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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광주사태와 김대중
-나의 고백-

 

2009.8.19.수요일

 

 

내가 소식을 접한 건 오늘 오후 2시 정도였다. 아무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클릭한 네이버 메인 화면에, 떡하니 자리잡은 [속보]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사실 많이 놀랍지는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과는 달리,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일까? 오히려 무덤덤했다. 이렇게 또 한 분이 가시는구나.

편집장님이 김대중 전 대통령 관련 글을 부탁했을 때, 사실 많이 망설였다. 내가 과연 이런 글을 쓸 자격이 있을까. 그리고 이런 무덤덤한 기분으로, 과연 추모의 글을 쓸 수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일단 편집장님께는 적당히 말해놓고, 이 미묘한 기분을 달래기 위해 술을 한 잔 마셔보았다.

그리고, 무덤덤했던 그때와 똑같이, 아무 이유 없이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정말 온갖 생각들이 다 떠오르면서 머릿속을 흔들어놓았다. 스스로도 왜라고는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하지만 도저히 그냥 참기는 어려운 가슴 한 구석의 그 지독한 답답함.
이 미흡한 글에 차마 추모라는 이름을 달지 못하겠고, 그냥 그 생각들을 조금 털어놓아 보려 한다. 그래야 내 답답한 속이 조금이라도 풀어질 것 같아서.

 

 

나는 대구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자란 대구 토박이다. 대학에 진학하기 전까지 대구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본 적이 없는, 심지어 수학 여행조차도 경주로 간... 뼛속까지 TK 출신이다.

이전 내 고향 대구 기사에서도 잘 나와 있지만, 80년대 대구의 보수성이란, 그야말로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생각하면 되는 지경이었다. 우리는, 김정일은 형제를 죽이고 온갖 악행을 일삼는 인간 이하의 무엇이라고 설명하는 반공 교재를 정독하며 살았고, 광주 사태는 말 그대로 광주 사태 외의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으며, 그 실체는 빨갱이들 몇 마리가 지리산 같은 몇몇 산을 돌아다니다가 그냥 총 맞아서 잘 소탕된 그런 사태로 알고 자랐다. 학교의 선생님들조차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라인을 칭송하는 마당에, 중학생의 단순한 머리가 편견으로 굳어지지 않는 게 더 이상하다.

 

우리는 김영삼을 영 - 동그라미 - 삼 - 나머지 세 개의 손가락, 즉 OK 표시라며 지지했고, 김대중은 대 - 커다란 - 중 - 가운데 손가락 - 으로 표현해 Fuck You 표시라며 무시하고 비웃었다. 당시 대구에선 초등학생들도 맹목적으로 그 손가락 표시를 따라하며 영재 교육마냥 정치적 입장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보면, 수사적인 표현이 아니라, 정말 등에 소름이 끼친다.

1997년,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던 그 해에도 나는 알지 못했다. 여전히 대구는 이회창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호남 지역의 득표의 엄청난 지지율에 대해 비난하고 있었기 때문에. 저 전라도 투표율 봐라. 완전히 빨갱이 아이가. 내 부모님, 내 형제, 내 친구들, 내 선생님들.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는 상황에서, 나는 그 모든 것이 당연히 옳은 줄 알았다.

 

 

대학에 와서 처음으로 광주 사태의 진실을 알게 되었던 그 순간을 아직도 기억한다. 수천명이 죽고 피바다가 된 광주... 그 잔혹하기 이를 데 없던 사진들, 증언과 증거들. 절대로 방송을 탈 수 없었던 그 참혹한 현장이... 다른 지방에는 내가 알고 있었던 바대로 몇몇 빨갱이들이 선동해서 일으킨 폭동 으로 알려진 그 씨발 좆같은 일이... 나는 미안했다. 그 사실을 몰랐다는 것 자체가.

 

 

그제서야 나는, 대구에서 자라난 내가 얼마나 모르고 살아왔는가를 알게 되었다. 언젠가 광주로 투입된 그 공수부대들, 그들에게도 면죄부는 있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있었다. 무리하게 많은 인원을 안전 장치가 부족한 상태에서 낙하시키면서, 많은 동료들이 다치거나 죽어 갔고 그로 인해서 그들이 흥분 상태에 빠졌었다는 얘기를 말이다. 하지만, 하지만 묘하게도 말이다. 그래서 그 흥분 상태가 된 공수부대가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했기 때문에 면죄부가 필요한가? 를 들은 기억은 없다. 왜 그럴까? 내가 일부러 기억에서 지웠을 리는 없을 테고... 설마 그런 것조차 말할 수 없는 정도의 환경이었을까? 내가 자란 곳이? 그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말의 강도의 차이였을 것이다. 우리는 가해자를 변호하고 있었기 때문에, 피해자의 상황에 대해서 세세히 설명할 의무 따위는 없었다. 적어도 그때는 그랬던 것 같다.

우리는 단 한번도 광주 사태를 긍정적으로 언급한 적이 없다. 애시당초 빨갱이들이 선동한 폭동이었으니까. 우리는 전두환과 노태우를 성군처럼 받들어 왔다. 그들이 가장 훌륭한 대통령의 계보라고 말해왔다. 그들이 속한 여당, 그 당이 가장 훌륭한 정치적 견해를 지닌 정당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 모든 것의 이면을, 그제서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예전부터 미스테리이던 그 전라도의 95% 지지율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건 피눈물이었다.
국민투표라는 형태를 빌어, 어떻게든 그들만은 안 된다는 극단적인 지지율의 형태를 빌어 눈앞에서 질척하게 흘러내리는 피눈물이었다.
그 노력을 완전히 빨갱이 아이가로 매도하던 나의 모습이,
나는 정말로, 부끄러웠다.

부끄러운 줄 알았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끄러웠다. 그리고 미안했다. 죄송스러웠다. 지금까지 빨갱이 집단으로 취급하던, 단지 산 하나 건너 살고 있었을 뿐인 똑같은 사람들에게, 미안했다. 그렇게 상처를 입고도, 오해받고 차별받으며 살아야 했던, 그냥 좀더 용감했을 뿐인 그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미안했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을 찍는 것으로, 나는 조금이나마 미안함을 덜고 싶었다. 그렇게 내 무지와 편견에 대해 사죄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모르고 살아서는 안 되리라 결심했다. 다시는 이렇게 무지와 편견 속에서 판단을 내리지 않을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올바르게 알기 위해 노력하리라. 적어도 내가 그렇게 살아가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그 미안함을 씻어낼 수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적어도, 한 사람에게만은 그 미안함을 절대로 덜 수 없으리라는 것을, 나는 오늘에야 깨달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께.

한번이라도 당신을 향해 힘을 보태주는 목소리를 보내지는 못할망정, 당신이 어떻게 그 험난한 삶을 살아왔는지조차 알지 못하고, 어떤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끝까지 소신을 지켰는지 알지 못하고,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올라 어떤 일을 해냈는지 알지 못하고, 단지 아는 것이라곤 그저 내 고향에서는 Fuck You로 상징된다는 것밖에 없던 당신에게...

이제서야 감히, 부끄러운 제가, 염치 불구하고 이렇게 말씀을 드립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리고 감사했습니다.

 

 

 

필리온(phylli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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