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좌 오딧세이 AV편] 13화 : 음지의 국민여동생 츠츠미 사야카 2009.8.5.수요일 "그냥 제가 아느냐 모르느냐 그겁니다." 그러니까 지난 달 있었던 딴지일보 필진 및 편집부 회식자리에서다. 누군가 내게 본좌 오딧세이 AV편의 선정기준에 대해 물었고 나는 저렇게 답했다. "판매량과 인기순위에 기초한 자료를 놓고 객관적인 분석과정을 거쳐 선정 합니다" 하는 그럴싸한 말로 눙치기엔 나는 비교적 솔직한 사람인가보다. 가운데에 서서 붓을 잡은 사람(史)의 자세를 운운하며 그럴듯한 출사표를 던졌건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일단 뭐라도 한마디 덧붙이자면 그이에 대해서 아는 바가 있어야 할 것이며, 알려면 관심을 가져야하며, 관심을 뒷받침하는 것은 모름지기 애정이다. 물론 예외 없는 법칙 없듯이 가카처럼 애정이 없어도 관심을 가지게 만드는 특별한 이들도 있지만 지금은 덮어두자. 사관(史官)이 아무리 올곧기로 노력한들 그의 붓은 가감과 선택을 통해 현실을 굴절시키는 렌즈로 작용하기 마련이다. 더욱이 이 일본산 포르노 시장이란 야구 같이 객관화된 스탯을 남기지도 않고 상대전적이라도 뽑을 수 있는 링 스포츠와도 다르다. 판매고와 인기투표 같은 기록은 공신력을 기대하기 어려우며 그마저도 드물다. 어느 분야보다도 보는 사람의 취향에 기대어 기울어지기 쉬운 그런 영역이다. 본좌 오딧세이 AV편은 분명 충용무쌍 이라는 렌즈를 거쳐 왜곡된 형상이다. 그래서 나는 츠츠미 사야카(堤さやか)를 소개한다. 나는 사야카를 몹시 아꼈다. 아니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사랑했다. 그래, 까놓고 말해서 분코 이후 내가 정말 마음을 줬다고 할 만한 여자가 사야카였다. 그때 앓았던 사랑의 열병은 지금은 알알이 맺혀 서랍장 깊숙히 묻어둔 CD자켓 속에 원반으로 남아있다. 글을 준비하면서 다시 꺼내보니 네임펜으로 꾹꾹 눌러쓴 Sayaka Tsutsumi라는 글자가 새롭다. 정말 정성껏 열심히도 모았구나. 어디가 그렇게 좋았던 걸까. 그때 당시 막 기지개를 켜던 一本道(1pondo)의 배너에서 처음 만난 작고 귀여운 그녀에게 난 그냥 첫눈에 반했던 것 같다. 작은 체구에 호리호리한 팔다리. 블레이저 코트와 넥타이로 이루어진 교복을 차려입고 빙그레 웃던 그녀는 정말 귀여웠다. S A Y A K A T S U T S U M I. 당시 일어를 전혀 몰랐던 나는 알파벳으로 그녀의 이름을 각인시켰고 이후 틈만 나면 구루구루에서, 지니에서, 당나귀에서, 야후에서 이 알파벳 14자를 타이핑 하는 것으로 소일했다. 그 와중에 정말 잊지 못할 따뜻한 일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더욱 더 그녀를 아름답게 추억하는 것 같다. 때는 2001년 겨울. 지금이야 웹하드를 통해 서로 말 한마디 섞지 않고 금전을 매개로 한 배포가 일어나는게 일반적이지만 국내에 AV공유가 기지개를 켜던 그 당시에는 모양새가 사뭇 달랐다. 오늘날에는 금전적 보상을 제공하기에 다운로더가 마치 소비자의 입장에서 편리를 누리고 살지만 당시의 [ 교환 ]은 복잡한 절차와 의사소통 과정을 필요로 하는 고된 작업이었다. 먼저 인스턴트 메신저나 P2P 대화방을 통해 서로 관심분야가 비슷한 이들을 물색한다. 일단 상대의 내공을 가늠해 본 뒤 붙어볼만 하다 싶으면 내가 가진 파일 목록이 적힌 문서 파일, 이른바 리스트를 교환하고 눈치를 살핀다. 상대방의 목록에 서로 필요한 걸 발견했다면 이제 인스턴트 메신저나 구루구루와 같은 파일 공유 프로그램을 통해서 파일을 주고받는 것이다. 당시 국내 인터넷 서비스의 대다수를 차지하던 ADSL의 업로드 속도는 프리미엄 서비스라 해도 초당 100Kbyte를 넘기기 어려웠다. 하여 공유와 교환은 단 한편을 해도 한나절을 꼬박 잡아먹는 대공사였으니, 교환 상대를 물색하는 일은 신중하게 이루어졌고 파일의 확산과 이동은 늦을 수밖에 없었다. 자연히 이용자들 사이에서는 소장작의 숫자에 따른 계층분화가 뚜렷해졌고 서로 층위가 다른 이들끼리 이해가 맞아 교환에 이르는 경우가 드물었다.
당나귀에서 다운 받은 파일 하나로 시작해서 마치 계란을 부화시켜 병아리가 되면 병아리를 키워 암탉이 되고, 암탉이 다시 알을 낳고, 그걸 팔아 돼지를 사고, 돼지가 새끼를 치면 소를 사고.....하는 식의 연쇄도 가능하겠지만 어디까지나 이론상의 일이다. 이른바 하수들이 가진 파일들의 원 출처는 고수들이었고 고수들은 서로 소장규모가 비슷한 고수들끼리만 통했다. 파일 리스트가 자신의 부분집합인 하수에게 아무런 대가없이 전송에만 하룻밤을 꼬박 지새는 무료 배포를 해줄 사람은 없었다. 만약 남들이 가지지 못한 레어한 파일을 가지고 있다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레어 파일들 또한 이른바 최초 업로더로 불리는 베일 속의 거물들과 그들을 둘러싼 고수 집단을 통해서 흘러나오기 마련이니 더더욱 가능성 없는 이야기였다. 야동많이 가진게 곧 벼슬이었던 시대, 친절한 고수란 있을 수 없었고 하수가 고수로 발돋움 하기란 개미로 시작해 주식시장에서 성공하기와 비슷한 일이었다. 그 추운 겨울, 나와 사정이 비슷한 다른 하수 들과 근근히 공유하며 틈틈이 당나귀를 돌려 일루젼(Illusion)이나 택배여고생(宅配コギャル) 같은 흔하디 흔한, 고수들이 먹다 남긴 부스러기를 긁어모으고 있었다. 가슴속에는 나도 제대로 된 츠츠미 사야카의 풀버젼(!)을 보고 싶다는 열망만을 안은 채. 그때 만난 어느 귀인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와 나는 리스트의 크기부터 달랐다. 원래 이 정도 격차면 리스트를 확인해 보기도 전에 저쪽에서 즐~을 외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행여나 내가 가진 빈약한 리스트중에 그가 원하는 파일이 하나 있을지도 모르지 않은가하는 생각으로 달라붙었다. 더군다나 이 사람은 리스트에 [Bukkake] Sayaka Tsutsumi - White Desire 라는 대단한 파일을 가지고 있었다. 세상에.. 사야카가 말로만 듣던 부카케를 한다는 건가. 그렇다면 절대로 놓칠 수 없다. 난 저걸 봐야만한다! "만약 white desire를 주시면 제 리스트에 있는걸 두편이나 세편도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그런 나의 바람과는 상관없이 나의 리스트는 그의 기준에는 턱없이 함량미달이었다. 아쉬움을 달래며 그냥 돌아설 수는 없어 그때부터 나는 거의 매달리다시피 했다. "혹시 요즘에 찾고 계시는게 있으시다면 저한테도 알려주세요. 한 마리 가련한 중생의 필사적인 몸부림을 잠시 살펴보던 그이는 이윽고 믿을 수 없는 말을 타이핑했다. "허.. 정성이 대단하신데.. 뭐 그냥 드리죠" 난 내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예? 뭐라구요? "오늘밤에는 딱히 교환할 사람도 안보이고 그냥 잘 것 같은데 뭐 그냥 드리겠습니다. 재밌게 보세요." ADSL의 살인적인 업로드 속도를 뚫고 밤을 넘어 도착한 사야카 츠츠미의 부카케. 전송을 마치고 재생버튼을 누르는 순간, 마치 모니터 건너편에서 따스한 온기가 전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온기는 사야카의 체온인가 아니면 어느 관대한 무명객의 온정인가? 누군가의 체온이 담긴 야동을 받아본 어느 겨울밤이었다.
그러나 내가 이런 개인적인 경험과 사심만으로 그녀를 본좌대열에 추대하는 것은 아니다. 굴절의 범위는 쟁쟁한 후보들 사이에서 어느 쪽으로 점 하나를 찍을 것인가 그 정도 수준이다. 앞서 사관의 기울어짐을 이야기 했던 것은 결코 함량미달의 후보를 은근슬쩍 본좌오딧세이에 무임승차 시키려는 사전공작이 아니다. AV사에 있어서 사야카의 위치는 충분히 한 시대를 풍미한 본좌로 불릴 만하다. 지난 시간 알아본 뉴 밀레니엄의 인디즈 혁명과 더불어 2000년대 초 두드러지는 AV시장의 경향은 로리(Lolita)들의 강세다. 가냘픈 몸매에 동안을 자랑하는 여자들이 대거 인기를 끌며 이른바 로리붐 시대라 불리는데 이 시기를 대표하는 얼굴들에 나가세 아이(長瀬愛), 카사기 시노부(笠木忍) , 노조미 모모이(桃井望), 와카나이츠키(樹若菜), 그리고 츠츠미 사야카가 있다. 인기의 외적 요인으로 당시 일본 사회 전체가 모닝구무스메를 위시한 미소녀 아이돌 그룹의 최전성기 였음을 지적하는 이들도 있지만 지난 시간에 살펴본 AV시장의 지각변동에 맞물린 내적 요인이 더 크다고 본다. 과거 셀비디오 계열의 AV아이돌들이 변화하는 시장구조에 적응하지 못하고 나가떨어지고 있을 때 이들은 도그마와 같은 인디즈 레이블은 물론 박소(薄小)라 불리는 거의 불법적인 극소 모자이크의 신생 스튜디오나 해외에 팔릴 노모자이크물에도 출연하는 왕성한 활동력을 과시했다. 시장의 변동과 공백기에 스스로 비주류에서 주류로 딛고 올라섰다고 평할 만 하다. 당시에 별도로 미니모니(ミニモニ) 계로 일컬어 질 정도로 이들의 인기는 뛰어나서 츠츠미 사야카와 나가세 아이, 와카나 이츠키, 노조미 모모이가 4인조 아이돌 그룹 Minx를 결성해 음반 취입도 했을 정도다.
하지만 이들의 승승장구는 2002년 가을 minx의 멤버였던 노조미의 급작스런 변사와 함께 기세가 꺾인다. 더 나아가 이듬해 나가세 아이와 츠츠미 사야카가 차례로 AV활동 자체를 그만두면서 상황은 악화된다. 애틋한 우정을 과시하던 동료의 변사와 급작스런 은퇴. 최정상에서 갑자기 갈곳을 잃어버린 minx의 이야기는 다음시간 누가 노조미 모모이를 죽였나 에 이어서 알아보도록 한다. 동료의 갑작스런 죽음을 추스릴 사이도 없이 허겁지겁 업계를 떠난 츠츠미 사야카. 이후 그녀는 수면 아래서 잠잠히 있다 블로그를 개장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얼마 가지 않고 잠정적으로 업데이트가 중단. 그 때 등장한 블로그가 하나 있었으니 자신을 자칭 뒷세계여자(裏おんな: 우라온나)라고 지칭하는 묘령의 여인의 블로그.
사야카의 블로그가 업데이트가 중단되고 우라온나가 등장한 시점이 일치하는 점, 본인이 AV배우 출신이며 듬성 듬성 회고하는 이야기가 minx시절을 지칭하고 있음을 들어 많은 이들이 이 우라온나가 츠츠미 사야카의 또 다른 닉네임임을 어렵잖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작년 하반기 이후 오랫동안 업데이트 되지 않다가 지난달 초, 근 1년만에 업데이트된 포스트는 집요한 스토커에 대한 분노와 지친 심신을 토로하는 글이어서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천진스러울 만큼 귀여운 얼굴로 부카케, SM, 노모자이크, 야외노출을 종횡무진 하던 음지의 여동생 츠츠미 사야카. 프로필에 따르면 1980년생이니 이제 그녀도 우리 나이로 서른이다. 하지만 나에게 생애 최초로 체온이 담긴 따뜻한 AV를 선사해준 그녀가 여태껏 순탄한 삶을 살고 있지 못한 것 같아 가슴이 아플 따름이다. 어렵겠지만 그래도 남은 시간동안 그녀가 행복하길 바란다. 서른이 넘고 마흔을 넘겨도 영원히 젊은 날의 여동생일 그녀의 행복을 위해 이 글을 바친다.
충용무쌍(dbscnddyd@naver.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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