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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게시판] 내 아버지, 나, 그리고 김대중

 

2009.8.20.목요일

 

내가 대학을 들어간 2000년. 세상은 더이상 군부독재가 판치는 세상도 아니었고 민주적 정권교체가 지상과제인 시대도 아니었다. 최소한 절차적 민주주의에 입각한 정부가 존재하는게 더 이상 감명깊을 것도 없는 당연한 전제였고 따라서 그 세대의 불만 많은 대학생들에게 있어 지지할만한 정치인은 영남권 출신의 호남당 정치인 노무현이나 글빨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유시민이나 진정성은 많이 느껴지지만 존재감이 너무 희박한 김근태 백기완 권영길 기타 등등이 있는 정도였다.

 

그리고 그 중에 김대중 은 없었다. 김대중은 이미 형성되어있는 현실 구조였고 그의 과거가 어떠했든, 그에 대한 훼예포폄 중 뭐가 옳고 그르든 그는 더 이상 대학생들의 관심을 끌 만한 정치인이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 아버지에겐 달랐다.

 

우리 아버지는 전남 완도군의 부속도서인 청산도라는 작은 섬에서 태어났다. 지금이야 서편제며 봄의 왈츠 촬영지로 상당히 떴지만(최근 2,3년 일이다) 원래부터 찢어지게 가난한 섬이었고 아버지의 아버지이신 할아버지(당연하잖아...)께서는 사회주의 운동을 하시다가 아버지가 3살때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다. 굴곡많은 한국현대사의 한 단면이고 ㄴㅂ이고를 떠나서 팔남매를 두고 일찌감치 가장이 저승길로 가버린 덕분에 아버지의 유년시절은 참 빈곤했던 듯하다.

 


청산도

 

아버지의 위로 세 형님들(당연하지만..나한테는 큰아버지다)께서는 모두 청산도에 있는 초등학교만 졸업하셨다. 육지로 학교를 갈 엄두가 안 났던 거다. 위로 네 누님들은 더 말할것도 없지. 학교가 웬말이냐. 글씨만 읽고 쓰면 끝이지. 그리고 팔남매 중 막내였던 우리 아버지는 혼자 공부했다. 뭐 그리 엄청난 천재라서 하나만 밀어줬던게 아니라 네가 막내니까 밀어주마, 일은 형들이 다 하겠다, 그분들의 멘탈리티는 그러했다.

 

육지(그때는 육지도 아닌 섬 완도)로 건너간 아버지는 완도중학교와 완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홀홀단신 서울로 상경, 1차로 서울대 철학과에 응시한다. 그리고 보기좋게 낙방한다. 역시 우리 아버지는 천재와는 거리가 멀었다. 재수를 해서라도 서울대 철학과에 들어가고 싶다는 문학/철학도 아버지의 부르짖음에 청산도에서 약방을 운영하던 첫째 큰아버지는 "철학과를 가면 먹고살기가 힘들지 않겠냐. 먹고살기 쉬운 데로 그냥 들어가라" 라는 일갈로 아버지를 잠재운다. 그 지시에 순응하여 아버지는 2차로 경희대 한의예과에 응시, 합격한다. 찢어지게 가난한 섬마을 출신 나주 정가네 막내아들이 대한민국 대 수도 서울에 도킹할 당위성을 확보한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 아버지는 현재 20년째 직원 하나 없는 한의원을 혼자 운영하고 계신다. 철들고 봤던 그 20년 내내 주 6일 근무, 공휴일 근무를 단 한번도 어긴 적 없이
학벌에 걸맞지 않은 영세상인틱한 매니지먼트와 수입을 유지하며 아들 딸 다 대학 졸업시키고 엄마 맞벌이 안시키고 자신에게 주어졌던 환경 조건 몇배 몇십배 이상의 인생을 살아오셨다.

 

현재 나는 혼자서 술을 한 잔 하고 있다. 이런 시시껍절한 얘기를 장시간 늘어놓기 위해서는 퇴고와 고찰을 무시한 미친 정열의 타이핑이 없이는 안되기 때문이다. 물론 내일 출근을 위한 여력 비축따위는 그닥 고려치 못하고 있다.

 

그래서였을까, 김대중에 대한 아버지의 애정은.

 

대한민국의 기성세대분들 중 자수성가 안한 분이 어디 계시겠느냐마는 21세기엔 꽤나 낯선 가난 이란 天刑을 부여안고 어떻게든 신분상승을 꿈꾸며 발버둥쳤던 가난한 섬마을 소년 아버지,

 

그런 당신께 전남 신안군 하의도 소작농 출신의 정치가
밑바닥에서 일어서서 정점을 향해 달려갔던 사람
서슬퍼런 독재권력에 맨몸으로 맞짱뜬 사나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닥 완벽하지 못했던 남자
동일인물로써 받기 힘든 온갖 영예와 멸시를 한 몸에 안고 간 남자.

 

그 이의 인생 한굽이 한굽이가 아버지에겐 멘토였다고
사상이고 민주주의고 더 나아가 같은 고향 사람이고 그딴걸 떠나서 전라도말로 짠한 그런 사람이었다고
그래서 그렇게 그를 사랑했었다고 그렇게 이해하면 안되는 거냐.
그렇게 이해하면 좌파 빨갱이인 거냐.

 

노무현이 우리세대의 영웅이라면(영웅이어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김대중은 우리 윗세대의 영웅이다(이하 동문). 한 많은 인생 한 많은 한국 현대사를 짊어지고 살아온 그 남자가 이제 저 멀리 간다. 이제 꽃상여타고 간다.

 

나는 노무현이고 누구고 누군가의 인생역정에 대해서 키보드를 두드려 말을 해서 어딘가 남길 수 있는 간단한 기능을 갖고 있다. 하지만 1분에 세 단어 치는 우리 아버지에겐 술 마시고 마음맞는 사람 두엇 모였을 때 이건 이렇다고, 저건 저렇다고
서글픈 격정을 토로하는 그런 수단밖에는 의사소통 기능이 없다.그래서 나는 노무현씨가 가던 그 날엔 굳이 할 필요 없었던 이 타이핑을 한다. 내 아버지의 그 삶과 이상과 체념과 슬픔을 남기려고 21세기에 묻혀져 가는 그 시대 그 사람들의 마음이 실은 이러이러했다고, 결코 역사책 속 한 줄이 아니었다고 말이다.

 

김대중이 정계은퇴를 하던 1992년 그 어느 날 아버지는 며칠을 밤잠을 이루지 못하시다가 어느날 달필로 써 내린 시 한 수를 나에게 주셨다.

 

"XX야, 한번 읽어봐라"
그 한마디 뿐이었다.

 

그 시를 마지막으로 이 글을 마친다.
1992년 아버지가 본 그 날은 2009년 지금의 그 날과도 전혀 다를 바 없다는게 문득 마음이 아프다.

 

당신에게 바치는 노래

 

동지여
선생님이시여
이 땅의 정치적 순교자여

 

한 많고 서러움 많은 것을 파란만장이라 하는가
당신의 얼굴에서 가엾고 못난 이 조선민족의 자화상을 본다
행동하는 양심도 인동초의 권한도

 

40년의 그 긴 세월
못다한 조국애 못다한 민주화를 가슴에 품고
홀연히 정녕 떠나시려나 보다

 

가진자는 교만해도 버린자는 말이 없네
수많은 세월 한없는 아쉬움을 가슴에 품고
지역감정 십자가에 색깔론 멍에까지 지고 가는 당신

 

그러나 동지여 당신이여
우리는 믿네
시대는 가도 민족은 영원하다는 것을

 

역사는 기록하리라 풍운아 김대중의 사랑 노래를
이 한 시대의 민초들을 온몸으로 사랑했던 그의 열정을

 

이제
차가운 겨울바람 지나고 훈훈한 봄바람이 다가오리라
당신의 그 십자가와 멍에가 벗겨지는 날
아아 당신이 그리도 원했고 우리 모두가 바라는
통일된 하나, 한 민족사가 펼쳐지리라

 

故 김대중 전 대통령 추모게시판 해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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