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이야기] 그대 아직 가지마오
전라도는 원죄다 어느 날 술자리에서 김현은 “ 전라도라는 것은 원죄(原罪)야 ” 라고 말했다. 내가 깜짝 놀라 그의 얼굴을 보았을 때 그는 잔잔히 웃고 있었다. 나는 왜 그런지 그가 울고 있다고 느꼈다.
호남에서 태어난 것은 원죄다. 목포 출신의 평론가 김현의 표현 그대로 대한민국에서 전라도 인으로 태어난 순간 원죄라고 부를 만한 굴레에 속박 당하게 된다. 자의든 타의든 전라도 인으로 분류된 이들은 자신의 출신성분에 대한 자각을 안고 살아가게 되는데 김현과 김우창의 경우처럼 이것은 자학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고종석처럼 고통스러운 침묵으로 삭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더러는 김규항과 같은 적극성으로 표출된다. 이 원죄는 전라도 혹은 전라도 놈(사실 전라도 人이라는 표현보다 좀더 정확하고 솔직한 진술아닌가)으로 대표되는 여러 고정관념들이다. 김대중, 5.18, 빨갱이, 깽깽이, 농업지역, 후진성, 빈곤, 소수파, 범죄, 깡패, 사기꾼, 음흉함, 배반 과 같은 호남에 대한 편견들. 이것이 바로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원죄가 된다.
그러나 “호남인”에 대한 정의는 지리적 구분과 반대다. 과연 어떤 사람을 호남인으로 정의내려 지는가? 여기서 차별의 대상인 호남인은 “상상속의 인종” 이된다. 단일민족 담론의 생물학적 허구성과는 별개로 한국인은 서로 인종적 특질이 상동하며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 인종적, 언어적, 문화적 특질이 단일화 된 국가에서 미국과 같은 다민족 사회의 인종문제나 인도와 같이 다양한 언어가 통용되는 사회에서의 언어권에 따른 대립문제가 나타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따라서 한반도내 호남인을 타자화 하는 작업을 위해서 사람들의 의식위에 ‘상상의 인종 호남인’을 덧씌울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 호남인을 규정하는 방법이다. 호남인은 어떻게 규정되는가? 우리에게 잘 알려진 호남 출신의 저술가, 문필가들의 예를 들어 살펴보자. 먼저 한국일보 논설위원이며 장편 <기자들>, 단편집 <엘리야의 제야>로 알려진 언론인 고종석 씨를 보겠다. 그이의 출생지가 서울인 점을 주목해보라. 출생지에 따라 구분을 하자면 고종석은 서울 사람이 된다. 그러나 고종석은 실향민으로 전주에 내려온 외가와 전주 토박이인 친가 사이에서 태어난, 호남에 호적을 둔 호남 원적자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서울에서 태어나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호남인으로 분류되었고 자신의 지역적 정체성을 한국의 서얼(庶孼)로 자각하게 되었다. 전북대 신방과 교수인 강준만의 경우 서북민 출신인 아버지의 원적을 따른다면 황해도인이 되어야한다. 그러나 그는 전남 목포에서 출생했고 현재 전라북도에 소재한 국립대학교에서 재직중이다. 이걸 보고 제3자와 본인 모두가 그를 전라도인으로 분류한다. 김규항은 전북 태생이지만 군인 아버지를 따라 남한 내 비행장이 있는 고장에서는 다 살아봤다고 술회한다. 그가 전라도에서 거주했던 기간은 타지에서 거주했던 기간보다 오히려 짧았다. 그러한 그는 어린 시절 대구에서 받은 기괴한 칭찬을 잊지 않는다. “김 상사 네는 전라도 사람 같지 않아.” 김현과 김지하, 김우창의 경우는 출생지가 전남이라는 이유로 전라도인으로 분류된 가장 일반적이고 대표적인 사례다. 그렇다면 대체 전라도인의 기준은 무엇인가? 출생지인가, 호적법상의 등록인가, 성장기를 보낸 곳인가? 그 기준이 굉장히 모호하다. 이는 전라도인을 규정하는 원리가 “인종차별적이며 신분 질서적” 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아래의 인용문을 살펴보자. 김영삼은 지역구도를 혁파할 수 없는 무능력자가 아니라, 정반대로 지역구도를 정략적으로 악용하는 길을 걷고 있다. 94년 12월에 단행된 개각과 차관 인사가 그 생생한 증거다. -강준만, 김대중 죽이기 [ 기술자로 전락한 정치평론가 ] 개마고원- 중요한 점은 94년 내각인사의 부당함이 아니라 외무장관 공로명과 정무2장관 김장숙을 호남출신 인사로 정의한 청와대측의 논리다. 언론과 호남의 반감을 무마시키기 위한 미봉책이었든 기저에 깔린 무의식을 대변한 태도였든 호남인을 규정하는 ‘인종적이며 신분제적인’ 요소가 잘 표현된 사례다. 한마디로 호남인으로 분류되는 명료한 기준이 없다. 호남인의 분류법은 신분적으로 따지면 조선시대의 노비제도 일천즉천(一淺卽踐)과 마찬가지로 호적, 출생지, 거주지 심지어 친인척관계에 호남과 관련된 사항이 끼여들면 무조건 호남인으로 규정된다. 이는 물라토(Mulato), 쿼드룬(quadroon), 옥타룬(octoroon) 할 것 없이 모두 “흑인” 으로 묶는 유색인종 논리와 같다. 한 사람의 친인척 관계와 사회적 관계를 종합해 봤을 때 그에게 호남인으로 비칠만한 요소가 10%라고 해보자. 10%는 전체에 비교해 봤을 때 극히 일부분이지만 호남적 요소가 10%밖에 안 되기 때문에 그는 비 호남인이 되는게 아니라 그 10% 때문에 호남인이 된다. 이렇게 황해도 사람일 수도 있는 강준만과 서울 사람으로 보이는 고종석과 대구 사람이 될 수도 있었던 김규항이 모두 다 같은 “전라도인”으로 묶인다 . 전라도인을 규정하는 논리는 인종주의에 가깝다. 이념도 용해 시키는 인종적 이데올로기 ‘소외와 한의 응어리이지, 저쪽(전두환 정권)처럼 기득권 연장수단이 아니다. ’ - 김대중 죽이기 22p 개마고원- 그렇다면 김대중에게 보낸 90%대의 지지율로 한과 소외의 응어리를 풀고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루어낸 뒤 있었던 16대 대선에서도 노무현에게 그대로 이어진 광적인 지지율 대해서는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 여기에는 고종석이 답한다. 비율은 상대적인 수치이다. 16대 대선에서 노무현은 호남에서 평균 93.2%의 득표율로 약 274만표를 얻었다. 같은 선거에서 이회창은 영남의 평균 67.7%의 득표율로 472만표를 획득했다. (이상 16대 대선 관련 수치들은 선관위 통계 페이지 참조) 정말 호남에는 15, 16대 대선 당시 한나라당의 정책에 찬성하는 사람들이 6%(이회창의 득표율)밖에 살지 않는 것일까? 종부세에 반대하고 땅투기로 떼돈을 번, 혹은 레드콤플렉스에 진저리를 치는 어르신들을 모두 합쳐서 6%밖에 되지 않았을까? 그랬던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이 호남차별 문제는 반세기동안 한반도를 지배해온 대북(對北) 공포증이나 레드 콤플렉스(맹목적인 공산당 공포증), 그리고 부자와 빈자의 빈부격차에 따른 계급적 이데올로기마저 와해 시켜 버린 뒤 하나로 호남인들을 응집시키는 매개로 작용해왔다. 호남인들이 뇌리 속에 뿌리박힌 차별에 대한 지역주의에 대한 분노는 이념과 자본보다 더 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남인들이 16대 대선에선 김영삼과 같은 억양으로 말하는 태생적 영남 사람, 노무현에게 아낌 없이 표를 보냈다는 사실은 그들이 분노와 한에 단순히 매몰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호남 차별에 맞서 호남인들이 선택할 수 있었던 가장 합리적인 선택 이었던 것이다.
영화 “목포는 항구다” 에는 꽤 전문적인 수준의 전라도 사투리가 등장한다. 물론 이건 흉내에 국한한 이야기일 뿐, 전라도 사투리를 상용하는 건 여전히 주류 사회의 정회원이 되길 포기하는 태도가 된다. 영화나 드라마등 수많은 미디어에서 전라도 사투리는 ‘깡패’ 들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이잉” 하면서 말끝을 잡아빼는 종결어미와 콧소리는 하층민과 불량함의 상징으로 많이도 쓰였다. 김규항의 표현처럼 전라도 사투리는 한국 사회에서 비주류의 상징 그 자체가 되어버렸다. 호남 차별이 낳은 결과 중에 하나가 바로 전라도 사투리에서 인물의 성격이나 직업을 유추해내는 스테레오 타입의 고착화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과 거울쌍을 이룰만한 생각을 호남인들은 한 적이 없었을까? 당연히 호남에서도 스스로를 지고지순한 피해자, 영남을 극악무도한 가해자로 박제시키고픈 마음이 있을 것이다. 실제로 한국 현대사의 홀로코스트였던 5.18사태이후 호남은 피해자라는 상징적 권위를 얻었다. 함부로 입에 담기조차 어려운 비극을 가지고 과거사 청산여부나 상처의 치유를 운운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가해자는 당시의 위정자들이 주축이지 영남사람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히 해야 한다. 호남의 대립 항으로 영남을 설정하는 행위는 통장잔고가 29만원인 사람이 가장 반겨할만한 발상이다. 경상도 사투리를 쓴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경상도 사람들에게 특별한 책임이나 사죄와 반성을 강제한다는 것은 무리한 요구일 것이다. 영남인들이 모두 부채의식과 원죄 속에서 살길 바라는 건 나도 맞았으니 너도 맞아봐라 식의 평면적 발상이다. 인민혁명당 사건의 희생자들에서부터 박종철 군 고문 치사 사건, 80년대의 노무현과 유시민에 이르기 까지 한국 현대사 속에서 영남 사람들이 함께 흘려준 피를 호남사람들도 높이 사야한다. 호남은 피해자가 맞다. 그렇다고 영남을 가해자로 설정해서는 안 된다. 호남의 적은 영남이 아니라 결국 위에서 그들을 짓밟던 이들이고 아래에서 함께 짓밟혔던 이들끼리 같이 싸우는 일은 절대 금물이다.
그래도 고종석의 표현을 빌리면 나는 여전히 ‘링에 올라가 지역주의와 싸울 기회마저 박탈당한 왜소한 호남인이다. 나도 이제 이런 이야기는 경상도 사람들이 해줬으면 좋겠다.’ (고종석 시평집 바리에떼, 개마고원 214p)
그래도 미련이 남아 차마 돌아서지 못하고.. 지난 주 말, 편집장은 지금 상황이 언제 터져도 이상할 게 없으니 미리 유고기사나 추모기사를 준비해두라고 명을 내렸다. 그러나 기분학상 마치 누군가의 죽음을 미리 기다리는 듯한 기분이 들어 글을 준비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직 그 양반이 끈을 놓지 않고 있는 오늘, 미리 안 써두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그대 아직은 가지 마오. 내 노객의 몸이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음을 모르는 건 아닌데 그래도 아직은 가지 마오. 이게 다 그대 몸의 반쪽이 무너져 내리게 만든 그 사람이 남긴 숙제라 생각해 주시고 그대 조금만 더 우리 곁에 머물러주오. 내 그것을 믿기에, 미리 써둔 유고 기사 같은 건 애초에 생각하지도 않았어라. 충용무쌍(dbscnddyd@naver.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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