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쌍용을 바라보며 내일을 한하다 2009.8.5.수요일 술 먹다가 별로 인기도 없는 정치 얘기나 말해 봐야 답 안나오는 사회적 문제를 끄집어내기 일쑤인 탓에 가끔 진지하고 때로는 짖궂은 질문들에 봉착하곤 한다. 대개는 있는 썰 없는 구라 다 풀어서 그 정확도에는 관계없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들이대곤 하는데 종종 "나도 몰라 할 말 없다."로 간단명료하게 정리하는 경우도 생긴다. 최근에 내가 "노 코멘트" 로 깔아뭉갠 질문은 "선배는 쌍용자동차 해법이 뭐라고 생각하세요?"였다. 처음에는 할 말이 많았다. "무조건 정리해고가 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며, 그래서도 안된다. 파업은 노동자의 권리이며 무조건 너 나가 하는 정리해고에 맞서지 않으면 어떤 것과 맞설 수 있을까. 세상에 인질범한테도 물과 음식은 제공해 주게 마련인데 수백 명이 고립되어 생활하는 곳에 물과 의료진의 투입도 거부하는 비인간적인 작태가 어디 있겠으며, 경찰이 새롭게 개발했다는 테이저건이 뭔지 아느냐, 최루액은 스티로폴도 녹여 버리더라......" 쏼라쏼라 청산유수로 얘기하는데 질문자가 답변자의 장광설을 동강내면서 다시 질문을 해 왔다. 순간 말문이 막혀 온다. 쌍용자동차 정문 앞에 감연히 주저앉았던 민주노동당 국회의원들의 가슴에는 "정부가 나서라"는 구호가 붙어 있었다. 정부가 완전히 팔짱을 끼고 될 대로 되라고 실실 웃고 앉은 꼬락서니를 성토하는 것은 매우 익숙한 일이고, 또 해야 할 일이겠지만, 무엇을 하라는 요구를 정확히 들은 기억이 없다. 정부가 무엇을 하면 좋겠다는 구체적인 대안 제시를 들어 본 적이 있었던가? 머리를 쥐어 짜 보지만 이럴 때 기억은 정갈한 마른 수건이 된다. GM대우와 합병해서 국유화하자는 얘기를 들은 듯도 한데, 그건 아무래도 꿈같은 얘기 같고..... "정부더러 뭘 어떻게 하라는 거죠. 만날 대화하라고는 하는데, 정부보고 무슨 수를 내놓으라는 거죠? 공적자금 투입하라는 소리인가요 지금?" "상하이에 판 정부 책임? 그때 쌍용을 왜 상하이가 샀겠냐구요. 아무도 안 사니까 거기까지 순서가 간 거 아니에요. 어찌 되었든 지금 회사가 어렵고 자칫하면 다 망할 판에 구조조정 안할 수 있어요? 뭐 해고는 살인이라고? 넨장, 그렇게 따지면 쌍용 노조도 살인자였잖아요. 비정규직 잘려나갈 때 손가락이나 하나 까닥했었나? 나도 몇 번 죽었네요 그렇게 따지면. 예수보다 낫네. 예수는 한 번 밖에 더 죽었나? 잘리는 놈이 있어야 취직하는 놈이 생기지." 침을 튀길수록 시뻘개지는 녀석의 얼굴을 보면서 안타까움 반 두려움 반 뒤섞인 감정이 뭉글거리며 일었다. 다니던 회사가 망하고, 하루 아침에 실업자가 된 심경을 여러 번 겪었던, "해고는 살인"이라면 몇 번의 살인 피해 전과가 있는 그에게 이미 회사가 어렵다면 당연히 사람은 자를 수 있다는 논리가, 그를 여러 번 칭칭 감아죄었던 대왕오징어의 촉수처럼 유연하고 낭창낭창한 노동의 유연성 주장이 상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은 미치도록 안타까운 일이었다. 흡사 매일같이 두들겨 맞고 살던 불쌍한 아이가 "조선놈들은 맞아야 돼"를 부르짖고 있는 형국이랄까. 나의 안타까움이 녀석의 분노에 기반한다면 두려움은 결코 분노하지 않는 사람들의 그림자 무리에 뿌리를 둔다. 물도 전기도 끊어 버리는 잔인함에도 사람들은 덤덤하다. 테이저건을 뺨에 맞아 살이 썩어가도 의사에게 그 몸을 보일 수 없었던 고통에도 아파하지 않는다. 팔짱낀 팔을 전혀 풀 생각이 없이 정주성의 홍경래군을 포위한 관군들처럼 제 풀에 지쳐 나오기를 기다리는 한편으로 공권력 투입의 땅굴을 파고 있는 정부의 무책임에도 사람들은 분노하지 않는다. 아니할말로 누가 죽어간들 그에 심정적인 일치감을 보여 주지 않을 지도 모른다. 같이 살자는 절규에 공감하지 못하며, 해고는 살인이라는 말에 동의하기엔 이미 저승을 여러 번 넘나든(?) 이력이 버젓하며, 고립된 사람들과 자신의 처지를 동일시하기에는 그 처지가 너무나 다른 이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정주성을 포위한 채 식량 보급을 끊었던 관군은 홍경래군이 쇠약해지기를 기다려 땅굴 속 폭탄을 터뜨렸다. 성벽은 무너지고 성 안의 남자들은 죄다 죽었다. 홍경래도 벌집이 되어 죽었다. 그러나 홍경래는 죽지 않았다는 소문이 팔도에 퍼졌고 가짜 홍경래를 자처하는 사건도 있었다. 그것은 정주성을 사수하던 홍경래군에 대한 믿음과 지지 때문이었다. 기운 모자라고 겁은 넘쳐 정주성에 가지는 못하였지만 저들이 이겨 주기를, 그래서 내 형편도 나아지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바램에서 나온 전설이었다. 그 전설은 80년대 울산 현대중공업에도 살아 있었고, 94년 명동성당에 최초로 경찰이 투입되던 날, 울부짖으며 잡혀가던 KT 노조원들의 머리 위에도 나부꼈었다. 이러나저러나 저들이 이겨야 한다 이겼으면 좋겠다는 바램이 살아 있었고 흔들림이 적었다. 그러나....... 오늘 나의 주위에서 쌍용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왜 이렇게 시커먼 냉기가 흐르는가 . 두려운 것은 이것이 우리의 미래가 아닐까 하는 근심이다. 어차피 비정규직이 다수를 점하도록 노동 시장 재편이 완성된다면 정규직에게로 칼날이 돌아갈 수 밖에 없고, 설마 설마 칼끝이 내 목줄기를 향하랴 안심하던 사람들에게 어김없이 들이닥칠 것이다. 잃을 것이 많은 정규직들인만큼 "해고는 살인"일 수 밖에 없고, 그 저항은 치열하고 장렬할 것이지만, 그 장렬함에 감동받을 사람들의 수는 갈수록 줄고 있다. 그를 응원하기는커녕 잘들 해 보라며 냉소를 머금을 사람들의 머리는 늘고 있다. 그 냉소 앞에서도 나는 잘먹고 잘살겠노라고 배를 내미는 귀족들은 지금도 철을 모른다. (하나만 거명하자면 KT 정규직 노조는 저주를 받으리라. 그들이 언젠가 악다구니치며 싸울 때 나는 기꺼이 그에 가래침을 뱉으리라. 이 개새끼들아. 너희들이 삼킨 피값을 네 자식들이 치르게 되리라.) 고립에 빠진 성만큼 불행한 존재가 달리 있을 것인가. 지금 외롭게 싸우고 있는 쌍용 노동자들을 탓하는 것이 아니다. 어찌 할 수 없을만큼 파헤쳐져 버린 성 주변의 해자가 황망하게 저주스럽고, 그를 메울 뾰족한 수도 없는 현실이 슬플 뿐이다. 구태여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대화로 풀어라"는 공허한 외침 뿐, "이렇게 하자"고 자신있는 대안을 내놓지 못하는 진보가 안타까울 뿐이다. 자 쌍용.....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어떻게 다른 쌍용을 막아야 하나. 노 코멘트 모르겠다 할말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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