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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 한국의 저축률 하락에 대한 외신의 우려

 

2009.8.4.화요일

 

지난주 목요일, 7월 30일자로 미국 유력 일간지인 워싱턴 포스트에는 "지갑을 열고 통장을 비우다"라는 제목으로, 한국인의 저축이 바닥났다는 우려를 표명한 기사가 실렸다. 우선 이 저축률 하락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이야기한 부분부터 잠깐 보고, 시사점 분석 들어가자.

 


7월 30일자 워싱턴 포스트 1면

 

 




 
In the past decade, average savings per household have plunged from about $3,300 to $525. On a percentage basis, it is the steepest savings decline in the developed world. Meanwhile, household debt as a percentage of individual disposable income has risen to 140 percent, higher than in the United States (136 percent), according to the Bank of Korea.
지난 10년간 한국의 가계 평균 저축액은 3,300달러에서 525달러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백분율로 따지면 선진국 중에서 저축 감소세가 가장 가파르다. 반면 일인당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대출은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140%까지 증가하여 미국(136%)보다 높아졌다.
"The low savings rate is sapping our capacity to grow, and it is going to get worse…It will lead to credit delinquency. It will cause greater income disparity. It means less resources for our aging population."
"낮은 저축률이 성장잠재력을 갉아먹고 있고, 앞으로 더 나빠질 겁니다. 이렇게 되면 신용불이행으로 이어지고, 소득 불균형이 더 심화됩니다. 인구는 노령화되는데 자원은 줄어드는 거죠."
..the fall-off-a-cliff character of what has happened with household savings in South Korea strikes many experts as abnormal and worrisome.
급전직하한 한국의 가계저축 하락폭과 속도는 전문가들도 비정상적이고 우려스러운 것으로 본다.

 

 

 

 

연합뉴스를 시작으로, 조선일보와 노컷뉴스 등에서 이 기사를 전했고, mbn, YTN, SBS 등 주요 방송사 뉴스에도 보도된 기사다.

 

 

걱정할 만한 의도적인 왜곡은 별로 없다. 글구 놀랍게도, 조선 찌라시가 버블 우려에 대해 제법 양심 있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얘네 가끔 이런 짓 한다. 엊그제 왜곡보도로 여기저기서 욕 먹더니 발뺌용 물타기 하나보다. 관심 있는 분들은 찾아보시믄 되겠다.

 

 

"대한민국은 돈 쓰는 중" (조선일보 1면 헤드라인)
"WP, 한국의 경쟁적 과소비 행태 지적" (노컷 뉴스)
"사교육비, 과시성 소비가 韓 저축률 하락 요인" (연합뉴스)

 

 

그러나 나는 한국판 기사의 헤드라인들을 보면서 내심 찜찜했다. 헤드라인, 중요하다. 신문 편집에서, 헤드라인은 기사를 읽어 가는 독자의 마음자세를 결정한다. (그나마 본문을 읽는 독자라면 말이다. 헤드라인만 보는 이도 많다.) 저 제목들은, 한국인의 허영심과 사교육비 지출에 대한 조롱처럼 기사 내용을 요약하고 있지 않나.
 
근데 포스트지에서 이 두 가지 이야기만 하고 있느냐. 그렇지 않다.
이 기사에서 분석된 저축률 급감의 원인은 크게 다음의 네 가지다.

 

 

1. 과시형 소비
2. 부동산 정책
3. 사교육비 지출
4. 노령화로 인한 인구의 지출 패턴 변화

 

 

그리고, 이 네 가지 원인 분석이 주는 정책적 시사점은, 크게 보면 한 가지다.

 

 

이명박식 정책은, 국가를 말아먹을 정책이라는거.

 

 

자산이라곤 아파트 한 채나 있으면 다행, 1인 자녀 사교육에 목숨걸고 저축액을 털어 기죽지 않기 위해 큰 차 사고 휴가 떠나는, 정리해고에 떨고 월급동결에 이 악무는 이 시대의 대부분의 평범한 직장인들에게, 이건 정말 무서운 현실이다.

 

 

이거 왜곡도 아니고 비난도 아니다. 왜 그런지는 이제부터 차분히 보자.

 

 

지난번 윌리엄 페섹 기사에서, 통화팽창정책으로 자금이 풀리면서 주식이 반등하고 자산 가격이 다시 오르고 있다고 전했다. 우선 현재의 상황부터 풀어가 보자. 복습겸.

 

 

작년 미국발 금융위기 쇼크로 제 2의 IMF 사태에 대한 우려가 현실화되는 줄 알았다. 미네르바의 경고가 나왔고, 환율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자산가치는 폭락하고 주가는 반토막 이하로 떨어졌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금리를 인하하고 자금을 풀었다. 이른바 유동성 공급. 이 효과는 지금 확실히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실업률이 아직 상승하고 있다는 우려가 있지만, 원래 실업률이란 경기가 최하점에 도달하고 난 후에도 상승세를 약간 더 유지하는 후행지표다. 하여, 최악은 지나가지 않았나라는 안도감이 지배하며 주가 견인 주도.

 

 

그리고 이대로 고강도 부양책을 유지하면 인플레 등 다른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으니, 시중 자금 회수를 시작해야 한다는 논의도 이미 시작되었다. 이른바 출구 전략이다. 현재 풀린 유동성 중 일부 흡수를 시작하여 자산거품이 다시 부푸는 걸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번 페섹의 칼럼에서 경고했던 부분도 바로 이거다. 금리 인상이 되면, 본격 출구전략이 시작되었다고 봐도 될 것이다.

 

 

출구 전략의 상세 내용과 시기 결정에 필요한 분석은 나도 아는 바 없어 능력 안되므로, 글로벌 경제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하자.

 

 

그럼, 이제 중요한 부분이다.
대체 저런 거시 경제, 통화 정책이 나랑 뭔 상관이냐.
물론 상관 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왜 그런지, 다시 포스트지 기사에서 내세운 네 가지 원인을 하나씩 뜯어 보자.

 

 

1. 경쟁적인 과시형 소비 행태

 

 

아래는 기사 인용문이다.

 

 




 
When it comes to buying high-priced, brand-name stuff as if there were no tomorrow, Sabina Vaughan concludes that Americans are relative wimps. "Koreans spend more, way more," said Vaughan, 35, who travels to Seoul every summer with her Korean-born mother and spies on her cousins as they shop. "It is a kind of competition for them. It doesnt matter what their income is."
내일을 걱정하지 않고 고가의 명품을 서슴없이 구매하는 데는, 미국인들은 한국인에 비하면 오히려 겁쟁이라고 Sabina Vaughan씨(35)는 말한다. "한국인들이 훨씬 더  (돈을) 많이 써요." Vaughan씨는 한국 태생인 어머니와 함께 매년 여름 서울로 여행하면서 사촌들이 쇼핑하는 모습을 면밀히 관찰해 왔다. "(쇼핑을) 경쟁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자기 수입이 얼마나 되는지는 관계 없이요."

 

 

이 부분은, 한국의 과소비 행태를 꼬집은 것으로, 국내 언론이 제목으로 뽑아 전한 저축률 급감의 원인이다. 근데 이런 관점은, 정책적 실패를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데 딱 좋다. 느네 글게 왜 돈도 없는 주제에 빚내서 막 쓰고 그래. 그러니까 망하지. 누굴 탓해, 느네 탓이다. 이런 논리. 근데, 이게, 개인 탓만은 아니다.

 

 

IMF 이후, 내수 진작을 위해 신용카드가 마구 발급되었던 때, 기억 나시리라. 신용불량자 대량 양산되는 신용카드 대란이 일었고, 무수히 많은 가정이 카드빚 갚다가 파탄 났다. 그럼 이게, 자기 수입은 생각지 않고 빚 내서 탕진한 개인의 탓이냐. 그런 측면도 있다고 해 두자. 동전의 양면 같은 거니까.

 

 

그러나 근본적으로 이건 정책적 실패다. 정부의 의도적 신용카드 규율 완화정책이 한국 금융산업을 총체적 부실 상태에 빠트린 이런 사태를 불러온 거다. 이건 미국 연방의회 조사국(CRS) 보고에서도 한국의 신용카드 대란의 가장 근본적 원인으로 지적한 바 있다.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대출을 해주고 비싼 이자 부담을 물게 해서, 개인 경제를 파탄나게 만드는 대출. 영어로는 약탈적 대출(predatory lending)이라 해서 금융선진국에서는 경제 전체에 미치는 파괴적 영향을 우려해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불법이다. 근데 이걸, 우린 정부에서 풀어버린 거다.

 

 

그럼 지금의 과소비 행태는. 이건 개인의 책임인가? 일단 과소비 그 자체는 개인의 선택이다. 월급은 쥐꼬리여도 10개월 할부로 루이비똥 스피디 핸드백 하나쯤은 들어 줘야 하고, 결혼 비용이 아무리 부담돼도 차마 국내로는 신혼여행 못 가겠고, 김대리 차는 SUV니까, 내 처지에 맞는 경차는 자존심 상해서 못 모는거. 그런 거 개인의 욕망 맞다. 근데 이 개인의 욕망은, 국가정책에 의해 교묘히 부추겨지고 확대재생산 되고 있다. 그 중의 하이라이트는, 부동산이다. 부동산, 전국민 구매 품목에서 최고가를 기록하는 품목이다. 게다가 저축해서 사는 사람 없다. 다 빚 내서 산다. 그러니 사실상 저축률이 바닥을 친 제일의 원인은, 이 부동산이다. 함 살펴 보자.

 

 

2. 부동산 대출

 

 

 



 
There are other reasons for the fall in savings that are eminently rational -- and sponsored by the government. When the economy nearly collapsed a decade ago during the Asian financial crisis, the government made low-cost loans available for the purchase of apartments. Borrowing exploded, as did housing values, while savings began to evaporate.
그러나 저축률 하락의 원인에는 매우 이성적인 이유도 있으며, 이는 정부가 유도한 것이다. 10여년 전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한국 경제가 붕괴 직전까지 갔을 때, 정부는 아파트 수요자를 위해 저리의 주택대출 상품을 만들었다. 이에 대출은 폭발적으로 늘었고 집값은 폭등했으며 저축은 동나기 시작했다.

 

 

IMF 직후부터 작년 거품붕괴까지, 아파트값이 얼마나 무섭게 올랐는지 다들 알 거다.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면서 부동산 경기를 진작시키면 당연히 이렇게 되는 거다. 집값이 수 배씩 폭등하는데, 누가 손톱만한 이자 받으려고 저축을 하고 앉았겠나. 앉아서 돈 까먹는 바보 짓이지. 당연히 저축 대신 빚을 내서 부동산에 투자하는 게, 상식이 된다. 그래서, 이 기사에서는 이를 rational(이성적, 합리적인)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그걸 정부가 후원(sponsor)했다고 표현했고.

 

 

여튼 그래서 거품이 부풀어 오르다가, 작년에 자산 거품이 꺼지면서 빚으로 장만한 아파트 하나로 미래의 희망을 담보해 온 수많은 서민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주택대출상환 부담이 한국에서 가계 가처분 소득의 평균 20%를 잡아 먹는다는 통계가 있다. 이건 서브프라임 사태로 한국보다 더 심각한 자산가격 거품 붕괴를 경험한 미국 평균보다 높은 수치다. 집값이 오르는 동안은 그래도 괜찮다. 투자라고 생각하면 되니까. 근데, 떨어지면 그 때는 가계 소득을 갉아먹는 빚더미 폭탄이 되는거다. 지금처럼 자산 거품 재형성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상황에서, 부동산 경기 진작책은 잠시 멈췄던 이 시한폭탄을 다시 가게 하는 거다.

 

 

근데 이명박이 하고 있는 짓이 바로 이거다. 양도세 완화, 세금혜택 요건 완화, 종부세 무력화, 투기지역 지정 해제. 더 무서운 것은, 1가구 다주택을 정책적으로 배려하고 있다는 거다. 집 있는 이들, 투기해서 부동산 시장에서 더 벌어 가라고 등 떠미는 거다. 이렇게 되면 희생자는 실수요자다. 투기자금이 올려 놓은 주택 가격의 거품을 고스란히 얼마 안 되는 월급에서 매월 이자와 원금으로 땜빵하면서, 가처분 소득을 까먹는 수밖에 없다. 그러다, 거품이 터지면, 빚더미에 오른다. 평생을 바쳐 모아 왔던 하나 뿐인 자산이, 심하면 은행에 압류, 아니면, 더 긴 기간을, 더 허리띠를 졸라 매면서, 갚아 나가야 한다.

 

 

바로 이 부분을, 페섹도 지적했고 워싱턴 포스트도 우회적으로 지적한 거다. 적어도 포스트지는, 이 아파트에 대한 소비가, 개인의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 정부가 정책적으로 유도했음을 명시하고 있다. 근데 IMF 직후랑은 또 다른 상황이다. 지금 부동산 부양책은, 일반적으로 후행지표인 부동산 가격이 주가와 같이 오르는 기현상을 만들었다. 인위적 부양책으로 부풀어 오른 거품은, 나중에 더 크게 터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거 알면서 그러는 거다. 다들 잘 살게 만들어 주려고 하는 게 아니라, 되는 놈만 되고, 안 되는 놈은 망하는 줄 알면서, 저는 안 망할 자신 있으니까 하는 정책. 이 정책 어디에 한 줌 부유층을 제외한 나머지에 대한 배려가 있나.

 

 

경기부양책으로 풀린 자금이 이대로 자산 거품만 키우면 극소수 부유층과 해외 자본만 배불린 후 경제는 다시 얼마든지 파탄날 수 있다. 아직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앞으로 3년 반이 갑갑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3. 살인적인 사교육비

 

 

그리고 이렇게 국가정책에 의해 부추겨진 욕망은, 고스란히 아이들 세대로 전이된다. 아래 인용문을 보자.

 

 




 
An obsessive pursuit of educational achievement, it seems, is one of the driving forces behind the low savings rate. About 80 percent of all students from elementary age to high school attend after-school cram courses. About 6 percent of the countrys gross domestic product is spent on education, more than double the percentage of spending in the United States, Japan or Britain. "Education is a fixed expenditure for Korean parents, even when household income shrinks," said Oh Moon-suk, executive director at LG Economic Research Institute.
학업 성취에 대한 강박이 저축률 하락의 주요 동인 중 하나인 것으로 보인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전체 학생의 80%가 방과후 보습학원에 다니고 있다. 교육비 지출은 GDP의 6% 수준으로, 이는 미국, 일본, 영국의 두 배가 넘는 수준이다. "한국 부모들은 가계 소득이 줄어도 교육비는 고정 지출이라 생각합니다." LG 경제연구소의 오문석 상무의 말이다.

 

 

GDP의 6%가 교육비로 지출되는 현실.

 

 

그리고, 이 사교육비 지출을 몰아 가는 것은, 부동산 거품을 만든 동력과 같은 욕망이다. 없는 이들은, 적어도 자녀 세대에는, 가난을 물려 주지 않겠다는 의지. 있는 이들은, 내 자녀도,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는 의지. 그래서 경쟁.

 

 

결과는, 당연히 돈 있는 놈이 이긴다. 어릴 때부터 조기 연수 보내 영어 익히고, 과외비 쏟아 부어 성적 올려서, 강남에서 오피스텔 빌려 스터디 한 다음 해외유학 떠나, 미국 대학 학사 학위, 혹은 MBA 하나 물고 돌아온다. 공채 아닌 개별 채용으로 컨설팅, 자산관리, 외국계 기업. 돈 많이 버는 알짜업계에서 고액연봉으로 모셔 가는 이들, 요즘 학부 해외 유학이 늘어서 그런지 많더라. 그 애들이랑 경쟁? 두뇌와 노력만 있으면 되나. 소가 웃을 소리다. 거긴 딴 세상이다. 같은 회사에 혹시 들어갔다 치자. 유창한 영어에 해외 유수 학벌인 그들과 같은 대접 받나. 그 아래는 국내 대학 내에서 서열화. 그렇게 다들 줄 서서, 나랑 비슷한 배경 출신들끼리, 다들 조금이라도 낮은 곳으로 가지 않으려, 피터지게 경쟁하는 거다.

 

 

즉, 이건 다단계 리그제다. 하위 리그에서 1등 하면 바로 그 상위 리그로 진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다. 거기서 하위권에 맴돌다, 다시 내려오지나 않으면 다행. 리어카 끌다가 대통령 자리에 오른 이명박의 성공 신화, 오늘의 대한민국에서는 이미 불가능하다.

 

 

그래도 그 분은, 내가 했으니까 너희도 하면 돼 정신으로, 자율형 사립고와 특목고 확대, 대학입시 자율화, 일제고사, 고교등급제, 실시했거나 하겠다고 공언했다. 이걸 바라는 이들의 마음 속에는, 딱 한 가지밖에 없다. 지지 않을 자신이 있는 거다. 자녀에게 쏟아 부을 돈이 있는 거다.

 

 

이게 돈만의 문제냐. 맞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걸 과소평가 해서는 안 된다. 단지 과외, 학원의 문제가 아니다. 돈 있으면, 부모가 시간 내기 쉽다. 학교에 끊임없이 드나들며 자녀가 어떤 취급을 받는지, 간섭하고 신경 쓰고 보호한다. 잘 꾸미고 잘 돌봄 받으니 어디 가도 이쁨 받고 인정 받고 주눅들지 않는다. 사회 속에서 성공하기 위해 자신을 어필하고 네트워킹하고 상호작용 하는 법을, 어린 시절부터 부모로부터 배운다. 저소득층 아이들은 방치된다. 이 애들이 교과서와 참고서 좀 파고 들었다고, 이 갭을 메울 수 있나. 그런데도 정책은 거꾸로 간다. 돈 있으면 심지어 지금보다도 더 편하게, 성공할 수 있게. 암울하다. 생각만 해도.

 

 

게다가 정작 장기적으로 더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한국 사회가 병적인 경쟁에 사로잡혀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는 증거.

 

 

4. 노령화로 인한 인구의 지출 패턴 변화

 

 




 
 

By 2050, South Korea will be the most aged society in the world, narrowly edging out Japan, according to the OECD.
2050년이 되면 한국은 일본을 근소한 차로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노령화가 진전된 사회가 될 것이라고 OECD는 예상했다.

 

"Parents often overspend. It even appears to be leading to a slowdown in the birthrate."
“능력 이상으로 (교육비를) 지출하는 부모도 많고요. 심지어 이 부담이 출산율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As important, the spending patterns of aging parents, many of whom have been tapped for loans by children in pursuit of real estate, mean that cash is steadily disappearing from savings accounts. "Old people do not save," Lee said. "This is a long-term structural phenomenon. It will not change with the business cycle."
또 중요한 점은, 자녀들이 부동산 구매를 위한 자금을 빌리곤 했던 부모 세대의 소비 패턴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축 계좌에서 현금이 꾸준히 사라지고 있다. "나이든 사람들은 저축하지 않아요." Lee의 말이다. "이건 장기적, 구조적 현상입니다. 경기가 다시 살아난다고 해도 추세는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근검 절약을 미덕으로 알았던 부모 세대의 소비 패턴이 변한 거다. 자녀가 경제적으로 독립하고 결혼도 시켰으니, 이제 저축할 이유가 없는 거지. 젊은이들은. 저축할 줄 모른다. 빚 내서 부동산 재테크 하는 것에 더 익숙하다. 그리고 무한 경쟁과 사교육비 두려워 아이는 적게 낳는다. 이대로 한 세대만 지나면, 노령화와 함께 국가 경제는 심각한 위기다. 부자라고, 이 계산을 피할 수는 없다. 그리고, 한국의 먼 미래를 걱정하는 이들이 고민해야 하는 지점도 여기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아까 맨 처음에 인용했던 부분을, 좀 더 길게 다시 한 번 인용해 보자.

 

 




 
But the fall-off-a-cliff character of what has happened with household savings in South Korea strikes many experts as abnormal and worrisome. It is one of several trends suggesting that South Korea, as it wrestles with post-industrial affluence, is a society under extraordinary stress. South Koreans work more, sleep less and kill themselves at a higher rate than citizens of any other developed country, according to the OECD. They rank first in time spent online and second to last in spending on recreation, and the per capita birthrate scrapes the bottom of world rankings.
그러나 급전직하한 한국의 가계저축 하락 속도는 전문가들도 비정상적이고 우려스러운 것으로 본다. 이러한 경향은 한국이 산업화가 가져온 풍요와 씨름하면서 사회 전체가 극도의 긴장 상태에 있음을 시사한다. OECD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선진국 중 최장 근무시간, 최단 수면 시간, 최고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다. 인터넷 사용 시간은 세계에서 가장 길고, 여가 활동 지출은 꼴찌에서 두 번째이며 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이다.

 

 

현재 한국 사회는, 이렇게 보이는 거다. 외신의 눈에는. 극도의 긴장 상태. 그리고 그 키워드로 제시된 것이, 경쟁이다. 소비 경쟁, 학업 성취 경쟁 하느라 잠도 여가시간도 희생하고, 돈 드는게 무서워 아이 하나 이상 낳기를 포기하고, 그러다 밀려나면 목숨을 버리기까지 한다. 아무도 행복하지 않고, 누구나 스트레스 속에서 사는. 근데 우리 내부에서는, 이게 정상적이고 상식적이라 여겨지는 삶의 방식이 되어 버렸다.

 

 

이 욕망이,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명박은 그런 욕망을 부추기는 정책만을 내 놓고 있다. 지금 이명박의 정책은, 국가를 위한 정책이 아니다. 저를 위한 정책을 펴고 있는 거다. 저와 함께, 한줌의 가진 이들을 위한 정책. 평생을 그렇게 살아 오다 가장 높은 곳까지 오른 그에게는, 그게 답이겠지. 근데 본인 1인의 사례를 두고, 그분은 대한민국 전체의 미래를 위한 정책을 가늠한다. 시장 상인들에게는 인터넷으로 물건을 팔라고 조언하는 걸 보면, 그가 어떤 마인드로 국정을 다루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소름 돋을 일이다.

 

 

관련 외신 전문 보기

 

 

 

 

 

그러나 정작 이 기사를 쓴 이유는, 이명박식 정책을 까기 위해서도 아니고, 이명박 찍은 이들을 욕하기 위함도 아니다. 그저, 생각만 해도 한숨만 나는 이 깝깝한 상황 속에서, 내가 어찌 살아야 할지 결정한 바를, 이야기 하고 싶다. 여기서부터는 개인적인 이야기다.

 

 

나, 프리랜서다. 작년에 일 많았다. 돈도 좀 벌었다. 쇼핑, 해외 여행, 저축 대신 펀드랑 부동산. 딱 이 기사에 나오는 대로 살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행복하지 않았다. 학생 시절에는 다 같이 가난했는데, 이젠 비교 대상 그룹이 바뀌어 버린 거다. 2박 3일 홍콩여행 다녀 오면 듀브로니크에서 5박 6일 있다 온 친구 때문에 배가 아팠고, 수십만 원짜리 가방을 들면 수백만 원짜리 가방을 든 친구 앞에서 왠지 모르게 주눅 들었다. 
 

 

 


지중해의 진주로 불리는 크로아티아의 듀브로니크..

 

 


날 주눅들게 했던 샤넬 클래식 점보...
백화점 신품가격이 400만원을 넘겨 중고가가 몇 년 전 신품가보다 비싼 기현상으로, 재테크 수단으로도 젊은 여성들에게 인기다.

 

 

비교 대상만 바뀐 것은 아니었다. 그 비교 대상의 가치관 체계가, 그 전까지 알던 사람들과 너무 달랐다. 그래서 일을 더 많이 했다. 퇴근 후에도 다른 재택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주말에도 일했다. 통장이 생전 본 적도 없는 자릿수의 현금으로 넘실거렸다. 그런데도, 벌면 벌수록 불행해졌다. 가까운 사람들과 사이가 벌어져 갔다. 벌면 벌수록 모자랐다. 내가 못 가진 것들이 더 잘 보였다. 지치고 힘들었다. 뭔가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고 느꼈다.

 

 

올해는 일이 크게 줄었다. 불경기였다. 그래서 책을 많이 읽기 시작했다. 알라딘에서 주문하기 시작한 책. 한 달 채 안 되어 플래티넘 회원이 되었다. 아침 저녁으로 조깅도 시작했다. 시사잡지와 인터넷 서점에서 여는 강연회들도 찾아 다녔다. 부모님 모시고 가족여행도 준비해서 다녀 왔다. 답이 보일 듯 말 듯 했다.

 

 

올해 5월, 봄철에 집에서 거의 놀았는지라, 수입이 처음으로 제로인 달이었다.

 

 

 

 

 

그리고는 5월 23일이 왔다.

 

 

 

 

 

며칠을 대한문 앞에 나가 울고, 시청앞 노제에서 서울역까지 따라간 다음, 그리고는 긴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정신이 명료해졌다. 내가 왜 그랬을까, 작년에. 남들과 비교하면서, 초조해 하면서, 한 번도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는데, 그렇게 살지 않았던 시절이 훨씬 길었는데, 고작 몇 년 새에 어느새 그렇게 되어 있었다. 그게 틀렸다는 걸 그 날 확실히 알았다.

 

 

그 전의 불안하고 초조했던 시기에 어느 날 교보에서 제목에 꽂혀서 집어 든 책이 있다. 알랭 드 보통의 불안(Status Anxiety)이다. 여기서 보통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알랭 드 보통 불안 한국판 표지. 불안한 사람들에게 강추.

 

 

"사회적 서열에서 위로 올라가고자 하는 우리의 욕망 뒤에 숨은 가장 큰 충동은 거기서 얻을 물질적 풍요나 휘두를 수 있는 권력보다, 높은 지위로 인해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사랑의 양에 기반한 것이 아닐까. 돈, 명성, 영향력은 그 자체가 목적이라기 보다, 사랑의 상징이자 사랑을 얻을 수단으로서 더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중략)...사랑 받는다는 것은 내가 관심의 대상이라고 느끼는 것, 내 존재를 누가 알아 주는 것, 내 이름이 기억 되는 것, 내 의견을 들어 주는 것, 내 실패가 관대히 받아 들여지는 것, 내 필요를 누가 충족시켜 주는 것을 말한다."

 

 

이 말, 난 참 와 닿았다. 그러니 돈, 명성, 영향력을 위해 살 필요는 애초에 없었던 거다. 굳이 남들과 죽어라 경쟁하지 않아도 사랑 받을 수 있는 거니까. 가족, 친구, 애인, 동료, 내 존재를 알고 존중하고 이해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된다. 적어도 난 그렇게 느낀다. 나만 그런 것도 아닐 거다. 나처럼, 본의 아니게 정부 정책으로 인위적으로 형성된 경쟁환경에 휘말려, 때로 초조하고 불안하고 기죽고 우울했던 사람들 있을 거다.

 

 

그래서 나는 5월 23일 이후 딴지를 다시 찾기 시작했다. 그 날부터 하루도 빼지 않고 왔다. 5월 23일 이후 나는 세상을 사는 방식에 대한 새 프레임을 짰다. 그 때는 어쩔 수 없이 따라가야 할 것 같았던 그 가치관이, 알고 보면 병적이라는 거, 그 경쟁을 초탈해서 나만의 행복을 찾는 거. 그걸 상징하는 게 내겐 딴지였다.

 

 

아파트 평수 늘리고, 아이 사교육 시켜서 성적 오르는 것 보고, 물질적 만족 느끼고, 승진하고. 이런 데서 행복을 찾는 삶의 방식을 부정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런 것도 필요하고, 그런 것만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도 많겠지. 근데 난 아니었다. 그러니 다른 방식으로 행복해 질 길도 보장해 달라는 거다. 이명박은, 자기의 행복의 등식밖에 모르고, 그걸 전국민에게 강요한다. 그래서 니는, 나쁜 놈인 거다.

 

 

오늘은 여기까지.

 

 

 

 


 

 

 

 

 

 

P.S. 먹물님이랑은 술 한잔 했습니다. 그 때 사과드리면서 미처 말씀 못 드린 부분이 있어 여기에 독자 제위께와 같이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제가 먹물님의 글에 대해 문제제기 하면서, 처음에 든 생각은, 글을 쓰는 사람이 자신의 글에 대한 반응은, 무엇이 되었든, 감수할 각오를 해야 한다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제 글 또한 마찬가지 생각으로 올렸습니다. 게시판에 올라오는 비아냥과 욕설을 보면서, 이런 표현을 내가 예상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악플이 올라오리라는 것 정도는 감수하고 있었기에, 참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훨씬 힘들더군요. 아무리 각오 하고 있었던 결과라도. 그 이유에 대해서, 오래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이런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저는 진정으로 소통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제 진정성이 짓밟히는 느낌이 들어서 그렇다고. 그리고는, 먹물님의 글이, 비록 저에게는 불쾌한 구절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 소통의 진정성만은, 제가 짓밟아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고, 그것을 의도적으로 무시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고, 그렇게 마음 깊이 느낍니다.

 

 

제 소통방식의 서투름과 미숙함에 대해, 먹물님과, 제 글을 보고 불쾌감을 느끼셨다면 독자 제위께, 진심으로 머리숙여 사과드립니다.

 

 

딴지 영미권 전임 통신원 헤라 (hera-_-@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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