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근조] DJ와 조용필
- 부록 : 간밤 세브란스 병원&시청광장 현장스케치 

 

2009.8.19.수요일

 

봉하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파토님과의 대화는 자연스레 DJ에 대한 얘기로 흘러들어갔다.

 

"DJ도 건강이 안좋다는데... DJ 마저 쓰러진다면 사람들의 상실감이 엄청날텐데요..."

 

"..."

 

너무 우울한 예감이라 화제를 살짝 비틀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드네요. 노통과 DJ 두 정치인을 한국가요판에 비유하자면 노통이 서태지, DJ는 조용필 같은 느낌이랄까..."

 

"후후 그러게요. 듣고보니 그럴 듯 하네요"

 

막연한 예감이었을뿐 그때는 미처 몰랐다. DJ와 조용필의 공통점을 본격적으로 고민해야 할 시간이 이리 빨리 찾아올 줄은.

 

 

 

둘 모두 대한민국의 정치사와 가요사에서 역사 그 자체, 산 증인 따위의 진부한 극찬 외에 달리 수식할 길이 없는 존재들이다. 미리 밝혀두건대 둘의 헤아릴 길 없는 위대함 하나로 DJ에게서 조용필의 향기를 맡은 건 아니다.

 

이른바 조빠(조용필빠)로서 빠심에서 우러난 몇마디를 덧붙이자면, 조용필 만큼 안티가 없는 명사를 본 적이 없다. 그 험한 포탈댓글 속에서도 차라리 무관심 속에 방치될지언정 어설픈 찌질이들의 철없는 모욕질에 방치되지는 않는다. 행여 악플이라도 달릴라치면 굳이 팬클럽이 나서지 않더라도 수십년간 국민가수의 노래를 통해 삶의 위로를 받았던 국민들이 나서서 사태를 진압하기 때문이다.

 

조용필의 팬들이야말로 진정 복받은 사람들이다. 수십년 전 자신의 선택이 단지 시류에 영합한 것이 아니었음을, 그들이 좋아한 대상이 충분히 좋아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역사가 입증해주는 것만큼 팬으로서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 조용필, 그는 단지 인기만 많았던 스타가 아니라 후배들에게 존경 받는 아티스트이자 한국의 대표가수로서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음악인이었던 것이다. 그의 음악이 취향이 아닐지언정 양식 있는 어느 누구도 그를 쉽사리 무시하지 못한다. 십수년 째 방송을 끊고, 콘서트에만 매진하는 그의 당당함은 또 어떠한가. 세속적인 기준이지만 그는 그의 팬들을 부끄럽게 하지 않는 존재다.

 

DJ를 보내는 지금, 내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그에 대한 기억 역시 이처럼 세속적인 기준에 따른 것이다. 그에게 투사된 전라도인들의 한을, 평화통일에 대한 그의 열망을, 민주주의 수호에 대한 그의 평생의 신념을 내가 완전히 이해한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다. 그 모든 걸 떠나서 내게 DJ는 내가 대한민국 국민임을 부끄럽지 않게 해준 최초의 정치인으로 기억된다.

 

30대 이상의 국민이라면 오직 삼김이 대한민국 정치의 전부였던 시절을 기억할 게다. 당시의 정치인들이 기억나는가 혹은 상상이 가는가. 몇번의 선거를 거쳐 그나마 거르고 거른게 현재의 정치인들임을 상기해 보시라. 아니, 김영삼이 위대한 민주투사로 추앙받던 시절이었음을 떠올려 보시라.

 

조폭과 시정잡배와 양아치와 정치인을 구별하기가 가카의 머리 속에서 개념 찾기만큼이나 어려웠던 시절. 수만권의 장서를 읽고 그 자신 경제학 서적의 저자였던 정치인이 상상이 가는가. 그에게서 나는 내 생애 최초의 지식인 정치인을 보았다. 먹물 냄새 풀풀 풍겨대는 그 지식인이 아니라 최소한의 합리성을 갖춘 존재로서의 지식인 말이다.

 

지식인의 정체성을 가진 자가 가장 추잡하고 험악한 판에서 반세기 동안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이 필요했을까. 그의 위대한 업적으로도 보스정치, 계파정치, 구태정치의 표본으로 삼김이란 모욕적 표현속에 아로새겨질 역사의 낙인은 피하지 못할 듯 싶다.(삼김은 DJ뿐 아니라 경상도민과 충청도민에 있어서도 모욕적 표현이란 생각이다. 그들 지역을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김영삼과 김종필이라니...)

 

정치판만큼이나 추악하기로 유명한 쇼비지니스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조용필 역시 DJ가 갔던 길을 걸었다. 밴드음악으로 음악활동을 시작한 그였지만, 그는 트로트, 민요, 동요, 록, 엔카 가리지 않고 닥치는대로 불렀다. 그 결과 음악에 사회의식이 없다는 이유로 비판 받고, 록 순혈주의자들에게는 뽕끼 때문에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 문제에 관한 조용필 자신의 태도가 적잖은 시사점을 준다. 팬들은 대중과 평론가들이 그의 음악성을 제대로 알아주지 못한다고 안달하지만, 정작 그 자신은 그 문제에 관해 초연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자신이 트로트를 부른 사실을 부정하지도 부끄러워 하지도 않는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그 실체도 알 수 없는 모호한 음악성이 아니라 대중이 그의 노래를 통해 얻게 되는 사랑과 위로다. 예술가의 자의식을 논하기에, 그는 이미 어느 경지를 넘어서 버렸다. 너무나 오랜 세월동안 국민가수의 노래에서 주체할 수 없을만큼의 위로를 받은 국민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콘서트 레퍼토리 선정 때마다 되풀이되는 매니아들의 비히트 명곡에 대한 열망은 언제나 가장 단순한 형태로 정리된다. 평생 딱 한번 조용필의 육성을 듣기 위해 콘서트장을 찾았을 지 모를 누군가를 위한 허공과 돌아와요 부산항에로.

 

비유가 적절하지 않다는 것, 논리에 비약이 있다는 것은 나도 안다. DJ를 보내는 이 자리, 어찌보면 그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랄 수 있는 구시대 정치인으로서의 면모까지도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싶은 심정이다. 맥락은 달랐을지라도 어떤 이들에게 DJ는 정치판의 조용필이었다. 그의 의지 이상으로 많은 이들이 그에게 의지했고 그에게 위로를 받았다. 여러 정치적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그 원천이 그가 수십년간 보여준 일관된 가치에 있음을 부정하기는 힘들다.

 

냉정한 평가는 역사가에게 맡기자. 그 추악한 판에서 그가 수십년간 생존했다는 사실 자체가 많은 이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음을 그가 알아주었으면 한다. 적어도 오늘 하루만은 그 모든 그의 허물 역시 그의 생존을 위한 필요악이었다고 믿을란다.

 

노래에 뽕끼가 들어가면 어떻고, 노래의 장르가 뽕락이면 또 어떤가. 그 아팠던 시절,  그 누가 우리를 위로했던가.

 

P.S.

 

지난 밤, 세브란스 병원과 시청광장에 다녀왔습니다. 별다른 내용은 없지만 분위기만 보시라고 사진 몇장 올립니다.

 

 

  

 

        

 

 

올해 굵직한 장례만 세번째 치루는 것 같습니다. 가족의 장례를 치룬지 2주만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접했고, 이제 김대중 전 대통령입니다. 당분간 장례식장 근처에는 가기가 꺼려질 것 같습니다.

 

인터넷의 폭발적 추모열기와는 달리 세브란스 장례식장은 차분한 분위기입니다. 노통 서거 때와는 달리 어느 정도 예상됐던 일이기도 하고, 한국적 정서로 볼 때 나름 호상이란 측면도 작용한 것 같습니다. 덕분에 노통 서거 때 느꼈던 황망함은 덜하지만 상실감이라고 할까요. 왠지 좀 쓸쓸한 기분이었습니다. 북적되는 취재진들과 식장 여기저기 쌓여있는 한겨레와 경향 외에는 여느 상가집과 비슷한 분위기였습니다.

 

 

  

 

 

 

발길을 시청으로 돌립니다. 시청 앞 대한문은 낮부터 인터넷에서 흉흉한 소문이 돌던 곳입니다. 시청에 공식분향소를 설치하기로 유족과 합의했다고 하는데 현재 상황은 어떤지 궁금했습니다.                                 

 

 

 

 

 

 

 

 

소박한 규모이긴 하나 시청광장 잔디밭 안에 분향소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촛불시민연석회의에서 준비했다고 합니다. 상황을 여쭤보니 내일은 지금 공사하고 있는(아래사진) 장소에 정부의 공식분향소가 설치 되는데, 이에 대한 시민들의 반감이 적지 않기 때문에 이 근처에 시민분향소를 유지할지 아니면 아예 다른 장소로 시민분향소로 옮길지 고민중이라고 합니다.

 

 

 

갑자기 사람들이 몰려듭니다. 추미애 의원입니다.

 

 

 

 

시민분향소를 찾은 정치인이 추미애 의원 말고 또 누가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시민들의 반응이 나름 괜찮았던 것 같습니다. 이제 시민분향소와 촛불시위의 성지인 대한문 앞으로 가보기로 했습니다.

 

용자 한분이 일인시위를 하고 계셨습니다.

 

 

 

 

 

끝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그의 유지가 이 땅에서 빠른 시일 내에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신짱(woolala74@gmail.com)

 

 

 

Profile
딴지일보 공식 계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