에 들어서서야 정당을 허용하고 입헌군주제로 잠깐 전환하게 되는데... 이때 생겼던 정당들이 통일공산당(CPN-UML), 네팔국민회의, 좌파전선, 네팔농민노동자당, 인민전선, 네팔스드브하바나당 등이었다.


그러나 이런 왕의 유화조치가 사기에 불과하다고, 비합법투쟁의 깃발을 들고, 96년 2월 4일에는 40개의 요구사항을 발표하며 이를 즉각 수락하지 않는다면 인민전쟁에 들어가겠다는 선언을 한 그룹이 하게 된다.


바로... 네팔의 마오이스트 그룹되겠다.


인도 이야기에서 바로 네팔로 넘어간 이유가 뭐냐고? 네팔 마오이스트들의 스승이 바로 인도의 낙샬이거든. 40개 요구사항도 토지개혁, 군주제의 완전 폐지, 즉각적인 공화정 실시, 인도와의 군사협정 폐지(네팔에 뭔 일이 터지면 인도군은 인도군 총사령관의 판단에 따라 바로 군대를 투입할 수 있다), 사회주의적 경제개혁, 다국적 기업 반대 등이었고.



이 그룹의 대빵, Pushpa Kamal Dahal. 그러나 Comrade Prachanda(네팔 말로 강렬한이란 뜻임)로 불리길 더 좋아한다.



그때 네팔 정부의 반응은...?


"너넨 또 누구니?" 였다.


처음에는 이거, 거의 소총놀이 수준이었다. 산골마을 경찰서 털고 도망가고, 경찰들이 얘네들을 쫓는 정도. 그러다가 점점 세가 확산되기 시작하자 군이 투입되었고... 100여 개의 부족들끼리의 갈등과 종교적 갈등까지 합쳐지게 된다.


100여개 부족...이 말이 되냐고? 흐~ 네팔은 한반도의 2/3 정도의 크기에 2008년 현재 인구만 3천만이다. 2001년 네팔의 인구센서스에 따르면 체트리(Chhettri)가 전체 네팔 인구의 15.5%를, 브라만힐(Brahman-Hill)이 12.5%를, 마갈(Magar)이 7%를, 타루(Tharu)가 6.8%, 타망(Tamang)이 5.5%, 네와리(Newar)가 5.4%, 카미(Kami)가 3.9%, 야다브(Yadav)가 3.9%를 차지하고 있었단다.




지네들끼리 말이 안 통해서 뉴스를 9개 부족어로 돌아가면서 해야 하는 판국에 일단 강경진압을 외치는 왕. 그리고 왕의 말을 따르는 군대. 피아 상관 안하고 일단 진압하는 바람에 이에 대한 반감으로 반군 입대자들이 더 늘어나게 되는 악순환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던 거시... 2001년 즈음까지의 상황이었다.


거기다 2001년 6월 1일. 네팔 왕실에선 대참사가 벌어진다. Birendra Bir Bikram Shah Dev왕과 그 가족, 왕실 승계순위 20위권에 있던 이들이 모두 몰살되었던 것. 당시 왕은 격화되던 내전을 두고 본격적인 입헌군주제에 대한 고민을 슬슬 풀어놓던 차에... 저 세상을 떠났던 것(이 참사를 두고 공식버전과 비공식 버전의 사건경위서가 존재하는데... 이건 별루 중요한거 아니고).


왕위를 계승받는 전 왕의 동생 Gyanendra Bir Bikram Shah Dev는 입헌군주제로의 전환과 같은 전향적인 정책들은 모두 폐기처분하고 내전은 더욱 악화되게 된다.


그런데 여기다 기름을 붓는 사건이 터지게 된다. 9/11 이후, 정규군과 싸우는 모든 반군은 테러리스트라는 어디선가 많이 보게 되는 단순한 세계관을 가지신 분들이 네팔 정규군에게 최신 무기들을 지원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1941년에 세상에 첫 선을 보인 스텐 서브머쉰건이 주력이고 인도군이 파키스탄에서 노획한 AK시리즈, 80년대부터 생산해 지들끼리 쓰기도 바쁜 INSAS 정도를 가지고 있던 네팔 군에게 성능이 월등한 자동소총이 지급된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의도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나타났다. 살육이 확산되면 될 수록 왕정에 대한 국민들의 염증은 물론 마오이스트들의 세만 더 확산되는 결과로 이어졌던 것. 네팔 국토의 대부분이 사실상 마오이스트 치하에 들어가고, 수도인 카트만두로의 진격만 남은 2006년 4월 22일. 거넨드라 국왕은 결국 이승만 비슷한 분위기로 GG친다.


 배반당한 혁명


2006년 4월 22일부터 왕은 사실상 유폐에 들어갔다. 국호도 그 사이에 네팔 왕국에서 네팔 연방 민주주의 공화국으로 바뀌었다. 거의 100여개의 자치주로 쪼개진 것. 그리고 몇 번의 선거연기 끝에 2008년 4월 10일 재헌의회 총선이 있었다.


총 601석인 이 선거에서  CPN-M(마오주의정당)이 217석을, NC(네팔 국민회의)가 107석을, UML(네팔 공산당)이 102석을 차지했다. 70여개가 넘는 정당들이 난립한 선거에서 마오주의자들과 왕정 당시의 여당이었던 국민회의, 그리고 도시 지역에서 상당한 조직력을 확보하고 있는 네팔 공산당의 연정이 시작되었다.


자신들을 반군이라고 불렀던 중국과의 관계개선에 나서는 제스춰를 보이며 인도와 중국 사이를 오가며 등거리 외교를 시작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네팔의 마오이스트들은 자신들이 산으로 올라가면서 선언했던 40개 조항들을 하나씩 철회하기 시작한다.


가장 먼저 철회했던 것. 다국적 기업 반대였다.


아니, 제헌의회 선거 처음부터 이들의 핵심공약은 왕정폐지와 함께 외자유치였거든. 외자유치와 다국적 기업 반대가 같이 공존할 수 있남? 이거야 그렇다 쳐.


하지만 무엇보다 황당했던 것은... 이들이 총을 들고 산으로 올라갔던 가장 핵심적인 이유. 토지개혁이 나가리 되었다는 것이다.


핵심공약들은 슬그머니 묻힌 뒤, 터져나오는 각종 요구들을 일단 들어는 주러 마오바디의 총사령관이자 수상인 프라찬다 동지는 열심히 뛰어다녔다. 그래 본 들, 이미 핵심공약은 뭍혔는걸.


 왜 이렇게 된 것일까?


2006년 연초, 영국의 BBC는 서방 언론사상 최초로 프라찬다 동지를 인터뷰한다. 사실상 네팔 전역을 장악하고 카트만두로의 진격만 남아 있던 이때, 그는 서방인들의 눈에는 좀 뜻밖의 발언을 하게 된다. 자긴 폭력으로 현 왕정을 뒤엎을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서남아시아의 악센트가 강하긴 해도 또박 또박 영어로 말하는 이 반군 지도자의 발언. 반응이 좀 있었다.



2007년 카트만두 메이데이 집회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현 왕정의 가장 큰 반대세력이며, 또한 대단히 합리적이라는 것을 보여줬으니까.


하지만 이거, 엄밀히 따지면 권력 장악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보여줬던 여유... 정도로 봐야 한다. 이미 네팔 전역은 다 장악한 상태에서, 자신들을 테러리스트로 규정하고 있는 미국 군대 불러올 일 있냐? 당삼 인도군 총사령관이 네팔로의 진출을 명령하는 것을 보고 싶지도 않았을 것이고.


인도 대륙에서 한반도 정도의 사이즈를 불법점유하고 있는 Naxal들과의 교류에 대해 예민한 인도 정부, 테러리스트 집단으로 낙인 찍어 교역및 시설 투자에 대해 족쇄를 채워놓았던 미국, 호시탐탐 기회를 찾는 중국 사이에서 살아남을까가 고민이었지, 국내 상황에 대해선 자신이 있었던 거다.


하지만, 아주 미묘한 형태의 저항들이 터지기 시작한다.


작년 9월 말, 뜬금없는 보도들이 넘쳐나기 시작한다. 네팔의 살아 있는 여신 쿠마리에 대한 보도였다.



쿠마리 춤


5세 미만의 꼬마 아가씨가 어떻게 신으로 추앙되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들이 나왔지만, 사실 이 보도의 이면은 거의 대부분 언급하지 않두만.


쿠마리는 왕의 수호자다. 왕정이 폐지된 상황에서 왕의 수호자를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계속 자리에 오르게 만들려는 세력이 있다는 것, 인권과 관련된 논란에도 불구하고 당시 내각이 한 발 두 발 뒤로 빼게 되었다는 것의 정치적 긴장은 아예 언급조차 없었다.


마오이스트들의 근본적인 한계는, 이들 역시 브라민 출신들이라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70여개로 난립한 정당의 수뇌부들, 모두 한 계급 출신이며 모두 친척들이다. 그래놓으니... 핵심적인 공약인 토지개혁이 친인척의 압력으로 무산되었던 것이다. 사실 그 사람들의 재력이면 그 땅 내놔도 재산권에 별루 타격이 없건만, 종부세를 대출 받아내면서 이를 갈았다는 아저씨들과 별 차이 없었던거다. 한톨도 내놓을 수 없다는 것.








가장 현명한 사람은 남의 실수를 통해서도 배우고, 일반인들은 자신의 실수를 통해서만 배운다. 바보는 실수를 하고도 뭘 잘못한 것인지 모르고 배우는 것도 없다. 남들의 좌절을 통해 조금 더 객관적으로 우리의 모습을 보자는 생각으로 쓰기 시작했는데, 글의 길이도 길이지만... 내가 좀 바빠서 이번 주는 요기까지만 한다. 다음 주에는 좌절로 달려갈 수 밖에 없었던 요인들을 하나씩 정리해볼려고 한다. 반응이 좋을 때만.



전임논설우원 Samuel Seong(swsung6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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