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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척 매뉴얼] 연금술사


2009.8.18.화요일



 취지


본 기사는 각종 매체에서 이루어졌던 광고 아닌 척 책 소개하기식의 서적 광고도 아니고 필자의 개성과 취향에 따라 그 평가가 천차만별인 니맘대로 서적 리뷰도 아니다.


제목에서 이미 눈치 챌 수 있듯 본 기사는 한 해 평균 독서량이 짐승만도 못한 독자라 할지라도 각종 서적에 대해 누구 앞에서건 아무 거리낌 없이 읽은 척을 할 수 있게 함으로써 원만한 대인관계를 형성시키는 데 그 총체적 목적이 있는 공리주의적 텍스트라 할 수 있으며, 일종의 인문학적 데자뷰 현상을 도모하는 학구적 심령기사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생업에 지친 나머지 읽고 싶어도 책 읽을 기력과 의욕을 상실한 독자들에게, 설령 의욕이 있다 하더라도 직장 내 오랜 눈칫밥 습관으로 한 곳에 1분 이상 눈동자를 모으기 힘든 독자들에게, 그리고 어디 가서 모르는 책 얘기만 나오면 자아 한 곳에 치명상을 입는 가녀린 영혼을 소유한 독자들에게 조그마한 위안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들어가며





당 서적에 대한 구체적 읽은 척에 들어가기 앞서,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은 누군가가 <연금술사>를 읽어는 봤냐며 먼저 공격을 감행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더라도, 그것이 뭔가 악의를 갖고 나에 대한 정신적 관장(정신적 관장이 대체 무슨 의미인지 궁금한 독자께서는 [읽은척 매뉴얼]농담 편을 참고하시라)을 유도하기 위함이라고 확신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책 속에 뭔가 지적 과시용 설레발이 될 만한 고급 정보가 있는 것도 아니고, 문학사적으로 특별한 의미가 있는 그런 작품이 아님에도 상대가 당 서적을 언급하는 경우는 오히려 당 서적을 통해 나의 행복이 증진되길 바란다는 진심어린 호의의 표시거나, 혹 더 나가서는 그 상대가 이성친구일 경우 믿기 어렵겠지만 나에 대한 일종의 작업용 밑밥일 가능성도 높기 때문이다.


고로 <연금술사>를 읽은 척함에 있어서는 그저 만면에 온화한 미소를 띠운 채 가끔씩 고개를 주억거리기만 하면 그만일 뿐, 여타 서적 때처럼 흔들리는 눈빛을 들키지 않기 위해 애써 상대를 잡아먹을 듯 째린다거나, 상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성급히 다른 화제로 맞불을 놓는 식의 거친 플레이는 굳이 필요 없다 하겠다.


그래도 뭐라 한 마디 하는 게 좋겠다 싶다면 다음과 같은 멘트 한방을 추천하는 바이다.


“너는 오늘 나에게 술을 사게 될 거야. 왜냐면 내가 온 마음을 다해 그러길 바라기 때문에 틀림없이 우주가 나의 소원을 이뤄줄 테니까.”

 


  읽은 척 매뉴얼


1)등장인물


-산티아고 : 소위 ‘자아의 신화’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통해 자신의 꿈을 이루는 주인공.


-집시 노파 : 산티아고의 꿈을 해몽해주었던 일종의 운명 철학자이다.


-멜키세덱 : <연금술사>에서는 산티아고가 ‘자아의 신화’를 시작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인물이며 실제로 성경에 나오는 인물이다. 신의 뜻을 전달하는 사제쯤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크리스털 상점주인 : 산티아고의 재기를 돕는 인물. 중요한 것은 그가 꿈을 이루는 구체적 방법을 돕는 인물이 아니라, 자신이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용기의 부족을 고백함으로써 주인공에게는 일종의 반면교사가 된다는 것이다.


-영국인 : 사막의 연금술사를 찾아 헤매는 인물. 정작 자신은 연금술의 본질에 도달하지 못하고 본의 아니게 주인공과 연금술사가 만날 수 있게끔 돕는 역할을 한다.


-연금술사 : 산티아고에게 만물의 언어와 가르침을 최종 정리하여 일대일 과외로 연금술을 전수해주는 인물.


-파티마 : 사막의 오아시스 마을에서 주인공이 만난 운명의 여인.



2)내용요약



당 서적에 대해서는 사실 줄거리를 가지고 읽은 척을 하기보다는 그 책이 전하는 주제와 감동의 깊이를 두고 읽은 척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다분하다.


하지만 성경이나 불경에 대해 읽은 척을 하게 될 경우 매번 눈물만 글썽이는 것이 능사가 될 수는 없듯, 당 작품의 줄거리와 그 구성을 이해함으로써 정확히 어느 지점에서 울고 웃는 감동 먹은 척 오두방정이 효과적일 수 있을지를 가늠토록 해야 할 것이다.



스페인의 버려진 한 낡은 교회의 무화과나무 밑에서부터 이 이야기는 시작된다.


신부가 되라는 집안의 권유로 신학교를 다니던 산티아고는 그저 여행을 통해 더 많은 세상을 보고 싶다는 생각에 신학교를 중퇴하고, 아버지가 준 돈 몇 푼으로 양을 사서 지금은 60마리의 양을 소유한 중견 양치기라 할 수 있다.


양들에게 필요한 물과 풀을 찾기 위해 세상 곳곳을 다니며 2년여 간 여행을 하던 산티아고는 최근 이상한 꿈을 연거푸 두 번이나 꾸게 되는데, 그 꿈의 내용이란 한 아이가 나타나 이집트의 피라미드에 당신의 보물이 묻혀 있다고 알려주는 것이다.


결국, 집시를 만나 꿈의 해몽도 듣고 자칭 살렘의 왕이라고 하는 멜키세덱을 만나 그 꿈이 단순한 꿈이 아닌 진짜 이뤄질 수도 있는 꿈이라는 얘기를 듣고 산티아고는 용기를 내어 자신의 전 재산인 양을 팔아치우고 한 번도 갈 생각을 하지 않았던 이집트를 향해 배에 몸을 싣는다.


그리고 도착한 아프리카 대륙의 한 항구도시. 그렇게 멀게만 느껴지던 곳이 배로 겨우 두 시간 뿐이라는 사실에 놀라워하며 주변의 이국적 풍경에 정신을 놓고 있던 중, 자신에게 친절을 베푸는 척하던 사기꾼에게 양을 팔아 마련했던 여비를 모두 도둑맞게 되는데, 이것이 산티아고가 맞은 첫 번째 시련이라 하겠다. 


꿈만 믿고 그런 엄청난 결정을 했던 자기 스스로를 자책하며 낯선 타지의 어두운 모퉁이에서 잠시 절망하나 살렘의 왕 멜키세덱이 그에게 주었던 보석 두 개를 기억하며 마음을 가라앉히게 된다.


‘그래. 이 보석이면 스페인에 돌아갈 수 있는 여비 정도는 마련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따지고 보면 이게 바로 내가 원했던 일이잖아. 난 새로운 세계를 보고 싶어 했어. 세상은 도둑에게 가진 것을 몽땅 털린 불행한 피해자의 눈으로도 볼 수 있지만, 보물을 찾아 나선 모험가의 눈으로도 볼 수 있는 것 아니겠어?’


이후 산티아고는 그 도시의 한때 잘 나갔으나 이제는 한물가서 파리만 날리고 있던 크리스털 상점에 취업하게 된다. 잔뜩 먼지 낀 크리스털 그릇들을 보자 한 끼 식사를 구할 요량으로 정성껏 그릇을 닦은 것이 인연이 되어 특채로 채용된 것이다.


그로부터 1년 후, 산티아고는 성실함과 영민함을 겸비한 장사수완으로 사장님의 전성기 시절 못지않게 많은 손님들을 끌어 모아 월급에 인센티브까지 더한 큰 돈을 벌게 된다. 자신이 잃어버렸던 돈보다 두 배는 더 되는 돈을 모은 것이다. 이쯤이면 다시 고향에 돌아가 비록 보물을 찾지는 못했지만 남들 부끄럽지 않을 정도는 되겠다 싶어 귀향 배편을 알아보던 중, 크리스털 가게 사장님의 옛날이야기가 산티아고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다.


천주교 신자인 산티아고가 꿈의 계시를 통해 멀리 모험을 떠났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슬람교도인 사장님도 사실은 예전에 신을 경배하기 위한 메카로의 순례를 꿈꿔왔으나 결국 그 꿈을 꿈으로만 간직한 채 살다가 이렇게 늙어버렸다는 것. 물론 지금이라도 말을 타고 시종을 거느린 채 여행길을 나설 수는 있지만 그는 더 이상 인생의 변화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용기가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산티아고는 그 크리스털 가게 사장님의 모습은 자신이 꿈을 포기한 채 고향에 돌아가 그럭저럭 먹고 살만큼의 삶을 마련했을 때의 자기 모습일 거라 짐작하면서 다시 이집트를 향해 사막횡단 길에 오른다.


상인들과 함께 이집트로의 힘겨운 대장정 길에 오른 산티아고는 일행 중에서 사막의 연금술사를 만나러 가는 영국인 학자와 만나게 되고, 밤낮없이 이어진 고된 행군 중에 산티아고는 영국인이 그간 연구해온 연금술을 이론적으로나마 배우게 된다.


이후 사막 부족들 간의 전쟁이 격화되면서 이집트의 보물로 향하던 그의 여행은 본의 아니게 잠시 중단되고 마는데, 전쟁 중인 지역을 거칠 경우 십중팔구 목숨을 잃을 것이므로 중립지역인 오아시스 마을에서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려야만 했던 것. 그리고 그 오아시스 마을은 영국인이 얘기했던 그 연금술사가 사는 곳이었다.


사막의 한 가운데에 갇혀 어찌할 바를 모르던 중, 산티아고는 어느 날 우물가에서 첫 눈에 이 여자다 싶은 운명적 여인을 만나게 되니 그녀의 이름은 파티마. 매일 아주 짧은 시간 그녀를 만날 수 있을 뿐이었지만 그는 파티마를 만남으로써 내가 왜 이 먼 여행을 떠나왔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게 된다. 그 보물은 이집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여기에 있는 파티마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날 비행하는 매를 바라보던 중, 무장한 군인들이 오아시스를 습격하는 환영을 본 산티아고는 이것이 앞으로 벌어질 일을 보여주는 신의 표지로 판단하고 그 사실을 오아시스의 부족장에게 알린다.


결국 그 다음 날, 굶주림에 못 이겨 오랜 규율을 깨고 오아시스를 침략할 수밖에 없었던 오백의 군인들이 여행객으로 가장해 마을에 들이 닥치지만 이에 대비하고 있던 마을 주민들은 별 피해 없이 군인들을 제압할 수 있었고, 산티아고는 그 대가로 많은 돈을 상으로 받게 된다. 사랑하는 여인도 생기고, 부자도 되고. 마치 로또 당첨금으로 산 변두리 임야가 재개발 지구로 확정된 것과 같은 겹경사로 산티아고는 이제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행복한 삶을 이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매의 비행을 통해 사막의 표지를 읽었다는 사실이 알려진 후, 그 소식을 듣고 나타난 연금술사에 의해 그의 삶은 다시 시련에 봉착하게 되는데, 그 시련이란 것은 바로 크리스털 가게 아랍인 사장님처럼 여기서 만족하고 멈출 것이냐, 아니면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다시 모든 걸 포기하고 이집트로 떠나야 할 것이냐에 대한 고뇌였다.


주인공들이 다 그렇듯, 결국 산티아고는 모든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고 연금술사와 함께 이집트 피라미드의 보물(혹시나 싶어 하는 말이지만 피라미드의 보물이라고 해서 산티아고가 투탕카맨의 보물을 자기 것이라 착각하는 문화재 도굴꾼쯤으로 생각해서는 안 되겠다. 그저 피라미드 근처 어딘가에 묻혀있는 보물을 의미한다)을 향한 막바지 동행 길에 나선다.


이후 산티아고는 전쟁 중이던 사막의 부족들에게 첩자로 몰려 하마터면 모든 재산과 목숨까지 빼앗기게 될 절체절명의 순간도 맞이하고, 피라미드에 다 도착해서는 군인도 아니고 무슨 동네 양아치 같은 패잔병들에게 죽기 바로 직전까지 얻어맞는 험난한 와중에서도 그동안 삶이 가르쳐준 용기와 연금술사에게 배운 지혜를 통해 결국 보물을 찾게 된다.





3)읽은 척 세부스킬



산티아고의 보물이란 무엇인가?


주인공 산티아고가 듣도 보도 못한 보물을 찾아 새빠지게 고생을 하다가는 결국 그것을 찾는다는 줄거리의 소설이다 보니 이집트의 피라미드에 묻혀있다던 그 보물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아는 척하는 것은 당 서적의 읽은 척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하겠다.



특히나 당 서적이 전 세계 수천만 독자의 영혼을 떨리게 했다는 전설적 작품이다 보니 그 보물이란 바로 사랑이랄지, 희망이랄지, 용기랄지 뭐 이런 류의 닭의 탈을 뒤집어쓰게 만드는 소름 멘트가 연상될 확률이 크다 하겠으므로 더욱 주의를 요한다 할 것이다.



자칫 <연금술사>의 영적 치유효과 등에 대해 어디서 주워들은 것을 가지고 ‘아아. 역시 가난하더라도 영혼만 부유해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행복하다는 게 이 책의 주제 아니겠어?’ 따위의 얘기로 읽은 척을 했다가는 큰 낭패를 볼 수도 있다는 얘기 되겠다.



물론 사랑, 희망, 용기 등의 형이상학적 보물들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주인공이 ‘자아의 신화’를 마치고 최종적으로 얻게 되는 것은 결국 모든 자본주의 사회의 시민들이 염원해 마지않는 물질적 보물이지, 아지랑이 먹고 이 쑤시는 소리하듯, 아침 이슬 원샷하고 혀 꼬이는 소리하듯 낭만적인 그 무엇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마지막에 그가 얻게 되는 보물은 스페인 금화와 눈부신 보석들, 붉고 흰 깃털로 장식된 황금 마스크, 갖가지 보석으로 세공된 조각상 등이 가득 담긴 그야말로 동화 속 보물 상자이다.




고로 산티아고가 오래 전 땅속에 묻혀있던 보물들을 파내 문화재 재벌이 되는 바로 이 지점에서 당 서적이 만약 오늘 날을 배경으로 했다면 각종 세금과 문화재 관련법에 의거 큰 부자는 되기 어려웠거나, 심지어는 국유지, 혹은 사유지 무단침범 및 도굴행위 등으로 부자가 되기는커녕 콩밥을 먹을 수도 있지 않았겠냐는 준법 시민적 읽은 척도 가능하다 할 것이다.



산티아고의 보물과 관련하여 하나 더 주의해야 할 것은 사실 그는 이집트 피라미드에서 그 보물 궤짝을 얻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가 이집트의 피라미드에서 얻게 된 것은 실제로 보물이 묻혀 있는 구체적 장소에 대한 정보일 뿐, 정작 산티아고가 보물을 얻는 곳은 바로 당 서적의 첫 페이지에서 산티아고가 처음 등장했던 버려진 낡은 교회의 무화과나무 밑이다.


즉, 이집트에서 그가 손에 쥐는 것은 여섯 개의 번호가 찍힌 로또 복권일 뿐, 국민 은행 본점은 저 멀리 그가 떠나왔던 스페인에 위치한 형국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보물은 사실 늘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가까운 곳에 있다고 하는 메시지의 문학적 구성이라 볼 수 있겠으나 이 역시 대운하니 신도시니 재개발이니 각종의 융단폭격스러운 국가적 삽질이 난무하는 대한민국의 현 상황에서는 그런 보물 궤짝이 땅 속에 남아날래야 남아날 수도 없을 것이라는 식의 친환경적, 반정부적 읽은 척도 가능한 부분이라 할 것이다.



덧붙여, 보물은 사실 바로 자신의 발밑에 있었다는 내용상의 전개는 당 서적의 서문 부분에서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한 부분이기도 하다.



서문에 보면, 나르키소스(우리는 보통 나르시스라고 부른다)가 호수에 빠져 죽자, 그 호수 역시 너무도 슬퍼했는데 그 이유는 아름다운 용모의 나르키소스를 더 이상은 볼 수 없게 되어서가 아니라는 내용의 일화가 소개된다.



“저는 지금 나르키소스를 애도하고 있지만, 그가 그토록 아름답다는 건 전혀 몰랐어요. 저는 그가 제 물결 위로 얼굴을 구부릴 때마다 그의 눈 속 깊은 곳에 비친 나 자신의 아름다운 영상을 볼 수 있었어요. 그런데 그가 죽었으니 아, 이젠 그럴 수 없잖아요.” (본문 P.14~15)



요컨데 자신의 아름다움을 스스로 아는 자와 모르는 자의 차이, 그것이 바로 보물을 얻는 자와 얻지 못하는 자의 차이라고 당 서적은 이미 서두에서 맛뵈기로 제공했던 것이다.





연금술에 대하여


붕어빵 안에 붕어가 있는 것은 아니듯, 윌리엄 골딩의 <파리 대왕>이 무슨 재래식 변소의 관할권을 두고 세력 다툼을 벌이다 마침내 왕으로 등극한 똥파리의 일대기가 아니듯, 간혹 당 서적의 제목 <연금술사>는 그저 문학적 상징으로만 쓰였을 뿐 진짜 연금술사에 대한 얘기는 아닐 것이라고 오판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당 서적을 무슨 중세 마법사와 용이 등장하는 판타지 소설로 착각하는 경우보다는 차라리 바람직한 오판이라 하겠으나, 앞서 내용요약에서 살펴보았듯 당 서적에는 연금술사가 실제로 등장하며 그동안 무당의 푸닥거리만큼이나 미신적 행위로 간주되었던 연금술에 대한 이론적, 철학적 서술도 꽤 많은 분량을 차지한다.


고로 당 서적을 진짜로 읽은 상대일 경우 십중팔구 연금술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호의를 갖게 되어 이를 화제로 꺼낼 확률이 크다 하겠으므로 연금술과 관련된 작품 속 용어들을 몇 가지 익혀두는 것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 현명한 준비태세라 하겠다.



위대한 업 : ‘자아의 신화’와 거의 동격으로 쓰이는 ‘위대한 업’이란 연금술을 이해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용어이다.


과거 연금술사들은 어떤 금속이든 아주 오랜 시간을 가열하면 그 금속 특유의 물질적 특성은 전부 사라져 버리고 오직 만물의 정기만이 남게 될 거라고 믿었다. 그들은 이 최종 물질이 모든 사물들과의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해주는 언어이므로 이 물질을 통해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믿었고, 납으로 금을 만드는 것도 가능하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해서 발견한 물질을 ‘위대한 업’이라고 불렀고, 그것은 다시 액체로 이루어진 ‘불로장생의 묘약’과 고체로 이루어진 ‘철학자의 돌’이라 명명하였다.


‘불로장생의 묘약’이란 그야말로 마시면 몇 백 년이라도 살 수 있는 럭셔리 자양강장제를 의미하고, ‘철학자의 돌’은 아주 작은 조각 하나만으로도 상당한 분량의 금속을 금으로 변하게 할 수 있는, 그야말로 도깨비 방망이와 같은 보물이라 하겠다.



우림과 툼밈 : 멜케세덱이 산티아고에게 주었던 흑과 백의 보석으로 마치 전래 동화의 빨간 주머니, 파란 주머니처럼 뭔가 중대한 사안에 대해 결정해야 할 경우 ‘예’, ‘아니오’의 역할을 하는 일종의 제비뽑기용 보석이다.


멜키세덱이 성경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듯 우림과 툼밈도 역시 성서에서 직접 언급된다.



아론이 성소에 들어갈 때에는 판결 가슴받이에 새긴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가슴에 달아, 주님 앞에서 늘 기념이 되게 하여라.



판결 가슴받이 안에는 우림과 툼밀을 넣어, 아론이 주님 앞으로 들어갈 때, 그겻을 가슴에 달게 하여라. 이렇게 아론은 늘 주님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위한 판결 도구를 가슴에 지녀야 한다.


(출애굽기 28장 중)



에메랄드 판 : 당 서적에서는 자세한 언급이 생략된 채 만물의 정기로 통할 수 있는 지름길이 새겨진 어떤 비밀의 열쇠쯤으로 묘사된다.



“이게 바로 에메랄드 판에 새겨진 것이라네.”


몇 분도 안 되어 그림을 마치고서, 연금술사가 말했다.
산티아고는 모래 위에 그려진 것들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암호군요. 영국인의 책에서 보았던 것과 비슷해요.”


산티아고가 다소 실망한 듯 말했다.


“아닐세. 이것은 저 두 마리 매들의 비행과도 같아. 단순히 논리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되네. 에메랄드 판은 만물의 정기로 통하는 지름길일세.” (본문 P.207)



원래 고대 이집트의 현자 헤르메스가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는 에메랄드 판은 그 내용도 내용이거니와 에메랄드 판의 주조 형식 자체가 현대의 기술로도 불가능한 것이기에 과거 지구상에는 현대의 문명보다 발전된 그 무엇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추측을 불러일으키는 보물이기도 하다.



참고로 <연금술사>에서는 수록되지 않은 에메랄드 판의 그 그림을 첨부한다.




초심자의 행운
: 이는 꼭 연금술과 관련된 용어는 아니지만 일상에서 자주 써먹을 수도 있는 아이템이라 소개하는 바이다.



처음 낚시를 간 사람에게 물고기가 몰리듯, 처음 고스톱을 배운 사람이 양박에 쓰리고로 대박을 치며 주위 사람들을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듯 우리 주변에서도 소위 ‘초심자의 행운’은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는 있지만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알 도리가 없는 불가사의한 그 무엇이라 하겠다.



당 서적에서는 이러한 ‘초심자의 행운’이 왜 발생하는지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한다.



“그걸 ‘은혜의 섭리’라고 부르지. 바로 초심자의 행운이라는 거야. 그런 행운이 따르는 건 자네의 삶이 자네가 자아의 신화를 이루며 살아가길 원하기 때문일세.”(본문 P.90)


 


파울로 코엘료 소설의 패턴들


만약 <연금술사>에 대한 읽은 척을 완벽히 수행할 수만 있다면 파울로 코엘료의 다른 대부분의 작품도 웬만큼은 읽은 척이 가능하다. 그의 모든 작품에는 일종의 공통점, 혹은 패턴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첫째는 주제상의 공통점이다. 산티아고가 신의 계시를 따라 여행을 떠난 후, 사막의 가르침을 통해 만물의 정기와 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게 되고, 마침내 보물을 찾을 수 있었듯이 코엘료의 모든 작품에는 신(특히 여신)과의 교감과 만물(자기 자신도 포함해서)에 대한 공경, 그리고 꿈의 성취 순으로 이어지는 코엘료 표 세계관이 늘 등장한다.


그럼 혹시 코엘료의 작품들은 한 얘기 또 하고 다시 하는 일장훈계의 무한반복 아니겠냐며 벌써부터 지루한 읽은 척으로 전략을 구상하는 분들 있을 수 있겠으나 아직 성급한 판단은 금물이다. 그의 작품들이 논설문이기 전에 소설이듯, 같은 주제를 다양하게 변주하는 일종의 파격적 패턴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1분>의 경우 여주인공은 양치기도 아니고 성녀도 아닌, 몸 팔아 돈 벌기로 작정을 한 콜걸이 SM이라고 하는 인위적 수난(?)까지 겪어가며 ‘자아의 신화’를 찾아가는 모습이 그려지기도 하고, <오 자히르>의 경우 유명 작가가 마치 <아내가 결혼했다>의 스토리처럼 젊은 놈팽이 때문에 가출한 와이프를 찾아 나서는 과정에서 신성의 현현이 이뤄지기도 하며,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에서는 모든 것이 부질없어 보이는 극단적 회의주의의 여성이 정신병원에서 달밤 자위쇼를 벌이다가도 자신의 행복을 발견하는 등. 신과의 교감이니, 만물에 대한 공경이니 하는 준엄하고 신성한 것들과는 몇 백만 광년 떨어져 보이는 파격적 설정에서 그의 소설이 시작되곤 한다는 것이다.


물론, 바로 이런 점들 때문에 그 어떤 급박한 상황에서 그 어떤 막 되먹은 주인공이 나온다 하더라도 그의 소설은 뻔한 결말을 맺는 것 아니냐는 투덜거림이 먹힐 수도 있다 하겠으나, 사람이 언젠가는 모두 죽고 만다고 해서 모든 사람의 인생이 비극으로 끝나는 것은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그의 작품이 늘 해피엔딩으로 끝난다고 해서 삶의 고통이 부재한 낙원의 목가쯤으로 짐작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그의 작품이 대체로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은 삶의 고통을 모르는 유복자의 문학이어서가 아니라 삶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직시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거대한 통찰과 인간에 대한 애정에서 기인한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구성상의 패턴이다. 이는 물론 작가의 주제가 늘 명확하다보니 자연스레 따라오는 구성의 패턴이라 하겠다.


신을 믿지 않는, 혹은 믿는다 하더라도 남들 믿는 만큼만 믿는 소극적 신앙의 주인공이 나오고 어느 날 갑자기 주인공은 신의 표지를 발견한다. 그 신의 표지는 매우 다양하다. <연금술사>에서 꿈, 멜키세덱, 사막, 매의 비행 등이 표지로 나오듯 <오 자히르>에서는 교통사고가 표지로 등장하기도 하고, 폭 143.5cm의 기차선로가 표지로 등장하기도 한다. (단, 여기서 주의할 것은 자꾸 신에 대한 얘기가 나오고 영혼에 대해 언급된다고 해서 그의 작품을 무슨 선교를 위한 복음서쯤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그가 신앙을 갖는 것이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내는데 더 유리하다고 말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적어도 종교를 강요하는 선교사도 아니고, 어느 특정 종교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광신자도 아니다. 코엘료는 늘 자신의 마음속에 신적인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강조할 뿐이다. 그것이 예수든, 알라든, 부처든, 혹은 다른 무엇이든.)


신의 표지가 발견된 후, 주인공은 황당해서 위험해 보이기까지 하는 표지의 세계와, 익숙하지만 무료해 보이는 현실세계와의 사이에서 갈등하기 마련이고, 그때쯤이면 당연히 주인공을 도와줄 어떤 스승이 출현한다. 물론 스승이라고 해서 세계 최고가의 수강료를 자랑하는 워렌 버핏이나 절세 무공을 전수해주는 요다 따위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연금술사>의 연금술사와 같이 이미 도통한 스승이 나오기도 하지만 때로는 낙타몰이꾼이 스승이 되기도 하고, 집도 절도 없이 떠도는 집시가 스승이 되기도 하며, 얻어야 할 것보다 버려야 할 것이 뭔지를 가르쳐주는 악역의 반면교사를 만나기도 한다. 그리고 그들이 가르쳐 주는 것을 종합해 주인공은 결국 자신의 꿈을 이루게 되는데 그 가르침이라는 것을 한 마디로 정리한다면 다음과 같다.


믿고, 행하라. 그러면 꿈은 이루어지리라.


 


연금술사 vs 시크릿


아래는 지난 시크릿에 대한 읽은 척 매뉴얼에서 언급했던 내용이지만, <연금술사>와도 직접적인 관련이 있으므로 해당 내용만 다시 싣는다.



다음은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에서 작가가 가장 강조하고, 자주 반복하는 멘트 중 일부이다.



“이 세상에는 위대한 진실이 하나 있어. 무언가를 온 마음을 다해 원한다면,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거야.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은 곧 우주의 마음으로부터 비롯된 때문이지.”(<연금술사> P.47)



“세상 만물은 모두 한가지라네.”(<연금술사> P.79)



“현자들은 이 세상이 다만 하나의 영상이요, 천상계의 투영일 뿐이라는 걸 알고 있었네.”(<연금술사> P.207)



물론, 비슷한 세계관이 발견된다 해서 출판이 한참 늦게 이뤄졌던 <더 시크릿>이 <연금술사>의 표절판, 혹은 평역판 쯤 되는 것 아니겠냐며 물귀신적 읽은 척을 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연금술사>의 세계관 역시 무(無)에서 만들어진 절대적 무엇이 아닐 것이므로 무슨 저작권에 대한 순결성을 가려가면서까지 읽은 척을 하는 것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다만, 흥미로운 것은 코엘료의 최근 작품인 <프로토벨로의 마녀>를 보면 <시크릿>을 비롯해 자신의 작품과 엇비슷한 뉘앙스를 띄고 있는 각종 자기개발서들에 대해 조금은 불편한 심경을 내비치고 있는 듯해 보이는 대목이 있다는 것이다.



‘긍정적 사고’라는 신조 아래, 자신이 사랑받고 있고, 강하고 능력 있다고 떠들어대는 사람이 되지 않길 바라요. 당신은 스스로에 대해 이미 알고 있으니 그럴 필요가 없거든요. 그리고 당신처럼 성장해가는 단계에서 아주 빈번하게 나타나는 일이지만, 의심에 빠질 때마다 내가 제안한 대로 하세요. 당신 자신이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 나은 사람이라고 증명하려 애쓰는 대신, 그저 웃으세요. 근심과 불안한 마음을 접고 웃어버려요. 유머를 가지고 자신의 번민을 직시하세요. 처음에는 힘들겠지만, 점점 익숙해질 거예요. (<포르토벨로의 마녀> 중 P.227)



진짜로 <시크릿>을 염두에 두고 언급한 것인가는 확언할 수 없지만, 긍정적 사고에 대한 신조도 그것이 강박관념이 되면 또 하나의 번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하는 내용이나, 의심에 빠질 때 어거지로 자기 증명을 하는 대신 그러한 자기 의심을 자학개그의 대상으로 삼으라는 제안은 분명 다른 어떤 주장이나 세태에 대해 반박하는 느낌을 준다 할 것이다.



고로, <시크릿>을 읽은 척함에 있어,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를 동원함으로써, <시크릿>은 어쩌면 각종 고전과 베스트셀러에 대한 오독의 읽은 척이 자행된 사례일지도 모른다는 한 마디 멘트로 마무리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라 하겠다.


 


작업의 연금술사



납을 금으로 둔갑시키는 연금술과, 자아의 신화를 꿈에서 현실로 둔갑시키는 영혼의 연금술 외에 당 서적에는 처음 만난 타인을 연인으로 둔갑시키는 일종의 작업의 연금술도 등장하므로 특히 솔로인 남녀는 자아의 보호가 아닌 종족의 유지를 위해서라도 <연금술사>를 읽은 척할 필요가 있다 할 것이다.



원래 좋은 작품이란 대개 그런 법이다. 어느 한 특정 부분에서만 교훈을 주는 것이 아니라 철학, 정치, 경제, 예술, 연애, 섹스 등 그야말로 인간에 대한 전 방위적 이해와 깨달음을 동반 상승시키는 것이 좋은 작품의 미덕인 것이다. 이는 어쩌면 코엘료의 작품 속의 공통적 주제처럼, 모든 만물은 하나의 근원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그러하다고도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사막의 오아시스 마을에서 파티마를 처음 만난 산티아고는, 그것도 무슨 소개팅으로 만난 것도 아니고 우물가에서 우연히 만났을 뿐인데, 마치 편의점에서 냉동식품 데워먹듯, 잽싸게 즉석에서 사랑을 꽃피우는 기적을 선뵈며 이렇게 둘러댄다.



아무런 말도 필요 없었다. 그는 온몸으로 확신했다. 부모님도 그랬고 할아버지도 그랬지만 남녀가 맺어지려면 세월을 두고 만나며 상대방을 차근차근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그들은 우주의 언어를 알지 못했다. 우주의 언어를 아는 사람에게는, 사막 한복판이든 대도시 한가운데든 누군가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걸 깨닫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본문 P.159)



그렇다. 첫눈에 반한 여인을 만난다면 이렇게 얘기해야 하는 것이다. 내가 당신에게 첫눈에 사랑을 느끼는 이유는 나도 사실 잘 모른다고. 난 그저 우주의 언어가 시키는 대로 따를 뿐이라고 말이다.



물론 대부분의 남성들이, 맘에 드는 여성을 만나면 너무 맘에 들어서 차마 말을 못 걸고, 맘에 안 들면 또, 안 들어서 말 거는 것 자체가 싫은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말이다.



친절하게도, 이런 무대뽀 남성을 만났을 때를 대비한 여성용 작업 매뉴얼도 등장한다.



“사막은 우리에게서 남자들을 데려가놓고는 좀체 돌려주는 법이 없어요. 그러나 그건 우리도 알고 있고, 웬만큼 익숙해져 있는 사실이지요. 떠나간 남자들은 비를 뿌리지 않고 지나가는 구름 속에도 있고, 바위틈에 숨어 사는 짐승들 속에도 있고, 땅속에서 샘솟는 풍요로운 물줄기 속에도 있어요. 그들은 모든 것의 일부분이며, 마침내 만물의 정기로 변하는 거예요. 몇몇 사람은 되돌아오기도 하지요. 그러면 다른 여자들도 언젠가는 자신이 기다리는 남자도 돌아오리라는 기대로 함께 행복해해요. 전에 그런 여자들을 보면 그들의 행복이 부러웠어요. 하지만 이제는 내게도 기다릴 누군가가 생겼어요. 나는 사막의 여자이고 그게 자랑스러워요. 내 남자 역시 모래언덕을 움직이는 바람처럼 자유로이 길을 가길 원해요. 구름 속에서, 짐승들에게서, 샘줄기 속에서 내 남자를 볼 수 있길 원해요.” (본문 P.165)



어떻게 보면 당신의 꿈을 위해 지금의 헤어짐은 얼마든 감수할 수 있다는 아름다운 대사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뺄 거 빼고 자를 거 자르면 이담에 성공해서 다시 찾아오길 바란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출이라 할 것이다.



코엘료의 <11분>이나 <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처럼 여성이 주인공인 작품에서 등장했던 도발적 작업 멘트만큼 강력한 것은 아니어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 지금은 잘 판단이 서지 않는 애매모호한 남성을 만났을 때 일종의 보험처럼 묵혀 놓을 수 있는 유용한 작업의 지혜라 하겠다.



 





 

이상이다.


늘 강조하건데, 본 읽은 척 매뉴얼은 누군가에게 잘 알지 못하는 책 얘기로 불의의 일격을 당했을 때 자신의 자아를 방어하기 위한 호신용 매뉴얼일 뿐이다. 결코 자신보다 더 책을 읽지 않는 약한 사람들을 괴롭히기 위한 나쁜 수단으로 악용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읽은 척 매뉴얼 저자
딴지 편집장 너부리(newtoilet@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