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 광주사태와 김대중 2009.8.19.수요일 내가 소식을 접한 건 오늘 오후 2시 정도였다. 아무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클릭한 네이버 메인 화면에, 떡하니 자리잡은 [속보]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사실 많이 놀랍지는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과는 달리,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일까? 오히려 무덤덤했다. 이렇게 또 한 분이 가시는구나. 나는 대구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자란 대구 토박이다. 대학에 진학하기 전까지 대구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본 적이 없는, 심지어 수학 여행조차도 경주로 간... 뼛속까지 TK 출신이다. 우리는 김영삼을 영 - 동그라미 - 삼 - 나머지 세 개의 손가락, 즉 OK 표시라며 지지했고, 김대중은 대 - 커다란 - 중 - 가운데 손가락 - 으로 표현해 Fuck You 표시라며 무시하고 비웃었다. 당시 대구에선 초등학생들도 맹목적으로 그 손가락 표시를 따라하며 영재 교육마냥 정치적 입장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보면, 수사적인 표현이 아니라, 정말 등에 소름이 끼친다. 대학에 와서 처음으로 광주 사태의 진실을 알게 되었던 그 순간을 아직도 기억한다. 수천명이 죽고 피바다가 된 광주... 그 잔혹하기 이를 데 없던 사진들, 증언과 증거들. 절대로 방송을 탈 수 없었던 그 참혹한 현장이... 다른 지방에는 내가 알고 있었던 바대로 몇몇 빨갱이들이 선동해서 일으킨 폭동 으로 알려진 그 씨발 좆같은 일이... 나는 미안했다. 그 사실을 몰랐다는 것 자체가. 그제서야 나는, 대구에서 자라난 내가 얼마나 모르고 살아왔는가를 알게 되었다. 언젠가 광주로 투입된 그 공수부대들, 그들에게도 면죄부는 있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있었다. 무리하게 많은 인원을 안전 장치가 부족한 상태에서 낙하시키면서, 많은 동료들이 다치거나 죽어 갔고 그로 인해서 그들이 흥분 상태에 빠졌었다는 얘기를 말이다. 하지만, 하지만 묘하게도 말이다. 그래서 그 흥분 상태가 된 공수부대가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했기 때문에 면죄부가 필요한가? 를 들은 기억은 없다. 왜 그럴까? 내가 일부러 기억에서 지웠을 리는 없을 테고... 설마 그런 것조차 말할 수 없는 정도의 환경이었을까? 내가 자란 곳이? 그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말의 강도의 차이였을 것이다. 우리는 가해자를 변호하고 있었기 때문에, 피해자의 상황에 대해서 세세히 설명할 의무 따위는 없었다. 적어도 그때는 그랬던 것 같다. 김대중 전 대통령께. 정말 죄송합니다.
필리온(phylli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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