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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유진박의 진정한 귀환을 위해

 

2009.8.5.수요일

 

 

<샤인> 이라는 영화 기억하시는가덜.

 

1996년 스콧 힉스 감독에 의해 연출된 이 영화는 호주 출신의 실제 인물인 피아니스트 데이빗 헬프갓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독특한 소재와 연기는 물론, 자칫 음울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밝게 풀어 나감으로써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세계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바 있다.

 

머 줄거리를 복잡하게 설명하는 것은 글의 취지와 맞지 않으니 생략하고(인터넷에서 다 찾아보실 수 있다), 이 영화는 어릴 때부터 음악밖에 모르고 살아온 한 피아니스트가 아버지가 심어 놓은 강박 끝에 찾아온 정신병을 극복하고 다시 뛰어난 연주자가 되는 이야기다. 특이한 소재와 줄거리도 그렇지만 데이빗 헬프갓 역을 맡은 제프리 러쉬의 천진난만하면서 어눌하기도 한 어린애 같은 모습이 인상적이고, 행복이 뭔지 예술이 뭔지.. 이런 것들을 느끼게 하는 영화 되겠다.

 

요즘 자꾸 이 영화가 생각이 난다. 다름아닌 유진박 때문이다.

 

 

요즘 유진박의 상태에 대해 인터넷에서 말들이 많다. 소속사에 대한 문제제기와 현 소속사의 해명, 여전히 회자되는 의혹, 그리고 유진박 본인의 방송 3사 연예프로 인터뷰, 와중에 계속되는 인터넷의 구명 운동.

 

이 복잡한 이야기를 간단히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이 된다.

 

유진박은 과거 나쁜 기획사에 의해 감금, 착취되었고, 이제는 좋은 기획사로 옮겨 왔다고 하는데 여전히 싸구려 무대에 쉬지 않고 오르고 사람 상태도 안 좋은 것 같고 연주에서의 열정이나 번뜩임도 많이 없어지는 등등 문제가 많은 것 같으니 구해내야 한다.

 

근데 사실 구체적이고 명료한 것은 별로 없다. 감금 착취가 어떻게 이뤄졌는지는 유진박 자신이 입을 다물고 있고, 새 기획사 사장 말로는 본인이 원해서 아무 곳에나가서 연주한다고 하지만 실은 기획사가 영세해서 그렇다는 지적도 있고, 키를 쥐고 있다고 할 어머니는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고, 유진박 본인은 그저 음악이나 열심히 할 테니 걱정 말고 지켜봐 달라는 거다.

 

이렇게 사건의 내용이 다소 갈피가 안 잡히는 가운데, 일관된 목소리 하나는 이런 이유들로 인해 유진박이 인간적으로 망가지고 음악적으로 퇴보했으니 그를 나락에서 구출하여 다시 예전의 천재 아티스트로 돌려 놓아야 된다는 거다. 마치 S본부의 긴급출장 SOS 를 연상케 하는 그런 비장함마저 감돈다.

 

근데 말이다. 이게 과연 마냥 이런 걸까.

 

 


 

 

 

유진박은 잘 알다시피 음악밖에 모르는 사람이다. 아주 어릴 때부터 바이올린만을 배우고 또 연주해 온 때문인지 원래 사회성이나 소통 능력이 낮은 편이다. 한때 연주를 함께 한 적이 있는 지인에 따르면 온순하고 착하지만 매사에 결정을 잘 못내리고 어머니에 심하게 의존해서 일반인에게는 이상하게 보일 정도라고 한다. 물론 그간 소속사와의 여러 문제로 인해 더 그렇게 되었겠지만, 원래부터 그런 면이 있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그럼 이제 이런 그의 모습을 바탕으로 놓고, 그 자신에게도 너무나 중요할 음악인 유진박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

 

이 부분은 그의 성장 과정 및 특성을 감안할 때 간과해서는 안 되는 부분임에도 아무도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다. 현재 구명운동이니 경찰 수사니 유진박과 관련된 수 많은 이야기들이 매일 매스컴과 인터넷에서 회자되는 가운데, 여기에 대해서는 그저 천재 음악인 이라는 단 한 마디로 정의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유진박의 내외면을 둘러싼 갈등과 한계가 무엇인지에 대해 음악적인, 또 음악환경적인 관점에서의 접근이 없는 논의는 결국은 수박 겉핥기에 불과한 것이다.

 

 

유진박은 뛰어난 연주자다. 바이올린으로 라이브에서 그런 수준의 즉흥 연주를 때릴 수 있는 아티스트는 국제적으로도 많지 않고, 그로 인해 유진박은 음악계에서의 독특한 입지를 가진 존재다. 특히 무대에서의 열정적인 연주와 몰입은 보는 사람으로 빨려 들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유진박이 처음 등장했을 때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런 그의 모습에 끌렸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자면 이런 그의 음악 자체가 울나라 음악환경에서는 한계로 작용했을 거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사실 그의 연주 스타일은 일렉트릭 기타와 비슷한 느낌이 강하다. 그래서 유명한 데킬라 같은 연주도 그렇고, 전반적으로 그의 음악은 악기는 바이올린이지만 실은 기타 연주 음악과 유사하다. 주법이나 음계 등 많은 면에서 그렇다.

 

그런데 이런 음악이 언제 울나라 대중들에게 지지 받고 상업적 성공을 거둔 적이 있었던가? 넓은 의미에서 유진박과 비슷한 류의 연주 음악을 한(혹은 하고 있는) 밴드나 아티스트는 국내에도 많다. 개중에는 유진박에 필적하는 연주력 – 바이올린은 아니더라도 – 과 무대에서의 열정을 보인 연주자들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에 상응하는 성공을 거둔 적이 없다. 그렇기는커녕 공연과 음반 취입의 기회 조차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물론 유진박에게 천재적인 번뜩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의 음악성 자체를 떠나서, 애당초 그가 대중적으로 각광받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실력이나 음악 보다는 줄리어드 음대 출신이라는 꼬리표와 바이올린이라는 악기, 그리고 대중들의 머리 속에 뿌리 박혀 있는 클래식 음악의 후광이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이런 유진박의 이미지는 상업성을 추구하는 기획사와 이야기꺼리가 필요한 매스컴이 앞장선 결과다. 그리고 상품성과 차별성을 알아본, 나름 고급을 지향하는 각종 티비 음악 프로그램들이 그를 앞다투어 초청하고 무대에 올리면서 그는 처음부터 큰 공연들에 서게 된다.

 

이런 무대에 관객으로 온 사람들 중에는 일반 대중들부터 시작해서 소위 교양을 지향하는 나이 지긋한 정관계 명사나 사회 지도층들도 있었다. 정통 클래식은 지루하고 록은 부담스럽고 재즈는 어려운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유진박의 고급스런 약력과 독특한 이미지는 그 간극을 메꾸어 주는 훌륭한 충전재 역할을 하게 된 거다.



그런데, 과연 이런 것들이 얼마나 갈 수 있을까. 울나라 음악 풍토에서 상업적이지 않은 그의 음악에 대한 이런 대중적 신드롬은 상당 부분 호기심과 허영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었다. 대중음악 바이올린 연주라는 것이 우리나라의 좁디 좁은 음악계 저변 속에서 생명력을 유지하는 데는 처음부터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는 터.

 

냉정하게 보면 한때 그에 관심을 보였던 대중들 중 대부분은 그의 색깔을 즐기고 그가 갖는 상징적 특성을 이용해 문화적 자기 만족을 꾀한 것이지, 진짜로 그의 음악을 사랑한 거라고는 말할 수 없다. 결국, 데뷔 초기 유진박의 신드롬은 상당 부분 거품이었다는 말이다.

 

초기의 열광이 가신 후 이런 거품은 조금씩 꺼져 갈 수 밖에 없는 일이다. 유진박의 가장 큰 개성인 즉흥 연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들에게, 사실 다 비슷비슷하게 들리는 그의 연주가 계속 공감을 끌어낼 수는 없고, 따라서 CD를 사거나 앰피쓰리로 늘 그의 음악을 듣고 다니거나 매번 공연을 보러 가는 식의 진짜 대중성으로도 성장할 수 없었다.

 

이렇게 보면 유진박의 음악적 행보는 실은 첫 단추부터 잘못 꿰진 거다. 그의 음악적 성향으로 보건대 지금 같으면 EBS 공감 같은 곳에 출연해서 차분하게 시작했어야 어울릴 사람이다. 그러나 초기에 너무 줄리어드 음대 운운하면서 거품을 만들어 버리고 큰 무대에 세워 버렸다. 머 당시는 버클리 음대에서 공부하면 그 자체만으로 영웅시 되던 시절이니 10세에 줄리어드에서 전액 장학금을 받았다는 유진박은 말할 것도 없는 일이다.

 

하지만 대중과 매스컴의 관심이 식고 처음처럼 큰 공연이나 주요 티비 음악 프로그램에 자주 출연할 수 없는 여건으로 바뀌어 가면서, 결국은 턱없이 영세한 공연이라도 마구잡이로 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게 된 거다. 아무리 기획사가 나쁜 넘이라도 큰 무대에서 장사가 된다면 굳이 소속 음악인을 시골 행사로 뺑이 돌릴 이유는 없는 것이다.

 

동시에 크로스오버로서 어디에도 속하기 어려운 그의 음악과, 특유의 어린애 같고 자폐아 같기도 한 성격적, 인성적 특성은 그를 더욱 외톨이로 몰아세우게 된다. 한국말도 잘 하지 못하고 사회성이나 소통력도 부족하고, 와중에 음악적 동료나 선후배간의 도움과 격려도 거의 없는 이런 상황에서라면 결국은 기획사에 휘둘리고 지배당하는 상태로 갈 수 밖에 없다.

 

결국 유진박의 현재의 몰락 역시 이런 맥락에서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전 기획사 사장을 보면 여가수 성폭행 건 등 객관적으로 문제가 심각한 게 분명하고 그들을 옹호할 생각은 눈꼽만치도 없지만, 한편으로 유진박을 국민적 영웅처럼 띄워놓고 얼마 안 가 버린 것은 그들 이전에 냉정한 매스컴과 대중이라는 점을 마냥 간과해서는 곤란하다는 말이다.

 

사실 유진박이 클래식을 버리고 대중음악의 길을 걷기로 마음먹었을 때부터 어쩌면 이런 문제는 예정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대중음악계의 속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덤벼든 이 바닥 자체가 유진박의 특성과는 맞지 않았던 건 아닌가.

 

앞서 등장한 <샤인>의 주인공인 데이빗 헬프갓은 클래식 연주자다. 클래식 연주자의 가장 큰 덕목은 기존에 존재하는 곡을 훌륭하게 연주해 내는 것이다. 물론 해석이라는 창조적인 부분이 관여하지만, 이미 있는 곡, 또 오래 쳐 온 곡을 연주한다는 점에서 어린애 같은 정신 상태에 있는 사람도 비교적 쉽게 집중할 수 있다. 그리고 클래식 음악의 수요와 저변은 생각보다 상당히 넓고, 그와 같은 독특한 이력이 장점이 될 수 있다(실제로 되고 있다).

 

그러나 대중음악가 유진박은 다르다. 일단 그에게는 타겟으로 삼을 청취자/관객층이 불명확하다. 초기의 호기심을 넘어서서 자기만의 음악세계 속에서 아티스트로 우뚝 서기 위해서는 그의 음악을 계속 사랑하고 지지하는 두터운 팬 층이 있어야 하는데, 무의미한 거품들 속에서 그것을 창출해 낼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또한 대중음악가는 새로운 음악과 스타일을 통한 창조와 혁신을 위해 끝없이 고민을 해야 한다. 그러나 유진박의 음악은 1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거의 차이가 없다. 굳이 유진박이 아니더라도, 이런 식으로는 어떤 대중음악가도 긴 생명력을 가질 수 없다.

 

인터넷을 보면 과거의 동영상과 비교하면서 지금의 유진박 연주가 20대 때에 비해 열정이 많이 떨어졌다고 하는데, 물론 그간의 어려움이 많은 영향을 미치기도 했겠지만 한편으로는 나이를 먹었기 때문에 그런 거다. 20대 초반의 열정과 에너지를 가진 연주자와 30대 중반을 향해 가는 연주자의 연주가 서로 같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과거와는 다른 방향으로 발전하고 성숙해 갈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예전과 거의 같은 스타일에 정체된 상태로 심신이 피폐해지고 또 나이까지 들면서 연주의 힘이 빠져 버렸기 때문에 더 망가져 보일 수 밖에 없다. 이것은 좋은 기획사나 처우 문제를 떠나 음악인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따라서 유진박을 현 상황에서 구출하기만 하면 다시 예전의 그 유진박으로 돌아올 거라는 발상은 그간의 세월과 이런 모든 음악적 환경, 여건 등을 고려하지 않은 환상에 불과하다. 노력을 통해 음악적으로 과거의 분위기를 회복한다 하더라도, 대중의 음악적 취향이 여전히 그를 원하지 않는다면 초기의 화려한 입지까지 회복될 리는 더더욱 만무한 일이다.

 

 



 

 

 

 

아마도 전 기획사는 유진박의 독특한 정신세계와 음악성을 이해하거나 북돋워 줄 수 없는 넘들이었을 거다. 커뮤니케이션이 어려운 상대에 대한 짜증과, 떨어져가는 대중의 관심 등이 점차 학대에 가까운 태도를 만들어내고 또 습관화한다. 마치 말이 잘 안 통하는 외국인 노동자를 대하듯 사람을 부려먹으며 학대하고 그 행동을 스스로 정당화 하는 거다.

 

이건 잘못된 것이고 위법적인 부분들을 확인하고 필요하다면 처벌을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한대로 매스컴과 대중의 유난스러운 띄워줌과 이어진 무관심이 이런 상황의 단초를 제공한 면이 있다는 것, 그리고 이런 부분이 해소되지 않는 한 다른 누구와 일을 한다 한들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비슷한 문제들이 계속 반복될 소지가 높다.

 

지금의 새 기획사 역시 영세한 공연을 계속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부분은 일정 정도 증명이 된다. 비록 유진박이 어떤 공연이라도 하고 싶어한다지만, 아마 사실이겠지만, 한편으로 과거의 명성에 어울리는 무대에 세워 줄만큼 그의 음악에 대한 수요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은 근본적인 한계로 작용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영세한 기획사로서는 어떻게든 유진박을 통해 수익을 창출해야만 한다는, 가장 근본적이고도 현실적인 음악과 돈이라는 수렁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전 기획사의 감금설 등도, 실제 자물쇠를 걸어 잠근 감금이냐 아니냐는 유진박 같은 사람에게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약간의 위협적인 말과 정신적 부담을 지워주는 것만으로 감금의 효과를 충분히 냈을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유진박은 스스로 자기 상황을 타개해 나갈 능력이 없는 사람이고, 그를 계속 행사에 내몰고 또 곁에 붙잡아 둔다면 그것 자체로 감금이나 다름 없다. 이런 부분 역시, 의도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새 기획사와도 결국 비슷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인터넷상의 구명 운동도 모호하기 이를 데 없다. 수사를 해서 전말을 파헤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래서 머 요양을 시키자는 것도 좋으나 예술가의 정신적 문제는 그저 그런 데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샤인의 주인공 헬프갓 역시 아버지에게서 받은 강압이 그 기저의 원인이긴 했지만 실제 쓰러지게 만든 방아쇠를 당긴 것은 라흐마니노프의 협주곡 3번이었다. 그 연주를 마친 후 음악적 목표를 상실하고 긴장이 풀리면서 소진되어 버린 것이다.

 

결국, 인간 유진박을 구하는 것까지는 그리 어렵잖게 가능할지 모르지만 천재 유진박을 되찾아 오는 것은 수사나 구명운동 같은 식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여기에는 개인의 음악적 에너지의 창출과 예술적 혁신의 부분과, 울나라 음악환경과 대중의 취향, 시스템의 문제가 뒤섞여 있다.

 

그런 관점에서, 유진박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아무래도 군소 행사장을 돌며 아무 공연이나 하고 다니는 건 아닐 것이다. 그에게는 일단 정서적 안정을 취할 수 있는 휴식과, 다소간의 정신과적 치료가 필요하다. 미쳐서가 아니라 지난 몇 년간의 몰락과 학대 속에서 정신적인 외상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기획사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 자체를 꺼리는 모습은 그런 증거로 봐도 무방하다.

 

그러나 현재 기획사와 어머니를 포함해 주변 사람들은 이 특이한 사람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 줘야 하는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그저 외적인 문제들에서 구출해서 다시 음악을 시키기만 하면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면 내면적으로 더 힘든 상태로 빠져들어갈 공산이 크니 하루 빨리 전문가를 찾아 조언을 듣는데 망설이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예술가로서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서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휴식과 치료를 하면서 새로운 음악적 영감을 받을 수 있는 다양한 계기가 주어져야 한다.

 

예컨대 국내외 음악인들과의 교류와 잼 연주, 제 3세계 음악 여행 등을 통한 새로운 활로를 추구함으로써 그가 맘 편한 상태에서 음악적 자극과 영감을 받을 수 있는 계기들이 필요하다. 줄리어드 같은 꼬리표나 과거의 영광의 속박에서 벗어나 음악적으로 발전하고 음악으로 행복할 수 있도록 주변에서 도와야 하는 거다.

 

그런 부분에 대한 배려가 없이 아티스트 유진박의 진정한 귀환은 기대할 수 없다. 데이빗 헬프갓이 10년간 정신병원에서 수감되었다면 유진박은 지난 10년간 스스로와 주변, 매스컴과 대중이 합작해서 만들어 놓은 감옥에서 살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따라서 이제 우리도 그가 예전의 화려하고 큰 무대에서 서던 모습 그대로 돌아오기를 바래서는 곤란하다. 그는 자신의 음악이 어울리는 곳을 찾아야 하고, 그 속에서 생존하는 방법을 체득해야 한다. 필자는 이를 위해 시골 행사장을 찾아 다니는 대신 소극장에서의 중장기 공연을 제안하는 바이다. 기획만 잘 한다면 음악적으로도 가치를 찾을 수 있고, 대중과도 호흡하며 아티스트 스스로 즐길 수도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여하튼 중요한 것은 인간 유진박도 살고, 아티스트 유진박도 살고, 또 그래서 울나라 음악도 보다 풍요로워지는 쪽으로 새 방향을 잡아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걸 위해서 유진박과 주변은 과거의 영광에서 자유로워야 하고, 우리는 망가진 천재에 대한 일시적인 동정심에서 벗어나야 한다. 버릴 것은 버리고 잊을 것은 잊자는 거다.

 

대신 작더라도 그에게 맞는 무대를 만들어 주는 것, 그리고 그런 공연을 하게 되면 거기에 많이 가 주는 것, 그런 게 유진박을 돕는 진정한 길이다. 안그러냐.

 

 

딴지 논설위원 파토 (patoworl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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