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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희재] 막말에 대항하는 우리의 자세
- 얘는 또 누구인가

 

2009.8.17.월요일

 


0. 귀차니즘과의 전쟁

 

나의 거의 유일한 장점은 내 자신의 단점과 처지를 비교적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거다. 나는 운이 좋아 가끔 딴지에 글을 올리고 있지만, 내 자신의 논리나 사고방식을 높이 평가한 적도 없고, 글쓰는 솜씨도 아직은 많이 서투르다고 생각한다. 학벌이 좋은 것도, 출신성분이 좋은 것도 아니다. 논객이니 하는 거창한 타이틀은 생각해 본 적도 없으며, 그저 딴지가 생각하는 명랑사회라는 이상이 맘에 들어서, 짧은 해외생활을 통해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이런 저런 문제제기나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을 뿐이다. 뭐, 부족한 부분이야 아직 젊으니 노력해서 메꿔나가면 되는 거고.

 

이런 나에게, 소위 한국 우익의 아이콘(?)들은 가끔 정말이지 이해한도를 초월하는 자의식 과잉 현상을 보여주곤 한다. 얼마전 지만원씨의 글을 읽다 소름이 돋은 적이 있다.

 

 

기사링크 

 

다섯째 문단 즈음에, 필자의 운명이 곧 군의 운명이라 할 수 있다라는 구절이 있을 거다.

 

대략 진짜 어이가 없다.

 

도대체 무얼 어떻게 다잡고 오해를 하면 해방 이후 이 땅을 지켜온 대한민국 국군의 운명을 자신의 개인적인 인기저하→안티급증→안티들도 귀찮아지자 지명도 하락→결국 아무도 상대 안해줌→더 이상 저하될 인기도 없지만 다시 인기 저하라는 악순환과 동일시 할 수 있나? 수치심이라는 단어를 아예 모르는 건가?

 

이런 자의식 과잉에 빠진 인간들을 상대로 글을 쓰거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참 피곤한 일이다. 하지만, 이 귀차니즘이야 말로 근본적인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또 다시 글질을 하게 됐다. 참고로 광우병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언필칭 보수라는 자들과의 소통 이야기를 하려는 거다. 뭐, 그것 자체가 힘든 문제이긴 하지만.

 

1. 듣보잡 논쟁

 

전유경 아나운서의 듣보잡 발언은 독자제위도 아시리라 믿는다.

 

기사링크 

 

변희재씨는 이 발언에 대해 명백한 명예훼손(저번에 오타내서 미안하다) 이라며 공개사과를 요구하고 길길이 날뛰었다. 내가 궁금한 건, 이 단어가 그의 열등감을 폭발시킨 메카니즘이다.

 

사실 듣보잡은 쌍욕은 아니다. 전유경 아나운서는 변희재씨를 두고 생긴 것이 쥐 같다거나, 하는 짓이 쥐 같다거나, 존재 자체가 쥐스럽다거나, 쥐만 보면 사족을 못쓰는 이상한 성적 취향을 가지고 있을 것 처럼 보인다거나, 발언 내용이 쥐만도 못하다는 등의 국제사회가 분노하고 엠네스티 인터내셔널이 눈물섞인 편지를 4만 3천장 정도 보내올 반인도주의적이고 몰상식한 욕을 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저, 듣도 보도 못한 잡놈이라고 했을 뿐이다.

 


네티즌이 합성한 변희재(1)
파일명 - 변토닌 레오폴트 드보르잡(Byuntonín Leopold Dvo řáb) 1974 - ?

 

이 말을 찬찬히 분석해 보면, 그가 화를 낼만한 포인트가 언뜻 잘 보이지 않는다. 우선, 전유경 아나운서는 변희재씨가 마치 자신이 전국의 납세자를 대변할 자격이 있는 듯한 그야말로 자의식 과잉의 극치를 보여주는 한마디를 날릴 때 까지, 그를 듣지도 보지도 못한 것이다. 이게 죄가 되나? 온 국민이 이 원죄로 부터 구원받으려면 앞으로 우리는 신생아가 태어나면 우선 변희재씨의 얼굴과 이름부터 알려주며 살아야 하는 건가?

 

잡놈-혹은 잡것-이라는 부분은 굳이 따지자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욕설의 범주에 들어간다고도 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서거한 전 대통령을 조폭 보스에 다름 아니라고 (기사링크) 하거나, 아무런 근거도 없이 여기자가 몸을 판다는 등의(기사링크) 막말을 질러놓은 주제에 잡스러운 인간이라는 말의 폭력성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고 강변한다면, 좀 설득력이 없지 않을까?

 

듣보잡이라는 단어 자체가 개인의 명예감정을 심각하게 훼손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야말로 대통령이라도 되지 않는 이상, 자신이 대한민국 국민이 모두가 알고 있는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어이없는 오바 아닌가? 그럼 저 발언의 어디가 그의 명예감정을 훼손한 것인가.

 

그럼 여기서 아주 간단한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중고삘 독자제위는 내일 학교에서 이거 한 번 실험해 보시라.

 

전교 1등이나, 하다못해 반에서 1등하는 친구에게, 진지한 얼굴로 너 바보냐? 그러면, 그 넘 아마 피식 웃을 거다. 반에서 꼴찌를 하거나, 심한 경우 전교 석차에서 분모와 분자가 거의 같은 숫자가 나오는 친구에게 진지한 얼굴로 너 바보냐? 그러면, 그 학교 교풍에 따라 주먹이나 발이나 의자나 깨진 창문 같은 것이 날아올 지도 모른다.

 

정곡을 찔린 쪽이 마음이 아픈거다. 

 

그가 진정으로 스스로를 이 나라의 영향력 있는 보수논객으로 생각하고, 주변에서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형성이 되어 있었다면, 듣보잡이라는 말에 저런 반응은 보이지 않는다. 만약 저 자리에 변희재씨가 아니라 조갑제씨의 이름이 들어갔다면, 조갑제씨의 가히 엽행에 가까운 평소 행각에 대한 평가는 차치하고라도, 그 지명도 때문에라도 다른 결과가 나왔을 거다. 조갑제씨는 나를 모르는 아나운서가 있다니, 별 일이군 그러고 넘어가고, 조갑제씨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도 그 정도는 공부하고 오시지라고 말하고 끝났을 이야기다.

 

정리하면, 변희재씨가 듣보잡 발언에 발끈한건 본인이 스스로 생각해도 진짜 듣보잡이기 때문이다. 이 간단한 이야기를 굳이 길게 설명한 이유는 있다가 나온다.

 

2. 지적 수준과 소통.

 

굳이 여기서 변희재씨의 글을 조목조목 다 반박해 줄 생각은 없다. 이미 여러 개인 블로그에서 분말단위로 갈아마신 상태이니, 독자제위의 귀한 시간을 뺏는 일이 될거다. 좀 신경쓰이는 명예훼손이니 민사소송에 그칠 것이 아니라 형사소송도 어쩌고 하는 부분. 명예훼손 참 좋아하시는 거 같은데, 법에 대해 함부로 아는척 하다가는 개쪽을 까는 수가 있다는 중삐리도 아는 복음이 아직 전파되지 않은 점은 안타깝지만, 뭐 그건 이해해 준다 치자.

 

내가 정작 맘에 걸리는 건, 그가 지적 수준이라는 단어를 선택하게 된 경위이다.

 


네티즌이 합성한 변희재(2)

 

난 변희재씨가 진심으로 저능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학력은 둘째 치고라도, 그가 기고하는 글을 돈 주고 사보는 독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않는가. 이건 말을 돌려치려는게 아니다. 정말 변희재씨가 지적 수준이라는 단어는 이런 논쟁에 어울리지도 않고, 민주사회에서 한 개인이 한 개인에게 내뱉을 만한 말이 아니며, 오히려 발언자의 지적 수준에 종말처리 선고를 내리는 단어라는 것을 몰랐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진짜 모르고 저런 소리를 했다면 정말 구제불능 일테니 이런 글 쓰는 것 조차 아깝다는 말이다. 그러니, 여기서는 그가 일부러 저런 자극적인 발언을 했다는걸 전제로 이야기를 해 보자.

 

왜 저런 듣는 사람의 간담을 서늘케하는 무식한 발언으로 세간의 이목을 모으고 싶었을까? 자신에게 듣보잡이라고 말한 사람에겐 소송도 불사한다면서, 자신은 남에게 지적 수준이 없다라는 말을 해도 된다는 염치없는 더블 스탠더드(요즘 이 말 자주쓴다)를 만방에 알리면서 까지.

 

듣보잡 발언으로 자극받은 컴플렉스를 저런 식으로 메우려 했다고 생각하면, 비교적 무난한 분석일 거다. 막말을 통해 유명세 좀 타려는 게 하루이틀 일은 아니니. 하지만, 이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그의 발언을 잘 살펴보면, "지적 수준도 안 되는 자들이 자기 의견을 밝히기 시작할 때 대한민국의 소통체계는 일대 혼란에 빠진다"며 "김민선과 그의 소속사를 퇴출시켜야 한다"(강조는 인용자)는 부분이 있다.(기사링크) 인용한 뉴스가 좀 정리를 해 줬는데, 변희재씨의 원문쪽을 보면 김민선씨의 소속사를 거론하며 소속사의 입도 막아야 한다는 식의 발언으로 글을 맺고 있다.

 

즉, 그는 아예 자신의 말을 긍정해 주지 않을 상대방과 대화할 마음조차 없는 거다. 그리고 그 이유를 대화할 가치가 없으니까라고 포장하고 나선거다.

 

우리의 고민은 여기서 출발한다.

 

3. 그들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내 거의 유일한 장점은 자신의 단점을 잘 파악하고 있다는 거다. 난 인격자도 아니며 위선을 떨만큼 부지런한 인간도 못 된다. 악플, 짜증난다. 뭘 말해줘도 안 들어처먹는 인간들, 성질난다. 애시당초 대화할 생각도 없으면서 잘난척 너와 소통해주마라고 설치는 인간들, 지적 추행범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워드파일로 글 몇 개 저장해 놓고 타이틀 바꿔서 붙여넣기 하는 인간들, 제발 그 시간에 지 방 청소나 좀 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밥은 먹고 다니냐?

 

그런데 말이다.

 

그런 사람들과 처음부터 대화가 안 돼라고 생각하고 이야기를 시작하면, 결국 아무것도 안 된다. 변희재씨의 저 발언처럼.

 

변희재씨의 생각을 정리하면 이렇다. 그가 생각하는 소통은 지적 수준이 있는 자들 끼리의 소통이고, 그가 생각하는 대화는 지적 수준이 있는 자들끼리나 가능한 것이다. 물론 이런 이분법을 들이대는 인간들이 대부분 그렇듯, 변희재씨 스스로는 자신이 그런 지적 수준과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지적 수준이 없는 자들은, 대화와 소통의 장에서 퇴출시켜야 한다는 거다.

 

변희재씨 개인이 저런 어이없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던 말던, 그건 개인의 자유다. 듣보잡 사건을 통해 자신이 주류 논객이 아님을 알게 되자, 나를 주류로 파악하지 못한는 것들은 내가 상대해 줄 가치도 없는 자들이라는 식의 가련한 자기연민에 빠졌다면, 그것 또한 그의 자유다.

 

문제는, 우리가 저들을 대할 때 어떻게 해야 하냐는 거다. 사실 비단 변희재씨 뿐만이 아니라, 이 나라의 많은 자칭 논객들이 좌와 우를 가리지 않고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듣는 자들의 소양 부족이라는 그 어떤 남중국해 고래배포 만한 배짱을 부린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사실 각 게시판의 논쟁들도 많은 수가 이런 수준의 넌 너희들 노는 곳으로 가라는 식이라, 좀 씁슬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저들이 지적 수준을 들고 나왔다고 해서, 우리도 이런 상종을 못할 인간! 정도로 끝내버리면, 결국 그 나물에 그 밥이 되어버리는 것 아닌가. 

 

4. 다시 한 번, 귀차니즘과의 전쟁

 

오늘 내 결론은 이거다. 우리는 대화해야 한다. 나도 안다. 대부분의 경우 저들은 우리의 말을 들을 귀나 혹은 소양이나 혹은 양자 모두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마치 벽을 상대로 인간의 말을 늘어놓는 것 만큼이나 지치고 짜증나고 무엇보다 귀찮은 일이라는 것을.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들도 이야기 해 줘봤자 못알아 먹을 것들이라고 처음부터 선입견을 가지고 나가면, 결국 똑같은 수준의 인간이 되어버리고 마는 거다. 상대가 비록 듣보잡이라 할지라도, 상대가 비록 논리는 옆집 강아지에게 밥 말아 먹으라고 줘 버리고 지 감정에만 놀아나서 자극적인 말 몇마디로 이목을 모아보려는 자라 할지라도, 우리는 그들의 말을 듣고 반박하고 재반론을 들어줘야 한다.

 

만약 이것을 포기해 버리면, 그래서 서로를 칭찬하고 서로를 긍정해 줄 사람들 끼리만 모여서 게시판에 글질만 하고 있으면, 그야말로 정신적 마스터베이션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된다. 만약 진짜 우리가 이 세상과 이 사회를 조금이라도 바꾸어 볼려고 이너넷이라는 공간에 모여 이 짓을 하고 있는 거라면, 아주 조금은 마음을 열어 저들과 대화해 보려고 시도를 해야 한다는 거다. 아주아주 귀찮고 짜증나는 일이지만.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이렇게 좀스런 상대와 이런 저질스런 논쟁을 하는게 아니라, 진짜 제대로 된 대화를 할 날이 오지도 않을까? 언젠가 이 땅에 제대로 된 우익이나 보수가 싹을 틔울 지도 모르는데, 우리가 그것을 기다리지 못해 먼저 대화의 문화부터 스러져 버린다면, 그것도 안타까운 일이지 않을까. 지금 한국에 제대로된 우익이 없다는 것은, 우리가 대화 자체를 포기해도 된다는 면죄부가 되어 주지는 않는다. 안타깝게도.

 

대화를 시도해 보자. 언젠가 진짜 재미있는 논쟁을 벌일만한 상대가 나타나는 그 날 까지.

 


알려지지 않은 주시자로 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