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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이야기] 그대 아직 가지마오

 


2009.8.14.금요일 

 

 전라도는 원죄다

 

 어느 날 술자리에서 김현은 “ 전라도라는 것은 원죄(原罪)야 ” 라고 말했다. 내가 깜짝 놀라 그의 얼굴을 보았을 때 그는 잔잔히 웃고 있었다. 나는 왜 그런지 그가 울고 있다고 느꼈다.

                                         -김인환, 글쓰기의 지형학 - 김현論(1988)

 


 선생(영문학자 김우창 前 고려대학교 교수)을 한국 최고의 지식인이요 양심으로 존경하고 있는 나로서는 선생이 한국정치의 가장 중심적인 사안이라고 할 수 있는 호남지역 차별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하는 것은 평소 궁금하게 여기던 것 중의 하나였다. 더욱이 선생은 전라남도의 함평 태생으로 광주서중과 광주고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로 진학한 전라도 사람이 아니던가? 역시 미국 사회과학연구원 일로 미국인 교수들과 회의를 가졌을 때였다. 회의 막간에 한국정치와 지역문제에 대해 얘기하던 중 한 미국인 교수가 불쑥 선생의 고향은 어디냐고 물었다. 선생은 대답하기를 "나는 파리아도(pariah province-천민賤民의 도道라는 뜻) 출신이다"라고 대답했다.
 그 말은 가슴을 때리는 어떤 것이었다. 이후 나는 호남문제를 생각할 때면 자주 선생의 그 한마디 말이 떠오르고 그것은 나를 슬프게 하고는 한다.

             -최장집, <궁핍한 시대를 넘어서 이성적 사회를 향하여>(1996)

 


 전라도 사람에 대한 편견이 얼마나 부당하고 근거 없는 것인지를 나는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내가 전라도 사람이라는 것 때문에 그런 일이 구차하게 느껴지고, 이내 내가 ‘중립적인’ 관찰자가 될 수 있는 일로 관심을 옮기게 된다. 내가 전라도 원적자라는 사실은 때로 정치에 대한 내 발언도 굴곡 시킨다. 김대중을 비판할 때 내 목소리는 높아지고, 김대중을 옹호할 때 내 목소리는 잔잔해진다. 나는 지금도 김대중에 대한 지지를 공언하는 것이 부담스럽다. 그 지지를 내가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 때조차 그렇다.

                                                         -고종석, 서얼단상(庶孼斷想)

 


 머리통을 동학농민전쟁의 역사로 채워가며 나는 난생 처음 겪는 지적 체험에 감격했다....그 뒤로 나는 전라도 사람임을 자랑하게 되었다. 묻지 않아도 내가 전라도 사람임을 밝혔고, 특히 전라도 출신을 꺼릴 법한 상대나 자리라면 반드시 내 고향을 밝혀 상대를 당황하게 만들어야 직성이 풀려하곤 했던 것이다.

                                                                -김규항, 칭찬의 가족사
                                   

 

 

 

호남에서 태어난 것은 원죄다. 목포 출신의 평론가 김현의 표현 그대로 대한민국에서 전라도 인으로 태어난 순간 원죄라고 부를 만한 굴레에 속박 당하게 된다. 자의든 타의든 전라도 인으로 분류된 이들은 자신의 출신성분에 대한 자각을 안고 살아가게 되는데 김현과 김우창의 경우처럼 이것은 자학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고종석처럼 고통스러운 침묵으로 삭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더러는 김규항과 같은 적극성으로 표출된다. 이 원죄는 전라도 혹은 전라도 놈(사실 전라도 人이라는 표현보다 좀더 정확하고 솔직한 진술아닌가)으로 대표되는 여러 고정관념들이다. 김대중, 5.18, 빨갱이, 깽깽이, 농업지역, 후진성, 빈곤, 소수파, 범죄, 깡패, 사기꾼, 음흉함, 배반 과 같은 호남에 대한 편견들. 이것이 바로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원죄가 된다.
 
 이 원죄의식의 기원과 잘잘못을 가리는 것은 이번 글의 지향점이 아니다. 이미 여러 차례 서로 다른 사람들의 손에 의해 발표된 많은 사회학적, 역사적 지표들은 호남 차별로 대표되는 지역갈등 문제가 비교적 짧은 시간 내에 일부의 정치적 선동에 의해 조작, 심화된 경향이 크다고 말해준다. 대한민국 정부 직전 조선왕조의 경우 호남차별 정서는 눈에 띄지 않았고 서북민에 대한 차별이 가장 대표적인 지역감정이었다. 한국전쟁과 남북 분단이후에는 소위 “38따라지”로 불리는 이북민에 대한 배타적 정서가 주된 지역감정의 흐름이었고 호남은 핍박의 대상이 아니었다. 63년, 67년 대선에 호남의 박정희 지지율은 50%를 넘겼을 정도로 특정 지역 후보에 대한 몰표 현상은 없었고(이는 경북의 지지율 55.65%에 준하는 수치다.) 71년 9대 대통령 선거와 3선 개헌을 기점으로 김대중을 견제하기 위한 정치적 공작의 일환으로 반호남 정서가 유포되었다는 것이 정설이고 통설이다.

 


실재의 영토 호남, 상상의 인종 전라도놈

 그래서 호남 차별은 여러모로 논리적 일관성을 갖추지 못할 때가 많다. 짧은 시간을 두고인위적으로 주입된 이데올로기라라는 증거다. 예를 들어 호남(湖南), 호서(湖西), 영남(嶺南), 관북(關北)과 같은 지역분류는 지리적 구분을 의미한다. 기후적 등질지역이 쾨펜의 기후 구분처럼 정확히 선긋듯 나타날 수 없듯이 본래 호남이라 하여도 금강 일대의 남부, 지리산 서쪽지역을 뭉뚱그려서 나타내는 일종의 문화적 등질지역 구분과 비슷해야 정상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일상적으로 호남 문제를 다루면서 사용하는 용어, 호남은 자로 잰 듯이 정확하게 구분한 행정구역상의 경계, 전라북도와 전라남도를 말한다. 그것도 아주 명료하게. 섭생이나 언어적, 지리적으로는 영남과 호남의 점이지대라고 할 수 있는 전북 남원이나 전남 광양 같은 지역도 철저하게 행정구역상의 분류에 따라 호남으로 취급된다. 그리고 당사자와 외부자 모두 자신을 전라도로 규정한다.

 

 그러나  “호남인”에 대한 정의는 지리적 구분과 반대다. 과연 어떤 사람을 호남인으로 정의내려 지는가? 여기서 차별의 대상인 호남인은 “상상속의 인종” 이된다. 단일민족 담론의 생물학적 허구성과는 별개로 한국인은 서로 인종적 특질이 상동하며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 인종적, 언어적, 문화적 특질이 단일화 된 국가에서 미국과 같은 다민족 사회의 인종문제나 인도와 같이 다양한 언어가 통용되는 사회에서의 언어권에 따른 대립문제가 나타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따라서 한반도내 호남인을 타자화 하는 작업을 위해서 사람들의 의식위에 ‘상상의 인종 호남인’을 덧씌울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 호남인을 규정하는 방법이다.

 

  호남인은 어떻게 규정되는가?  우리에게 잘 알려진 호남 출신의 저술가, 문필가들의 예를 들어 살펴보자. 먼저 한국일보 논설위원이며 장편 <기자들>, 단편집 <엘리야의 제야>로 알려진 언론인 고종석 씨를 보겠다. 그이의 출생지가 서울인 점을 주목해보라. 출생지에 따라 구분을 하자면 고종석은 서울 사람이 된다. 그러나 고종석은 실향민으로 전주에 내려온 외가와 전주 토박이인 친가 사이에서 태어난, 호남에 호적을 둔 호남 원적자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서울에서 태어나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호남인으로 분류되었고 자신의 지역적 정체성을 한국의 서얼(庶孼)로 자각하게 되었다.

 

 전북대 신방과 교수인 강준만의 경우 서북민 출신인 아버지의 원적을 따른다면 황해도인이 되어야한다. 그러나 그는 전남 목포에서 출생했고 현재 전라북도에 소재한 국립대학교에서 재직중이다. 이걸 보고 제3자와 본인 모두가 그를 전라도인으로 분류한다.

 

 김규항은 전북 태생이지만 군인 아버지를 따라 남한 내 비행장이 있는 고장에서는 다 살아봤다고 술회한다. 그가 전라도에서 거주했던 기간은 타지에서 거주했던 기간보다 오히려 짧았다. 그러한 그는 어린 시절 대구에서 받은 기괴한 칭찬을 잊지 않는다. “김 상사 네는 전라도 사람 같지 않아.”  

 

 김현과 김지하, 김우창의 경우는 출생지가 전남이라는 이유로 전라도인으로 분류된 가장 일반적이고 대표적인 사례다. 그렇다면 대체 전라도인의 기준은 무엇인가? 출생지인가, 호적법상의 등록인가, 성장기를 보낸 곳인가? 그 기준이 굉장히 모호하다. 이는 전라도인을 규정하는 원리가 “인종차별적이며 신분 질서적” 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아래의 인용문을 살펴보자.

 

 

 김영삼은 지역구도를 혁파할 수 없는 무능력자가 아니라, 정반대로 지역구도를 정략적으로 악용하는 길을 걷고 있다. 94년 12월에 단행된 개각과 차관 인사가 그 생생한 증거다.
 국무위원급과 차관급 48명 가운데 호남 출신은 장관1명, 차관2명해서 단 3명이다! 벼룩도 낯짝은 있었던 것인지, 그래 놓고선 어린 시절 전남 장성에서 잠시 살았다는 외무장관 공로명과 남편의 고향이 전북 익산이라는 정무2장관 김장숙이 호남 출신이란다. 청와대가 각 언론사에 전화를 걸어 호남 출신 장관은 1명이 아니라 3명이라고 정정을 요구했다니, 도대체 이게 무슨 짓인가!

 

-강준만, 김대중 죽이기 [ 기술자로 전락한 정치평론가 ] 개마고원-

 

 중요한 점은 94년 내각인사의 부당함이 아니라 외무장관 공로명과 정무2장관 김장숙을 호남출신 인사로 정의한 청와대측의 논리다. 언론과 호남의 반감을 무마시키기 위한 미봉책이었든 기저에 깔린 무의식을 대변한 태도였든 호남인을 규정하는 ‘인종적이며 신분제적인’ 요소가 잘 표현된 사례다. 한마디로 호남인으로 분류되는 명료한 기준이 없다. 호남인의 분류법은 신분적으로 따지면 조선시대의 노비제도 일천즉천(一淺卽踐)과 마찬가지로 호적, 출생지, 거주지 심지어 친인척관계에 호남과 관련된 사항이 끼여들면 무조건 호남인으로 규정된다. 이는 물라토(Mulato), 쿼드룬(quadroon), 옥타룬(octoroon) 할 것 없이 모두 “흑인” 으로 묶는 유색인종 논리와 같다. 한 사람의 친인척 관계와 사회적 관계를 종합해 봤을 때 그에게 호남인으로 비칠만한 요소가 10%라고 해보자. 10%는 전체에 비교해 봤을 때 극히 일부분이지만 호남적 요소가 10%밖에 안 되기 때문에 그는 비 호남인이 되는게 아니라 그 10% 때문에 호남인이 된다. 이렇게 황해도 사람일 수도 있는 강준만과 서울 사람으로 보이는 고종석과 대구 사람이 될 수도 있었던 김규항이 모두 다 같은 “전라도인”으로 묶인다 . 전라도인을 규정하는 논리는 인종주의에 가깝다.

 

 이념도 용해 시키는 인종적 이데올로기

 호남인을 규정하는 기준은 신분 상승이 불가능한 경색된 신분제도나 유색인종차별과 유사하다. 이렇게 낙인찍힌 호남인이라는 굴레는 스스로 벗어버릴 수 없는, 외부에서 강제된 문제다. 앞서 말한 김현이나 김우창의 발언은 스스로 그러한 현실을 알아차리고 일종의 내재화에 다다른 호남인들의 반응을 대표한다. 그러나 개인적 수준에서는 자학과 분노로 그치는 호남인들의 태도가 가장 적극적이고 외향적으로 폭발하는 때가 드물게 있는데 지역대결 구도에 힘입은 선거 전 때다. 15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김대중과 16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노무현은 모두 호남에서 평균 90%를 돌파하는 무시무시한 지지율을 기록했다. 혹자는 수치에 압도되어 이를 유사 파시스트적 행위나 집단최면의 결과로 규정할 정도다. 그러나 강준만은 광주 시민의 인터뷰를 인용해

 

‘소외와 한의 응어리이지, 저쪽(전두환 정권)처럼 기득권 연장수단이 아니다. ’ 

 

 - 김대중 죽이기 22p 개마고원-

 

 그렇다면 김대중에게 보낸 90%대의 지지율로 한과 소외의 응어리를 풀고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루어낸 뒤 있었던 16대 대선에서도 노무현에게 그대로 이어진 광적인 지지율 대해서는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 여기에는 고종석이 답한다. 비율은 상대적인 수치이다. 16대 대선에서 노무현은 호남에서 평균 93.2%의 득표율로 약 274만표를 얻었다. 같은 선거에서 이회창은 영남의 평균 67.7%의 득표율로 472만표를 획득했다. (이상 16대 대선 관련 수치들은 선관위 통계 페이지 참조) 
 
 우리는 득표수라는 절대적 수치에서 주목해야한다. 영남쪽에 산업 시설이 밀집된 불균형 발전 결과 소득과 인구수 모든 면에서 압도적인 열세인 낙후지역 호남에게 지역주의는 오히려 불리한 구도다. 한나라당은 호남의 표를 안 받아 영남의 표를 얻는 방법으로 성공해왔다는 강준만의 지적처럼 스스로 지역주의를 고수하는 것은 한반도안의 ‘당신들의 전라도 공화국’으로 남는 어리석은 자충수임을 호남인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16대 대선에서 노무현에게 호남이 보낸 93%의 지지는 스스로 영남사람 이면서도 지역주의에 맞서 장엄히 싸웠던 노무현의 긍정적인 희생에 대한 갈채이자 ‘우리는 지역이 아니라 사람을 보고 뽑는다’ 호남의 의지가 각인된 탈 지역주의적 투표결과인 것이다. 바로 이것이 인종적 이데올로기의 성향을 띈 호남 차별문제에 호남인들이 스스로 선택한 해법이었다.
 

 

 

 정말 호남에는  15, 16대 대선 당시 한나라당의 정책에 찬성하는 사람들이 6%(이회창의 득표율)밖에 살지 않는 것일까? 종부세에 반대하고 땅투기로 떼돈을 번, 혹은 레드콤플렉스에 진저리를 치는 어르신들을 모두 합쳐서 6%밖에 되지 않았을까? 그랬던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이 호남차별 문제는 반세기동안 한반도를 지배해온 대북(對北) 공포증이나 레드 콤플렉스(맹목적인 공산당 공포증), 그리고 부자와 빈자의 빈부격차에 따른 계급적 이데올로기마저 와해 시켜 버린 뒤 하나로 호남인들을 응집시키는 매개로 작용해왔다. 호남인들이 뇌리 속에 뿌리박힌 차별에 대한 지역주의에 대한 분노는 이념과 자본보다 더 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남인들이 16대 대선에선 김영삼과 같은 억양으로 말하는 태생적 영남 사람, 노무현에게 아낌 없이 표를 보냈다는 사실은 그들이 분노와 한에 단순히 매몰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호남 차별에 맞서 호남인들이 선택할 수 있었던 가장 합리적인 선택 이었던 것이다.

 


 끝까지 호남이 잊지 말아야 할 것

 

 영화 “목포는 항구다” 에는 꽤 전문적인 수준의 전라도 사투리가 등장한다. 물론 이건 흉내에 국한한 이야기일 뿐, 전라도 사투리를 상용하는 건 여전히 주류 사회의 정회원이 되길 포기하는 태도가 된다.

 -김규항 , 나는 왜 불온한가 -사투리, 돌베개-

 

영화나 드라마등 수많은 미디어에서 전라도 사투리는 ‘깡패’ 들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이잉” 하면서 말끝을 잡아빼는 종결어미와 콧소리는 하층민과 불량함의 상징으로 많이도 쓰였다. 김규항의 표현처럼 전라도 사투리는 한국 사회에서 비주류의 상징 그 자체가 되어버렸다. 호남 차별이 낳은 결과 중에 하나가 바로 전라도 사투리에서 인물의 성격이나 직업을 유추해내는 스테레오 타입의 고착화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과 거울쌍을 이룰만한 생각을 호남인들은 한 적이 없었을까?

 

 당연히 호남에서도 스스로를 지고지순한 피해자, 영남을 극악무도한 가해자로 박제시키고픈 마음이 있을 것이다. 실제로 한국 현대사의 홀로코스트였던 5.18사태이후 호남은 피해자라는 상징적 권위를 얻었다. 함부로 입에 담기조차 어려운 비극을 가지고 과거사 청산여부나 상처의 치유를 운운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가해자는 당시의 위정자들이 주축이지 영남사람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히 해야 한다. 호남의 대립 항으로 영남을 설정하는 행위는 통장잔고가 29만원인 사람이 가장 반겨할만한 발상이다. 경상도 사투리를 쓴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경상도 사람들에게 특별한 책임이나 사죄와 반성을 강제한다는 것은 무리한 요구일 것이다. 영남인들이 모두 부채의식과 원죄 속에서 살길 바라는 건 나도 맞았으니 너도 맞아봐라 식의 평면적 발상이다. 인민혁명당 사건의 희생자들에서부터 박종철 군 고문 치사 사건, 80년대의 노무현과 유시민에 이르기 까지 한국 현대사 속에서 영남 사람들이 함께 흘려준 피를 호남사람들도 높이 사야한다. 호남은 피해자가 맞다. 그렇다고 영남을 가해자로 설정해서는 안 된다. 호남의 적은 영남이 아니라 결국 위에서 그들을 짓밟던 이들이고 아래에서 함께 짓밟혔던 이들끼리 같이 싸우는 일은 절대 금물이다.

 


 나오면서

 얄팍한 지식과 여물지 않은 생각으로 오늘도 중언부언하고 말았다. 그 와중에도 광주의 5월과 같은 어렵지만 중요한 이야기들은 에둘러 피해가고 말았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나에게 개혁과 혁신의 구호를 외칠 지적권위나 사회의 암 덩어리 같은 호남문제를 깜끌하게 적출해낼 혜안도 없다. 그저 단지 다만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호남의 바깥에선 사람들이 쉽게 공감하기 어려운 내부자의 시점에서의 지역주의 문제에 대한 팩트(fact)를 나열해 보는 작업, 이를 통해서 조금이나마 지역주의 문제 연구에 관련된 자료가 풍부해지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튼실해 졌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지금 당장 무엇이 옳고 그르다고 선언하진 못해도 이렇게 모인 이야기들은 필시 누군가에게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다양성이 곧 건강함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나는 믿기에 이렇게 써 갈긴 한미한 잡문도 분명 다양성의 일부를 이룰 거름이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래도 고종석의 표현을 빌리면 나는 여전히 ‘링에 올라가 지역주의와 싸울 기회마저 박탈당한 왜소한 호남인이다. 나도 이제 이런 이야기는 경상도 사람들이 해줬으면 좋겠다.’ (고종석 시평집 바리에떼, 개마고원 214p)

 

 

 

 그래도 미련이 남아 차마 돌아서지 못하고..

 

 

지난 주 말, 편집장은 지금 상황이 언제 터져도 이상할 게 없으니 미리 유고기사나 추모기사를 준비해두라고 명을 내렸다. 그러나 기분학상 마치 누군가의 죽음을 미리 기다리는 듯한  기분이 들어 글을 준비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직 그 양반이 끈을 놓지 않고 있는 오늘, 미리 안 써두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그대 아직은 가지 마오. 내 노객의 몸이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음을 모르는 건 아닌데 그래도 아직은 가지 마오. 이게 다 그대 몸의 반쪽이 무너져 내리게 만든 그 사람이 남긴 숙제라 생각해 주시고 그대 조금만 더 우리 곁에 머물러주오. 내 그것을 믿기에, 미리 써둔 유고 기사 같은 건 애초에 생각하지도 않았어라.

 

충용무쌍(dbscnddy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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