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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특파원] 미국 뉘우스 속보1

 

2009.8.19.수요일

 

오늘 아침에 남편이 깨우면서 김대중 대통령이 돌아가셨다고 그러드라.  그래서 울며 일어나서, 한차례 통곡을 하고, 그래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두 하자 하구 지금 울면서 미국 언론을 알아보구 있다.  찾는 대로 속보로 보낼께. 

 

야후 홈에서 World News 를 찍으니까, 젤 먼저 보이는 김대중 전대통령 서거 소식.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뉴스  AP (Associated Press)통신.  우리나라로 치면 연합통신 같은 거라, 진보적인 건 절대 아니구.  특별한 언론은 아닌데, 기본적으로 미국 사람들은 이런 걸 보고 정보를 많이 얻으니깐, 이 뉴스가 미국 언론의 기본이라고 생각이 된다.

 

제목은 “Ex-SKorean President Kim Dae-jung dies at 85”
(남한 전 대통령 김대중 85세 나이로 별세). 
기사가 꽤 길더라.  급하니까 대충 번역 요약할께.  

 

SEOUL, South Korea – Former President Kim Dae-jung, who spent years as a dissident under South Koreas military dictatorship and later won the Nobel Peace Prize for seeking reconciliation with communist North Korea, has died. He was 85.

남한의 독재체제하에서 반체제인사로 수십년간을 보냈고 후에 공산주의 북한과 화해를 추구하여 노벨상을 받은 전 대통령 김대중이 별세했다.  그의 나이 85세.
(그 다음 단락은 어느 병원에서 어떤 상태에 요즘 계셨는지 설명.  중략)

South Korean leaders, from friends to former foes, had been paying their respects for days at the hospital to a man whose epic career spanned South Koreas evolution from a brutal military dictatorship to a full-fledged democracy and global economic leader.

친구에서 적까지 남한 인사들은 며칠동안 병상의 그를 예의를 표하기 위해 방문하고 있었다.  그는 남한이 잔혹한 군사 독재에서 완전한 민주주의로, 국제적 수준의 경제적인 리더로 나아간 남한의 진화를 아우르는 (?) 신화적 커리어를 가진 사람이니까. 
(그 다음 단락은 이명박이 한 말: “훌륭한 지도자를 잃었다 ..... . ”  ---- 누가 니 얘기 듣고 싶대?  그 부분은 그냥 생략한다.) 

 

 Hundreds held a candlelight memorial service at a makeshift mourning site outside City Hall in Seoul, bowing, burning incense and leaving white chrysanthemums.   

서울 시청앞 임시 조문소에서 수 백명의 사람들이 촛불 추모를 하고 있다.  절하고, 향 피우고, 국화를 남기며. 

"I was filled with great sorrow when I heard former President Kim Dae-jung passed away," U.N. Secretary-General Ban Ki-moon, who served as a vice foreign minister in Kims administration, said as he paid his respects at the hospital.
Ban said he would do his part for "South-North peacemaking, development and eventually for unification — all of which President Kim Dae-jung always pursued."


반기문 말하길, “김대중 전대통령이 돌아가셨가는 걸 들었을 때 비통한 마음으로 가득찼다.”  반기문은 “김대중대통령이 항상 추구하셨던 남북한의 평화정착, 개발, 그리고 최종적으로 통일을 위해”  자기가 할 몫을 다하겠다라고 했다. 

Kim built a reputation as a passionate champion of human rights and democracy who fought against South Koreas military dictatorships and survived several suspected assassination attempts, including a 1973 abduction in Tokyo hotel by South Korean agents.

김대중은인권과 민주주의의 열정적인 승리자로 평판 높은데, 그게 말이지 남한의 군사독재에 항거해 싸우고 여러번의 암살 시도를 살아남았다.  예를 들어, 1973년 도쿄 호텔에서 남한 요원에 의해 납치됐었다.

Once president, he was the architect of the "Sunshine Policy" — a novel approach to relations with North Korea that sought to bring the two wartime rivals closer as a way to encourage reconciliation.

대통령이 되서는, 그는 “햇볕정책”을 만들었다.—이 참신한 북한 관계 접근법은 화해를 도모하는 방법으로 두 전쟁 라이벌을 가깝게 만드는 걸 추구하는 것이다. 

His efforts led to an unprecedented thaw in relations with the North and culminated in a historic North-South summit — the first on the divided peninsula — in Pyongyang with leader Kim Jong Il in 2000.

그의 북한과의 관계개선의 노력은 2000년 평양에서 열린 김정일과의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으로 결실 맺었다.  분단된 반도에 최초로 일어난 일이다.

His successor, the late President Roh Moo-hyun — who committed suicide three months ago amid a broadening corruption probe focused on the Roh family — maintained the Sunshine Policy. But Kim Dae-jung saw his work unravel when Lee, a conservative, took office in 2008, and conditioned aid to the North on the regimes commitment to nuclear disarmament.

그의 승계자 고 노무현도 햇볕정책을 고수했다. (그는 3개월 전에 노무현 집안을 부패 혐의로 뒤지는 가운데 자살했다.)  그러나 김대중은, 보수주의자 이명박이 2008년 집권한 이후 그의 햇볕정책을 말아먹는 꼴을 봐야했다 (의역, 요약했음)

In response, North Korea cut nearly all ties with the South, suspended several joint projects born of warming ties and threatened to restart its nuclear programs. But Kim continued to advocate engagement with Pyongyang.

이명박 정책의 대응으로 북한은 남한과의 관계를 거의 다 끊고, 합작 프로젝트를 멈추고, 핵 프로그램을 재 시동한다고 위협했다.   그래두 김대중은 평양과의 대화를 계속 주장했다.

"The South and North have never been free from mutual fear and animosity over the past half-century — not even for a single day," he told reporters in January. "When we cooperate, both Koreas will enjoy peace and economic prosperity."

지난 1월에 김대중 말하길, “남북한은 지난 50년간 단 하루도 서로 공포와 적대감에서 자유로운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협력할때 남북한이 평화와 경제적 번영을 누릴 수 있습니다”라고 했다.

On Monday, North Korea announced it would restart some of the joint projects, including the reunions of families divided for decades by the 1950-53 Korean War.

월요일, 북한은 이산가족상봉 등 협력 사업 일부를 재개한다고 했다.
그 다음 부분부터 15개 문단이 김대중의 일생을 요약해 준다.  박정희, 전두환에게 어떻게 박해 받았고, 암살시도가 어떻게 있었고, 다리를 저는 것두 교통사고를 가장한 암살시도 땜에 그렇게 된 거구, 미국 정보부가 개입해서 납치당하는 거 도와줬고, 광주 민주화 항쟁으로 수백명 죽었고, 전두환이 사형선고 내린 후에 미국이 또 개입해서 감형해 주고, 1985년에 미국에 망명했고, 등등. 

 

 


 

 

 


(필자 논평: 이거 김대중 살아온 거 읽어 보면 미국 사람들두 김대중 정말 대단해, 대단해 그러지 않을 수가 없다.  요새 아웅산 수지 얘기가 티비에  맨날 나오는 데, 이건 더한 드라마가 아니냐.  근데 넘 길어서 내가 지금 번역해 줄 수가 없다. 미안허다.)

마지막 몇 문단 얘기는 김대중의 주요 업적인 햇볕정책이랑 남북정상회담, 노벨상 수상을 설명해 준다.  대북 퍼주기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도 한 마디 있고.  맨 밑 단락은 유가족이 누구라는 거.

 

이만하면 잘 모르는 미국 사람들에게 들려줘도 될 만한 객관적인 뉴스인 것 같다.  Associated Press 기자들 수고했다. 
그럼 난 얼렁 딴 뉴스 찾아서 간다.  
  

 

잠깐 울음을 멈추고,

 


딴지 워싱턴 특파원 비키 채리옷(Vicky.Chario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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